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라오너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702회
작성일
2002-09-01 20:41
♡♥♡ 나를 따라오너라. / 마가복음1:14-20
*** 들어가는 말
오늘은 대복교회가 이 마을에 세워진지 8년이 되는 기념일입니다. 어느 듯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짧은 8년이었지만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길게만 여겨지는 기간이었습니다. 8년 전의 대복마을은 정말 황량했습니다. 125 가구가 사는 자그마하고 고집스러운 시골마을이었습니다. 교회가 처음 들어서는 것이어서 핍박과 냉대도 만만찮았고, 교회를 나타내는 십자가와 현판을 세우는데 10개월이 걸렸습니다. 첫 예배는 1994년 9월 4일 오전11시 주일 낮 예배였습니다. 사택으로 사용하던 단칸짜리 방에서 8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 대복마을에 첫 교회의 감격스러운 예배였습니다. 그 후 겨우 4-5평정도 되는 작은 창고를 개조해서 교회당을 만들었으며, 99년 2월까지 5년여를 사용했습니다. 지금 이 교회당은 99년 2월 28일 주일에 입당했습니다.
아이들도 여덟 살이면 유아의 티를 벗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나이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는 어린아이의 티를 벗고 활발하게 성장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이 감격스러운 날에 주님의 부르심은 무엇이며, 우리가 머물고 있는 위치가 어떠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성장을 향한 디딤돌을 삼고자 합니다.
말씀의 배경을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닫혔던 마음을 깨우치며, 회개를 전파하며, 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 만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고 악한 연고로 선지자들마저 거두시고 아무런 징조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긴 세월을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했습니다. 바로 이 때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광야로 모여들었으며, 회개하고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무렵에 30여 년 동안 세상의 평범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공생애라 일컫는 3년간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함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성령에 의하여 광야로 이끌리셨으며,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당시의 유대 지도자였던 분봉 왕 헤롯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한다는 이유로 세례 요한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한의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위하여 세우신 전무후무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세상을 뒤엎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술렁거렸으며 예수님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한 첫 제자들을 부르기 위하여 밤새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제자가 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요청을 받은 어부 형제는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역시 호숫가의 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부르셨습니다. 그 형제도 즉시로 아버지와 일꾼들과 삶의 현장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시대의 변두리에서 별로 각광받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관심에도 없던 지역의 비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열 두 제자가 모두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이 시간에 우리가 생각할 주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순종입니다.
여러분은 첫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자신의 장래에 대한 내용들을 알고 따랐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즉시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한 순간에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주님이 이들을 부르신 것은 순종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이렇게 순종이 요구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구원의 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에게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자신의 생명으로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자연히 이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 그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행1:8). 이 일은 세상의 지혜나 지식이나 부나 권력이나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과 삶을 회복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쳐 방해를 받아 일이 진행되지 못하자 사람들의 마음도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성전 재건이나 삶을 회복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을 깨우치고 독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 건축의 감독을 맡은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스가랴4:6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즉 비록 환경은 여의치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환경을 어렵게 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인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비천하지만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자신의 방식대로 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세상의 지식과 힘과 권력과 부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지식과 힘으로 이루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는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순종이란, 그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따라오너라.”는 말씀에는 이러한 순종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따르다’는 말은 ‘…을 따라서’라는 의미도 있지만, ‘…을 향하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의 방향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16:24절에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유명한 곡예사가 그의 제자들에게 고공에서 수평봉에 매달려 재주를 부리는 곡예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곡예사는 이 곡예를 부리는데 필요한 모든 부분을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에게 각자의 능력을 보이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소년이 까마득히 높이 걸려 있는 봉을 쳐다보고는 겁에 질렸습니다. 자신이 그 높은 봉에서 떨어지는 무서운 광경을 상상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소년은 곡예사에게, “못하겠어요. 도저히 못하겠어요!”라고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 때 곡예사는 포근하게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단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너에게 가르쳐 주마.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이 곡예사의 말이 제자로서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순종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게 합니다.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환경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나 자신의 생각에 연연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내 마음을 던지는 것이 제자로서 순종의 길을 가는 첫걸음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화려한 길이나, 부귀영화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희생과 십자가의 길을 요구하셨으며, 이에 대한 부활의 생명과 영원한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요청과 약속은 지금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첫 제자들의 부르심의 과정을 보여주시는 까닭도 순종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어떠한 이유로도 지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일과 집과 가족을 버려두고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19:27,28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22:28-30절에서는,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저나 여러분은 이 땅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애를 위한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평양 감사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못한다.”고 했듯이, 아무리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라도 자신이 거절하면 차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12:11절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큰 영광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광의 길을 위하여 지금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 있게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대복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인정받으며,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오늘은 대복교회가 이 마을에 세워진지 8년이 되는 기념일입니다. 어느 듯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짧은 8년이었지만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았던 길게만 여겨지는 기간이었습니다. 8년 전의 대복마을은 정말 황량했습니다. 125 가구가 사는 자그마하고 고집스러운 시골마을이었습니다. 교회가 처음 들어서는 것이어서 핍박과 냉대도 만만찮았고, 교회를 나타내는 십자가와 현판을 세우는데 10개월이 걸렸습니다. 첫 예배는 1994년 9월 4일 오전11시 주일 낮 예배였습니다. 사택으로 사용하던 단칸짜리 방에서 8명이 모여 예배를 드린 것이 대복마을에 첫 교회의 감격스러운 예배였습니다. 그 후 겨우 4-5평정도 되는 작은 창고를 개조해서 교회당을 만들었으며, 99년 2월까지 5년여를 사용했습니다. 지금 이 교회당은 99년 2월 28일 주일에 입당했습니다.
아이들도 여덟 살이면 유아의 티를 벗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나이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제는 어린아이의 티를 벗고 활발하게 성장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이 감격스러운 날에 주님의 부르심은 무엇이며, 우리가 머물고 있는 위치가 어떠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성장을 향한 디딤돌을 삼고자 합니다.
말씀의 배경을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메시아를 보내시기 전에 먼저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닫혔던 마음을 깨우치며, 회개를 전파하며, 물로 세례를 주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 만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하나님을 떠나고 악한 연고로 선지자들마저 거두시고 아무런 징조도 허락지 아니하셨습니다. 긴 세월을 하나님과 단절되어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해 했습니다. 바로 이 때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사람들은 광야로 모여들었으며, 회개하고 요한이 베푸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무렵에 30여 년 동안 세상의 평범한 삶을 사셨던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로 오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제 공생애라 일컫는 3년간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위함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성령에 의하여 광야로 이끌리셨으며,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기도하셨고,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당시의 유대 지도자였던 분봉 왕 헤롯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한다는 이유로 세례 요한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한의 잡혔다는 소식을 들으신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위하여 세우신 전무후무하고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세상에 알리셨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세상을 뒤엎는 놀라운 소식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술렁거렸으며 예수님 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한 첫 제자들을 부르기 위하여 밤새 기도로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를 거닐고 계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시면서 제자가 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요청을 받은 어부 형제는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역시 호숫가의 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도 부르셨습니다. 그 형제도 즉시로 아버지와 일꾼들과 삶의 현장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시대의 변두리에서 별로 각광받지도 못하고, 사람들의 관심에도 없던 지역의 비천하고 무식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열 두 제자가 모두 즉시로 예수님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이 시간에 우리가 생각할 주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순종입니다.
여러분은 첫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자신의 장래에 대한 내용들을 알고 따랐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즉시 부르심에 순종했습니다. 자신의 삶의 자리를 한 순간에 박차고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주님이 이들을 부르신 것은 순종이 필요했기 때문이며, 이렇게 순종이 요구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구원의 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에게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자신의 생명으로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자연히 이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누리면서 그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행1:8). 이 일은 세상의 지혜나 지식이나 부나 권력이나 사람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70년간의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는 일과 삶을 회복하는 일에 주력했습니다. 그러나 몇 차례에 걸쳐 방해를 받아 일이 진행되지 못하자 사람들의 마음도 회의적이 되었습니다. 성전 재건이나 삶을 회복하는 일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와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백성들을 깨우치고 독려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성전 건축의 감독을 맡은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스가랴4:6절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만 가능합니다. 즉 비록 환경은 여의치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시는 일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환경을 어렵게 하실 때가 많습니다. 그래야 사람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인정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비천하지만 부르심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사람들은 모든 일을 자신의 방식대로 하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세상의 지식과 힘과 권력과 부가 있는 사람들에게 더 심하게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지식과 힘으로 이루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는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순종이란, 그 뜻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를 따라오너라.”는 말씀에는 이러한 순종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따르다’는 말은 ‘…을 따라서’라는 의미도 있지만, ‘…을 향하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향하여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향해 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나 자신의 방향을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16:24절에서,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유명한 곡예사가 그의 제자들에게 고공에서 수평봉에 매달려 재주를 부리는 곡예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곡예사는 이 곡예를 부리는데 필요한 모든 부분을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면서 가르쳤습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에게 각자의 능력을 보이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소년이 까마득히 높이 걸려 있는 봉을 쳐다보고는 겁에 질렸습니다. 자신이 그 높은 봉에서 떨어지는 무서운 광경을 상상하면서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소년은 곡예사에게, “못하겠어요. 도저히 못하겠어요!”라고 떨면서 말했습니다. 그 때 곡예사는 포근하게 그 소년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단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너에게 가르쳐 주마.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이 곡예사의 말이 제자로서의 길을 어떻게 갈 것인지, 순종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깊이 깨닫게 합니다. “저 수평봉 너머로 네 온 마음을 던져라. 그러면 네 몸이 그 마음을 뒤따를 것이다.” 사람이 자기 생각이나 환경에 사로잡히기 시작하면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환경이나 자신의 생각에 연연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에 내 마음을 던지는 것이 제자로서 순종의 길을 가는 첫걸음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화려한 길이나, 부귀영화를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에 희생과 십자가의 길을 요구하셨으며, 이에 대한 부활의 생명과 영원한 영광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요청과 약속은 지금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도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길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첫 제자들의 부르심의 과정을 보여주시는 까닭도 순종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제자들은 어떠한 이유로도 지체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일과 집과 가족을 버려두고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마태복음19:27,28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22:28-30절에서는,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저나 여러분은 이 땅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애를 위한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그러나 “평양 감사도 자기가 하기 싫으면 못한다.”고 했듯이, 아무리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라도 자신이 거절하면 차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로마서12:11절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큰 영광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광의 길을 위하여 지금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 있게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대복교회에 속한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인정받으며,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