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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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1-03 17:10
♡♥♡ 고백 / 마태복음 16:16
*** 들어가는 말
한 6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콩고의 ‘웸바’라는 마을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한 마을 전체가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흥은 선교사들의 사역 때문도 아니고. 성경공부 때문도 아닙니다. 이 놀라운 부흥은 두 여인과 한 남자 성도의 진실한 회개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두 여인의 마음이 성령님께 깊이 붙들리어 자기의 삶을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여인은 이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신분입니다. 이 여인은 우리나라 실정으로 표현하자면 ‘성미’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전에 교회에 바쳐진 쌀을 한 자루 갖다 쓴 것이 왜 그런지 마음에 자꾸만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것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성도들 앞에 고백합니다.
“사실, 이 쌀은 교회에서 쓰여야 할 것인데 제가 썼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또 한 여인이 성도들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집의 계란 한 개를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가져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회개합니다.”
이어서 한 남자 성도가 나와서 고백을 합니다.
“저는 서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선교사와 교제를 하면서 선교사의 집에 갔습니다. 돌아오면서 선교사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성경 한 권을 그냥 가지고 나왔습니다. 내가 그것을 다시 돌려 드리며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삶을 바로 잡으려는 이 세 사람의 진지한 고백 때문에 이 작은 콩고의 웸바 마을에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삶의 자세를 고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변화된 그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마을은 놀라움과 충격으로 가득했으며, 결국 온 마을이 다 예수님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뻔히 드러나 있는 것까지도 할 수만 있으면 숨겨보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숨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숨겨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9:4절에서,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라고 하시며, 히브리서4: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생각들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바람직한 방법입이다.
본문은 ‘베드로의 대 고백’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의 사람이었지만, ‘고백의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모집하러 다니시던 예수님을 베드로가 만났습니다. 밤새도록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질을 했지만, 허탕을 치고 빈 배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호숫가에 서 계시던 예수님께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상황을 따지지 않고 순종했으며, 결과는 두 배에 가득하도록 고기를 잡아 올렸습니다. 즉석에서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면서 들은 말로 대답을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하나의 고백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며 배반했던 베드로에게 물었을 때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그러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나서기도 잘했고, 잘난 척 잘하고 화끈하게 배반도 했습니다. 반면에 적시적소에서 주님께 대한 고백을 할 줄도 알았습니다. 주님은 그의 고백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잘 못할 수도 있고,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 그 모든 사실을 고백할 줄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백’은 서로에게 신뢰를 쌓으며, 사랑을 더욱 깊고 아름답게 합니다. 특히 주님께 대한 신앙의 고백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과의 더욱 깊은 신뢰의 관계를 원하십니까? 주님께 사랑의 고백을 준비해 보십시오. 나에게 있어서 주님은 어떤 분인지를 고백하십시오.
전에 어떤 토크쇼에서는 부부간에 사랑을 확인한답시고 날마다 ‘사랑해’라고 고백해야 하고, ‘한 번 이상 뽀뽀를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도 경상도 남자들은 힘들 것 같습니다. 요즘 개그맨들이 ‘결혼 해 달라.’는 프로포즈를 경상도식으로 하면, ‘내 아 낳도.’라고 해서 웃기지 않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뚝뚝합니다.
그렇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한 번 생각을 바꿔봅시다. 하나님을 향하는 내 마음을 고백해 봅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지만, 좀 낳은 방법은 글로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기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대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는데도 응답이 없습니다.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거실에는 T.V가 켜져 있어서 분명히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명함 뒤에다가 요한계시록3:20절을 써서 문에다 끼워두고 오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라는 구절입니다. 즉 문을 안 열어서 심방을 하지 못했다는 표현입니다.
다음 주일날 예배 후, 그 집사님이 목사님께 얼른 메모지만 전해주고는 가시더랍니다. 메모지에는 창세기3:10절이 기록되어 있더랍니다. “내가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벌거벗어서 숨었나이다.” 목욕 중이어서 못 나갔다는 말입니다.
우스개 이야기이지만, 애교 있는 답변입니다.
신앙의 고백이 중요한 것은 교회가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다는 것은 사람이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교회로 세워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신앙고백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에베소서4:4-6절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고상하고 유식하며 신학적인 그런 답변보다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난 고백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르실 때에도 한 사람씩 부르셨습니다. 일을 맡기실 때에도 한 사람씩 맡기시며,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에도 한 사람씩 결산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도 내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을 열고 닫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하십니다. 이 열쇠는 하나님의 복음인 진리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을 수행할 때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즉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치는 것도 천국의 열쇠이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모든 것이 열쇠입니다. 요한복음20:23절입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고 세워가도록 하기 위해 성도에게 주어진 권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나 하나의 고백이 중요하며, 나 하나가 맺는 주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이제 대복교회가 든든하게 서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의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며 놀라운 힘을 낼 수가 있게 됩니다. 2003년에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사랑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행복을 누리며, 또한 널리널리 증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한 60여 년 전에 아프리카 콩고의 ‘웸바’라는 마을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한 마을 전체가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는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흥은 선교사들의 사역 때문도 아니고. 성경공부 때문도 아닙니다. 이 놀라운 부흥은 두 여인과 한 남자 성도의 진실한 회개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성령께서 역사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두 여인의 마음이 성령님께 깊이 붙들리어 자기의 삶을 돌이키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한 여인은 이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하신분입니다. 이 여인은 우리나라 실정으로 표현하자면 ‘성미’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전에 교회에 바쳐진 쌀을 한 자루 갖다 쓴 것이 왜 그런지 마음에 자꾸만 걸렸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그것을 교회에 가지고 와서 성도들 앞에 고백합니다.
“사실, 이 쌀은 교회에서 쓰여야 할 것인데 제가 썼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랬더니 또 한 여인이 성도들 앞에 나옵니다. 그리고 이런 고백을 합니다.
“저는 남의 집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주인집의 계란 한 개를 주인에게 말하지 않고 가져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회개합니다.”
이어서 한 남자 성도가 나와서 고백을 합니다.
“저는 서점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래 전에 어떤 선교사와 교제를 하면서 선교사의 집에 갔습니다. 돌아오면서 선교사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성경 한 권을 그냥 가지고 나왔습니다. 내가 그것을 다시 돌려 드리며 회개하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삶을 바로 잡으려는 이 세 사람의 진지한 고백 때문에 이 작은 콩고의 웸바 마을에 하나님의 놀라운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삶의 자세를 고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변화된 그들을 사용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마을은 놀라움과 충격으로 가득했으며, 결국 온 마을이 다 예수님께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려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뻔히 드러나 있는 것까지도 할 수만 있으면 숨겨보려고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숨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숨겨보려고 합니다. 마태복음9:4절에서,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라고 하시며, 히브리서4:1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의 생각들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바람직한 방법입이다.
본문은 ‘베드로의 대 고백’이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베드로는 성질이 급하고 다혈질의 사람이었지만, ‘고백의 사람’이었습니다. 제자들을 모집하러 다니시던 예수님을 베드로가 만났습니다. 밤새도록 갈릴리 호수에서 그물질을 했지만, 허탕을 치고 빈 배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호숫가에 서 계시던 예수님께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상황을 따지지 않고 순종했으며, 결과는 두 배에 가득하도록 고기를 잡아 올렸습니다. 즉석에서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했다면서 들은 말로 대답을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모두가 침묵하고 있을 때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또 하나의 고백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며 배반했던 베드로에게 물었을 때였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여, 그러합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는 나서기도 잘했고, 잘난 척 잘하고 화끈하게 배반도 했습니다. 반면에 적시적소에서 주님께 대한 고백을 할 줄도 알았습니다. 주님은 그의 고백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우리도 역시 잘 못할 수도 있고,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주님께 그 모든 사실을 고백할 줄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백’은 서로에게 신뢰를 쌓으며, 사랑을 더욱 깊고 아름답게 합니다. 특히 주님께 대한 신앙의 고백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과의 더욱 깊은 신뢰의 관계를 원하십니까? 주님께 사랑의 고백을 준비해 보십시오. 나에게 있어서 주님은 어떤 분인지를 고백하십시오.
전에 어떤 토크쇼에서는 부부간에 사랑을 확인한답시고 날마다 ‘사랑해’라고 고백해야 하고, ‘한 번 이상 뽀뽀를 해야 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도 경상도 남자들은 힘들 것 같습니다. 요즘 개그맨들이 ‘결혼 해 달라.’는 프로포즈를 경상도식으로 하면, ‘내 아 낳도.’라고 해서 웃기지 않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뚝뚝합니다.
그렇지만 신앙에 있어서는 한 번 생각을 바꿔봅시다. 하나님을 향하는 내 마음을 고백해 봅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지만, 좀 낳은 방법은 글로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보면 기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어떤 목사님이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대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는데도 응답이 없습니다. 창문을 통해서 보이는 거실에는 T.V가 켜져 있어서 분명히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명함 뒤에다가 요한계시록3:20절을 써서 문에다 끼워두고 오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 라는 구절입니다. 즉 문을 안 열어서 심방을 하지 못했다는 표현입니다.
다음 주일날 예배 후, 그 집사님이 목사님께 얼른 메모지만 전해주고는 가시더랍니다. 메모지에는 창세기3:10절이 기록되어 있더랍니다. “내가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으나 벌거벗어서 숨었나이다.” 목욕 중이어서 못 나갔다는 말입니다.
우스개 이야기이지만, 애교 있는 답변입니다.
신앙의 고백이 중요한 것은 교회가 신앙고백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가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다는 것은 사람이 예수님께 대한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교회로 세워짐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는 신앙고백이 같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입니다. 에베소서4:4-6절입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고상하고 유식하며 신학적인 그런 답변보다는,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난 고백을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르실 때에도 한 사람씩 부르셨습니다. 일을 맡기실 때에도 한 사람씩 맡기시며, 마지막 날 주님 앞에 설 때에도 한 사람씩 결산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고백도 내 자신과 주님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신앙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을 열고 닫는 열쇠를 주셨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고 하십니다. 이 열쇠는 하나님의 복음인 진리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역을 수행할 때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즉 말씀을 증거하고 가르치는 것도 천국의 열쇠이며,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모든 것이 열쇠입니다. 요한복음20:23절입니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고 세워가도록 하기 위해 성도에게 주어진 권세입니다.
이처럼 교회는 나 하나의 고백이 중요하며, 나 하나가 맺는 주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이제 대복교회가 든든하게 서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의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고백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며 놀라운 힘을 낼 수가 있게 됩니다. 2003년에는 우리의 신앙고백과 사랑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행복을 누리며, 또한 널리널리 증거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