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마음을 넓히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811회 작성일 2002-10-12 22:22
♡♥♡ 마음을 넓히라 / 고린도후서6:11-13

***들어가는 말

이 시간의 본문을 포함하는 6장과 전후(前後)의 말씀들은 그리스도인의 합당한 신앙생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6장 첫머리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라고 시작합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면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합당한 삶의 자세가 있음을 전제로 하고 말씀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고린도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편협한 마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신앙의 길은 좁은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세상에 속한 물질이나 사상이나 쾌락 등을 허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강조하는 것은 아무나 갈 수 없는 분명히 좁은 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독선주의’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마음까지도 ‘밴댕이 속처럼 좁아터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주님처럼 원수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넓은 것입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지목하여 세운 존귀한 인물입니다. 그는 체격 조건도 보통사람보다 어깨 위나 더 컸으며, 왕으로서의 조건을 갖추었고, 또한 겸손했습니다. 그런 그가 왕으로 지내는 동안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음이 불안정해 지면서 변했습니다. 자신에게 큰 도움이었던 충성스러운 다윗을 대적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블레셋 장수인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자기보다 더 큰 칭송을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울 왕의 좁아진 마음에는 다윗이 머물 자리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좁아진 마음 때문에 아들 요나단과도 불화했고, 충신들도 하나 둘 물러가고 ‘도엑’ 같은 간신들로 인하여 실정(失政)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된 다윗은 마음이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넓은 아량과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 곁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때로는 사울과 반역자들에게 쫓겨 굶주림과 위험에 빠져있을 때에라도 다윗을 도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사무엘상22:1-2절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 형제와 아비의 온 집이 듣고는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그와 함께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라고 증언합니다. 이는 다윗의 포용력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다윗처럼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넓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마태복음5:43,4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한 곳 더 봅시다. 누가복음6:35절입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라고 그리스도인이 마음이 넓어야 할 것과 넓어야 할 이유를 가르치십니다. 넓은 마음의 소유자에게는 하늘의 큰 상급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은총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이처럼 모든 것을 이해하고 관용하는 넓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3:3,4절을 통하여 고린도교회의 문제 중에 심각한 것이 시기와 분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시기와 분쟁은 닫혀진 마음의 산물입니다.

심각한 질병이나 사고로 인하여 지체 중의 일부를 다른 사람의 것을 이식해야만 하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이식해야 할 장기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식하려는 장기와 이식 받는 몸이 ‘거부반응’ 없이 서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수혈 할 때에도 혈액형을 맞추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만일 서로가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면 생명이 위험하게 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입니다. 만일 같은 몸의 지체가 서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면 생명의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갈라디아서5:15절에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랑하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강권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한 몸으로서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상대방을 향하여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결코 하나를 이룰 수 없습니다. 닫힌 마음은 그 어느 누구도 열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여는 길뿐입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들어가거나 나올 수 없습니다. 이는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자신만의 세계로 깊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신적 질병인 ‘자폐증’입니다.

이 시대에는 의외로 영적인 자폐증 환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밝고 신실한 신앙을 가진 성도 같은데, 자신을 열지 않고 다만 맡은 일로서 교회의 일이나 직분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방법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 시기와 분쟁을 부르며 마음을 닫게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이런 지경에 빠졌습니다.

예전에 세 교회가 연합하여 청년수련회를 기도원에서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수련회 중에 제가 ‘인간관계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 훈련은 자신을 개발하고 공동체가 활성화 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훈련 중에 서로를 믿고 마음을 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특히 세 교회의 청년들이 모였기 때문에 경계심과 서먹함이 있어서 더욱 마음 열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여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질문을 했습니다. 첫째 질문은 “신. 불신을 떠나서 자신이 정말 믿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몇이나 됩니까?”라는 것인데 평균 3명이 채 되지를 않았습니다. 다음 질문은 “그렇다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 중에서 몇 % 정도를 보여줍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최고 많이 연다고 하는 여 청년 한 명이 80% 정도라고 했습니다. 평균이 40% 정도였고, 10%, 20% 까지도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믿는 청년들이고 가장 친한 친구라는 단서가 붙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기대를 했었는데 그 기대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열린 마음입니까? 아니면 냉동 창고 건물처럼 창문 하나 제대로 없이 폐쇄되어 있습니까? 서로 이해하고 넓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여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2. 좁은 생각들을 틀어버려야 합니다.

본문12절을 봅시다. “너희가 우리 안에서 좁아진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심정에서 좁아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현대어성경으로 다시 읽겠습니다. “우리 사이에 아직도 냉랭한 것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여러분의 사랑이 너무 적어서 내게까지 닿지 않고 또 나를 끌어당기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마디로 ‘짝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뜨겁게 사랑했는데, 고린도 교회는 엉뚱한 곳에 마음을 쓰면서 사랑에 호응하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좁은 생각’은 스스로의 생각 속에 갇혀서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털어버리면 너무나도 넓은 세상이 있는데 말입니다.

예전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신문에 난 적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 격전지였던 태평양의 ‘괌’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전쟁이 끝난 지 27년이 지나도록 섬의 동굴 속에서 지낸 사람이 발견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일본군이었던 ‘쇼이찌 요꼬’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전쟁이 치열할 때 대나무 숲에 굴을 파고 숨었습니다. 그는 물고기나 뱀장어로 연명하면서 투항하지 않고 홀로 27년 동안 전쟁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발견된 동굴을 ‘요꼬이’동굴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두려운 마음을 떨치지를 못했습니다. 바깥세상은 세계에서 유명한 휴양지로 탈바꿈하고 있을 때에도 그의 마음에는 두려운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는 전쟁하는 세상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요?

우리는 많은 경우에 상대방의 마음이 닫혀져 있다고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도무지 대화가 안 된다고 상대방을 원망하거나 비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자신의 좁은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항상 자신이 먼저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고린도 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었으니”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먼저 좁은 생각을 버리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좁은 생각을 버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악수’를 하지요? 전쟁이 많던 시절에 상대방에게 자신의 호의를 나타내 보이기 위해 빈손을 보여주며 서로의 빈손을 붙잡는 것이 악수의 기원이었다고 합니다. 서로 “나는 빈손입니다. 당신을 해칠 아무런 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서로의 편견을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먼저 좁은 마음을 버립시다. 그리고 내 마음을 먼저 엽시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열고 모든 것을 관용하며 받아들이는 것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4:5절에서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고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3. 생각을 넓혀야 합니다.

13절에서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 합니다. 생각을 넓혀야 마음이 넓어집니다. 생각을 넓힌다는 말은 일의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는 사람과 그 사람의 입장과 환경을 모두 생각할 줄 아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사상과 생각으로 잣대를 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함께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름 난 부흥강사가 광주에서 열리는 연합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부흥사는 고속버스로 광주를 향했습니다. 차가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 떠나지 못하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상황인 즉, 나환자와 옆자리에 앉게 된 젊은 청년이 나환자와 함께 앉아 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리는 만원인데 자리를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목사님이 자리를 양보해서 청년이 바꿔 앉았습니다.
옆에 앉은 나환자는 너무 부끄러워 차창 밖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한참 후 나환자는 자기가 먹고 있던 찹쌀떡 하나를 목사님에게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마음에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 받아먹었습니다. 목사님이 맛있게 드시는 것 같으니까 떡을 또 하나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는 음성 나환자이기에 겉모양은 흉해도 전염이 되지 않습니다.”고 했습니다.
광주에 도착하여 첫날 저녁 부흥회를 인도하는데 설교 전에 특별 찬송하는 청년의 찬양이 너무 은혜로웠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을 어디서 본 것 같았습니다. 잘 생각해보니 고속버스에서 나환자 옆에는 못 앉겠다고 소동을 벌였던 바로 그 청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믿음도 중요하고 기도의 능력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 하느냐?’ 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서로가 다른 환경과 나름대로 각자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좁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자기 고집과 편견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가정도 교회도 하나를 이룰 수도 없으며, 성장도 부흥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면서 피조물인 인간을 위하여 사람이 되셨고 자기를 버려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주님께서 원수를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가는 천국 길은 좁은 문을 지나서 가는 좁은 길이지만, 마음만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넓디넓은 것이어야 합니다. 저 역시 그리 넓은 마음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얼큰이인 만큼 마음도 넓어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얼큰이’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얼굴 큰 사람’입니다.). 우리 서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고 뜻과 생각이 다르다 하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면서 앞서가시는 주님을 따라갑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만나도 하나님 앞에서나 지체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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