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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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2-15 22:08
♡♥♡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 에스더 4:7-17
*** 들어가는 말
세상은 온통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삶은 곧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아이들은 자라기를 기다리고, 좋은 직장을 기다리고, 좋은 배필을 기다리고, 승진을 기다리고, 겨울이면 봄을 기다리고, 씨를 뿌리고는 수확을 기다리고, 결국은 죽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 삶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기회나 환경이나 상황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때와 시기를 정해두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만물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때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급하게 달려들다가 실패의 아픔을 맛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때,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리다가 결국 때를 놓치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적당한 때를 알 수 있다면 만사형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성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잠언25:11절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오늘 본문에는 민족의 생명이 걸린 ‘때’에 관한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전국이 127도나 되는 거대한 제국인 ‘바사’의 통치 중심부입니다. 바사의 수도이자 통치자가 있는 ‘수산궁’에서 일어나는 이방인과 하나님의 백성인 선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비록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나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더 강하고 은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전체적인 사건의 줄거리를 살펴봅시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로우신 섭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건은 바사(페르시아)가 거대한 제국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B.C480년경, 바사의 왕궁인 ‘수산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바사 왕은 ‘아하수에로’였으며, 통치 초기였습니다.
왕이 즉위한 지 3년에 왕국의 부와 권세를 나타내려고 180일 간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을 때에 왕은 흥에 겨워 왕후인 ‘와스디’를 백성들에게 자랑하고자 불렀지만 왕후는 명을 거역했습니다. 왕은 진노했으며, 결국 강경파의 ‘일벌백계(一罰百戒)’론에 따라 왕후 ‘와스디’는 폐위되었습니다. 그 후, 왕은 왕후 감을 공모하여 유대처녀인 ‘에스더’를 왕후로 뽑았습니다.
에스더는 히브리 이름으로는 ‘하닷사’라고 하며,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 의해 양육된 고아였습니다. 이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남 유다가 멸망하면서 포로로 잡혀왔던 무리 속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 후 바벨론은 신흥세력인 바사의 ‘다리오’에 의하여 함락되었고, 유대인들 중의 일부는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하여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귀향하지 않고 바사에 남아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상황이 복잡한 때에 왕비가 되었으며,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왕은 교만한 사람인 ‘하만’이라는 사람을 나라의 2인자인 총리로 세웠습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된 지 5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하만은 자신의 권세를 뽐내면서 자신이 지날 때면 모든 사람으로 무릎을 꿇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사람 ‘모르드개’만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괴씸죄를 적용하여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인 유대인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만은 막대한 뇌물인 은 1만 달란트(국고의 2/3에 해당)를 왕에게 바치면서, 유대인 학살 법에 왕의 도장을 찍는데 성공했습니다. 왕의 도장이 찍혀 공포된 법률에는 12월 13일에 모든 유대인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아도 좋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르드개는 왕후인 에스더에게 기별하여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왕에게 긍휼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상황이 맞지 않은 때라서 망설였지만 모르드개의 강권하는 말에 따라 모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에게 3일간 금식하면서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자신도 시종들과 금식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결국 왕의 은총을 입어 유대 민족은 구원을 얻었으며, 유대 민족을 말살하려던 하만은 오히려 자신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웠던 50규빗 높이의 처형대에 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왕을 독살하려던 정보를 제공했던 것까지 인정받아서 하만을 대신하여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긴박감과 아슬아슬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생활 그 자체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기가 막히도록 정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사람이 가다리는 ‘때’라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1.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상황을 분별해야 합니다.
상황을 분별한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손길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황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13:34-37절입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 엘는지, 밤중 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 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깨어 있으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우리는 ‘번개가 번쩍하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손길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임재가 무섭도록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이 틀렸음을 보이셨습니다. 열왕기상19:11-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하나님의 역사는 주의하여 깨어있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에스더는 왕궁 밖에서 일어나는 자기 민족의 위기를 알지 못했습니다. 왕궁 안은 평안하고 안전했으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 모르드개로부터 소식이 왔습니다. ‘하만’이 유대민족을 말살하려 하니, 왕에게 유대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그 소식을 듣고서도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본문11절을 보십시오.
에스더는 한 순간 왕궁의 평안함에 젖어서 위기의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세상의 삶에 젖어 있으면 다가오는 영적인 생명의 위기를 깨닫지 못합니다. 전도서9:12절에서는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고 하셨고, 데살로니가전서5:3절에서는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을 분별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2.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에스더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모르드개는,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 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강경하고도 확신 있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일환으로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는 하나님의 때를 가늠하는 모르드개의 신앙적 지혜입니다. 동시에 에스더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가늠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시편90편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가늠하는 지혜란,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이나 일들에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들어 있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어진 일들이나 환경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에게 주신 일이나 상황이나 환경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고자 하실까요?
모르드개의 확신 있는 말에 에스더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이 삼일동안 금식하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시녀들과 함께 삼일을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도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는 깨달은 후에 생명을 건 결단을 했습니다. ‘삼일 간 금식기도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의 결단은 맑고 명쾌한 기분마저 듭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결단대로 삼일을 금식기도한 후 주저함 없이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왕이나 모든 관리들이 의아해 할 그런 상황입니다. 뜰에 선 왕비 에스더의 모습이 왕의 눈에 심히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왕은 금 홀을 내밀었으며, 왕비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결단하면 하나님께서도 결심하십니다. 에스더가 금식기도와 생명을 건 결단을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왕비가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하셨으며, 왕에게 밤에 잠이 오지 않도록 하셔서 모르드개가 반역자를 고발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건져 준 사실이 기록된 궁중일기를 읽게 했습니다. 다니엘이 결심하고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단10:12). 이처럼 우리의 믿음의 결단은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가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나의 때를 알기 위해서는 믿음 안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이해되지 않는 위기의 환경이라 할지라도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리키만 그리브스’의 일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잭슨 부인은 뜨개질을 퍽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시력이 무척 나빠 뜨개질을 시작하기만 하면 눈이 쑤시고 아파서 뜨개질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입고 있는 거의 모든 옷을 그녀가 손수 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하루에 한 줄씩 짜지요. 제가 실컷 짜 보았자 한 줄이랍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줄씩 짜도 1년이면 옷을 한 벌 지을 수 있어요.”
때를 기다린답시고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때를 사모하는 사람은 주어진 현실에 충실합니다. 바로 성실한 오늘이 모여서 하나님의 때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생명이 있는 오늘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때를 사모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깨어 있는 결단으로 한 걸음씩 성실하게 걸으면서 뜻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세상은 온통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삶은 곧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아이들은 자라기를 기다리고, 좋은 직장을 기다리고, 좋은 배필을 기다리고, 승진을 기다리고, 겨울이면 봄을 기다리고, 씨를 뿌리고는 수확을 기다리고, 결국은 죽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 삶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떤 기회나 환경이나 상황을 기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에 때와 시기를 정해두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만물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때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성급하게 달려들다가 실패의 아픔을 맛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더 좋은 때, 더 좋은 기회를 기다리다가 결국 때를 놓치기도 합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적당한 때를 알 수 있다면 만사형통한 삶이 될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성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잠언25:11절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
오늘 본문에는 민족의 생명이 걸린 ‘때’에 관한 긴박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전국이 127도나 되는 거대한 제국인 ‘바사’의 통치 중심부입니다. 바사의 수도이자 통치자가 있는 ‘수산궁’에서 일어나는 이방인과 하나님의 백성인 선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비록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나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더 강하고 은밀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 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전체적인 사건의 줄거리를 살펴봅시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의 신비로우신 섭리를 주의 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건은 바사(페르시아)가 거대한 제국으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B.C480년경, 바사의 왕궁인 ‘수산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바사 왕은 ‘아하수에로’였으며, 통치 초기였습니다.
왕이 즉위한 지 3년에 왕국의 부와 권세를 나타내려고 180일 간의 잔치를 벌였습니다. 잔치가 무르익을 때에 왕은 흥에 겨워 왕후인 ‘와스디’를 백성들에게 자랑하고자 불렀지만 왕후는 명을 거역했습니다. 왕은 진노했으며, 결국 강경파의 ‘일벌백계(一罰百戒)’론에 따라 왕후 ‘와스디’는 폐위되었습니다. 그 후, 왕은 왕후 감을 공모하여 유대처녀인 ‘에스더’를 왕후로 뽑았습니다.
에스더는 히브리 이름으로는 ‘하닷사’라고 하며, 사촌 오빠 ‘모르드개’에 의해 양육된 고아였습니다. 이들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하여 남 유다가 멸망하면서 포로로 잡혀왔던 무리 속에 함께 있었습니다. 그 후 바벨론은 신흥세력인 바사의 ‘다리오’에 의하여 함락되었고, 유대인들 중의 일부는 ‘고레스’ 왕의 칙령에 의하여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이 귀향하지 않고 바사에 남아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상황이 복잡한 때에 왕비가 되었으며,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왕은 교만한 사람인 ‘하만’이라는 사람을 나라의 2인자인 총리로 세웠습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된 지 5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하만은 자신의 권세를 뽐내면서 자신이 지날 때면 모든 사람으로 무릎을 꿇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한 사람 ‘모르드개’만은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괴씸죄를 적용하여 모르드개와 그의 민족인 유대인을 몰살시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만은 막대한 뇌물인 은 1만 달란트(국고의 2/3에 해당)를 왕에게 바치면서, 유대인 학살 법에 왕의 도장을 찍는데 성공했습니다. 왕의 도장이 찍혀 공포된 법률에는 12월 13일에 모든 유대인을 죽이고 재산을 빼앗아도 좋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모르드개는 왕후인 에스더에게 기별하여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왕에게 긍휼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상황이 맞지 않은 때라서 망설였지만 모르드개의 강권하는 말에 따라 모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에게 3일간 금식하면서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자신도 시종들과 금식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결국 왕의 은총을 입어 유대 민족은 구원을 얻었으며, 유대 민족을 말살하려던 하만은 오히려 자신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세웠던 50규빗 높이의 처형대에 달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모르드개는 왕을 독살하려던 정보를 제공했던 것까지 인정받아서 하만을 대신하여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긴박감과 아슬아슬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생활 그 자체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서도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기가 막히도록 정확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사람이 가다리는 ‘때’라는 것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1.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상황을 분별해야 합니다.
상황을 분별한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손길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황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영이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13:34-37절입니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 엘는지, 밤중 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 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깨어 있으라.’는 말을 계속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이것이 당연한 것은 우리는 ‘번개가 번쩍하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깨어 있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손길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임재가 무섭도록 강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각이 틀렸음을 보이셨습니다. 열왕기상19:11-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하나님의 역사는 주의하여 깨어있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습니다. 본문에서 에스더는 왕궁 밖에서 일어나는 자기 민족의 위기를 알지 못했습니다. 왕궁 안은 평안하고 안전했으며,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외삼촌 모르드개로부터 소식이 왔습니다. ‘하만’이 유대민족을 말살하려 하니, 왕에게 유대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그 소식을 듣고서도 자신의 안전만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본문11절을 보십시오.
에스더는 한 순간 왕궁의 평안함에 젖어서 위기의 상황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역시 세상의 삶에 젖어 있으면 다가오는 영적인 생명의 위기를 깨닫지 못합니다. 전도서9:12절에서는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고 하셨고, 데살로니가전서5:3절에서는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상황을 분별할 수 있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2. 때를 기다리는 사람은 결단력이 있어야 합니다.
에스더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모르드개는,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 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강경하고도 확신 있게 말합니다.
여기에서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신뢰를 나타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일환으로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는 하나님의 때를 가늠하는 모르드개의 신앙적 지혜입니다. 동시에 에스더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신의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때를 가늠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도 시편90편에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가늠하는 지혜란, 지금 나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상황이나 일들에 하나님의 어떤 계획이 들어 있는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주어진 일들이나 환경이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는 것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에게 주신 일이나 상황이나 환경을 통하여 무엇을 이루고자 하실까요?
모르드개의 확신 있는 말에 에스더는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모르드개와 모든 유대인들이 삼일동안 금식하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시녀들과 함께 삼일을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너무도 유명한 말을 남깁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는 깨달은 후에 생명을 건 결단을 했습니다. ‘삼일 간 금식기도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의 결단은 맑고 명쾌한 기분마저 듭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결단대로 삼일을 금식기도한 후 주저함 없이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왕이나 모든 관리들이 의아해 할 그런 상황입니다. 뜰에 선 왕비 에스더의 모습이 왕의 눈에 심히 사랑스럽게 보였습니다. 왕은 금 홀을 내밀었으며, 왕비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가 결단하면 하나님께서도 결심하십니다. 에스더가 금식기도와 생명을 건 결단을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왕비가 사랑스럽게 느끼도록 하셨으며, 왕에게 밤에 잠이 오지 않도록 하셔서 모르드개가 반역자를 고발함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건져 준 사실이 기록된 궁중일기를 읽게 했습니다. 다니엘이 결심하고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단10:12). 이처럼 우리의 믿음의 결단은 상황과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께서 결심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지금 어떤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가 아닌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정하신 나의 때를 알기 위해서는 믿음 안에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이해되지 않는 위기의 환경이라 할지라도 결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뜻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리키만 그리브스’의 일화 속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잭슨 부인은 뜨개질을 퍽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시력이 무척 나빠 뜨개질을 시작하기만 하면 눈이 쑤시고 아파서 뜨개질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입고 있는 거의 모든 옷을 그녀가 손수 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하루에 한 줄씩 짜지요. 제가 실컷 짜 보았자 한 줄이랍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 줄씩 짜도 1년이면 옷을 한 벌 지을 수 있어요.”
때를 기다린답시고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듯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때를 사모하는 사람은 주어진 현실에 충실합니다. 바로 성실한 오늘이 모여서 하나님의 때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생명이 있는 오늘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때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때를 사모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깨어 있는 결단으로 한 걸음씩 성실하게 걸으면서 뜻을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