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능히 할 수 있느냐?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281회 작성일 2002-07-07 17:22
♡♥♡ 능히 할 수 있느냐? / 요6:1-10

***들어가는 말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오병이어의 이적’의 서론격인 말씀입니다. 본론인 이적은 11절부터 13절에 기록되어 있고, 14,15절은 이적의 후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서론 부분에서 제자들이나 오늘 우리들에게 더욱 깊은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이적의 내용은 ‘어린 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가 든 도시락으로, 남자 장정만 오천 명이나 되는 무리를 배부르게 먹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이적의 의미는 단순히 배고픈 무리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는 사실만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영생하도록 하는 하늘의 양식을 가르치고자 하심입니다. 즉 육신의 양식을 통하여 영의 양식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사복음서에 모두 기록하고 있는 중요한 이적입니다.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특히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두 제자인 ‘빌립’과 ‘안드레’입니다. 이 두 제자는 주님의 물음에 대하여 나름대로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들을 통하여 오늘 우리들에게도 중요한 의미들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1. 진정한 유월절 음식인 생명의 양식을 가르치십니다.

이 이적이 일어난 때가 유월절이 가까운 때라고 했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절기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지켜라.’고 하신 세 절기 중의 첫 번째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의 바로 왕의 강퍅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10가지의 재앙을 내렸습니다. 그 중의 마지막 10번째의 재앙이 ‘초태생의 죽음’이었습니다. 즉 애굽에 속한 짐승이나 사람이나 첫 배의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양을 잡아 그 피로 문설주와 인방에 칠하고, 식구대로 양고기를 구워먹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도록 했습니다.

그 사이에 하나님의 명을 받은 천사들은 애굽 전역을 돌면서 짐승의 첫 배 새끼와 사람의 맏이들을 죽였습니다. 다만 문에 피로 표시된 집은 침범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유월절입니다. 이 유월절은 육신이 종살이 하던 애굽에서의 탈출과 선민 이스라엘의 출발을 의미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의 해방과 하나님의 백성 됨을 위하여 어린양이 희생을 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 유월절을 지키러 온 사람들에게 떡과 고기를 먹게 하시고, 이어서 ‘예수님 자신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생명의 양식’이라고 외치셨습니다. 이는 죄악 된 세상으로부터의 자유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먹고 마십니까? 본문 지나서 54-55절입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지금 ‘성찬’으로 참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요한복음15:7,10절에 있습니다. 먼저 7절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 10절,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하십니다. 즉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연합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육신적으로 유월절을 지키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유월절의 어린양이신 주님 당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이 얻으려고 애쓰는 육신의 양식을 통하여 보다 더 중요한 영의 양식을 가르치셨습니다.

2. 사람들의 세상적인 지식의 한계를 무너뜨리십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수많은 순례 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남자 장정만 오천 명이라고 했으니, 전체로는 이만 명을 족히 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제자들 앞에서 ‘빌립’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주님의 물음과 빌립의 즉각적인 대답입니다. 빌립의 대답은, ‘이 많은 사람들이 요기만 하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 이상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빌립은 예수님의 질문을 오해 했습니다. 주님은 “어디서 떡을 사서”라고 물으셨는데, 빌립은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돈 문제로 대답을 했습니다. 주님의 질문은 ‘내가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겠느냐?’라는 의미였습니다. 만일 빌립이 지금까지의 주님을 조금만 깊이 생각하고 신뢰했더라면 ‘주님 당신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 했을 것입니다.

어떤 성도가 환상 중에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성도는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잠시 후에 안쪽에서 대문으로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거기 누구십니까?”라고 묻는 것이 아닙니까. 성도는 “예, 저는 ○○교회 ○○○집사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고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성도는 다시 문을 두드렸습니다. 똑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습니다. 성도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 했을까?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그러다가 세 번째 다시 문을 두드렸습니다. 역시 발자국 소리가 나고, “거기 누구십니까?”라고 물어왔습니다. 성도는 이번에는 “주님, 당신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 육중한 대문이 스르르 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이야기가 전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서2:20절에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는 죽었고,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주님 당신 자신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신 것도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세상적인 지식으로 가득한 빌립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 자리가 없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습니다. 세상적인 논리와 지식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 수 없습니다. 매사에 계산적이고 논리적이고 자신의 생각에 충분히 이해가 되어야 한다면 결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 장정 오천 명이 배불리 먹는다는 것이 논리적입니까? 아니면 이해가 되는 일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세상적인 지식으로 알 수 없고, 사람의 경험으로 계산할 수가 없습니다(욥기/ 욥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 욥38장).

3. 사람들의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십니다.

빌립 다음에 등장한 ‘안드레’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군중들 속에서 먹을 것을 가지고 온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넣은 작은 도시락을 가져온 어린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안드레는 자신이 보기에 수많은 무리들 앞에서 그 도시락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안드레가 말합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안드레 역시 지금까지 경험한 예수님에 대하여 믿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따르면 결코 믿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도시락은 한 어린아이의 배를 채우기에도 부족하게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안드레의 불신적인 표현이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일 것입니다.

에스겔37:1-3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마른 뼈들만 가득한 골짜기로 에스겔 선지자를 데리고 갔습니다. 그 뼈들을 보이시면서 물었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이 물음은 오늘 예수님의 물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일을 능히 할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즉 하나님을 향한 에스겔의 믿음을 보시고자 하셨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사람의 경험으로 볼 때, 사람의 지식으로 볼 때는 불가능했습니다. 이 뼈들이 다시 살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때 에스겔 선지자가 대답합니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십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습니다.’라는 표현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빌립의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안드레의 불신을 여지없이 무너뜨리십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무리지어 앉게 하시고는 작은 도시락을 들어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맡겨서 무리들에게 나누어주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떡과 고기를 나누면서 주님의 능력을 철저히 느꼈을 것입니다.

우리 성도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실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능히 할 수 있겠느냐?”라는 주님의 물음에는 “주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빌립에게 물으셨던 대로 한다면, 주님께서“우리가 어디서 이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라고 물으시면, “주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제 2002년의 전반기를 다 보내고, 후반기를 시작했습니다. 전반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감사합시다. 감사하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후반기에는 주님을 의지한 확실한 믿음 위에서 우리에게 주신 일을 향하여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잊지 맙시다.

‘할 수 있다 하신 이는 나의 능력 주 하나님, 의심 말라 하시고 물결 위 걸어라 하시네. 할 수 있다 하신 주, 할 수 있다 하신 주,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믿음만이 믿음만이 능력이라 하시네.’

행한대로 갚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믿은 대로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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