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 속의 은혜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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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1-11 11:56
♡♥♡ 가시 속의 은혜 / 고후12:1-10
*** 들어가는 말
어떤 교인이 목사님과 상담을 나누면서
“목사님, 제게는 너무 상처가 많아요. 왜 이러한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이 어려운 시련과 문제가 전혀 없는 곳이 없겠습니까?” 라고 탄식하면서 편안한 삶을 찾게 해달라고 상담을 청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처도, 고통도 전혀 없는 세계가 한 곳 있기는 있습니다. 공동묘지에 가 보십시오. 상처도, 고통도 없는 곳은 세상에서 그곳뿐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에는 모든 것이 형통하고 평안합니까? 아니면 고질적인 육신의 고통이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가시와 같은 일들이 있습니까? 아마도 삶의 고통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하여 가지신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즉 잘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29:1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가시와 같은 고난이 있는 것일까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향수는 장미에서 채취하는 ‘로즈향수’라고 합니다. 이 향수는 발칸산맥에서 자라는 장미에서 채취합니다.
장미의 향기가 언제 가장 진하게 풍기는지 아십니까? 자정에서 2시 사이라고 합니다. 향수를 만들기 위하여 따는 장미는 바로 이 시간에 채집한다고 합니다. 장미는 이 한밤중의 짧은 시간에 가장 짙고, 많은 양의 향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햇빛이 비취는 낮에 따게 되면, 장미향이 40%밖에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빛이 없는 캄캄한 밤. 모든 식물이 활동을 멈추는 차가운 공기가 있는 한밤중에 장미는 가장 짙은 향기를 발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장미는 거름기가 없는 박한 땅에서 자라야 좋은 꽃을 피우고 향기가 더욱 진합니다.
항상 안전하고 따뜻하며 넉넉한 영양분과 수분이 공급되는 온실에서 자라는 꽃들은 본연의 진한 향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닥치는 극심한 인생의 밤. 차가운 고난의 시간에 진정한 인간미가 나타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을 통하여 가장 아름다운 믿음의 향기가 발산하게 됩니다. 이는 고통이 없이는 진정한 인간미도 믿음의 향기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No cross No crown!',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인이요 지도자인 사도 바울에게도 육신의 고질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말씀들을 보면 ‘두통’이거나 ‘안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갈4:15)고 하는 말씀을 본다면, 아마 안질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고통이 어찌나 심했던지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이 고통을 없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기도에 대하여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시면서 거절하셨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시는 가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가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육신의 고질적인 병, 환경적인 고통, 가족이나 이웃과 같은 사람들로 인한 고통, 가난이나 생활고로 인한 고통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가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당장에는 아픔과 고통이겠지만, 영원한 생명과 삶을 위해서는 유익한 것입니다. 히브리서5:8절에서는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하시면서 고난의 유익됨이 ‘순종하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가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단이 구멍을 뚫을 수 있는 가장 약한 부분에 가시를 두심으로서 늘 생각하고 방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세계적인 음악가인 ‘헨델’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작곡한 ‘할렐루야’는 왕이 연주를 듣다가 벌떡 일어났다는 일화를 담고 있는 유명한 곡입니다. 그는 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남의 돈을 빌려서까지 치료하려고 애섰다고 합니다. 그러나 건강도 찾지 못했고 돈도 갚지 못했습니다. 결국 반신불수의 비참한 상태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 그는 불행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불후의 명작인 ‘할렐루야’를 작곡한 곳이 바로 이 감옥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네 번이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은 ‘루즈벨트’뿐입니다. 그 역시 소아마비로 지체가 부자유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초강대국의 영도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감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비록 육신의 고통 속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가시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애가3:33절에서,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성도에게 왜 이런 고난과 아픔과 같은 인생의 가시를 주셨겠습니까? 시편기자는 시편119:71절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고, 베드로전서4: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가시는 시험에 빠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즉 인생의 가시의 목적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우리는 인생의 가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가시를 통하여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는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즉시로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곧 자신이 약함으로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크게 나타날 뿐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하여 교만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고통스러운 인생의 가시가 있습니까? 육신의 약함, 인생의 고달픔,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 등.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있습니다. 여러분도 가시에 찔려본 경험이 있으시지요? 몸에 박힌 가시는 잘못 건드리면 자꾸만 깊이 들어가서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가시로 인하여 원망하거나, 좌절하거나, 깨닫지 못하고 무시한다면 아픔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가시를 통하여 죄를 깨닫게 하시면 회개와 돌이킴으로 죄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인생의 길이 잘못 설정되었다면 바른 삶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더욱 큰 능력을 위한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완전한 의인은 아닙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의인이나 천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부족함을 하나씩 고쳐가고, 새롭게 하고, 성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제 힘을 냅시다.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좌절감도, 후회도, 원망도, 불평도, 죄책감도 모두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의 걸림돌일 뿐입니다. 부정적이고 상처만 남기는 생각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주님이 이루시는 우리의 삶을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갑시다.
*** 들어가는 말
어떤 교인이 목사님과 상담을 나누면서
“목사님, 제게는 너무 상처가 많아요. 왜 이러한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이 어려운 시련과 문제가 전혀 없는 곳이 없겠습니까?” 라고 탄식하면서 편안한 삶을 찾게 해달라고 상담을 청했습니다. 그때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처도, 고통도 전혀 없는 세계가 한 곳 있기는 있습니다. 공동묘지에 가 보십시오. 상처도, 고통도 없는 곳은 세상에서 그곳뿐입니다.”
여러분의 생활에는 모든 것이 형통하고 평안합니까? 아니면 고질적인 육신의 고통이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가시와 같은 일들이 있습니까? 아마도 삶의 고통이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에 대하여 가지신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 즉 잘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29:11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가시와 같은 고난이 있는 것일까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향수는 장미에서 채취하는 ‘로즈향수’라고 합니다. 이 향수는 발칸산맥에서 자라는 장미에서 채취합니다.
장미의 향기가 언제 가장 진하게 풍기는지 아십니까? 자정에서 2시 사이라고 합니다. 향수를 만들기 위하여 따는 장미는 바로 이 시간에 채집한다고 합니다. 장미는 이 한밤중의 짧은 시간에 가장 짙고, 많은 양의 향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햇빛이 비취는 낮에 따게 되면, 장미향이 40%밖에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빛이 없는 캄캄한 밤. 모든 식물이 활동을 멈추는 차가운 공기가 있는 한밤중에 장미는 가장 짙은 향기를 발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장미는 거름기가 없는 박한 땅에서 자라야 좋은 꽃을 피우고 향기가 더욱 진합니다.
항상 안전하고 따뜻하며 넉넉한 영양분과 수분이 공급되는 온실에서 자라는 꽃들은 본연의 진한 향기를 만들지 못합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에게 닥치는 극심한 인생의 밤. 차가운 고난의 시간에 진정한 인간미가 나타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을 통하여 가장 아름다운 믿음의 향기가 발산하게 됩니다. 이는 고통이 없이는 진정한 인간미도 믿음의 향기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No cross No crown!', 십자가가 없으면 영광도 없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인이요 지도자인 사도 바울에게도 육신의 고질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간접적인 말씀들을 보면 ‘두통’이거나 ‘안질’이었던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갈4:15)고 하는 말씀을 본다면, 아마 안질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은 이 고통이 어찌나 심했던지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바울은 이 고통을 없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세 번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기도에 대하여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시면서 거절하셨습니다.
1.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주시는 가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가시는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육신의 고질적인 병, 환경적인 고통, 가족이나 이웃과 같은 사람들로 인한 고통, 가난이나 생활고로 인한 고통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가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당장에는 아픔과 고통이겠지만, 영원한 생명과 삶을 위해서는 유익한 것입니다. 히브리서5:8절에서는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고 하시면서 고난의 유익됨이 ‘순종하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교만하지 않게 하려고 가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단이 구멍을 뚫을 수 있는 가장 약한 부분에 가시를 두심으로서 늘 생각하고 방비하게 하신 것입니다.
세계적인 음악가인 ‘헨델’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가 작곡한 ‘할렐루야’는 왕이 연주를 듣다가 벌떡 일어났다는 일화를 담고 있는 유명한 곡입니다. 그는 병을 고치기 위해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남의 돈을 빌려서까지 치료하려고 애섰다고 합니다. 그러나 건강도 찾지 못했고 돈도 갚지 못했습니다. 결국 반신불수의 비참한 상태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때 그는 불행했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불후의 명작인 ‘할렐루야’를 작곡한 곳이 바로 이 감옥이었습니다.
미국에서 네 번이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은 ‘루즈벨트’뿐입니다. 그 역시 소아마비로 지체가 부자유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세계 초강대국의 영도자로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감사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비록 육신의 고통 속에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가시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애가3:33절에서,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성도에게 왜 이런 고난과 아픔과 같은 인생의 가시를 주셨겠습니까? 시편기자는 시편119:71절에서,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고백했고, 베드로전서4:1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가시는 시험에 빠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즉 인생의 가시의 목적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우리는 인생의 가시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가시를 통하여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는 자신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즉시로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곧 자신이 약함으로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이 더욱 크게 나타날 뿐 아니라, 받은 은혜에 대하여 교만하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지금 고통스러운 인생의 가시가 있습니까? 육신의 약함, 인생의 고달픔, 인간관계로 인한 고통 등. 그 속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어있습니다. 여러분도 가시에 찔려본 경험이 있으시지요? 몸에 박힌 가시는 잘못 건드리면 자꾸만 깊이 들어가서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가시로 인하여 원망하거나, 좌절하거나, 깨닫지 못하고 무시한다면 아픔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가시를 통하여 죄를 깨닫게 하시면 회개와 돌이킴으로 죄를 해결해야만 합니다. 인생의 길이 잘못 설정되었다면 바른 삶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은혜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하나님의 더욱 큰 능력을 위한 것이라면 감사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이며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완전한 의인은 아닙니다. 구원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의인이나 천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부족함을 하나씩 고쳐가고, 새롭게 하고, 성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제 힘을 냅시다. 우리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좌절감도, 후회도, 원망도, 불평도, 죄책감도 모두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의 걸림돌일 뿐입니다. 부정적이고 상처만 남기는 생각들을 훌훌 털어버리고 주님이 이루시는 우리의 삶을 즐겁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