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무엇을 염려하느냐?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9,232회 작성일 2002-05-26 21:11
♡♥♡ 무엇을 염려하느냐? / 마6:25-32

***들어가는 말

지금은 정보의 홍수시대라고 합니다. 10세기 때의 100년 동안의 정보가 지금에 와서는 단 하루에 생성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만큼 현대인들이 염려하고 걱정할 ‘꺼리’들이 많아졌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 전쟁으로 말미암아 죽은 미국 청년의 수가 30만 명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내보내고, 염려와 불안에 빠져 심장병으로 죽은 미국 시민들이 10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대부호 「카네기」는 말하기를, “나는 일에 있어서 보통 사람보다 3배의 능률을 낸다.”고 헸습니다. 그 까닭은 보통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려면, 일하기 전부터 염려하기 시작하여, 일을 하면서도 염려하고, 일을 마친 뒤에도 염려하지만, 자신은 일하는 동안에 한번만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스스로를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궁지로 몰아갑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있어서 앞과 뒤에 높은 담을 쌓아놓고, 그 사이에 갇혀서 무능하게 주저앉을 때가 많습니다. 뒤에 있는 담은 어제에 대한 후회이며, 앞에 있는 담은 내일을 위한 염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염려를 두고 ‘아무런 소득이 없는 헛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27절에서 ‘키 작은 것을 염려한다고 키가 커지겠느냐?’ 라고 반문하십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염려와 걱정으로 자신의 평화로움을 스스로 깨뜨립니다. 그래서 삶의 길을 갈등하고 고민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써 할 수 있는 최대의 갈등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로마서7:19-23절입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오래 동안 염려에 빠져 있지 않고 빠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비록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선과 악이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25절에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상태를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치료는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염려하고 있습니까?

지금 마음속으로 자신이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아마도 衣食住 생활에 대한 염려가 가장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염려는 인간 세상이 존재함으로부터 지금까지 인류의 공통된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에는 5초에 3명, 1분에 34명, 1일에 5만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 가까운 이웃이 북한의 동포들입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염려가 의식주가 아니겠습니까?

이들뿐만 아니라, 세상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염려가 없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50억의 세계 인구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걱정거리들이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염려를 지고 있습니다. 갓난아이들은 다만 지각이 발달하기 전까지 잠시 보류되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이 산다는 것 자체가 걱정거리를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 걱정거리들은 환경이 좋을 때는 잠시 주춤하다가 상황이 어두워지면 온통 삶을 짓누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누가복음21:3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여러분은 지금 어떤 염려에 쌓여 있습니까? 그 염려를 해결할 방법은 가지고 있습니까? 바로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는 의식주 문제로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찮은 생명인 새와 백합화까지도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을 돌보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통하여 염려에 싸여 있는 성도들에게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염려를 제거할 수 있습니까?

미국의 ‘종교 및 정신의학재단’이라는 단체의 공동 창설자인 ‘브랜튼’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박사는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하여 작가인 ‘아더 골든’을 만난 자리에서 ‘아더’의 근심어린 모습을 보고 물었습니다.
“아더, 무슨 일이 있었소?” 그러자 작가는, “당신을 기다리는 동안 내 과거를 돌아보면서 ‘만약에 이러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브랜튼 박사는 식사 후에 자신의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박사는 사무실에서 녹음기를 틀어서 들려주었습니다. “이 테이프에는 세 사람의 말이 녹음되어 있다네. 모두 내가 치료한 환자인데 이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봐요.” 골든 씨는 거의 1시간동안 테이프를 다 들었습니다.
그러자 브랜튼 박사가 물었습니다. “그들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 했는지 말해주겠소?” 아더 골든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박사는,
“그렇다면 내가 말해 주겠소. 그들은 모두 ‘만약… 만약… 만약…’이라는 말만 늘어놓고 있다네. 이 말 때문에 정신병이 생긴 것이오. 만약이라는 가정은 마치 독약과도 같지요. 이런 사람들은 ‘다음에는…, 다음에는…, 다음에는…’이렇게 말하는 것을 배워야 해요. 이 말은 소망을 의미하고, 치료를 의미하고, 건강을 의미한다네.”

앞서 말씀드린 염려의 두 가지 병폐가 1)지나간 일들을 후회하는 것이며, 2)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염려라고 했습니다. 후회란?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차라리 이렇게 할걸!’ 등과 같이 이미 지나가 버려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염려란, ‘만약 …한다면!’ 이라는 미래에 대한 온갖 가정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걱정들이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는 부분이 있습니까? 지나간 과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밖으로 흘러가 버린 것이어서 삶에 있어서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쓸데없는 걱정을 사서하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시편55:22절에서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 사도도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5:7절을 보십시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권고하심이라.’는 말은 ‘돌보다.’, ‘관심을 갖다.’라는 의미로서, 전체의 뜻은 ‘염려가 주님께 있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우리의 모든 걱정과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염려를 하나님께 맡깁니까? 빌립보서4:6절을 봅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십니다.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께 구할 것을 사실대로 아룀으로서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아룀에는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뢰면 하나님께서 맡아주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의심은 맡기지 못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없어서 맡기지 못하는 사람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이사야45:7절을 봅시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하시며, 신명기32:39절에서는, “이제는 나 곧 내가 그 인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손에 맡겨 버리라는 것입니다. ‘맡김’의 뜻은 ‘내어 던지는 것’입니다. 마치 야구 경기에서 투수가 볼을 상대팀 타자에게 힘껏 던져 버린 다음의 상태와 같습니다.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잘 던져졌든 못 던져졌던 더 이상 투수의 몫이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생활의 모든 염려를 한꺼번에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에 내어 던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내어 맡기는 것이 신앙입니다. 이렇듯이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권고하십니다. 여기에서 ‘권고하신다.’는 말은 ‘세밀하게 돌보고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돌보심(Care)을 받습니다.

이 사실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사무엘상1:9절 이하에 있습니다. 바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야기입니다. 한나가 자식이 없으므로 조롱을 받자, 마음이 괴로워 기도하며 통곡했습니다. 그 때, 엘리 제사장이 ‘한나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기를 원한다.’고 축복했습니다. 그 이후 한나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믿음대로 권고하시고, 한나의 태를 열어 잉태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의 염려와 걱정은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김으로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므로 기도와 간구로 아뢰면 되는 것입니다. 맡긴 이후에는 걱정하지 않아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도로 맡긴 이후에 다시 염려하면 그것은 곧 불신의 죄가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1:6-8절을 보십시오. 의심하는 자를 위한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경고하십니다.

반면에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응답을 하십니다. 다니엘서3장에 보면, 바벨론 왕인 ‘느부갓네살’의 통치와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의 철두철미한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왕 앞에 끌려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노하여 세 사람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신상에 절할 기회를 다시 한 번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신상에 절을 하면 좋겠지만 만약 이번에도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세 친구의 대답이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며, 생명을 맡긴 믿음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다니엘3:17-18절입니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세 사람의 대답은 결코 자포자기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건 믿음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했으며, 그 믿음을 입으로 시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10:10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삶에서 항상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사실적으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3:6절에서 약속하십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고 말입니다.

미국 ‘위스콘신’ 주의 ‘먼로 병원’의 원장인 ‘신들러’ 박사는 말하기를, 류머티즘의 30퍼센트는 신경의 긴장으로 인하여 압박을 받는 근육들의 고장으로 생긴다고 합니다. 그리고 피부병의 33퍼센트와 담낭 병의 50퍼센트는 내적인 생활의 혼란에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적어도 현대인의 모든 질병의 절반은 신체조직의 고장에서 생긴 것이기보다는 마음의 걱정과 생활의 혼란에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영이 강건해야 하고, 그 다음이 범사에 형통함과 육신의 건강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주님은 사람이 살아가는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과 의가 세상에서 이루기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대로 이루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비록 지금 세대가 힘들고 어렵지만, 모든 일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입으로 시인하며, 하나님께 생애를 맡김으로써, 영육간의 강건함과 형통함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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