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특별한 인생을 원하십니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002회 작성일 2002-12-13 17:45
♡♥♡ 특별한 인생을 원하십니까? / 눅2:1-7

*** 들어가는 말

사람들의 소망 중에는 ‘자신이 좀 더 특별한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남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합니다. 예컨대, 행정관서에서 서류 하나를 발급받을 때에 남들보다 빠른 처리를 바라는 것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왜곡된 감정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출신’과 ‘신분’, ‘지연’, ‘학연’, ‘혈연’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차별화’하는 마음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심찮게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일 중에 하나가 ‘왕따’당하는 사람(학생)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런 차별화는 내가 당할 때에는 황당하게 생각하지만 우리도 은연중에 차별을 합니다. 단순히 생활수준이 다르다는 것 때문에 부모들은 ‘그런 아이랑 놀지 말라.’고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이런 것이 차별의 시작입니다. 만일 주님께서 지금 이 땅에 오셨더라면 분명히 ‘왕따’가 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출신도, 생활환경도, 신분도 내놓을 것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하시는 일이라고는 당시의 상류계급에 속한 사람들을 사정없이 질타하셨고, 대대적인 삶의 개혁을 단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존재, 특별한 일.’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변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면서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끌어 모으려고 합니다. 과시하고 싶은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중국에 ‘황무 산’이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습니다. 원래는 높은 산이 있었는데 지금은 평지입니다. 내용인 즉,
한 농부가 황무 산 남쪽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북쪽지역으로 가려면 무려 700리를 돌아서 가야했습니다. 그는 그 산을 없애기로 하고, 매일 수레에 흙과 돌을 날라 몇 십리 떨어진 깊은 계곡까지 가서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일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미친 사람’이라고 하자 그 농부는,
“여보시오, 이 산은 후손이 없지만, 나에게는 후손이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야기의 결론은 그와 그의 후손들이 그 산을 모두 옮겨 지금은 평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그 평지가 된 곳을 ‘황무 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이 하셨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일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이와 같이 보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길’은 ‘승산이 없는 일’이나 ‘미친 짓’쯤으로 보일 것입니다. 산을 옮기는 농부처럼 그리스도인은 아주 특별한 일을 하지만, 삶은 소망을 가지고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평범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이 그 모범이 되셨습니다.

1. 주님의 오심이 평범했습니다.

새 언약의 시대는 요란스럽게 팡파르를 울리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은밀하고도 지극히 평범하여 사람들의 관심조차 살 수 없는 그런 시작이었습니다. 메시아를 기대하던 당시의 사람들은 위대함과 초인적인 능력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대를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의 나심을 평범한 백성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경로를 추적해 봅시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갈릴리 지역의 작은 마을 나사렛에 사는 어느 예비부부에게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결혼을 약속한 예비부부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약혼녀인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소문 없이 가만히 관계를 끊고자 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나타나셔서 마리아에게 잉태된 아이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아들임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무렵의 이스라엘의 형편은 로마의 식민지로서, 로마에서 파송된 총독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은 이제 막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황제시대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초대 황제였습니다. 그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Caius Octavius, 30B.C-14A.D)로서 ‘줄리어스 시저’의 조카였습니다.

가이사는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독재자의 길을 걸었으며, 세력 확장을 위하여 군사력이 필요했고, 세금 수입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식민지 전역에 세금 확보를 위한 호적조사를 명령했습니다. 이것이 요셉과 마리아로 하여금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가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대로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다윗의 고향에서 난다.’고 하신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미가5:2절을 봅시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하셨고,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이 예언의 말씀대로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나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7:42절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그리스도는 다윗의 씨로 또 다윗의 살던 촌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며”

역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도구입니다. 메시아의 탄생과 복음전파를 위하여 신성로마제국을 준비하셨고, 황제숭배라는 탄압의 도구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실 가장 특별한 일을 평범한 역사의 그릇에 담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세상에 나시는 탄생의 순간도 그러했습니다. 호적을 위하여 한꺼번에 몰린 사람들로 인하여 요셉 일행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관은 자리가 없었습니다. 해산이 임박한 지경에 부득불 바람막이라도 되는 마구간에서 메시아는 탄생하셨고, 이 땅에서의 첫 요람이 말구유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셔서 여관조차 잡지 못하고 마구간에서, 그것도 말구유에 누우셔야 했겠습니까? 이것도 역시 비천한 사람들까지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믿는 성도임에도 불구하고, 평안한 삶, 형통한 삶, 부귀영화에 특별한 대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바란다고 해서 다 잘못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렇게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삶인지를 돌아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사람들의 이런 심리를 아시는 주님께서 마태복음6:31-33절에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역사는 평범한 것에서 시작하시고 이루십니다.

우리나라 성도들의 신앙은 유별납니다. 눈에 ‘번쩍’하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야, 신통하다.’, ‘영험 있다.’고 달려듭니다. 물론 우리나라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 더 별스럽다는 뜻입니다. ‘방언’의 은사나, ‘예언’, ‘병 고침’등의 은사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가장 귀하고 최고의 은사인 ‘사랑’을 구하는 사람을 많이 보지를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의 은사를 최고의 은사로 알아주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곧 특별한 무엇인가를 기대하는 잘못된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성도나 목회자나 똑 같습니다. 어디에 ‘부흥되는 교회가 있다.’고 하면 너도나도 그 비결을 배우려고 목회자들이 몰립니다. 어느 교회에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다.’고 하면 성도들이 몰립니다. 이러한 신기루를 쫓는 신앙은 무척 위험한 것입니다. 주님의 경고를 들어보십시오. 마태복음24:23-24절입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개인의 죽음으로 말미암는 개인의 종말도, 예수님의 재림으로 말미암는 역사의 종말도, 모두 평범한 역사의 그릇에 담겨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가 일어나서 인류가 멸망당하던 그 때에도 그러했고,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누가복음17:26-30절입니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평범한 일상을 소중하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일을 히브리서13:2절에서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고 충고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도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고,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베푸는 사람은 상을 잃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세심한 관심을 갖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일들입니다.

몇 해 전에 미국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헨리 누엔’ 박사가 갑자기 교수직을 사임했습니다. 그리고 정신박약아 수용시설인 ‘브레이크’ 복지원의 직원으로 들어가서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자원해서 함으로서 신학계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헨리 박사는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신학자 중 한 사람이며.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던 학자였습니다.
그의 저서 20여권은 모두 베스트셀러입니다. 그런 그가 높은 보수와 명예를 보장하는 하버드 교수직을 버리고. 정신박약아 시설에서 정박아들을 돌보는 일에 자원했습니다. 그의 일은 정박아들의 용변을 치우고. 목욕을 시키고. 식사를 돕고. 행동교정 지도를 하는 등 구질구질한 일들이었습니다. 고생은 물론이지만 생계유지도 어려울 정도의 낮은 보수였지만 그는 만족했습니다.
모두들 “왜 그러느냐?”라고 물었지만 그는 몇 개월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책을 써서 대답을 대신했습니다. 누엔 박사는 그 책에서 말하기를,
“그동안 나는 올라가는 길만 추구했습니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천재 신동이라’ 추앙되었고, 하버드 대학 교수에까지 올라왔습니다. 나의 저서 20여권은 뭇 사람의 인기를 얻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오직 성공을 향해, 즉 꼭대기를 향해 오르막길만 추구 해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정신박약아인 ‘아담’군을 만났을 때, 이런 인간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해서 예수를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르막길에서는 예수님이 안보였지만, 내리막길에서 복음서에 나타난 진정한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교수라고 칭송받을만한 사람입니다. 진정한 섬김의 길, 예수님을 닮아가는 진정한 제자로서의 길을 발견하고 세상적인 부귀영화를 버릴 줄 아는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을 따르는 우리가 가야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마가복음10:45절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고, 요한복음12:26절에서는,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삶의 길은 가장 평범하면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하고 특별한 일입니다. 여러분이 특별한 인생을 원하신다면 이 길을 따라야 합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때로는 실패한 인생처럼 여겨지고, 고통과 슬픔과 고독의 눈물이 흐를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눈물 한 방울까지 기억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함께 앞서 가시는 주님을 따라갑시다. 이 따름의 끝은 영원한 기쁨과 평안과 행복이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오심을 기리고 감사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삶이, 주님이 이루시는 행복으로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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