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가 좋습니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670회
작성일
2003-03-29 21:50
♡♥♡ 있는 그대로가 좋습니다. / 고전7:20-24
*** 들어가는 말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서 영감 넘치는 시로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한 송명희 시인이 지은 ‘나’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서 남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재물도 많은 지식도 건강마저 없는 모든 것이 불충분한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는 여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느 곳에도 원망이나 불평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우울해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실을 만족해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상적으로는 이렇게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남이 갖지 못한 영적인 깊은 체험을 하도록 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가져도 가져도 끝없이 더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좀 더 많이, 좀 더 편하게, 좀 더 높게 계속 자신의 소유와 영토를 넓히려고만 합니다. 이처럼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과 삶과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6:8절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셨고, 히브리서13:5절에서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고의로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을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하12:7-8절입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이 말씀은 지금 다윗에게 있는 모든 것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만족할 줄 몰랐고, 그 욕망이 결국은 죄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사역했던 어느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와 권사를 세우기 위하여 공동의회를 열고 투표를 했습니다. 다음 주일에 몇몇 서리집사님들이 예배에 빠졌습니다. 심방을 했는데, 그 집사님은 자신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집사 선출에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돈을 벌어서 다시 교회에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해에는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해줄 것을 부탁했을 때에, 어느 집사님은 자신은 못한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는 것이 변변찮아서 못합니다. 좀 더 배우고 나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을 때에는 미래에 발전될 것을 예상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모습, 지금의 환경, 지금의 처지 있는 그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나머지 모든 것들은 부르신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성도의 자세를 살펴봅시다.
1. 지금 있는 그대로가 가장 좋습니다.
본문20, 24절입니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4절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이 말씀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실 때의 환경과 상황과 형편 그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이 무엇인가를 바꾸어보려고 무리하게 애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목적을 두고 부르셨습니다. 크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사야43:21절을 봅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에베소서1:3-6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것뿐만 아니라, 에베소서1:3-14절 사이에서 세 번씩이나 거듭 부르심의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함.’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는 아직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본래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일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부탁받을 때에도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로 변명하며 거절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말씀이 바로 모세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에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신 후였습니다. 모세는 그 모습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자신이 말주변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민족의 영도자로 사용하시려고 80년 동안이나 연단과 훈련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의 결정에 대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이류를 대면서 순복하지를 않았습니다. 모세의 변명을 들어보십시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사람의 모든 환경이나 처지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시면서,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다시 순종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다시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눈에 보이도록 모세의 형인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훗날 이 아론으로 인하여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큰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모세의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세상적인 삶을 핑계로 순종을 미루거나 거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좀 더 모으고, 준비한 후에 주의 일을 하겠노라고 미루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은 나의 환경이나 여건을 보고서 부르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준비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은 것임을 믿고 감사합시다. 꿈과 성장과 발전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므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할 때에 합당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2. 지금 주어진 것으로 일하십시오.
본문 앞 쪽의 17절을 봅시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도에게 주어진 목적을 위하여 각 자에게 주신 은사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여 일할 때에 각 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 각 자에게 주신 목적을 따라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면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 두 곳을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8:12절입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누가복음12:48절입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원리이기도 합니다. 곧“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주신 목적을 위하여 은사를 주셨으며, 후에 그 은사를 활용하여 얼마나 많이 남겼는지를 결산할 것입니다.
로마서12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분수에 지나치지 말고 주어진 것으로 일하라고 하십니다. 3절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 은사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은사를 따라 일하는 바른 자세를 함께 가르치십니다. 6-8절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학교에 여선생님이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과 어려운 처지로 인하여 자신감도 없고 자신의 소중함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한 가지의 일을 계획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학생을 차례로 불러서 파란 리본을 달아 주었습니다. 그 리본에는 “당신은 내게 특별한 존재입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몇 일후, 선생님은 파란 리본을 세 개를 나누어 주면서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 리본을 달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두 개를 그 사람에게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주도록 부탁을 하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아이들의 경험을 보고받다가 놀라운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리본 세 개를 받아 들고는, 자기에게 특별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다가 언젠가 자기에게 등록금을 주신 회사의 부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말씀드리고는 파란 리본을 달아 주었습니다. 부사장은 무척 기뻐했으며, 두 개의 파란 리본을 가지고 자기의 사장을 찾았습니다. 사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사장은 아니었지만, 부사장은 사장에게 파란 리본을 달아주면서 유능하고 천재적인 사장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사장은 부사장이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칭찬을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장은 부사장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하나의 리본을 누구에게 달아줄까 생각하다가 자기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사업하느라고 아들과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늘 꾸중만 해왔던 것이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아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을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한참을 울던 아들이 ‘사실은 오늘 밤에 자살을 하려고 결심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자살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함께 울었다고 했습니다.
성도 각 자에게 주어진 은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지지 않은 다른 것을 얻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지금 있는 것으로 성실하게 일하노라면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입니다. 가르치는 은사인지, 섬기는 은사인지, 구제하는 은사인지, 남을 잘 위로하고 권면하는 은사인지, 찬양인지, 봉사인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힘쓸 것은 그 은사를 성실하게 활용하여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적인 이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익을 남긴다는 것은 ‘나의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믿지 않는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며, 믿음이 약한 이들을 굳건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은사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은사를 활용하는 영의 직분에도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은사나 직분이 동일합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결산의 때에 각자의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3:8절입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지금까지의 일은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묻어버립시다. 지금부터 내게 주어진 은사를 찾고, 주어진 직분과 사명에 최선을 다합시다. 혹시 좀 더 잘 준비가 된 다음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 내 생애의 최고의 때이며,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주님이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리하여 매일의 삶이 기쁨과 보람과 감사로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서 영감 넘치는 시로 많은 사람을 감동케 한 송명희 시인이 지은 ‘나’라는 제목의 시가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서 남이 가지고 있는 많은 재물도 많은 지식도 건강마저 없는 모든 것이 불충분한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고, 원망할 수 있는 여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어느 곳에도 원망이나 불평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우울해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현실을 만족해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세상적으로는 이렇게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남이 갖지 못한 영적인 깊은 체험을 하도록 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가져도 가져도 끝없이 더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좀 더 많이, 좀 더 편하게, 좀 더 높게 계속 자신의 소유와 영토를 넓히려고만 합니다. 이처럼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감사가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과 삶과 모든 환경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삶에 대하여 만족하며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6:8절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셨고, 히브리서13:5절에서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자기 아내로 삼으려고 충신이었던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고의로 죽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밧세바’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나단’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을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하12:7-8절입니다. “내가 너로 이스라엘 왕을 삼기 위하여 네게 기름을 붓고,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 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저것을 더 주었으리라.” 이 말씀은 지금 다윗에게 있는 모든 것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만족할 줄 몰랐고, 그 욕망이 결국은 죄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예전에 사역했던 어느 교회에서 장로와 집사와 권사를 세우기 위하여 공동의회를 열고 투표를 했습니다. 다음 주일에 몇몇 서리집사님들이 예배에 빠졌습니다. 심방을 했는데, 그 집사님은 자신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집사 선출에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내가 돈을 벌어서 다시 교회에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해에는 교회학교 교사로 봉사해줄 것을 부탁했을 때에, 어느 집사님은 자신은 못한다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는 것이 변변찮아서 못합니다. 좀 더 배우고 나서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을 때에는 미래에 발전될 것을 예상하시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의 모습, 지금의 환경, 지금의 처지 있는 그대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부르심과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면 됩니다. 나머지 모든 것들은 부르신 주님께서 책임지시고 관리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성도의 자세를 살펴봅시다.
1. 지금 있는 그대로가 가장 좋습니다.
본문20, 24절입니다.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4절 “형제들아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이 말씀들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실 때의 환경과 상황과 형편 그대로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이 무엇인가를 바꾸어보려고 무리하게 애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는 목적을 두고 부르셨습니다. 크게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사야43:21절을 봅시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에베소서1:3-6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이것뿐만 아니라, 에베소서1:3-14절 사이에서 세 번씩이나 거듭 부르심의 목적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함.’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 가운데는 아직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음을 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본래의 목적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일은 부수적인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부탁받을 때에도 자신의 개인적인 이유로 변명하며 거절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는 말씀이 바로 모세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 때에는 이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마치신 후였습니다. 모세는 그 모습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는 ‘자신이 말주변이 없다.’는 핑계를 대면서 거절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민족의 영도자로 사용하시려고 80년 동안이나 연단과 훈련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의 결정에 대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이류를 대면서 순복하지를 않았습니다. 모세의 변명을 들어보십시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사람의 모든 환경이나 처지를 만드신 분이 하나님 자신이라고 하시면서,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다시 순종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라고 다시 거절합니다. 하나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눈에 보이도록 모세의 형인 말 잘하는 ‘아론’을 붙여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훗날 이 아론으로 인하여 모세와 이스라엘 민족 전체에게 큰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는 모세의 불순종의 결과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세상적인 삶을 핑계로 순종을 미루거나 거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가 좀 더 모으고, 준비한 후에 주의 일을 하겠노라고 미루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부르심은 나의 환경이나 여건을 보고서 부르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순종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준비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대로가 가장 좋은 것임을 믿고 감사합시다. 꿈과 성장과 발전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므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할 때에 합당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2. 지금 주어진 것으로 일하십시오.
본문 앞 쪽의 17절을 봅시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성도에게 주어진 목적을 위하여 각 자에게 주신 은사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여 일할 때에 각 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 각 자에게 주신 목적을 따라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면 자신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 두 곳을 보겠습니다. 고린도후서8:12절입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누가복음12:48절입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원리이기도 합니다. 곧“심은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주신 목적을 위하여 은사를 주셨으며, 후에 그 은사를 활용하여 얼마나 많이 남겼는지를 결산할 것입니다.
로마서12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분수에 지나치지 말고 주어진 것으로 일하라고 하십니다. 3절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그 은사를 구체적으로 열거하면서 은사를 따라 일하는 바른 자세를 함께 가르치십니다. 6-8절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학교에 여선생님이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과 어려운 처지로 인하여 자신감도 없고 자신의 소중함조차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모로 궁리하다가 한 가지의 일을 계획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학생을 차례로 불러서 파란 리본을 달아 주었습니다. 그 리본에는 “당신은 내게 특별한 존재입니다.”라는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몇 일후, 선생님은 파란 리본을 세 개를 나누어 주면서 “자기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 리본을 달아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은 두 개를 그 사람에게 주면서 다른 사람에게 주도록 부탁을 하라.”고 했습니다. 얼마 후, 아이들의 경험을 보고받다가 놀라운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학생이 리본 세 개를 받아 들고는, 자기에게 특별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생각하다가 언젠가 자기에게 등록금을 주신 회사의 부사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정을 말씀드리고는 파란 리본을 달아 주었습니다. 부사장은 무척 기뻐했으며, 두 개의 파란 리본을 가지고 자기의 사장을 찾았습니다. 사원들 사이에 인기 있는 사장은 아니었지만, 부사장은 사장에게 파란 리본을 달아주면서 유능하고 천재적인 사장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사장은 부사장이 자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칭찬을 받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장은 부사장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하나의 리본을 누구에게 달아줄까 생각하다가 자기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사업하느라고 아들과 대화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것이 미안했고 늘 꾸중만 해왔던 것이 안쓰러웠던 것입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들을 불러놓고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 아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특별하고 소중한지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솔직하게 그동안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을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한참을 울던 아들이 ‘사실은 오늘 밤에 자살을 하려고 결심하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자살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고백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아버지는 아들을 껴안고 함께 울었다고 했습니다.
성도 각 자에게 주어진 은사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더라도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은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나의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게 주어지지 않은 다른 것을 얻으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지금 있는 것으로 성실하게 일하노라면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채우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입니다. 가르치는 은사인지, 섬기는 은사인지, 구제하는 은사인지, 남을 잘 위로하고 권면하는 은사인지, 찬양인지, 봉사인지를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힘쓸 것은 그 은사를 성실하게 활용하여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적인 이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익을 남긴다는 것은 ‘나의 은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믿지 않는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며, 믿음이 약한 이들을 굳건하게 세우는 것’입니다.
은사에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은사를 활용하는 영의 직분에도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은사나 직분이 동일합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과 헌신을 통하여 하나님을 높이고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결산의 때에 각자의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3:8절입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지금까지의 일은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 묻어버립시다. 지금부터 내게 주어진 은사를 찾고, 주어진 직분과 사명에 최선을 다합시다. 혹시 좀 더 잘 준비가 된 다음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 내 생애의 최고의 때이며,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주님이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그리하여 매일의 삶이 기쁨과 보람과 감사로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