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935회 작성일 2002-08-10 21:52
♡♥♡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십시오. / 엡4:1-6

*** 들어가는 말

회사를 경영하는 어느 사업가가 사업차 외국 출장 중에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회사는 경영 상황이 많이 힘들어서 좌절감이 몰려올 때였습니다. 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창가에 서서 멍한 시선으로 밖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파리 한 마리가 밖으로 나가려다가 창문에 부딪쳐서 제자리에서 윙윙거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파리에게 있어서 유리창은 보이지 않는 방해물이었습니다. 파리는 아래로 떨어졌다가는 다시 시도하고, 뒤로 날아갔다가 다시 돌진하기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리창을 통하여 어렴풋이 비치는 방 반대편에는 현관문이 열려 있었습니다. 사업가는 파리를 보면서 생각합니다.
“파리가 방향을 바꾸어서 몇 초만 날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텐데…, 혹시 이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은 아닐까?! 내 삶의 방향만 조금 바꾸면 될 것을 고집스럽게 계속 돌진하는 것은 아닌가?”

사람은 자신이 한 번 옳다고 생각한 것은 잘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의 자세나 생각이 잘못되어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을 ‘고집’또는 ‘아집’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깊어지면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생각만 조금 바꾸고, 삶의 방향만 조금 바꾸어도 쉽게 해결 될 수 있는 일도 자신의 고집 때문에 고생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집이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이 옳다고 고집하기 시작하면 어느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주장이 통하지 않으면 교회를 떠나든지 신앙을 포기하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과감함까지 보이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것은 영의 생명을 위협하는 신앙적인 고집이며 교만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고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생활원리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그리스도인의 삶은 ‘나를 주장하는 고집’이 아니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상대를 존중하는 겸손’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말씀하신 ‘지도자론’에도 고집이 아닌 본을 가르치십니다. 베드로전서5:2-3절입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사도 바울 역시 ‘본을 보이는 신앙’을 말씀하며, 이는 예수님께서 보이신 가르침의 근본입니다. 요한복음13:15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처럼 사는 삶’,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영성(靈性)’이라 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본분입니다. 이를 본문에서는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 그리스도인이 따라야하는 가장 중요한 생활원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그리스도인을 향하신 가장 강렬한 소망은 ‘하나 됨’입니다. 예수님의 기도가 담겨있는 요한복음17장을 봅시다. 11절입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1-22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말씀하시지만, ‘하나 됨’의 근거는 ‘삼위일체(三位一體)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서는 4절에서 6절까지가 온통 ‘하나 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분열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분열이란, 서로 마음이 나누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로 부르신 것은 분열을 위함이 아니라, 하나 됨을 위함입니다. 이 하나 됨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시던 태초에 이미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고, 에덴동산에서 사람과 함께 거닐기도 하시며 대화하시고 또한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입는다는 것은 이 하나 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어떤 분명한 의식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되는데 필요한 의식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한자어로 ‘소명(召命)’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의 특징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한 좋은 예가 성경에 있습니다. 디모데후서2:3-4절입니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 모두는 자신을 자랑하고 드러내고, 자기를 주장하기 위하여 교회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오직 앞서가시는 예수 그리스도만 따르도록 부름 받은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이미 하나입니다. 성령 안에서 한 소망으로 부름을 받은 한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 아니라, 하나 된 것을 지키기를 힘써야 합니다. 만일 하나 됨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부적당하다는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 된 것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 하나 되기 위하여 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본문2,3절에서 우리가 하나 되기 위하여 가져야 할 생활의 자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겸손’입니다.
‘겸손’이란,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남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는 행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겸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보기에는 겸손은 줏대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나약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지위와 소유를 자랑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처럼 되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야 합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공작새 가정이 있었습니다. 그 집에는 공작새 부부와 외동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외동딸이 자라서 결혼하게 되어 부모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동딸 공작새가 분가해 간지 한 달도 못되어 초췌한 모습을 한 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외동딸 공작새 가, “엄마, 다른 새들한테 따돌림을 받아서 살수가 없어요.”라고 하소연하며 울었습니다.
딸 공작새의 말을 들은 어머니 공작새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네가 겸손하지 못해 그런 거란다. 넌 네 꽁지를 아무데서나 자랑했었지?”엄마 공작새의 말에 외동딸 공작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반문했습니다.
“이 꼬리는 우리 공작새만이 가지고 있는 것인데, 그걸 자랑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란 말 이예요?”이런 딸 공작새의 반문을 들은 엄마 공작새가 말을 이었습니다.
“내가 언젠가 세상에 있는 어느 인간선생님의 말을 엿들은 적이 있단다. 그분은 이렇게 어떤 사람에게 일러주더구나. ‘자네의 대화에서 그 자동차 얘기를 좀 빼게나, 영국 골퍼들 사이에는 젠틀맨 골퍼상식 이라는 것이 있네. 그것은 골프를 치지 않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을 때는 절대로 골프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일세.’라고 하더구나.”
이 말을 들은 딸 공작새는 다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마음이 절제되지 못하고 그대로 발산하게 되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우리들 곁에 남아 있고자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인들 자신의 부족한 것이 남들과 비교되는 것을 좋아합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를 위하여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사람이 되셨고 죄 없이 십자가를 지신 겸손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온유’입니다.
‘온유’란, 잘 절제된 부드러움입니다. 이 말은 ‘굉장한 힘이 어떤 일정한 방향으로 잘 조절되어 나타낼 때의 상태’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야생마를 생포하여 오랜 훈련을 통하여 길들인 다음에 경주마나 군마로 사용하는 그런 것입니다. 이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힘이 잘 다듬어져서 귀한 일에 사용되어질 때, 그것을 가리켜 ‘온유해졌다.’라고 합니다. 반대로 ‘온유하지 못하다.’는 것은 ‘다듬어지지 않아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이렇게 잘 다듬어진 온유함을 위하여 고난과 역경을 통한 연단의 길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온유함은 팔복과 성령의 열매에도 들어 있는 중요한 성도의 생활덕목입니다.

세 번째는 ‘오래 참음’입니다.
‘오래참음(makroqumiva", 마크로뒤미아)’이라는 말은 ‘마크로스(μακρός, 긴, 먼 거리의)’와 ‘뒤모스(θυμός, 열정, 분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상대방의 나쁜 감정이나 잘못에 대해 응징할 수 있는 상황 하에서도 참는 것’을 말합니다. 즉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기다리며 참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을 대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입니다. 만약 인간의 죄악과 허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즉각적인 심판을 내리신다면 이 땅에 살아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베드로후서3:9절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교회공동체에서는 서로에 대해서 참고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믿지 않던 우리들에게 오래 참으셨습니다. 지금도 날마다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지만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기를 참으시며 기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웃의 부족함과 연약함에 대하여 참고 기다리며 격려하고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네 번째는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서로 용납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자기에게 맞추어 바꾸려는 의도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부간이나 성도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아내가 이렇게 하면 좋겠는데…”, “저 분이 이렇게 해 주면 좋겠는데…”, “왜 이렇게 하지 않지!”등. 상대방을 자꾸만 자기에게 맞춰 변화시키려고 하면 갈등은 점점 더 깊어지게 마련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른 교인의 부족함과 흠을 보고 고쳐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로마서15:7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즉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기쁨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만 되면 교회에서 큰소리가 나고 분란이 일어날 일이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평안의 매는 줄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즉 이러한 마음으로 서로 돌아보고 격려할 때에 교회는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도 우리 각자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하물며 그렇게 부름 받은 우리가 서로에 대하여 자신의 방법을 우기고 편을 가르고 마음이 나누인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서로가 개성이 다르고, 재능이 다르고, 믿음의 분량이 다르고, 출신도 다르고, 생긴 모양도 다르고, 생활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을 받아 한 식구가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몸을 이룬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에서 다리가 불편하다고 잘라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싸고 더 편안하게 해 주듯이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러해야 합니다.

이제 교회설립 8주년이 다가옵니다. 좀 더 성숙한 교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주님께서 부르신 부름에 합당하게 생활합시다. 겸손하고, 온유하며, 오래참고, 사랑 안에서 서로 용납함으로서 주님께서 이루신 하나 됨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힘써 지켜 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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