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과 성도의 생활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904회
작성일
2002-06-09 09:49
♡♥♡ 재물과 성도의 생활 / 눅16:13
*** 들어가는 말
신앙의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의 신앙 간증입니다.
그가 최초로 부임한 ‘부에노스아이레스’교회의 교인 수는 184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동안 극성스런 전도와 하루 16시간 목회에 몰두해서, 교인수가 600명을 헤아려 교세가 3배로 증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허탈감과 영적 탈진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회에 2주간의 기도의 허락을 받고, 교회를 떠나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자기를 깨뜨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또는 다이제스트 잡지사가 책과 잡지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너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술수를 다 쓰고 있다. 도대체 네가 하는 일 가운데 어디에서 나의 손길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은 계속되었습니다.
“너는 자라고 있지 않다. 네 생각에 교인 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자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 가는 것이다.”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르티즈’ 목사는 돌아와서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를 사임하고, 자신의 영적 성장과 하나님 나라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가 빠지기 쉬운 세상적인 경영전략입니다. 즉 영적인 관심보다 육신적인 관심이 더 깊었다는 말입니다. 혹시 ‘대단한 성장인데, 그것이 왜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라는 의혹이 생깁니까? 마태복음7:21-23절을 봅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육신적인 관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그리고 육신적인 함정의 대표적인 것은 ‘재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신. 구약 성경 전체에서도 ‘재물’의 위험성은 단연히 돋보이는 것입니다. 특히 신약에서는 재물을 영적인 삶을 해치는 가장 위험한 요소로 지적합니다. 누가복음18:24-25절에서는,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산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고, 디모데전서6: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직접적으로 경고 했습니다.
옛날 청교도들은 필요 이상의 소유를 갖는 것을 언제나 두려워하여 성경대로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주어졌을 때 두 가지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는 감사할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나누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르게 사용할 때 더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왜 재물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재물은 두 가지 큰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면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면입니다.
긍정적인 면은 어떤 것입니까?
재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모든 물질세계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므로 재물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역대상29:12절을 봅시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4:4절에서는,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물과 물질생활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신명기8:18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셨고, 전도서5:19절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모든 물질은 사람의 필요를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성도는 그것을 감사함으로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선한 일을 위하여 정직하게 벌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에베소서4:28절입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면에서는 재물의 근본적인 주인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부정적인 면은 어떤 것입니까?
재물의 근본적인 속성은 깨끗한 것이며, 육신의 생활을 가진 사람의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재물에 대하여 어떤 자세와 목적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위험한 속성을 나타냅니다.
재물의 부정적인 면으로 으뜸가는 것은 ‘우상의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8:13-14절에서,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 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고 재물로 인한 불신앙을 경고하셨으며, 누가복음12:15절에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하셨고, 골로새서3:5절에서는,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즉 사람에게 있어서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재물은 사람을 추하게 하며, 포학하게 하며, 교만하게 하며, 허무하게 하며, 신앙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가시덤불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가 의미하는 것이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성도가 재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흔히 재물은 ‘물’과 같다고 합니다.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됩니다. 재물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물에 대한 집착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영의 생명을 파멸시켰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에 집착하여 재물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 경기 지역의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들은 단돈 몇 만원 때문에 사람을 죽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돈 때문에 죽고, 죽이고, 생명을 사고팝니다.
이러한 재물의 위력을 다스릴 수 있으려면 재물의 주인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면 됩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임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 아닙니까? 그래도 인간들이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편50:10-12절을 봅시다.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라고 하셨고, 학개2:8절에서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듯이, 물질 앞에서는 그만 탐욕이 발동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관리를 맡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질에 대한 바른 관리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물질에 대한 자세만 바르게 되면, 영육간의 풍요를 마음껏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르고 충성스럽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5:7절이 바로 이 사실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 모두의 삶이 재물에 빠지지 않고 지혜롭게 활용함으로서 이 땅에서도 풍요를 누리고, 영원한 나라를 예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찬미예수 750번/ 길 잃은 청지기)
*** 들어가는 말
신앙의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는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의 신앙 간증입니다.
그가 최초로 부임한 ‘부에노스아이레스’교회의 교인 수는 184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동안 극성스런 전도와 하루 16시간 목회에 몰두해서, 교인수가 600명을 헤아려 교세가 3배로 증가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허탈감과 영적 탈진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당회에 2주간의 기도의 허락을 받고, 교회를 떠나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자기를 깨뜨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코카콜라 회사가 코카콜라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또는 다이제스트 잡지사가 책과 잡지를 파는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너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술수를 다 쓰고 있다. 도대체 네가 하는 일 가운데 어디에서 나의 손길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은 계속되었습니다.
“너는 자라고 있지 않다. 네 생각에 교인 수를 200명에서 600명으로 늘렸다고 해서 자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살이 쪄 가는 것이다.”
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오르티즈’ 목사는 돌아와서 ‘부에노스아이레스’ 교회를 사임하고, 자신의 영적 성장과 하나님 나라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가 빠지기 쉬운 세상적인 경영전략입니다. 즉 영적인 관심보다 육신적인 관심이 더 깊었다는 말입니다. 혹시 ‘대단한 성장인데, 그것이 왜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라는 의혹이 생깁니까? 마태복음7:21-23절을 봅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육신적인 관심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입니다. 그리고 육신적인 함정의 대표적인 것은 ‘재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신. 구약 성경 전체에서도 ‘재물’의 위험성은 단연히 돋보이는 것입니다. 특히 신약에서는 재물을 영적인 삶을 해치는 가장 위험한 요소로 지적합니다. 누가복음18:24-25절에서는,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산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고, 디모데전서6: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직접적으로 경고 했습니다.
옛날 청교도들은 필요 이상의 소유를 갖는 것을 언제나 두려워하여 성경대로 먹고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주어졌을 때 두 가지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하나는 감사할 책임이고, 다른 하나는 나누어야 할 책임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바르게 사용할 때 더하여 주실 뿐만 아니라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1. 왜 재물을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재물은 두 가지 큰 속성이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인 면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면입니다.
긍정적인 면은 어떤 것입니까?
재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즉 모든 물질세계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므로 재물 자체는 악한 것이 아닙니다. 역대상29:12절을 봅시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4:4절에서는,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재물과 물질생활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신명기8:18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고 하셨고, 전도서5:19절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모든 물질은 사람의 필요를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성도는 그것을 감사함으로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선한 일을 위하여 정직하게 벌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에베소서4:28절입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긍정적인 면에서는 재물의 근본적인 주인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을 강조합니다.
부정적인 면은 어떤 것입니까?
재물의 근본적인 속성은 깨끗한 것이며, 육신의 생활을 가진 사람의 필요를 위하여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재물에 대하여 어떤 자세와 목적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서 위험한 속성을 나타냅니다.
재물의 부정적인 면으로 으뜸가는 것은 ‘우상의 속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8:13-14절에서,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 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고 재물로 인한 불신앙을 경고하셨으며, 누가복음12:15절에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하셨고, 골로새서3:5절에서는,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했습니다. 즉 사람에게 있어서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재물은 사람을 추하게 하며, 포학하게 하며, 교만하게 하며, 허무하게 하며, 신앙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가시덤불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떨기가 의미하는 것이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재물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면 성도가 재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합니까?
흔히 재물은 ‘물’과 같다고 합니다. 같은 물이라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우유가 됩니다. 재물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물에 대한 집착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영의 생명을 파멸시켰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에 집착하여 재물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 경기 지역의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들은 단돈 몇 만원 때문에 사람을 죽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돈 때문에 죽고, 죽이고, 생명을 사고팝니다.
이러한 재물의 위력을 다스릴 수 있으려면 재물의 주인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세상을 지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으면 됩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임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 아닙니까? 그래도 인간들이 깨닫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시편50:10-12절을 봅시다.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나의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라고 하셨고, 학개2:8절에서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참새가 방앗간 앞을 그냥 지나가지 못하듯이, 물질 앞에서는 그만 탐욕이 발동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관리를 맡았을 뿐이라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래야 물질에 대한 바른 관리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물질에 대한 자세만 바르게 되면, 영육간의 풍요를 마음껏 누릴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르고 충성스럽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5:7절이 바로 이 사실을 의미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우리 모두의 삶이 재물에 빠지지 않고 지혜롭게 활용함으로서 이 땅에서도 풍요를 누리고, 영원한 나라를 예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복음성가/ 찬미예수 750번/ 길 잃은 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