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의 한계를 정하시는 하나님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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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09-01 20:43
♡♥♡ 거주의 한계를 정하시는 하나님 / 창세기15:7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하고 많은 땅 중에서 하필이면 이곳에 사는 것입니까? 그 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철학자라는 말이 맞는 듯싶습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복교회가 걸어온 지난 8년을 돌아보면서 많은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뼈아픈 고통과 눈물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하필이면 왜 이 곳에 나를 보내셨는가?’라는 탄식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간단합니다. ‘그 곳이 너의 자리이고, 내가 기뻐하기 때문이다.’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이 저녁에는 ‘거주의 한계를 정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이 땅과 온 우주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의혹이 가든지 궁금하시면 욥기38장에서 41장까지를 읽어보십시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이처럼 소상하게 기록한 곳이 없습니다. 우연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삶은 모두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본문이 그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 시간의 짧은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는 말씀의 한 부분입니다. 내용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줄 땅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제물을 통한 계약형식을 친히 세우셨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의 거주를 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모든 만물을 친히 만드시고 그들이 거처할 처소를 지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던 날들을 봅시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를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일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룰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선민을 위하여 거처할 땅도 미리 답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고, 아브라함과 확실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확실한 증거를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물은 가운데를 쪼개어 마주대하여 놓았고,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해가 질 저녁 무렵에 아브라함으로 잠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미래의 일을 알게 하시고, 제물 가운데로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과 다시 확실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고 장차 이스라엘 선민의 거주를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 사이로 행하신 일은 고대의 계약법이었습니다. 고대사회의 계약법은 짐승을 쪼개어 마주보게 한 후에 그 사이를 왕래함으로 그 계약이 완성됩니다. 이는 계약의 확실성을 보증하는 행위였습니다. 즉 너와 나 사이에 만일 계약을 위반했을 때는 이 짐승처럼 죽게 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행하신 것은 아브라함으로 확실한 신뢰를 갖도록 하시는 보장이었으며 또한 배려였습니다.
신명기2:4-6절을 봅시다. “너는 또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으며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에 광야를 행하면서 세일 땅을 지날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거주의 한계를 정하십니다.
2. 하나님은 성도의 자리로 삶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후 500여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지역을 떠돌다가 애굽에서 430년을 지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대를 이어갔으며 끝내는 가나안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의 예를 봅시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돌아갈 축복을 빼앗은 후 밧단아람으로 도망하다가 벧엘에서 밤을 지낼 때였습니다. 창세기28:13-15절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오던 하나님의 언약이 야곱에게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이를 ‘언약의 계승’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하며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이 들고 좌절감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특히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고, 하는 일들이 형통하지 못하며, 고통과 어려움이 올 때에 그러합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옳은 길인가?’,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인가?’,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라는 신앙의 갈등으로 기도마저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지만,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자손을 기대할 수 없을 때까지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불가능한 환경에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도 무너졌습니다. 창세기17:17-1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불가능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경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신앙에 회의가 오고 좌절감이 몰려올 때도 있지만 믿음의 자리를 잃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읍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와 환경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믿고 감사하며 열심을 다합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약속을 시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승리자가 됩니다. 골로새서3:23-24절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아십니까? 하고 많은 땅 중에서 하필이면 이곳에 사는 것입니까? 그 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이 나름대로 철학자라는 말이 맞는 듯싶습니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면 궁금한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복교회가 걸어온 지난 8년을 돌아보면서 많은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뼈아픈 고통과 눈물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하필이면 왜 이 곳에 나를 보내셨는가?’라는 탄식도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깨닫게 하시는 주님의 말씀은 간단합니다. ‘그 곳이 너의 자리이고, 내가 기뻐하기 때문이다.’라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이 저녁에는 ‘거주의 한계를 정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을 상고하고자 합니다.
이 땅과 온 우주에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 사실을 믿습니까? 의혹이 가든지 궁금하시면 욥기38장에서 41장까지를 읽어보십시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이처럼 소상하게 기록한 곳이 없습니다. 우연이 없다면 우리의 모든 삶은 모두 하나님께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본문이 그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이 시간의 짧은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시는 말씀의 한 부분입니다. 내용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줄 땅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아브라함이 머물고 있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기업으로 준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확증하시기 위하여 제물을 통한 계약형식을 친히 세우셨습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의 거주를 정하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모든 만물을 친히 만드시고 그들이 거처할 처소를 지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던 날들을 봅시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를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을 만드사 큰 광명으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으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하늘의 궁창에 두어 땅에 비취게 하시며,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 일은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이룰 조상으로 세우셨습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지만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의 선민을 위하여 거처할 땅도 미리 답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고, 아브라함과 확실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확실한 증거를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물은 가운데를 쪼개어 마주대하여 놓았고,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해가 질 저녁 무렵에 아브라함으로 잠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임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미래의 일을 알게 하시고, 제물 가운데로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과 다시 확실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고 장차 이스라엘 선민의 거주를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물 사이로 행하신 일은 고대의 계약법이었습니다. 고대사회의 계약법은 짐승을 쪼개어 마주보게 한 후에 그 사이를 왕래함으로 그 계약이 완성됩니다. 이는 계약의 확실성을 보증하는 행위였습니다. 즉 너와 나 사이에 만일 계약을 위반했을 때는 이 짐승처럼 죽게 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행하신 것은 아브라함으로 확실한 신뢰를 갖도록 하시는 보장이었으며 또한 배려였습니다.
신명기2:4-6절을 봅시다. “너는 또 백성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세일에 거하는 너희 동족 에서의 자손의 지경으로 지날진대, 그들이 너희를 두려워하리니 너희는 깊이 스스로 삼가고 그들과 다투지 말라. 그들의 땅은 한 발자국도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세일산을 에서에게 기업으로 주었음이로라. 너희는 돈으로 그들에게서 양식을 사서 먹으며 돈으로 그들에게서 물을 사서 마시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후에 광야를 행하면서 세일 땅을 지날 때 하신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거주의 한계를 정하십니다.
2. 하나님은 성도의 자리로 삶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후 500여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 사이에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지역을 떠돌다가 애굽에서 430년을 지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대를 이어갔으며 끝내는 가나안에 이르렀습니다.
야곱의 예를 봅시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돌아갈 축복을 빼앗은 후 밧단아람으로 도망하다가 벧엘에서 밤을 지낼 때였습니다. 창세기28:13-15절입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오던 하나님의 언약이 야곱에게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이를 ‘언약의 계승’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절대로 신뢰하며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이 들고 좌절감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특히 기도의 응답이 늦어지고, 하는 일들이 형통하지 못하며, 고통과 어려움이 올 때에 그러합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옳은 길인가?’,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인가?’,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닌가?’라는 신앙의 갈등으로 기도마저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지만,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자손을 기대할 수 없을 때까지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불가능한 환경에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도 무너졌습니다. 창세기17:17-1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이루셨습니다.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불가능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경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다스리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신앙에 회의가 오고 좌절감이 몰려올 때도 있지만 믿음의 자리를 잃지 않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읍시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자리와 환경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믿고 감사하며 열심을 다합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약속을 시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승리자가 됩니다. 골로새서3:23-24절을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