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는 대로 얻는 길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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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1-26 14:00
♡♥♡ 구하는 대로 얻는 길 / 요일 5:13-15
*** 들어가는 말
오늘 말씀의 제목이 정말 신나는 것입니다. “구하는 대로 얻는 길!”정말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신앙생활이 즐겁고 살맛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즐겁게 신앙생활하지 못한다면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의 영의 삶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하는 구하는 대로 얻는 응답의 길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기도에 대한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특별히 이 말씀을 택한 것은 본문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3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자녀가 부모에게 무엇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부모는 자녀가 구하는 것을 모르는 척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7:7절 이하에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11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시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연하다.’는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야고보서4:2-3절을 봅시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제이콥스키’가 쓴 ‘원숭이의 손’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영국의 어떤 노동자가 인도 마술사의 주문이 붙어 있는 ‘원숭이의 손’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 원숭이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소원 세 가지를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멋진 것을 손에 넣은 노동자는 집에 오자마자 원숭이의 손에 손을 얹고 신중하게 첫 번째 소원을 말했습니다.
“돈 500만원 생겨라!” 그랬더니, 바로 그 순간에 노크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떤 신사가 서서 봉투를 내밀면서,
“500만원 입니다. 선생님의 아들이 공장에서 일하던 중 기계에 치어 죽었기에 조의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노동자는 기가 막힌 슬픔에 다시 원숭이의 손에 손을 얹고는, “내 아들이 돌아오게 하라.”고 했더니 죽었던 아들이 유령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너무도 기가 막혀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소원을 청했습니다. “내 아들이 편안히 잠들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노동자는 깊은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글은 헛된 물질을 쫓는 현대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글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단번에 부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권, 증권투자, 적은 투자로 짧은 기간에 돈을 벌게 해준다는 유혹의 길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위한 구함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혹시 어떤 방법으로 그런 꿈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오히려 영과 육신의 삶이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구함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부터 구하는 대로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봅시다.
1. 첫 번째 길은 구하는 것을 들으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15절을 봅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신앙의 기초이며 뿌리입니다. 이 기초 위에 믿음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본문13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이라고,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는 것은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마치 소경이 코끼리를 더듬어 보고는 ‘코끼리는 기둥과 같다.’, ‘코끼리는 벽과 같다.’, ‘코끼리는 긴 호스와 같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맹목적인 신앙은 기초가 없기 때문에 자그마한 시련이 와도 곧 넘어지게 됩니다. 주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비유하신 돌짝밭과 같은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믿음의 집을 짓는 중입니다. 다만 지금 확인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중에도 ‘내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식에 의심 없는 믿음을 더해야 합니다.
마가복음9:14절 이하에는 귀신들린 아들의 병을 고침받기 위하여 예수님께로 데려온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이 변화 산에 가신 사이에 남아있던 아홉 제자들에게 병을 고쳐줄 것을 요청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 일로 인하여 의심이 생겼던 가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혹시 고칠 수 있으시면 고쳐주십시오.’라는 반신반의하는 그런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능치 못함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런 의심스러운 요청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면 여러분 자신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마가복음11:23-2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인간관계에서도 ‘신뢰’가 첫 번째 가는 조건입니다. 부부사이에도 의심이 생기면 ‘의부증’이나 ‘의처증’이 되어 신뢰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집니다. 회사에서도 경영자와 노동자 간에 서로 의심하여 신뢰가 무너지면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도 의심은 신뢰를 무너뜨리게 되고 어떤 기도에도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의심하는 것은 흔들리는 물결 같아서 마음의 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구하는 것을 들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하는 대로 얻는 첫 번째 길입니다.
2. 두 번째 길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본문14절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첫 번째 길에서 보았듯이 구하는 것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또한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흑인노예의 자유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노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사탕수수와 목화 등의 대규모 농업으로 인하여 풍요를 누리던 남쪽 사람들은 노예 없이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노예제도를 반대하며 정부와 맞섰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승을 부리는 남군 앞에서 북군은 가는 곳마다 패배를 거듭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진 북군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편이 되셔서 남군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링컨 대통령이 이 기도를 들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북군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북군 편에 서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북군이 하나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라.”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선 북군은 승리하게 되었고, 노예들은 해방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15:7절을 봅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뜻으로 가득하게 채워져 있음을 말씀합니다.
찬송가 431장은 독일 루터교회 목사였던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umolk)’ 목사님의 기도문이 가사가 되었습니다.
1618년에 시작된 유럽의 신. 구교전쟁은 1648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30년 동안 온 유럽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신. 구교의 대립은 여전했고, 건물은 폐허가 됐으며,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1730년 슈몰크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져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백내장으로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넓고 넓은 교구를 심방하며 보살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이 완전히 불타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서 이리 저리 잿더미를 파헤치자 그 속에 어린 아들 형제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그때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울면서 드렸던 기도가 431장 가사가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의 예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당신의 뜻이 내 뜻이 되게 하소서. 슬픔 중이나 기쁨 중에 당신의 것으로 날 인도하시고 ‘내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
여기서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대로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 속에 있습니다. 모든 성도를 향하신 공통된 하나님의 뜻도 있지만, 나 자신을 향하시는 개인적인 하나님의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읽고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한다고 그것이 나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통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3. 세 번째 길은 믿음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15절 후반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으로 구한 것을 실천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믿음으로 잘 구했다 하더라도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수레에 건초를 잔뜩 싣고 가던 수레가 진흙탕에 빠졌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도와 줄 사람이 없자 마부는 투덜대기 시작했습니다.
“웬 비는 와 가지고! 또 이 망아지 놈은 왜 하필 진흙탕으로 가서는! 또 수레는 왜 이렇게 부실한지!”
엉뚱한 것에 화를 내던 마부는 ‘난 역시 재수 없는 놈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그래도 수레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다급해진 마부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이루시는 하나님! 제발 수레를 움직이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어디선가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말을 따르라. 그러면 수레를 움직이게 해줄 터이니. 먼저 수레가 왜 움직이지 않나 살펴보아라. 그리고 바퀴 앞의 진흙과 돌들을 차례로 치워라!”
마부는 ‘시키는 대로 하면 수레를 움직여 준다.’는 말에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 했으면 채찍을 들어라!”
“아니 수레는 움직이지 않게 해 놓고 채찍을 들라니요?"
마부는 투덜대며 채찍으로 망아지를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마차가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 봐라. 쉽지 않느냐. 모름지기 네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는 자식을 얻기 위하여 성전에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에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고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실로암’에서 눈을 씻고 나음을 얻은 소경이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진 베드로나, 모두가 믿음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구한 대로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믿음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믿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구하는 것을 얻는 능력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오늘 말씀의 제목이 정말 신나는 것입니다. “구하는 대로 얻는 길!”정말 이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신앙생활이 즐겁고 살맛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즐겁게 신앙생활하지 못한다면 기도에 대한 응답이 없기 때문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의 영의 삶이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하는 구하는 대로 얻는 응답의 길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기도에 대한 많은 말씀들이 있지만 특별히 이 말씀을 택한 것은 본문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능력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13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 영생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자녀가 부모에게 무엇을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부모는 자녀가 구하는 것을 모르는 척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태복음7:7절 이하에서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9-11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것도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지 않겠느냐?”라고 반문하시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당연하다.’는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야고보서4:2-3절을 봅시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제이콥스키’가 쓴 ‘원숭이의 손’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영국의 어떤 노동자가 인도 마술사의 주문이 붙어 있는 ‘원숭이의 손’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 원숭이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고 무엇이든지 자기가 소원 세 가지를 말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멋진 것을 손에 넣은 노동자는 집에 오자마자 원숭이의 손에 손을 얹고 신중하게 첫 번째 소원을 말했습니다.
“돈 500만원 생겨라!” 그랬더니, 바로 그 순간에 노크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떤 신사가 서서 봉투를 내밀면서,
“500만원 입니다. 선생님의 아들이 공장에서 일하던 중 기계에 치어 죽었기에 조의금을 가지고 왔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 노동자는 기가 막힌 슬픔에 다시 원숭이의 손에 손을 얹고는, “내 아들이 돌아오게 하라.”고 했더니 죽었던 아들이 유령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너무도 기가 막혀 마지막 남은 한 가지 소원을 청했습니다. “내 아들이 편안히 잠들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는 노동자는 깊은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글은 헛된 물질을 쫓는 현대인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글입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단번에 부자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권, 증권투자, 적은 투자로 짧은 기간에 돈을 벌게 해준다는 유혹의 길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꿈을 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겠습니까? 이것은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위한 구함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혹시 어떤 방법으로 그런 꿈을 이루었다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오히려 영과 육신의 삶이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구함은 어떤 것입니까? 지금부터 구하는 대로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봅시다.
1. 첫 번째 길은 구하는 것을 들으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15절을 봅시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줄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신앙의 기초이며 뿌리입니다. 이 기초 위에 믿음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래서 본문13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이라고,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는 것은 ‘맹목적인 믿음’입니다. 마치 소경이 코끼리를 더듬어 보고는 ‘코끼리는 기둥과 같다.’, ‘코끼리는 벽과 같다.’, ‘코끼리는 긴 호스와 같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맹목적인 신앙은 기초가 없기 때문에 자그마한 시련이 와도 곧 넘어지게 됩니다. 주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서 비유하신 돌짝밭과 같은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믿음의 집을 짓는 중입니다. 다만 지금 확인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중에도 ‘내가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식에 의심 없는 믿음을 더해야 합니다.
마가복음9:14절 이하에는 귀신들린 아들의 병을 고침받기 위하여 예수님께로 데려온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이 변화 산에 가신 사이에 남아있던 아홉 제자들에게 병을 고쳐줄 것을 요청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 일로 인하여 의심이 생겼던 가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혹시 고칠 수 있으시면 고쳐주십시오.’라는 반신반의하는 그런 요청을 한 것입니다.
그 아버지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능치 못함이 없으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런 의심스러운 요청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다면 여러분 자신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예수님께서 마가복음11:23-24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인간관계에서도 ‘신뢰’가 첫 번째 가는 조건입니다. 부부사이에도 의심이 생기면 ‘의부증’이나 ‘의처증’이 되어 신뢰가 무너지고 가정이 무너집니다. 회사에서도 경영자와 노동자 간에 서로 의심하여 신뢰가 무너지면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성도 사이에도 의심은 신뢰를 무너뜨리게 되고 어떤 기도에도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처럼, ‘의심하는 것은 흔들리는 물결 같아서 마음의 정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구하는 것을 들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하는 대로 얻는 첫 번째 길입니다.
2. 두 번째 길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합니다.
본문14절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첫 번째 길에서 보았듯이 구하는 것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알고 또한 믿음으로 기도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흑인노예의 자유를 선포함으로 말미암아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노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사탕수수와 목화 등의 대규모 농업으로 인하여 풍요를 누리던 남쪽 사람들은 노예 없이는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노예제도를 반대하며 정부와 맞섰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승을 부리는 남군 앞에서 북군은 가는 곳마다 패배를 거듭했습니다. 상황이 급박해진 북군들은 모여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편이 되셔서 남군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하옵소서.”
링컨 대통령이 이 기도를 들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북군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북군 편에 서서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북군이 하나님 편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라.”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선 북군은 승리하게 되었고, 노예들은 해방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15:7절을 봅시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뜻으로 가득하게 채워져 있음을 말씀합니다.
찬송가 431장은 독일 루터교회 목사였던 ‘벤자민 슈몰크(Benjamin Schumolk)’ 목사님의 기도문이 가사가 되었습니다.
1618년에 시작된 유럽의 신. 구교전쟁은 1648년 전쟁이 끝나기까지 30년 동안 온 유럽을 피로 물들였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신. 구교의 대립은 여전했고, 건물은 폐허가 됐으며, 흑사병이 유행하면서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1730년 슈몰크 목사님은 과로로 쓰러져 오른손을 쓰지 못하게 되었고, 백내장으로 실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고 지팡이에 의지한 채 넓고 넓은 교구를 심방하며 보살펴야 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부부가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집이 완전히 불타고 여기저기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아서 이리 저리 잿더미를 파헤치자 그 속에 어린 아들 형제의 시체가 있었습니다. 그때 두 아들의 시체를 앞에 놓고 울면서 드렸던 기도가 431장 가사가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의 예수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당신의 뜻이 내 뜻이 되게 하소서. 슬픔 중이나 기쁨 중에 당신의 것으로 날 인도하시고 ‘내 주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게 하소서.”
여기서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대로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성경말씀 속에 있습니다. 모든 성도를 향하신 공통된 하나님의 뜻도 있지만, 나 자신을 향하시는 개인적인 하나님의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읽고 연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따라 한다고 그것이 나를 향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통달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힘써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며,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3. 세 번째 길은 믿음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15절 후반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으로 구한 것을 실천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믿음으로 잘 구했다 하더라도 행함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수레에 건초를 잔뜩 싣고 가던 수레가 진흙탕에 빠졌습니다. 주위를 둘러봐도 도와 줄 사람이 없자 마부는 투덜대기 시작했습니다.
“웬 비는 와 가지고! 또 이 망아지 놈은 왜 하필 진흙탕으로 가서는! 또 수레는 왜 이렇게 부실한지!”
엉뚱한 것에 화를 내던 마부는 ‘난 역시 재수 없는 놈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을 원망했습니다. 그래도 수레는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다급해진 마부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이루시는 하나님! 제발 수레를 움직이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어디선가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 말을 따르라. 그러면 수레를 움직이게 해줄 터이니. 먼저 수레가 왜 움직이지 않나 살펴보아라. 그리고 바퀴 앞의 진흙과 돌들을 차례로 치워라!”
마부는 ‘시키는 대로 하면 수레를 움직여 준다.’는 말에 그대로 따라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 했으면 채찍을 들어라!”
“아니 수레는 움직이지 않게 해 놓고 채찍을 들라니요?"
마부는 투덜대며 채찍으로 망아지를 움직이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마차가 조금씩 움직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것 봐라. 쉽지 않느냐. 모름지기 네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
사무엘의 어머니인 ‘한나’는 자식을 얻기 위하여 성전에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 후에는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고 그렇게 행동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실로암’에서 눈을 씻고 나음을 얻은 소경이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진 베드로나, 모두가 믿음을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구한 대로 얻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대한 지식과 믿음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믿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구하는 것을 얻는 능력의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