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의 상을 위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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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12-13 17:47
♡♥♡ 부름의 상을 위하여 / 빌3:12-14
*** 들어가는 말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가 살아 온 길을 돌아보면서 연초에 목표했던 것들이 이루어졌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기대 이상을 얻은 것도 있겠지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음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새해에는 ‘좀 더 나은 성취’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세웁니다. 여러분도 혹시 지금 이런 저런 목표와 계획에 골몰해 있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세우시기 바랍니다.
‘스테판 더글라스’가 쓴 ‘그리스도인의 자기관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시간계획과 자기관리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서입니다. 이 책의 서론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오늘 남쪽에 밭을 갈러간다.’고 하며 트랙터를 몰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는 트랙터에 기름을 넣기 위하여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주유소에 가는 도중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차를 들판에 세워둔 채 그는 기름을 사기 위하여 주유소로 향했습니다.
주유소로 가는 길에 그는 돼지에게 아침밥을 주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옥수수 창고로 가서 돼지 사료로 쓰이는 먹이 자루를 찾았습니다. 그 자루들을 보자 그는 저장고에 있는 감자에 싹이 트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감자 구덩이를 향하여 가는 길에 장작더미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아내가 ‘장작을 가져달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몇 개의 나무토막을 줍고 있는데 병든 닭이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저 닭이 왜 병들었을까?’ 하고 그는 장작을 내려놓고 그 병든 닭을 쫓아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해는 서산에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 들판에 세워둔 트랙터에 기름을 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정말 산만하고 규모가 없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옛말에도 “재주가 많으면 굶어죽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어느 한 방향을 목표로 달려가지 못하고,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하다가 어느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함을 일컫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주님께로 향하는 마음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에게 제사했습니다. 어쩌면 먹고 살자니 권세가 무서워 바알에게 절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열왕기상18:21절에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달려야 할 목표점은 “부름의 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녀로 삼아주신 것은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뜻을 이루기 위하심’입니다. 그리고 부르심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큰 상급을 얻게 하는 것인데, 그것이 ‘부름의 상’입니다.
1. 부름의 상을 위해서 기회를 선용해야 합니다.
에베소서5:16절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아주 짧은 이 말씀은 ‘기회’와 ‘일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소중한 교훈입니다. “세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kairos(kairov")인데, ‘기회’, 즉 ‘정해진’, ‘적당한 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hemera(hJmevra)인데, ‘낮’ 즉 ‘새벽부터 저녁까지의 시간대’를 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악하다”는 말은 ‘죄’, ‘사단’을 의미하기도 하며, 특히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악’을 말합니다. “아끼라”는 말은 ‘사다’, ‘기회를 이용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전체 의미는 ‘우리가 지금 일하는 때는 죄가 만연한 시기이므로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이미 세상의 악함을 경고하시면서 ‘지혜롭고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0: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지혜롭게 사용하되 깨끗한 삶을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1:27절에서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제한이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생에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는 ‘기회’라는 것은 더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영이 깨어있어야 하며, 확실하게 붙잡고 선용해야 합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기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3:6)고 했습니다. “규모 없이 행한다”는 말은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며 무질서하고 산만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목표가 뚜렷한 만큼 절제하고 인내하면서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2. 부름의 상을 위하여 맺고 끊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새 해를 위하여 달력을 바꾸고, 수첩을 바꾸고, 계획도 새롭게, 온갖 것을 새로 단장하고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는 새로운 기분이 들겠지만 곧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그 목표를 위하여 걸림이 되는 것들은 끊어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옛 사람의 것들을 버리기가 아쉬워 망설이게 되면 새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염려로 인하여 받아들이기를 망설인다면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4:22-24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도 본문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할 단어는 “좇아간다.”는 말입니다. 12절과 14절에 나오는 dioko(diwvkw)라는 단어는 ‘추적하다.’라는 말인데, ‘사냥개가 사냥감을 발견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추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은 시속110Km를 달리는 ‘치타’입니다. 치타가 세랭게티 초원에서 ‘톰슨가젤’을 사냥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치타는 톰슨가젤 무리 중에서 적당한 사냥감을 물색합니다. 표적이 정해지면 몸을 납작하게 엎드려 최대한 가까이 접근합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먹이를 향하여 돌진합니다. 수많은 가젤들이 옆을 스치지만 치타는 오로지 표적을 향해서만 전력 질주합니다.
전력질주를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나 온 일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힘에 버겁도록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욕심이 스스로를 복잡하고 무겁도록 짐을 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욕망의 짐을 내려놓읍시다. 오직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갑시다.
새롭게 주실 2003년을 기대하면서 목표를 더욱 새롭게 하고,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나아갑시다.
*** 들어가는 말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가 살아 온 길을 돌아보면서 연초에 목표했던 것들이 이루어졌는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기대 이상을 얻은 것도 있겠지만,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음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새해에는 ‘좀 더 나은 성취’를 생각하면서 새로운 목표를 세웁니다. 여러분도 혹시 지금 이런 저런 목표와 계획에 골몰해 있다면 이 말씀을 기억하시고 세우시기 바랍니다.
‘스테판 더글라스’가 쓴 ‘그리스도인의 자기관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내용은 그리스도인의 시간계획과 자기관리에 대한 실제적인 지침서입니다. 이 책의 서론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남편은 아내에게 ‘오늘 남쪽에 밭을 갈러간다.’고 하며 트랙터를 몰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는 트랙터에 기름을 넣기 위하여 아침 일찍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주유소에 가는 도중에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차를 들판에 세워둔 채 그는 기름을 사기 위하여 주유소로 향했습니다.
주유소로 가는 길에 그는 돼지에게 아침밥을 주지 않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옥수수 창고로 가서 돼지 사료로 쓰이는 먹이 자루를 찾았습니다. 그 자루들을 보자 그는 저장고에 있는 감자에 싹이 트고 있다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감자 구덩이를 향하여 가는 길에 장작더미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집에서 아내가 ‘장작을 가져달라.’는 말을 한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몇 개의 나무토막을 줍고 있는데 병든 닭이 옆으로 지나갔습니다. ‘저 닭이 왜 병들었을까?’ 하고 그는 장작을 내려놓고 그 병든 닭을 쫓아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이미 해는 서산에 넘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 들판에 세워둔 트랙터에 기름을 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있겠습니까마는 정말 산만하고 규모가 없이 일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옛말에도 “재주가 많으면 굶어죽는다.”고 했습니다. 이는 어느 한 방향을 목표로 달려가지 못하고,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하다가 어느 한 가지도 이루지 못함을 일컫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로지 주님께로 향하는 마음으로 달려가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엘리야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에게 제사했습니다. 어쩌면 먹고 살자니 권세가 무서워 바알에게 절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일제시대의 신사참배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열왕기상18:21절에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달려야 할 목표점은 “부름의 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녀로 삼아주신 것은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뜻을 이루기 위하심’입니다. 그리고 부르심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큰 상급을 얻게 하는 것인데, 그것이 ‘부름의 상’입니다.
1. 부름의 상을 위해서 기회를 선용해야 합니다.
에베소서5:16절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아주 짧은 이 말씀은 ‘기회’와 ‘일할 수 있는 시간’에 대한 소중한 교훈입니다. “세월”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kairos(kairov")인데, ‘기회’, 즉 ‘정해진’, ‘적당한 때’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hemera(hJmevra)인데, ‘낮’ 즉 ‘새벽부터 저녁까지의 시간대’를 주로 나타내는 말입니다. “악하다”는 말은 ‘죄’, ‘사단’을 의미하기도 하며, 특히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악’을 말합니다. “아끼라”는 말은 ‘사다’, ‘기회를 이용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전체 의미는 ‘우리가 지금 일하는 때는 죄가 만연한 시기이므로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이미 세상의 악함을 경고하시면서 ‘지혜롭고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0: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하십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지혜롭게 사용하되 깨끗한 삶을 유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1:27절에서도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제한이 있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생에 몇 번이나 있을지 모르는 ‘기회’라는 것은 더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영이 깨어있어야 하며, 확실하게 붙잡고 선용해야 합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하기를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살후3:6)고 했습니다. “규모 없이 행한다”는 말은 ‘자신의 일을 하지 않으면서 남의 일에 간섭하며 무질서하고 산만하게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목표가 뚜렷한 만큼 절제하고 인내하면서 지혜롭게 살아야 합니다.
2. 부름의 상을 위하여 맺고 끊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새 해를 위하여 달력을 바꾸고, 수첩을 바꾸고, 계획도 새롭게, 온갖 것을 새로 단장하고 새로운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해서 삶이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는 새로운 기분이 들겠지만 곧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말 것입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그 목표를 위하여 걸림이 되는 것들은 끊어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옛 사람의 것들을 버리기가 아쉬워 망설이게 되면 새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염려로 인하여 받아들이기를 망설인다면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4:22-24절에서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면합니다.
사도 바울도 본문에서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할 단어는 “좇아간다.”는 말입니다. 12절과 14절에 나오는 dioko(diwvkw)라는 단어는 ‘추적하다.’라는 말인데, ‘사냥개가 사냥감을 발견하고 있는 힘을 다하여 추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빠른 동물은 시속110Km를 달리는 ‘치타’입니다. 치타가 세랭게티 초원에서 ‘톰슨가젤’을 사냥하는 것을 보셨습니까?
치타는 톰슨가젤 무리 중에서 적당한 사냥감을 물색합니다. 표적이 정해지면 몸을 납작하게 엎드려 최대한 가까이 접근합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먹이를 향하여 돌진합니다. 수많은 가젤들이 옆을 스치지만 치타는 오로지 표적을 향해서만 전력 질주합니다.
전력질주를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나 온 일들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린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힘에 버겁도록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욕심이 스스로를 복잡하고 무겁도록 짐을 지는 것입니다. 육신의 욕망의 짐을 내려놓읍시다. 오직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달려갑시다.
새롭게 주실 2003년을 기대하면서 목표를 더욱 새롭게 하고, 거추장스러운 모든 것들을 떨쳐버리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향하여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