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직무를 다하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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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11-23 16:05
♡♥♡ 네 직무를 다하라. / 딤후4:1-8
*** 들어가는 말
어느 듯, 2002년도 한 달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번 주간을 끝으로 2002회기의 재정을 마감하고, 다음 주부터는 2003회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행정적인 결산은 12월 말이 되겠지만, 어떻든 12월은 결산과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분주한 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결산과 새로운 출발에의 준비로 바쁜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직무’를 생각해 보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정하고 있지 못하면 엉뚱한 결산을 할 것이고, 출발 역시 바른 방향을 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부패가 심각해지는 때의 그리스도인의 직무를 말씀하는 본문에는 깊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을 봅니다. 시작부분인 1절에서는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심각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명령이 전달되는 시점이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고 허탄한 세상의 것을 따를 때’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어느 연구보고에 의하면,
“기독교 교인 중 20%는 주일예배 불참석, 25%는 기도생활이 없고, 35%는 성경을 전혀 읽지 않고, 40%는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고,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고, 75%는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지 않고, 85%는 불신자를 한 명도 전도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현대의 교인들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본문3,4절의 상황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영적인 긴박감이 더해가는 때에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지혜롭게 판단하고 구별하여 자신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1. 본문말씀의 배경을 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디모데후서는 노년의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서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로마로 향하면서부터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 길이 자신의 마지막 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연구가들은 이 편지를 ‘원로의 유언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육신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알았습니다. 그 표현을 본문6절에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라고 했습니다.
‘관제(libation)’란, 고대 근동지방에서 양이나 염소 같은 제물을 제단에 올려놓고 그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말합니다(민15:5, 28:7). 이는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예식입니다. 이렇게 제물에 관제를 행하는 것은 제물을 드릴 마지막 준비까지 마쳤음을 의미합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순교의 제물이 되어야 할 시간이 다 되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애의 결산을 앞에 둔 바울은 이제 세상에 남겨두어야 하는 사랑하는 제자이자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꼭 필요한 일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2.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직무를 찾아야 합니다.
본문5절을 봅시다.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하십니다. 현대어 성경에서는 “그대는 굳건히 서서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그대가 맡은 사명을 다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직무를 행하는 자세를 말씀합니다.
‘해리 아이언싸이드’박사는 소년시절에 양화점 직공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쇠가죽을 구두 본에 맞추어 재단하고, 물에 담가 흠뻑 적셔서, 가죽이 단단해지고 건조해질 때까지 계속 두드린 후에 구두창에 못을 박는 일이 매일의 그의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거리에 나갔다가 다른 양화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양화점에서 일하는 직공은 구두창을 두드리지도 않고, 곧바로 물에서 꺼내어 못을 박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직공에게 ‘쇠가죽을 단단해지도록 두드리지 않아도 품질 좋은 구두가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 직공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빠른 시간에 많이 만들어 내야지, 두드릴 시간이 어디 있어.”
‘해리’는 빨리 자기네 주인에게 달려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성경책을 들고 와서는 골로새서3:23절을 펴서 읽어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리고는 해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를 만드는 게 아니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만든단다. 나는 심판 날에 주님 앞에서 ‘넌 참으로 비열한 짓을 했어. 최선을 다 하지도 못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주님께서 웃으시면서 ‘참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단다.”
오늘 같은 사회에서 이렇게 일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께서 명하신 말씀이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자세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디모데가 해야 하는 일은 2절에 구체적으로 명시가 되어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으로 전파하시오. 기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또 그 시기가 좋든지 나쁘든지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시오. 신도들의 허물을 바로잡고 책망해야할 때는 책망을 하시오. 옳은 일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목회자인 디모데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지금 목회자인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반성도에게 명한 말씀이 골로새서3:12절 이하에 나옵니다. 12-17절까지 함께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가 결산해야 할 내용들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살아오셨습니까? 물론 이것이 다는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맡기신 고유한 소명들(음악, 미술, 기술, 운동, 학술 등)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가면서 성취해야할 일들입니다.
3. 내게 주어진 직무에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본문7절을 봅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자신의 일생을 거친 전쟁을 치른 병사나 운동선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특징적인 것은 ‘싸우고’, ‘마치고’, ‘지켰다.’고 하는 표현들이 ‘현재완료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자신이 달려 온 삶이 이제 끝났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표현한 자신의 삶에는 단호함과 열정이 동시에 풍겨나고 있습니다.
11월 22일(금)자 동아일보 사회면에 ‘직장인 업무애착도 한국 꼴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다국적 여론조사 전문 업체인 ‘테일러넬슨소프레(TNS)'가 전 세계 33개국에서 일하는 직장인 2만여 명에게 “당신은 지금의 일과 직장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한국 직장인은 모두 638명이었고, 현재의 업무에 애착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36%로 33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었습니다(1위-이스라엘, 일72%, 직장68%/ 미국, 일61%, 직장49%). 직장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35%로 일본(30%), 불가리아(34%)에 이어 31위를 나타냈습니다.
이는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에 대한 열정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즉 지금 우리나라는 교회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삶에 대한 열정’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듣고 느끼기에도 ‘차갑다.’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만 보아도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예전의 나 자신은 이렇게 냉랭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열정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열정은 세련되고 더욱 완숙해집니다. 그래서 지금 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이 열정을 회복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만일 아직까지 한 번도 신앙적인 뜨거움을 느끼거나 가져보지 못했다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신앙의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왜 열정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열정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59:17절에서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요한복음2:17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더럽혀진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였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라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로마서12:11절에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으며, 요한계시록3:19절에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이 시대의 일군으로 택하셨고 부르셨습니다. 이 땅에서 육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하도록 말입니다. 훗날 우리가 맡기신 일을 다 마쳤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대한 평가를 하실 것입니다. 로마서2:6-8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하계올림픽에서 일어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일입니다.
올림픽의 마지막 날, 올림픽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라톤 경기가 열렸습니다.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 속에 1등한 선수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다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승자들에게 월계관과 메달이 수여되었습니다. 올림픽 성화도 꺼지고 식후 행사도 막을 내렸습니다. 대부분의 관중들 역시 자리를 떴습니다. 이 때 마라톤 선수 한 사람이 피가 흐르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탄자니아’의 마라톤 선수인 36세의 ‘존 스태픈 아크와리(John Stephen Akhwari)’였습니다. 이 선수는 한쪽 무릎과 발목에 심한 부상을 입어서 도저히 경기를 끝낼 수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기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뛰셨습니까?” 그 때 ‘아크와리’ 선수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고 분명했습니다.
“내 조국은 경기를 시작하라고 나를 멕시코시티에 보낸 것이 아니라, 끝내라고 보냈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충성되게 산다면 일년을 결산할 때에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후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걸어온 삶에 대하여 담대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한 해 걸어 온 길을 돌아봅시다. 육신의 생활에 대한 결산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의 결산이 어떠한지도 계산해 봅시다. 2002년이 아직 한 달이 남아있습니다. 부끄러운 결산이 되지 않도록 열정을 다시 일으킵시다. 한 사람의 불은 밝기나 열기도 부족하고, 작은 바람에도 쉽게 꺼집니다. 그러나 작은 불이라도 여럿이 모이면 큰 불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해서 2002년의 아름다운 결산과 2003년의 새로운 계획이 잘 준비되고, 하나님 앞에서의 결산까지 준비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어느 듯, 2002년도 한 달을 남기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이번 주간을 끝으로 2002회기의 재정을 마감하고, 다음 주부터는 2003회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물론 행정적인 결산은 12월 말이 되겠지만, 어떻든 12월은 결산과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분주한 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이처럼 결산과 새로운 출발에의 준비로 바쁜 이 시점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직무’를 생각해 보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을 제대로 정하고 있지 못하면 엉뚱한 결산을 할 것이고, 출발 역시 바른 방향을 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부패가 심각해지는 때의 그리스도인의 직무를 말씀하는 본문에는 깊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음을 봅니다. 시작부분인 1절에서는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라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심각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명령이 전달되는 시점이 ‘사람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고 허탄한 세상의 것을 따를 때’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최근의 어느 연구보고에 의하면,
“기독교 교인 중 20%는 주일예배 불참석, 25%는 기도생활이 없고, 35%는 성경을 전혀 읽지 않고, 40%는 십일조 생활을 하지 않고, 60%는 기독교 서적을 읽지 않고, 75%는 교회봉사를 열심히 하지 않고, 85%는 불신자를 한 명도 전도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현대의 교인들은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본문3,4절의 상황이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영적인 긴박감이 더해가는 때에 그리스도인으로 부름 받은 우리는 지혜롭게 판단하고 구별하여 자신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1. 본문말씀의 배경을 봅시다.
본문을 포함하는 디모데후서는 노년의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서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로마로 향하면서부터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 길이 자신의 마지막 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성경연구가들은 이 편지를 ‘원로의 유언장’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육신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알았습니다. 그 표현을 본문6절에서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라고 했습니다.
‘관제(libation)’란, 고대 근동지방에서 양이나 염소 같은 제물을 제단에 올려놓고 그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을 말합니다(민15:5, 28:7). 이는 신에게 경의를 표하는 예식입니다. 이렇게 제물에 관제를 행하는 것은 제물을 드릴 마지막 준비까지 마쳤음을 의미합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순교의 제물이 되어야 할 시간이 다 되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애의 결산을 앞에 둔 바울은 이제 세상에 남겨두어야 하는 사랑하는 제자이자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에게 꼭 필요한 일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2.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직무를 찾아야 합니다.
본문5절을 봅시다.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하십니다. 현대어 성경에서는 “그대는 굳건히 서서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고 그대가 맡은 사명을 다하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직무를 행하는 자세를 말씀합니다.
‘해리 아이언싸이드’박사는 소년시절에 양화점 직공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쇠가죽을 구두 본에 맞추어 재단하고, 물에 담가 흠뻑 적셔서, 가죽이 단단해지고 건조해질 때까지 계속 두드린 후에 구두창에 못을 박는 일이 매일의 그의 일이었습니다.
한번은 거리에 나갔다가 다른 양화점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 양화점에서 일하는 직공은 구두창을 두드리지도 않고, 곧바로 물에서 꺼내어 못을 박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겨 가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직공에게 ‘쇠가죽을 단단해지도록 두드리지 않아도 품질 좋은 구두가 되는지’ 물었습니다. 그 직공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빠른 시간에 많이 만들어 내야지, 두드릴 시간이 어디 있어.”
‘해리’는 빨리 자기네 주인에게 달려와서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성경책을 들고 와서는 골로새서3:23절을 펴서 읽어주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리고는 해리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돈을 벌기 위해 구두를 만드는 게 아니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만든단다. 나는 심판 날에 주님 앞에서 ‘넌 참으로 비열한 짓을 했어. 최선을 다 하지도 못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 주님께서 웃으시면서 ‘참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단다.”
오늘 같은 사회에서 이렇게 일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주님께서 명하신 말씀이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따라야만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자세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어떤 것입니까? 디모데가 해야 하는 일은 2절에 구체적으로 명시가 되어있습니다. “언제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으로 전파하시오. 기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또 그 시기가 좋든지 나쁘든지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시오. 신도들의 허물을 바로잡고 책망해야할 때는 책망을 하시오. 옳은 일을 행하도록 격려하고 꾸준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우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목회자인 디모데가 해야 하는 일이었고 지금 목회자인 제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일반성도에게 명한 말씀이 골로새서3:12절 이하에 나옵니다. 12-17절까지 함께 읽어봅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있는 우리가 결산해야 할 내용들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살아오셨습니까? 물론 이것이 다는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있으며,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맡기신 고유한 소명들(음악, 미술, 기술, 운동, 학술 등)도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찾아가면서 성취해야할 일들입니다.
3. 내게 주어진 직무에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본문7절을 봅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자신의 일생을 거친 전쟁을 치른 병사나 운동선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특징적인 것은 ‘싸우고’, ‘마치고’, ‘지켰다.’고 하는 표현들이 ‘현재완료형’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자신이 달려 온 삶이 이제 끝났다.’고 하는 표현입니다. 이처럼 바울이 표현한 자신의 삶에는 단호함과 열정이 동시에 풍겨나고 있습니다.
11월 22일(금)자 동아일보 사회면에 ‘직장인 업무애착도 한국 꼴찌’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다국적 여론조사 전문 업체인 ‘테일러넬슨소프레(TNS)'가 전 세계 33개국에서 일하는 직장인 2만여 명에게 “당신은 지금의 일과 직장에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질문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한국 직장인은 모두 638명이었고, 현재의 업무에 애착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36%로 33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이었습니다(1위-이스라엘, 일72%, 직장68%/ 미국, 일61%, 직장49%). 직장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35%로 일본(30%), 불가리아(34%)에 이어 31위를 나타냈습니다.
이는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의 일에 대한 열정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즉 지금 우리나라는 교회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삶에 대한 열정’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고 듣고 느끼기에도 ‘차갑다.’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만 보아도 충분히 느끼고 있습니다. 예전의 나 자신은 이렇게 냉랭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열정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열정은 세련되고 더욱 완숙해집니다. 그래서 지금 나 자신이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이 열정을 회복하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열정을 회복해야 합니다. 만일 아직까지 한 번도 신앙적인 뜨거움을 느끼거나 가져보지 못했다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도록 신앙의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왜 열정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열정을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사야59:17절에서는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요한복음2:17절에서는 예수님께서 더럽혀진 성전을 청결케 하실 때였습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라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로마서12:11절에서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셨으며, 요한계시록3:19절에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이 시대의 일군으로 택하셨고 부르셨습니다. 이 땅에서 육신의 생명을 이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하도록 말입니다. 훗날 우리가 맡기신 일을 다 마쳤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대한 평가를 하실 것입니다. 로마서2:6-8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1968년 ‘멕시코시티’에서 벌어진 하계올림픽에서 일어난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일입니다.
올림픽의 마지막 날, 올림픽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마라톤 경기가 열렸습니다. 수많은 관중들의 환호 속에 1등한 선수를 비롯한 모든 선수들이 다 결승선을 통과했습니다. 그리고 승자들에게 월계관과 메달이 수여되었습니다. 올림픽 성화도 꺼지고 식후 행사도 막을 내렸습니다. 대부분의 관중들 역시 자리를 떴습니다. 이 때 마라톤 선수 한 사람이 피가 흐르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면서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 왔습니다.
‘탄자니아’의 마라톤 선수인 36세의 ‘존 스태픈 아크와리(John Stephen Akhwari)’였습니다. 이 선수는 한쪽 무릎과 발목에 심한 부상을 입어서 도저히 경기를 끝낼 수 없는 처지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기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뛰셨습니까?” 그 때 ‘아크와리’ 선수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하고 분명했습니다.
“내 조국은 경기를 시작하라고 나를 멕시코시티에 보낸 것이 아니라, 끝내라고 보냈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성실하고 충성되게 산다면 일년을 결산할 때에도 결코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후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걸어온 삶에 대하여 담대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한 해 걸어 온 길을 돌아봅시다. 육신의 생활에 대한 결산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영의 결산이 어떠한지도 계산해 봅시다. 2002년이 아직 한 달이 남아있습니다. 부끄러운 결산이 되지 않도록 열정을 다시 일으킵시다. 한 사람의 불은 밝기나 열기도 부족하고, 작은 바람에도 쉽게 꺼집니다. 그러나 작은 불이라도 여럿이 모이면 큰 불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리해서 2002년의 아름다운 결산과 2003년의 새로운 계획이 잘 준비되고, 하나님 앞에서의 결산까지 준비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