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작은 시작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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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2-15 22:10
♡♥♡ 하나, 작은 시작 / 롬5:17-19
*** 들어가는 말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한 가지는 ‘대형화’에 있습니다. 빌딩도 초대형, 아파트도 초고층, 시장이나 쇼핑매장도 초대형, 집 안의 냉장고, 텔레비전도 대형, 아파트도 큰 평 수, 교회도 대형 교회가 인기가 있습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처럼, 사람들도 작은 것, 적은 양의 것들은 마음에 차지가 않나 봅니다. 한 순간에 일확천금을 벌고 싶은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고 적은 것은 무시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고 적은 것이지만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시작이 없이 큰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작은 하나를 통하여 변화되고 유지되어 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인류에 죽음이 왔으며,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이 주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즉 죽음의 시작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며, 생명의 시작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이처럼 모든 시작은 작은 하나부터입니다. 작은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상은 곧 성경적인 사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작은 것부터 성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1. 하나가 자라서 천국을 이루게 됩니다.
마태복음13장에는 일곱 개의 ‘천국비유’가 등장합니다. 씨 뿌리는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 그물 비유 등. 이 비유들을 보면 ‘천국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25장에도 세 개의 ‘천국비유’가 등장하는데,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입니다. 그 중에서 달란트 비유의 결론인 21절에서는,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셨으며, 양과 염소 비유의 결론인 40절에서는,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에서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한 백성으로 삼으실 때에 유대인 전부를 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하나가 시작입니다. 이는 아무런 노력도 수고도 없이 한 번에 큰 것을 이룰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마치 기도만 하면 요술 방망이가 뚝딱 하듯이 그렇게 나타나고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통하여 이루는 것입니다. 나 하나의 작은 수고, 헌신, 봉사, 헌금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인류의 소망인 영원한 생명이 시작된 것도 많은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잘 관리하고 성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2. 하나가 자라서 멸망을 이루게 됩니다.
야고보서1:15절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죽음에 이르는 큰 죄도 사람의 작은 욕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게 함과 동시에 멸망에 이르는 죄에 빠지게 합니다. ‘이것쯤이야!’라고 무시하고 지나쳤던 작은 잘못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큰 죄악으로 물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했으며, “세살 적 버릇 여든 간다.”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도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과 범죄로 인하여 온 인류가 죄악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작은 욕심과 잘못이 온 생애를 병들게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에 있어서 작은 나 하나의 숨겨진 범죄로 인하여 온 가정이, 온 교회가 병들고 나약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전쟁사’ 중에서 ‘아이 성 전투’에서의 패배를 기억하십니까? 가나안 지역의 첫 성인 ‘여리고’는 요새화 되어 있기 때문에 점령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성벽이 무너졌고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성인 ‘아이 성’은 규모나 숫적인 면에서나 모두 여리고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작은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3000명만 올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40여명이 전사하면서 패배하고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7:11-12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죄를 밝힌 결과, ‘아간’이라는 사람이 시날 산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나가는 금덩이 하나를 자기 장막에 감추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이나 아이 성에서의 싸움에서는 아무 것도 취하지 말고 모두 불태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제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 ‘아간’의 불순종과 범죄로 인하여 온 이스라엘이 패전 해야만 했습니다.
16세기 영국을 이끌던 ‘피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메리 여왕은 열렬한 가톨릭 신자로서 개신교를 극심하게 박해했습니다.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모든 개신교 신자들을 다 죽이라는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왕의 궁전에서 내려다보이는 근처에 개신교 신학자인 ‘존 낙스’가 살고 있었는데, 존 낙스가 자신의 서재의 문을 열면 메리 여왕이 사는 아주 화려한 궁전이 보였습니다. 존 낙스는 장로교회를 시작한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입니다. 메리 여왕이 개신교도를 죽이라고 명령했던 그 날 밤에, 낙스는 자기 서재에 들어가서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아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스코틀랜드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생명을 건 그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메리 여왕은 중병에 결려 죽었으며, 개신교를 옹호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뒤를 이었습니다. 존 낙스 한 사람의 기도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목숨을 살린 것입니다. 메리 여왕은 “한 사람 존 낙스의 기도가 백만의 대군보다도 무섭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같습니다.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사회도, 나라도 신실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의 힘으로 유지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본문19절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주역으로 우리를 뽑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시며, 또한 작은 죄악 하나까지도 살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합시다. 미래의 원대한 꿈은 하나님께 맡겨두고, 지금의 작은 하나를 성실한 마음으로 실천합시다. 이렇게 주님의 마음을 알고 순종하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와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한 가지는 ‘대형화’에 있습니다. 빌딩도 초대형, 아파트도 초고층, 시장이나 쇼핑매장도 초대형, 집 안의 냉장고, 텔레비전도 대형, 아파트도 큰 평 수, 교회도 대형 교회가 인기가 있습니다.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처럼, 사람들도 작은 것, 적은 양의 것들은 마음에 차지가 않나 봅니다. 한 순간에 일확천금을 벌고 싶은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러다 보니 작고 적은 것은 무시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작고 적은 것이지만 모든 것의 시작입니다. 시작이 없이 큰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작은 하나를 통하여 변화되고 유지되어 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인류에 죽음이 왔으며,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이 주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즉 죽음의 시작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며, 생명의 시작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이처럼 모든 시작은 작은 하나부터입니다. 작은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사상은 곧 성경적인 사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며, 작은 것부터 성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1. 하나가 자라서 천국을 이루게 됩니다.
마태복음13장에는 일곱 개의 ‘천국비유’가 등장합니다. 씨 뿌리는 비유, 가라지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비유,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 그물 비유 등. 이 비유들을 보면 ‘천국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25장에도 세 개의 ‘천국비유’가 등장하는데, 열 처녀의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 비유입니다. 그 중에서 달란트 비유의 결론인 21절에서는,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셨으며, 양과 염소 비유의 결론인 40절에서는,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에서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한 백성으로 삼으실 때에 유대인 전부를 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수백 년의 세월을 거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작은 하나가 시작입니다. 이는 아무런 노력도 수고도 없이 한 번에 큰 것을 이룰 수 없음을 말씀합니다. 마치 기도만 하면 요술 방망이가 뚝딱 하듯이 그렇게 나타나고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통하여 이루는 것입니다. 나 하나의 작은 수고, 헌신, 봉사, 헌금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인류의 소망인 영원한 생명이 시작된 것도 많은 사람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잘 관리하고 성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2. 하나가 자라서 멸망을 이루게 됩니다.
야고보서1:15절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죽음에 이르는 큰 죄도 사람의 작은 욕심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무시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잃어버리게 함과 동시에 멸망에 이르는 죄에 빠지게 합니다. ‘이것쯤이야!’라고 무시하고 지나쳤던 작은 잘못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큰 죄악으로 물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했으며, “세살 적 버릇 여든 간다.”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도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과 범죄로 인하여 온 인류가 죄악에 빠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나 자신에게 있어서 작은 욕심과 잘못이 온 생애를 병들게 합니다. 가정이나 교회에 있어서 작은 나 하나의 숨겨진 범죄로 인하여 온 가정이, 온 교회가 병들고 나약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전쟁사’ 중에서 ‘아이 성 전투’에서의 패배를 기억하십니까? 가나안 지역의 첫 성인 ‘여리고’는 요새화 되어 있기 때문에 점령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성벽이 무너졌고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 성인 ‘아이 성’은 규모나 숫적인 면에서나 모두 여리고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작은 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3000명만 올려 보냈습니다. 그런데 40여명이 전사하면서 패배하고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통곡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7:11-12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죄를 밝힌 결과, ‘아간’이라는 사람이 시날 산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나가는 금덩이 하나를 자기 장막에 감추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이나 아이 성에서의 싸움에서는 아무 것도 취하지 말고 모두 불태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제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 ‘아간’의 불순종과 범죄로 인하여 온 이스라엘이 패전 해야만 했습니다.
16세기 영국을 이끌던 ‘피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메리 여왕은 열렬한 가톨릭 신자로서 개신교를 극심하게 박해했습니다. 여왕은 스코틀랜드의 모든 개신교 신자들을 다 죽이라는 그런 명령을 내렸습니다.
여왕의 궁전에서 내려다보이는 근처에 개신교 신학자인 ‘존 낙스’가 살고 있었는데, 존 낙스가 자신의 서재의 문을 열면 메리 여왕이 사는 아주 화려한 궁전이 보였습니다. 존 낙스는 장로교회를 시작한 스코틀랜드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가입니다. 메리 여왕이 개신교도를 죽이라고 명령했던 그 날 밤에, 낙스는 자기 서재에 들어가서 피를 토하는 마음으로 아주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스코틀랜드를 나에게 주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저를 죽여주십시오.”
생명을 건 그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그 후 얼마 안 가서 메리 여왕은 중병에 결려 죽었으며, 개신교를 옹호한 엘리자베스 여왕이 뒤를 이었습니다. 존 낙스 한 사람의 기도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개신교 신자들의 목숨을 살린 것입니다. 메리 여왕은 “한 사람 존 낙스의 기도가 백만의 대군보다도 무섭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도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같습니다. 가정도, 교회도, 직장도, 사회도, 나라도 신실한 그리스도인 한 사람의 힘으로 유지되고 변화되는 것입니다.
본문19절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주역으로 우리를 뽑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작은 것을 소중하게 여기시며, 또한 작은 죄악 하나까지도 살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합시다. 미래의 원대한 꿈은 하나님께 맡겨두고, 지금의 작은 하나를 성실한 마음으로 실천합시다. 이렇게 주님의 마음을 알고 순종하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와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