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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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10-26 15:43
♡♥♡ 뜨거운 사람 / 로마서12:9-21
***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진 것은 1883년 황해도 ‘송천’에서였습니다. 복음이 들어온 것은 그 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1832년 화란 선교사인 ‘구츠타프’가 ‘만주’에서 한국인에게 전도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개신교 복음이 들어온 지도 170여년이 됩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사를 보면 너무나 열심히 예수를 믿었습니다. 초기에는 교역자도 귀했고 교회도 귀했습니다. 한 목회자가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도 많지 않았고, 글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각 마을에서 예수 믿는 사람 중에 글을 잘 아는 사람을 ‘조사(助事)’로 임명해 두고, 목사 없이 예배를 드릴 때에 성경을 읽고 간단하게 설교도 하게 했습니다. 주로 일이 끝나는 밤에 모였는데, 당시에는 전깃불이 없으니까 호롱불 밑에서 조사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했습니다.
한번은 경상도 지역의 어느 산골 교회에서 저녁 예배를 드리며 조사가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날의 성경말씀은 시편 23편이었습니다. 조사가 성경을 읽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 하시는도다 …” 이렇게 읽어야 하는데, 호롱불 밑이라서 글자가 잘 보이지도 않고 불빛이 흔들리면서 가물거려서 그런지 조사가 이렇게 읽었습니다.
“여호와가 내 목을 자르셔도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조사가 성경을 읽고서 생각하니까 그날 말씀이 너무 너무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시작하면서 읽었던 1절을 다시 인용합니다. “여호와가 내 목을 자르셔도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자 그 날 모인 온 성도들이 저마다 손을 들면서, “내두요! 내두요!” 그러면서 “여호와가 내 목을 자르셔도 나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정도 되면 열심을 넘어서 비장한 각오로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고백할 성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주어진 소망으로 인한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며 푯대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서3:14절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신앙의 목표가 분명해야 열심도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가 믿음에도 생활에서도 열정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에 불법이 많아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4:10-13절과 누가복음18:8절을 봅시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에 세상에는 사랑도 식어지고, 믿음도 식어져서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이라는 주님의 염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사랑도 믿음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믿음과 사랑을 지키면서 마지막까지 소망을 잃지 않으려면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열정이 있어야 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열정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론에서 이미 대강의 이유를 설명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열정을 소유하신 분이시며, 열정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읽은 본문의 내용 전체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마지막 때에 힘써야 할 행동강령입니다. 모든 내용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이 내용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11절과 21절을 봅시다. 먼저 11절에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으며, 21절에서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열정은 어떠합니까? 열왕기하19:31절입니다.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셨으며, 이사야9:7절에서는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2:17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열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처럼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열정을 가지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열심을 가지라고 하셨으며 또한 경고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3:16절입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신앙이 정체되어 있는 성도들을 경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신앙생활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2. 무슨 일에 어떻게 열심을 내어야 합니까?
열심을 내어야 할 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영국 의학협회에서 병 치료에 관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발표했습니다. 연구를 담당한 ‘하이슬루프’ 박사는 말하기를,
“내가 지금까지 발견한 치료법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말하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 ‘기도’라고 했습니다. 박사는,
“기도의 힘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신경과민을 조절해 줍니다. 그래서 언제나 환자가 올 때마다 환자들에게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항상 기도하시오.’”
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삶은 ‘기도’로 결정됩니다. 기도가 이처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3:23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맡기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힘을 기울여 실행해야 합니다. 봉사의 일이든지 섬김의 일이든지,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많은 만남들 속에서 등. 주어진 현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삶의 자리이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먼저,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사랑합시다.
사람이 떠나고 난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린 제사상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떠나고 없는 사람을 향하여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 애타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본문9-10절을 봅시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4:20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25:40절에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보이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한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사람과 환경을 뜨겁게 사랑합시다. 베드로전서4:8절에서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열정이 없는 사랑은 가뭄에 비 없는 구름처럼 사람을 애타게 할 뿐입니다. 사랑에 뜨거운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 합시다.
본문11절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신의 생명의 불꽃이 시간입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한다면 결코 죄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죤 웨슬레(1703-91)’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이 있어서 안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웨슬레는 시간을 아껴서 잘 사용하는 사람으로 유명한데, 말을 타고 전도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일을 많이 하기로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99)’을 꼽습니다. 어느 날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결은 특별히 없습니다. 단지 날마다 4시에 일어나 남들이 자는 시간에 두 시간씩 더 일을 한 것이지요. 습관이고 결심일 뿐입니다.”
‘시간과 밀물은 결코 막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조금 쉬고 싶거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시간이 기다려 주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은 잡아야 내 것이 되지, 보고만 있으면 언제나 남의 것이 될 뿐입니다.
신앙생활도, 봉사도,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학교생활도 열심히 합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3:10절에서는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이 선한 일에 열심하도록 하기 위함이라 하셨고, 열심을 내라고 독려하십니다. 디도서2:14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고, 계시록3:19절에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으로 삽시다.
오늘 본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긴박하고 적극적인 느낌을 갖게 합니다. 본문14,15절을 읽어봅시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하셨고, 20,21절을 읽어봅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이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말합니다. 즉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담대하게 실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침노하여 빼앗는 자가 차지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적극적인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을 확실하게 가지셨다면 열심을 냅시다. 미지근하여 내어쫓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열정을 가진 뜨거운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우리나라에 최초로 교회가 세워진 것은 1883년 황해도 ‘송천’에서였습니다. 복음이 들어온 것은 그 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1832년 화란 선교사인 ‘구츠타프’가 ‘만주’에서 한국인에게 전도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개신교 복음이 들어온 지도 170여년이 됩니다.
우리나라 초대 교회사를 보면 너무나 열심히 예수를 믿었습니다. 초기에는 교역자도 귀했고 교회도 귀했습니다. 한 목회자가 여러 교회를 순회하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도 많지 않았고, 글을 아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각 마을에서 예수 믿는 사람 중에 글을 잘 아는 사람을 ‘조사(助事)’로 임명해 두고, 목사 없이 예배를 드릴 때에 성경을 읽고 간단하게 설교도 하게 했습니다. 주로 일이 끝나는 밤에 모였는데, 당시에는 전깃불이 없으니까 호롱불 밑에서 조사가 성경을 읽고 설교를 했습니다.
한번은 경상도 지역의 어느 산골 교회에서 저녁 예배를 드리며 조사가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 날의 성경말씀은 시편 23편이었습니다. 조사가 성경을 읽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 하시는도다 …” 이렇게 읽어야 하는데, 호롱불 밑이라서 글자가 잘 보이지도 않고 불빛이 흔들리면서 가물거려서 그런지 조사가 이렇게 읽었습니다.
“여호와가 내 목을 자르셔도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조사가 성경을 읽고서 생각하니까 그날 말씀이 너무 너무 은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시작하면서 읽었던 1절을 다시 인용합니다. “여호와가 내 목을 자르셔도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그러자 그 날 모인 온 성도들이 저마다 손을 들면서, “내두요! 내두요!” 그러면서 “여호와가 내 목을 자르셔도 나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정도 되면 열심을 넘어서 비장한 각오로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고백할 성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주어진 소망으로 인한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에서의 삶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며 푯대입니다. 사도바울이 빌립보서3:14절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신앙의 목표가 분명해야 열심도 낼 수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가 믿음에도 생활에서도 열정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며, 하나님께서 필요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마지막 때가 되면 세상에 불법이 많아지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24:10-13절과 누가복음18:8절을 봅시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주님이 다시 오실 그 때에 세상에는 사랑도 식어지고, 믿음도 식어져서 도무지 찾아 볼 수가 없을 것이라는 주님의 염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사랑도 믿음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믿음과 사랑을 지키면서 마지막까지 소망을 잃지 않으려면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열정이 있어야 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겠습니까?
1. 열정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론에서 이미 대강의 이유를 설명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열정을 소유하신 분이시며, 열정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읽은 본문의 내용 전체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마지막 때에 힘써야 할 행동강령입니다. 모든 내용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즉 이 내용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11절과 21절을 봅시다. 먼저 11절에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으며, 21절에서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이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요청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열정은 어떠합니까? 열왕기하19:31절입니다.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셨으며, 이사야9:7절에서는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2:17절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예수님의 열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처럼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열정을 가지셨습니다. 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열심을 가지라고 하셨으며 또한 경고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3:16절입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신앙이 정체되어 있는 성도들을 경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는 신앙생활에서든 사회생활에서든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2. 무슨 일에 어떻게 열심을 내어야 합니까?
열심을 내어야 할 일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영국 의학협회에서 병 치료에 관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발표했습니다. 연구를 담당한 ‘하이슬루프’ 박사는 말하기를,
“내가 지금까지 발견한 치료법 중에서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의사가 말하는 가장 효과적인 치료법이 ‘기도’라고 했습니다. 박사는,
“기도의 힘은 사람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신경과민을 조절해 줍니다. 그래서 언제나 환자가 올 때마다 환자들에게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항상 기도하시오.’”
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삶은 ‘기도’로 결정됩니다. 기도가 이처럼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는 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골로새서3:23절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이 맡기셨고 또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힘을 기울여 실행해야 합니다. 봉사의 일이든지 섬김의 일이든지, 직장에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많은 만남들 속에서 등. 주어진 현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삶의 자리이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먼저,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사랑합시다.
사람이 떠나고 난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차린 제사상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떠나고 없는 사람을 향하여 뒤늦게 사랑을 깨닫고 애타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본문9-10절을 봅시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내게 주어진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사람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4:20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25:40절에서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보이는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한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사람과 환경을 뜨겁게 사랑합시다. 베드로전서4:8절에서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했습니다. 열정이 없는 사랑은 가뭄에 비 없는 구름처럼 사람을 애타게 할 뿐입니다. 사랑에 뜨거운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 합시다.
본문11절에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소중한 자산입니다. 자신의 생명의 불꽃이 시간입니다. 이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한다면 결코 죄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죤 웨슬레(1703-91)’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이 있어서 안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웨슬레는 시간을 아껴서 잘 사용하는 사람으로 유명한데, 말을 타고 전도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일을 많이 하기로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99)’을 꼽습니다. 어느 날 ‘그렇게 일을 많이 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비결은 특별히 없습니다. 단지 날마다 4시에 일어나 남들이 자는 시간에 두 시간씩 더 일을 한 것이지요. 습관이고 결심일 뿐입니다.”
‘시간과 밀물은 결코 막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내가 조금 쉬고 싶거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시간이 기다려 주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은 잡아야 내 것이 되지, 보고만 있으면 언제나 남의 것이 될 뿐입니다.
신앙생활도, 봉사도, 가정생활도, 사회생활도, 학교생활도 열심히 합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후서3:10절에서는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신 목적이 선한 일에 열심하도록 하기 위함이라 하셨고, 열심을 내라고 독려하십니다. 디도서2:14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고, 계시록3:19절에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적극적으로 삽시다.
오늘 본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긴박하고 적극적인 느낌을 갖게 합니다. 본문14,15절을 읽어봅시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하셨고, 20,21절을 읽어봅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이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가 아닙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를 말합니다. 즉 남이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담대하게 실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침노하여 빼앗는 자가 차지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적극적인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을 확실하게 가지셨다면 열심을 냅시다. 미지근하여 내어쫓김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열정을 가진 뜨거운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