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는 비결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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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3-21 16:20
♡♥♡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는 비결 / 고후1:18-22
*** 들어가는 말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체면치레가 많았습니다. 체면치레가 많다는 것은 내용은 없으면서 겉치레가 많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는 실속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옛 사람들은 엄연히 쌀을 사러가면서도 “쌀 팔러간다.”고 하는가 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물만 마시고서도 이빨을 쑤시는 과장된 행동을 했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면서 일은 하지 않고 도포입고 갓 쓰고 팔자걸음을 해야 체통이 서는 줄 알았습니다. 이것을 성경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외식(外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식이란 ‘…척 하는 것’거짓된 행동입니다.
모든 생활에서 그렇겠지만 특히 신앙에 있어서의 외식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는 진정한 가치와 실질적인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잠시 보이고 누리는 세상적인 것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된 영원한 생명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믿음의 능력도 없으면서 ‘믿음이 좋은 척 하는 것’은 세상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도의 가치는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만일 아무리 믿음이 좋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면 ‘거짓된 믿음’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한 성도에게는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이 바로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본문의 단어들의 의미를 먼저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긍정적인 생활자세를 말씀합니다. 본문20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으로 응답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라고 하는 단어는 원어로는 nai(nai, yes)라고 했으며, 이 단어는 강한 확인을 나타내는 말로서 ‘꼭 그대로’, ‘분명히’, ‘참으로’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꼭 그대로’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기 위해서는 “아멘”으로 응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은 그렇게 이루어짐으로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아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멘(ajmhvn, truly)이란, 본래적인 의미로는 ‘굳건히’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확실히’, ‘그렇게 되옵소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성령을 성도들에게 주신 이유입니다. 본문22절에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신 이유를 ‘보증’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도장을 찍으셔서 성도로 삼으셨다는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보증’이라는 말로 arrhabon(ajrjrJabwvn, a pledg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보증금’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잔여분의 보증을 위한 ‘공탁금’, 혹은 ‘재물’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이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을 수 있는 자격자임을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토록 불변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증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담대하게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4:16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셨고, 요한일서5:14절에서는,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본문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성도가 가져야 하는 긍정적인 응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긍정적인 응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2. 약속을 이루어 받는 긍정적인 응답은 입술의 아멘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입이 무거운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표현이 분명해야 합니다. 로마서10:10절의 말씀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이 어떤 중대한 결심을 했다면 그것을 말로 표현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결심을 표현함으로서 ‘실천해야 되겠다.’라는 책임감 있는 의지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기 마음으로만 계획하고 결심한다면 실천하지 못해도 비난받거나 자신의 약함을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실천할 의지가 약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표현하는 입술의 말대로 시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민수기14:28절을 봅시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과 그 약속에 따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셨던 약속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믿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아들인 이삭에게 그대로 전하면서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아들 야곱에게 축복했으며, 600여 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9)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12:14절에서는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지.’라고 하지 마시고, ‘아멘’으로 시인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약속을 마음으로 믿고, 믿은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3. 약속을 이루어 받는 긍정적인 응답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제가 부교역자 시절에 구역장들을 인도하여 기도원에서 금요철야기도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밤10시부터 다음날 새벽5시까지 한 숨도 자지 않고 찬송하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기를 계속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잠시 잠을 쫓기 위하여 커피타임도 있었지만, 교회당 건축과 교회의 여러 일들, 구역의 부흥성장, 병든 이들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등.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새벽기도회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권사님, 집사님들이 새로 건축할 교회당 부지 주변의 사람들이 방해를 하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걱정을 했습니다. 그 때 제가 운전을 하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어휴 쯧쯧, 지난밤에 뭘 기도하셨어요? 밤새도록 헛 기도하셨네요.” 그러자 구역장들이 “요 입이 방정이야.”라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의 일이 아니지요? 우리도 예배 잘 드리고, 간절히 기도하고서는 돌아서서 염려하고 걱정한 적이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내 생활에서 이루어 받기 위해서는 먼저 부정적인 생각과 염려들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는다고 ‘아멘’했다 하더라도, 생활에서 믿음의 행동을 하지 못하면 효력이 없습니다. 만일 마음의 생각이나 말로 표현한 것이 행동과 다르다면 그것이 바로 ‘외식’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3:18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권면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자식을 잉태하게 해 달라고 성전에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이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습니다. 한나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긍정적인 시인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성경은 한나의 이후 행동에 대하여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생각하셨다.”고 하셨고, 한나는 사무엘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는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생각을 살피시고, 입술로 시인하는 것을 들으시며, 믿음의 행동을 보시고 약속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지방신문의 독자투고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나는 지난번 연휴에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비집고 앉을 틈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가까스로 빈자리를 하나 차지해서 편안하게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드립니다.”
이런 줄거리였는데 아마 투고자가 기독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같은 신문의 똑 같은 자리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나도 어제 아무개가 말했던 그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다행스럽게도 처음부터 앉아서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옆에 어떤 노인이 서 계신 것을 보고는 즉시 자리를 양보했고, 비록 피곤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했습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후에 투고한 사람이 기독교인인지 아니면 앞서 투고한 기독교인을 비웃기 위해 투고한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 자신을 생각하도록 하는 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증하신 수많은 약속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풍성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을 내 생활에서 이루어 받기 위해서는 “예”와 “아멘”으로 응답하고, 생활에서도 “아멘”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응답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약속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체면치레가 많았습니다. 체면치레가 많다는 것은 내용은 없으면서 겉치레가 많다는 것입니다. 요즘 말로는 실속이 없다는 것이겠지요. 옛 사람들은 엄연히 쌀을 사러가면서도 “쌀 팔러간다.”고 하는가 하면, 먹을 것이 없어서 물만 마시고서도 이빨을 쑤시는 과장된 행동을 했습니다. 먹고 살기도 힘들면서 일은 하지 않고 도포입고 갓 쓰고 팔자걸음을 해야 체통이 서는 줄 알았습니다. 이것을 성경적인 용어로 말한다면 ‘외식(外式)’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외식이란 ‘…척 하는 것’거짓된 행동입니다.
모든 생활에서 그렇겠지만 특히 신앙에 있어서의 외식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는 진정한 가치와 실질적인 능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즉 잠시 보이고 누리는 세상적인 것조차 무가치한 것으로 여기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약속된 영원한 생명을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믿음의 능력도 없으면서 ‘믿음이 좋은 척 하는 것’은 세상적인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도의 가치는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하고 있는지에 달려있습니다. 만일 아무리 믿음이 좋은 것 같아도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다면 ‘거짓된 믿음’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한 성도에게는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이 바로 이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 본문의 단어들의 의미를 먼저 살펴봅시다.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가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긍정적인 생활자세를 말씀합니다. 본문20절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멘으로 응답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라고 하는 단어는 원어로는 nai(nai, yes)라고 했으며, 이 단어는 강한 확인을 나타내는 말로서 ‘꼭 그대로’, ‘분명히’, ‘참으로’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꼭 그대로’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씀에서,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꼭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도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기 위해서는 “아멘”으로 응답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말은 그렇게 이루어짐으로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서 ‘아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아멘(ajmhvn, truly)이란, 본래적인 의미로는 ‘굳건히’라는 말입니다. 일반적인 해석에서는 ‘확실히’, ‘그렇게 되옵소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성령을 성도들에게 주신 이유입니다. 본문22절에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신 이유를 ‘보증’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도장을 찍으셔서 성도로 삼으셨다는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보증’이라는 말로 arrhabon(ajrjrJabwvn, a pledg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단어는 ‘보증금’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잔여분의 보증을 위한 ‘공탁금’, 혹은 ‘재물’을 의미합니다.
우리 마음에 성령이 계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을 수 있는 자격자임을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토록 불변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보증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여 담대하게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히브리서4:16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셨고, 요한일서5:14절에서는,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본문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단어들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성도가 가져야 하는 긍정적인 응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받기 위하여 우리가 가져야 하는 긍정적인 응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2. 약속을 이루어 받는 긍정적인 응답은 입술의 아멘입니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입이 무거운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표현이 분명해야 합니다. 로마서10:10절의 말씀처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뜻을 분명하게 나타내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이 어떤 중대한 결심을 했다면 그것을 말로 표현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결심을 표현함으로서 ‘실천해야 되겠다.’라는 책임감 있는 의지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기 마음으로만 계획하고 결심한다면 실천하지 못해도 비난받거나 자신의 약함을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실천할 의지가 약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표현하는 입술의 말대로 시행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민수기14:28절을 봅시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는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과 그 약속에 따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아멘’으로 응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셨던 약속을 확실하게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확실하게 믿었는지 어떻게 압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아들인 이삭에게 그대로 전하면서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아들 야곱에게 축복했으며, 600여 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9)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12:14절에서는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에 족하며 그 손의 행하는 대로 자기가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마음으로만 믿으면 되지.’라고 하지 마시고, ‘아멘’으로 시인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 약속을 마음으로 믿고, 믿은 것을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3. 약속을 이루어 받는 긍정적인 응답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제가 부교역자 시절에 구역장들을 인도하여 기도원에서 금요철야기도회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밤10시부터 다음날 새벽5시까지 한 숨도 자지 않고 찬송하고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기를 계속했습니다. 물론 중간에 잠시 잠을 쫓기 위하여 커피타임도 있었지만, 교회당 건축과 교회의 여러 일들, 구역의 부흥성장, 병든 이들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과 가족을 위하여 등.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새벽기도회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권사님, 집사님들이 새로 건축할 교회당 부지 주변의 사람들이 방해를 하는 일을 이야기하면서 걱정을 했습니다. 그 때 제가 운전을 하면서 한마디 했습니다. “어휴 쯧쯧, 지난밤에 뭘 기도하셨어요? 밤새도록 헛 기도하셨네요.” 그러자 구역장들이 “요 입이 방정이야.”라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남의 일이 아니지요? 우리도 예배 잘 드리고, 간절히 기도하고서는 돌아서서 염려하고 걱정한 적이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내 생활에서 이루어 받기 위해서는 먼저 부정적인 생각과 염려들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는다고 ‘아멘’했다 하더라도, 생활에서 믿음의 행동을 하지 못하면 효력이 없습니다. 만일 마음의 생각이나 말로 표현한 것이 행동과 다르다면 그것이 바로 ‘외식’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3:18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고 권면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자식을 잉태하게 해 달라고 성전에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엘리’ 제사장이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했습니다. 한나는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긍정적인 시인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성경은 한나의 이후 행동에 대하여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생각하셨다.”고 하셨고, 한나는 사무엘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들어있는 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으로 응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생각을 살피시고, 입술로 시인하는 것을 들으시며, 믿음의 행동을 보시고 약속을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지방신문의 독자투고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렸습니다.
“나는 지난번 연휴에 기차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차 안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비집고 앉을 틈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가까스로 빈자리를 하나 차지해서 편안하게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감사드립니다.”
이런 줄거리였는데 아마 투고자가 기독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같은 신문의 똑 같은 자리에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나도 어제 아무개가 말했던 그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다행스럽게도 처음부터 앉아서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 옆에 어떤 노인이 서 계신 것을 보고는 즉시 자리를 양보했고, 비록 피곤했지만 기쁜 마음으로 여행을 했습니다.”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후에 투고한 사람이 기독교인인지 아니면 앞서 투고한 기독교인을 비웃기 위해 투고한 것인지는 몰라도 우리 자신을 생각하도록 하는 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보증하신 수많은 약속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그 풍성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을 내 생활에서 이루어 받기 위해서는 “예”와 “아멘”으로 응답하고, 생활에서도 “아멘”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응답으로 이제는 하나님의 풍성하신 약속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