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을 정하십시오.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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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2-12-28 13:20
♡♥♡ 뜻을 정하십시오. / 단1:8-16
*** 들어가는 말
우리는 이맘때가 되면 생각들이 많아집니다.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아쉬움과 만족, 혹은 비통함이나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생각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것만은 꼭 해야지!’ 또는 ‘이것은 고치겠다.’ , ‘이런 것은 하지 않겠다.’라고 결심을 합니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지라도 결심을 하게 됩니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인 ‘수산나 웨슬리’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어머니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일화 중에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이 센 딸을 가르치면서 한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수산나’는 딸의 마음을 바꾸어놓으려고 한 가지 일을 계획했습니다.
수산나는 숯을 한 아름되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그 숯을 한 아름 안아보라고 했습니다. 물론 딸은 거절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숯들은 뜨겁지 않아, 델 염려가 없어.”
라면서 안아보라고 했습니다. 딸은,
“그렇지만 손이 더러워지잖아요?”
라고 안을 수 없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때 ‘수산나’는,
“바로 그 점이란다. 사람의 행동에는 화상까지는 입지 않지만, 손과 가슴을 더럽게 하는 행위도 있단다.”
라면서 딸의 잘못된 행동을 깨닫게 하면서 잘못된 행동을 버릴 것을 결단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결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결단을 표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만 결단하게 되면, 어떤 환경에 부딪칠 때 실행을 포기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10:10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는 믿음의 사람 ‘다니엘’이 등장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유대를 침공했을 때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때 다니엘의 나이가 15세 무렵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속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속국의 명석한 두뇌를 선발하여 3년 동안 특별한 교육을 시켰습니다. 이들에게는 최고의 예우를 했으며, 왕이 지정한 음식을 주고, 모든 쓸 것을 제공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발탁이 되어 바벨론 식의 특별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매 끼니의 식탁에서 율법이 금하는 식물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총감독인 환관장에게 ‘음식으로 인하여 자신들이 더렵혀지지 않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환관장은 채식만을 요구하는 다니엘에게 ‘그렇게 하면 너희 건강이 나빠질 것이고 그로 인하여 자신이 왕에게 문책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때 다니엘은 ‘열흘간의 시험기간을 통해서 판단한 후에 처분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모든 음식을 먹은 다른 사람들보다 채식만 한 다니엘의 무리가 더 건강했습니다. 결국 다니엘의 요구가 받아들여졌고, 음식으로 인하여 율법을 범하는 일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며, 환관장에게도 은총을 입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느부갓네살의 인정을 받아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느부갓네살의 뒤를 이은 ‘벨사살’왕과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선 메데의 ‘다리오’ 왕에게도 은총을 받아 총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형통하고 은총을 받는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성경에는 그 원인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8절을 봅시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니라.”고 결심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왕의 명령에 대한 거역이고 도전입니다. 죽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결단은 그 모든 명령과 두려움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오 왕의 때에도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는 총리가 되었는데, 메데 관리들의 시기를 샀습니다. 메데 관리들은 다니엘의 뒤 조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결점도 없었으며, 뇌물을 받거나, 왕에게 해를 끼치는 어떤 일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빌미로 삼아, 왕에게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나 사람에게 절하거나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것'을 상소했고 어인이 찍힌 금령이 내려졌습니다. 그 때에도 다니엘의 결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6: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사자 굴에 던져 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도 자신을 신뢰하는 다니엘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니엘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믿음의 결심은 대단했습니다.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서도 하나님을 향하는 그들의 신앙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께로 향하는 믿음의 결심이 변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가 베풀어집니다. 이사야26:3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무엘상2:30절 하반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십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심을 삶으로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즉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구조가 신앙을 유지해 가는 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별한 박해와 핍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자유스러운 생활과 문화 자체가 더욱 신앙을 나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는 핍박이 있을 때보다 믿음을 지키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눈만 돌리면 세상의 쾌락이 보이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쾌락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근본적으로 평안함과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많이 힘든 것입니다.
작가 ‘루이스’가 쓴 ‘악마의 편지’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람의 마음을 탁월한 감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영국의 노신사가 어느 날 대영제국의 도서실을 찾아갑니다. 그 노신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실에 들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노신사는 도서실을 들렀습니다. 이 책 저책을 훑어보다가 고른 것이 기독교 신앙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노신사는 책을 읽던 중에 마음속에서 갑자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노신사에게 그 순간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그의 마음속에 이렇게 말합니다.
“점심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노신사는 잠시 전 마음속에서 생각하려고 했던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누르고 식당으로 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가?”
이 때에 악마는 다시 그의 마음에 속삭이고 노신사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프게 생각을 하나. 우선 식사를 끝내고 보자.”
식사를 끝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생각이 어렴풋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악마의 유혹어린 간섭으로 인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
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탑니다. 버스 좌석에 앉자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노신사의 뒤에서 악마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진리를 찾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사단은 결코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사람의 가장 민감하고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약한 부분을 통하여 사단이 유혹하지 못하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골로새서2:20-21절에서,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유혹을 받을만한 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나는 믿음이 강하니까 괜찮아!’라면서 그 유혹과 맞선다면 참담한 패배만 있을 뿐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서는 그만 따먹고 말았던 것처럼 유혹과 대면하게 되면 끓어오르는 육신의 욕망을 이길 수가 없게 됩니다. 요셉이 보디발 부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쳤듯이 유혹은 피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향하는 결심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제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에,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결단을 굳게 하여 확실한 끝맺음과 담대한 출발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우리는 이맘때가 되면 생각들이 많아집니다. 지나 온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아쉬움과 만족, 혹은 비통함이나 분노를 느끼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새해를 생각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소망을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이것만은 꼭 해야지!’ 또는 ‘이것은 고치겠다.’ , ‘이런 것은 하지 않겠다.’라고 결심을 합니다.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될지라도 결심을 하게 됩니다.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인 ‘수산나 웨슬리’는 세계적으로 위대한 어머니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일화 중에 부모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이 센 딸을 가르치면서 한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수산나’는 딸의 마음을 바꾸어놓으려고 한 가지 일을 계획했습니다.
수산나는 숯을 한 아름되도록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딸에게 그 숯을 한 아름 안아보라고 했습니다. 물론 딸은 거절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숯들은 뜨겁지 않아, 델 염려가 없어.”
라면서 안아보라고 했습니다. 딸은,
“그렇지만 손이 더러워지잖아요?”
라고 안을 수 없는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때 ‘수산나’는,
“바로 그 점이란다. 사람의 행동에는 화상까지는 입지 않지만, 손과 가슴을 더럽게 하는 행위도 있단다.”
라면서 딸의 잘못된 행동을 깨닫게 하면서 잘못된 행동을 버릴 것을 결단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결단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결단을 표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으로만 결단하게 되면, 어떤 환경에 부딪칠 때 실행을 포기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10:10절에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는 믿음의 사람 ‘다니엘’이 등장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유대를 침공했을 때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때 다니엘의 나이가 15세 무렵이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속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속국의 명석한 두뇌를 선발하여 3년 동안 특별한 교육을 시켰습니다. 이들에게는 최고의 예우를 했으며, 왕이 지정한 음식을 주고, 모든 쓸 것을 제공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도 발탁이 되어 바벨론 식의 특별한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매 끼니의 식탁에서 율법이 금하는 식물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자신들을 가르치는 총감독인 환관장에게 ‘음식으로 인하여 자신들이 더렵혀지지 않기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환관장은 채식만을 요구하는 다니엘에게 ‘그렇게 하면 너희 건강이 나빠질 것이고 그로 인하여 자신이 왕에게 문책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때 다니엘은 ‘열흘간의 시험기간을 통해서 판단한 후에 처분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결과는 모든 음식을 먹은 다른 사람들보다 채식만 한 다니엘의 무리가 더 건강했습니다. 결국 다니엘의 요구가 받아들여졌고, 음식으로 인하여 율법을 범하는 일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았으며, 환관장에게도 은총을 입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느부갓네살의 인정을 받아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며, 느부갓네살의 뒤를 이은 ‘벨사살’왕과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선 메데의 ‘다리오’ 왕에게도 은총을 받아 총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형통하고 은총을 받는 사람이 되었겠습니까?
성경에는 그 원인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8절을 봅시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니라.”고 결심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왕의 명령에 대한 거역이고 도전입니다. 죽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결단은 그 모든 명령과 두려움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리오 왕의 때에도 왕의 신임과 사랑을 받는 총리가 되었는데, 메데 관리들의 시기를 샀습니다. 메데 관리들은 다니엘의 뒤 조사를 했습니다. 그러나 도덕적인 결점도 없었으며, 뇌물을 받거나, 왕에게 해를 끼치는 어떤 일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다니엘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빌미로 삼아, 왕에게 '30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에게나 사람에게 절하거나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것'을 상소했고 어인이 찍힌 금령이 내려졌습니다. 그 때에도 다니엘의 결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6:10절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결국 이 일로 인하여 사자 굴에 던져 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서도 자신을 신뢰하는 다니엘을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니엘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세 친구들도 믿음의 결심은 대단했습니다. 풀무불에 던져질 위기에서도 하나님을 향하는 그들의 신앙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하나님께로 향하는 믿음의 결심이 변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충만하신 은혜가 베풀어집니다. 이사야26:3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무엘상2:30절 하반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십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결심을 삶으로 나타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즉 지금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구조가 신앙을 유지해 가는 데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별한 박해와 핍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자유스러운 생활과 문화 자체가 더욱 신앙을 나태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는 핍박이 있을 때보다 믿음을 지키기가 더욱 힘들어집니다. 눈만 돌리면 세상의 쾌락이 보이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쾌락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육신은 근본적으로 평안함과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기가 많이 힘든 것입니다.
작가 ‘루이스’가 쓴 ‘악마의 편지’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사람의 마음을 탁월한 감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영국의 노신사가 어느 날 대영제국의 도서실을 찾아갑니다. 그 노신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도서실에 들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날도 노신사는 도서실을 들렀습니다. 이 책 저책을 훑어보다가 고른 것이 기독교 신앙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노신사는 책을 읽던 중에 마음속에서 갑자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노신사에게 그 순간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그의 마음속에 이렇게 말합니다.
“점심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노신사는 잠시 전 마음속에서 생각하려고 했던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누르고 식당으로 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갑자기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가?”
이 때에 악마는 다시 그의 마음에 속삭이고 노신사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프게 생각을 하나. 우선 식사를 끝내고 보자.”
식사를 끝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생각이 어렴풋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악마의 유혹어린 간섭으로 인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
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탑니다. 버스 좌석에 앉자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런 자극도,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노신사의 뒤에서 악마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진리를 찾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사단은 결코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사람의 가장 민감하고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약한 부분을 통하여 사단이 유혹하지 못하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골로새서2:20-21절에서,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유혹을 받을만한 것들을 피해야 합니다. ‘나는 믿음이 강하니까 괜찮아!’라면서 그 유혹과 맞선다면 참담한 패배만 있을 뿐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서는 그만 따먹고 말았던 것처럼 유혹과 대면하게 되면 끓어오르는 육신의 욕망을 이길 수가 없게 됩니다. 요셉이 보디발 부인의 유혹을 뿌리치고 도망쳤듯이 유혹은 피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향하는 결심이 분명해야 합니다.
이제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에,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의 결단을 굳게 하여 확실한 끝맺음과 담대한 출발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