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언약과 성도의 순종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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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3-08 23:33
♡♥♡ 하나님의 언약과 성도의 순종 / 신7:12-21
*** 들어가는 말
‘신명기’는 ‘모세오경’ 중의 마지막 책이며, ‘하나님의 언약의 문서’입니다. 즉 신명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으로서 신구약 성경입니다. 구약(舊約, old testament)은 말 그대로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인 율법시대의 약속이며, 신약(新約, new testament)은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은혜시대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첫 사람인 아담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것이 첫 언약입니다. 즉 선악과를 먹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켜야 하는 유일한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하나의 법을 지키지 못했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언약의 파기는 천국의 삶인 에덴동산에서의 쫓겨나는 하나님과의 결별을 불러왔습니다. 하나님과의 결별은 삶의 고통과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구약의 법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행함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그 법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희생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하여,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잇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개방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을 자신의 죄와 생명을 위한 희생으로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언약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을 지키는 사람, 즉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복의 약속을 하십니다. 본문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유명한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프랜시스의 제자가 되기를 자원하는 제자 후보생 두 사람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프랜시스에게,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닦고 싶습니다.”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프랜시스는 그들에게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뽑아서 뿌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해서 다시 심고 오십시오.”
제자 지망생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한 사람은 묵묵히 배추 밭을 행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허, 정말, 이 성자가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만 돌았구먼.’이라고 비웃으며 떠나갔습니다.
프랜시스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프랜시스는 순종의 자질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자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히브리서5:8,9절을 봅시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보증이 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함을 배워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아마도 어린아이가 아니고서는 ‘순종’의 의미를 몰라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듣고, 믿으며 행위로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19:5-6절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여기까지가 순종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시는 말씀은 순종에 따르는 복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실행, 즉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믿고 이행하는 사람에게 그 약속대로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순종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순종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본문12절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들어라!”고 요구하십니다. ‘듣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배추를 얻기 위해서 땅을 갈고 배추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서10: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옛말에 “서당 개 삼년에 풍월 읊는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식당 개 삼년에 라면 끓인다.”라고 하던가요? 이는 우매한 짐승이라도 계속해서 듣고 배우면 흉내라도 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이가 태어나서 어머니 품에서 젖을 먹을 때부터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본문 앞 쪽의 6:4-9절에 나오는 이 말씀을 ‘쉐마’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생명과 같이 여기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도 말씀을 계속적으로 들어야 자라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는 잊어버리는 듯하지만 우리 영혼은 그 말씀을 먹고 자랍니다. 마치 콩나물시루에 부어지는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려도 콩나물이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순종은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12절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이라고 하십니다. 앞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음으로써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은 지켜 행함으로써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말씀 두 곳을 찾아봅시다.
야고보서2:21-22절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 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요한일서2:5절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하더라도 먹지 못한다면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효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믿고, 실천하여 순종함으로서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언약을 순종함으로서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본문 앞쪽의 9절을 봅시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라고 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인애로 복을 주시되, 순종하는 자에게 천대까지 약속을 이행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13-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복은 사람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1) 첫째는 번성케 하시는 복입니다.
번성케 하시는 복의 첫째는 자손의 복입니다. 당시, 그 시대는 자녀가 많은 것이 복이었습니다. 즉, 대를 이어가는 자손의 축복이며, 그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는 축복입니다. 요즈음 부모들이 아이들을 과보호 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영원토록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몇 년 전의 ‘씨랜드 화재’로 많은 유치원 아이들이 불에 타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어머니는 ‘아이가 엄마를 얼마나 애타게 불렀을까. 아이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설령 부모가 함께 있었더라도 돕지 못할 상황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다는 것은 보호와 인도와 형통함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함께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함께 하시면서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합당한 길로 인도하시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번성케 하시는 두 번째는 기르는 짐승과 토지소산과 곡식, 포도주, 기름등, 가정의 경영하는 산업에 내리는 복입니다. 이 산업이 풍성하고 형통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열왕기상2: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고 하십니다.
2) 육신이 강건한 복입니다.
건강, 현대인들이 얼마나 지키려고 애쓰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건강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몸을 과도하게 아낀다고 해서 건강이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은 육체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15:26절입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십니다.
건강이 필요하십니까? 건강을 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면서 건강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본문16-21절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여러분의 생활에서,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우상은 앞서 열거한 복을 받는 조건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반드시 치워야 할 걸림돌입니다.
본문에서는 우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2월 22일자 교회복음신문에서 1면 머리기사로 ‘주술적 미신문화 위험 수위 넘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내용은 기독교인의 50% 이상이 운세상담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속 인들은 ‘기독교인도 많이 온다.’고 했습니다. 무속 인들에게 운세상담을 하는 주요 통로는 인터넷이나 스포츠신문을 통해서라고 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성도가 경계해야 하는 우상은 물질적인 탐심, 자식, 건강, 권력, 명예, 쾌락 등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복에 인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를 위하여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사람들이 생활에서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두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해서 받지 못할 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합시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과 육신의 형통한 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신명기’는 ‘모세오경’ 중의 마지막 책이며, ‘하나님의 언약의 문서’입니다. 즉 신명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언약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언약’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으로서 신구약 성경입니다. 구약(舊約, old testament)은 말 그대로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인 율법시대의 약속이며, 신약(新約, new testament)은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은혜시대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첫 사람인 아담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이것이 첫 언약입니다. 즉 선악과를 먹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이 행복한 삶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켜야 하는 유일한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이 하나의 법을 지키지 못했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했습니다. 언약의 파기는 천국의 삶인 에덴동산에서의 쫓겨나는 하나님과의 결별을 불러왔습니다. 하나님과의 결별은 삶의 고통과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의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구약의 법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지키고 행함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결코 그 법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으로 인하여 오히려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희생 제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하여, 인간의 죄와 불순종으로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잇는 다리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를 개방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의 죽으심을 자신의 죄와 생명을 위한 희생으로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언약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언약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언약을 지키는 사람, 즉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복의 약속을 하십니다. 본문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유명한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프랜시스의 제자가 되기를 자원하는 제자 후보생 두 사람 찾아왔습니다. 이들은 프랜시스에게, “선생님의 제자가 되어 신앙의 훈련을 닦고 싶습니다.”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자 프랜시스는 그들에게 이런 요청을 했습니다.
“저 밭에 나가면 배추들이 많이 있는데. 그 배추를 뽑아서 뿌리가 하늘을 향하도록 해서 다시 심고 오십시오.”
제자 지망생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한 사람은 묵묵히 배추 밭을 행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허, 정말, 이 성자가 오랫동안 도를 닦더니만 돌았구먼.’이라고 비웃으며 떠나갔습니다.
프랜시스가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프랜시스는 순종의 자질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자질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히브리서5:8,9절을 봅시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보증이 되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순종함을 배워 온전함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하물며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아마도 어린아이가 아니고서는 ‘순종’의 의미를 몰라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나 음성을 듣고, 믿으며 행위로 옮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19:5-6절입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여기까지가 순종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시는 말씀은 순종에 따르는 복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청과 실행, 즉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믿고 이행하는 사람에게 그 약속대로 복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순종이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순종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본문12절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들어라!”고 요구하십니다. ‘듣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배추를 얻기 위해서 땅을 갈고 배추 씨앗을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로마서10:17절에서,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옛말에 “서당 개 삼년에 풍월 읊는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식당 개 삼년에 라면 끓인다.”라고 하던가요? 이는 우매한 짐승이라도 계속해서 듣고 배우면 흉내라도 낸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아이가 태어나서 어머니 품에서 젖을 먹을 때부터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본문 앞 쪽의 6:4-9절에 나오는 이 말씀을 ‘쉐마’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생명과 같이 여기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하는 믿음도 말씀을 계속적으로 들어야 자라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는 잊어버리는 듯하지만 우리 영혼은 그 말씀을 먹고 자랍니다. 마치 콩나물시루에 부어지는 물이 고이지 않고 흘러내려도 콩나물이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순종은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본문12절입니다. “너희가 이 모든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면…”이라고 하십니다. 앞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속적으로 들음으로써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믿음은 지켜 행함으로써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말씀 두 곳을 찾아봅시다.
야고보서2:21-22절입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 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요한일서2:5절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하더라도 먹지 못한다면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고 있다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도 효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믿고, 실천하여 순종함으로서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언약을 순종함으로서 주어지는 복이 있습니다.
본문 앞쪽의 9절을 봅시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라고 하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인애로 복을 주시되, 순종하는 자에게 천대까지 약속을 이행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본문13-1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구체적으로 몇 가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복은 사람의 삶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1) 첫째는 번성케 하시는 복입니다.
번성케 하시는 복의 첫째는 자손의 복입니다. 당시, 그 시대는 자녀가 많은 것이 복이었습니다. 즉, 대를 이어가는 자손의 축복이며, 그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는 축복입니다. 요즈음 부모들이 아이들을 과보호 한다고 합니다. 부모가 영원토록 아이와 함께 있으면서 보호해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를 보호할 수 없습니다. 몇 년 전의 ‘씨랜드 화재’로 많은 유치원 아이들이 불에 타 죽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어머니는 ‘아이가 엄마를 얼마나 애타게 불렀을까. 아이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가슴을 치며 통곡을 했습니다. 설령 부모가 함께 있었더라도 돕지 못할 상황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다는 것은 보호와 인도와 형통함을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항상 함께 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항상 함께 하시면서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합당한 길로 인도하시고, 형통하게 하십니다.
번성케 하시는 두 번째는 기르는 짐승과 토지소산과 곡식, 포도주, 기름등, 가정의 경영하는 산업에 내리는 복입니다. 이 산업이 풍성하고 형통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열왕기상2:3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고 하십니다.
2) 육신이 강건한 복입니다.
건강, 현대인들이 얼마나 지키려고 애쓰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들은 건강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몸을 과도하게 아낀다고 해서 건강이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은 육체를 지으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15:26절입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고 하십니다.
건강이 필요하십니까? 건강을 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겠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열심을 내면서 건강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필요를 채우십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본문16-21절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여러분의 생활에서,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는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우상은 앞서 열거한 복을 받는 조건을 다 가졌다 할지라도 반드시 치워야 할 걸림돌입니다.
본문에서는 우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2월 22일자 교회복음신문에서 1면 머리기사로 ‘주술적 미신문화 위험 수위 넘어’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내용은 기독교인의 50% 이상이 운세상담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속 인들은 ‘기독교인도 많이 온다.’고 했습니다. 무속 인들에게 운세상담을 하는 주요 통로는 인터넷이나 스포츠신문을 통해서라고 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성도가 경계해야 하는 우상은 물질적인 탐심, 자식, 건강, 권력, 명예, 쾌락 등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복에 인색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우리를 위하여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다만, 사람들이 생활에서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두거나 하나님의 은혜를 의심해서 받지 못할 뿐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순종합시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과 육신의 형통한 복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