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안에서, 진리를 위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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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2-08 14:45
♡♥♡ 진리 안에서, 진리를 위하여! / 요삼1:1-8
***들어가는 말
요한삼서는 전체 내용이 불과 15절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이며,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주인공인 ‘가이오’는 성경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만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 가이오는 훌륭한 신앙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세 번씩이나 “나의 사랑하는 가이오”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요한의 총애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2절에서 요한은 그에게 놀라운 축복합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삼박자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삼박자 축복이란, 영혼의 형통, 범사의 형통, 육신의 강건, 이 세 가지 축복을 말합니다.
세상의 어느 나라 어떤 민족을 막론하고,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얻기 위하여 나름대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얼마나 복을 좋아하는지, 이불, 베개, 그릇, 숟가락 젓가락, 밥상, 한복, 음식(돌상, 과일), 집 등등. 온갖 것에 ‘복(福)’자를 새겨 놓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작 복의 창고를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복의 창고를 아십니까? 성경은 아예 복의 창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가장 먼저 주신 것이 복입니다. 창1:28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라고 하셨으며, 아브라함을 택하여 선민으로 삼으시면서 그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12:2절에서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하셨고, 신명기28:1-14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수많은 복을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서 “팔복”으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의 “일곱 가지 복”에 이르기까지, 성경이 온통 복으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복을 차지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받고 싶어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산상 보훈에서 복을 차지하는 방법을 가르치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방법을 그대로 옮겨서, 요한이 ‘가이오’에게 축복합니다. 이 본문을 통하여 참된 복의 길을 찾아봅시다.
1. 진리를 소유하는 삶이 복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기계를 만든다면 분명히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조립되어야 할 것이 있고, 나중에 맞추어져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순서를 무시하고 이것저것 마구 조립한다면 결코 올바른 기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의 행복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진정한 복은 속사람인 “영혼이 잘되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사람의 영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모든 것의 기초이며, 영적인 삶의 설계도면입니다. 설계도에 따라 조립을 하면 모든 일이 잘되고, 육신의 건강의 복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행복의 정상적인 순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6:31-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복을 차지할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진리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본문3절 전반부에서,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 하되…”라고 했습니다. 이는 가이오가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와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가이오는 진리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증거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를 소유했다는 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진리를 소유하는 것이 행복을 향하는 첫 길입니다.
2.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복입니다.
본문3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고 했습니다. 가이오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생활하는 경건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소식을 듣고는,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기뻐했습니다.
성도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진리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주님께 가장 기쁜 소식이 됩니다. 진리 안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대로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진리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짓는 비유’를 통하여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며,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옥토에 뿌린 씨앗과 같아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이오는 형제와 나그네에게 진실하게 대하고, 교회 앞에서 사랑을 보이고,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주변 사람들이 가이오의 이러한 삶을 증거했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성가에도 있지요. “눈으로 사랑을 그리지 말아요. 입술로 사랑을 말하지 말아요.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사람은 사랑의 진리를 알지요. 참사랑은 가난함도 부요함도 없어요. 괴로움도 즐거움도 주와 함께 나눠요. 나의 가장 귀한 것 그것을 주는 거예요.”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이처럼 성실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본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삶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며 실천하고 순종하는 생활이 행복을 이루는 두 번째 길입니다.
3. 진리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것이 복입니다.
본문8절 하반절에서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를 혼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누리도록 나타내고 증거 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을 위하여 여행하는 나그네들을 합당하게 영접하거나 전송함으로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합당한 전송이란, 그들의 여행에 필요한 물자와 여비를 보충해주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7절에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고 한 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에 있어서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며, 미 자립 교회를 돕거나, 복음 증거를 목적으로 하는 구제와 선교의 모든 일들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진리를 위하여 함께 땀 흘리고 수고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진리가 진리 되게 하는 것은, 그 진리를 소유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하고, 그 진리를 위하여 함께 땀 흘리는 수고가 동반될 때 가능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의 길은, 진리를 소유하고, 진리 안에서 살며,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영적인 충만함에 있습니다. 이 영적 충만함은 성도의 모든 일에 역사하여 범사가 형통하고, 육신의 강건함을 불러오게 됩니다. 우리 모두 당장에는 표시도 나지 않고 손해 보는 것 같겠지만, 가장 확실한 생명과 행복이 보장된 진리 안에서, 진리를 위하여 살아갑시다.
***들어가는 말
요한삼서는 전체 내용이 불과 15절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글이며,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의 주인공인 ‘가이오’는 성경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다만 본문의 내용으로 보아 가이오는 훌륭한 신앙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세 번씩이나 “나의 사랑하는 가이오”라고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요한의 총애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특히 2절에서 요한은 그에게 놀라운 축복합니다.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삼박자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삼박자 축복이란, 영혼의 형통, 범사의 형통, 육신의 강건, 이 세 가지 축복을 말합니다.
세상의 어느 나라 어떤 민족을 막론하고,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얻기 위하여 나름대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은 얼마나 복을 좋아하는지, 이불, 베개, 그릇, 숟가락 젓가락, 밥상, 한복, 음식(돌상, 과일), 집 등등. 온갖 것에 ‘복(福)’자를 새겨 놓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작 복의 창고를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복의 창고를 아십니까? 성경은 아예 복의 창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가장 먼저 주신 것이 복입니다. 창1:28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라고 하셨으며, 아브라함을 택하여 선민으로 삼으시면서 그에게,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12:2절에서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하셨고, 신명기28:1-14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내리시는 수많은 복을 말씀하십니다. 신약에서는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서 “팔복”으로 시작하여, 요한계시록의 “일곱 가지 복”에 이르기까지, 성경이 온통 복으로 수놓아져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복을 차지하는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받고 싶어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는 산상 보훈에서 복을 차지하는 방법을 가르치신 바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방법을 그대로 옮겨서, 요한이 ‘가이오’에게 축복합니다. 이 본문을 통하여 참된 복의 길을 찾아봅시다.
1. 진리를 소유하는 삶이 복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기계를 만든다면 분명히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조립되어야 할 것이 있고, 나중에 맞추어져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순서를 무시하고 이것저것 마구 조립한다면 결코 올바른 기계를 만들 수 없습니다.
사람의 행복에도 순서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진정한 복은 속사람인 “영혼이 잘되는 것”이 가장 먼저입니다. 사람의 영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모든 것의 기초이며, 영적인 삶의 설계도면입니다. 설계도에 따라 조립을 하면 모든 일이 잘되고, 육신의 건강의 복도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행복의 정상적인 순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6:31-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래서 하나님의 참된 복을 차지할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진리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본문3절 전반부에서,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 하되…”라고 했습니다. 이는 가이오가 진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임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요한에게 와서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가이오는 진리를 소유한 사람’이라고 증거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를 소유했다는 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했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진리를 소유하는 것이 행복을 향하는 첫 길입니다.
2.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복입니다.
본문3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고 했습니다. 가이오는 진리를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생활하는 경건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요한은 그 소식을 듣고는,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기뻐했습니다.
성도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진리 안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목회자뿐만 아니라 주님께 가장 기쁜 소식이 됩니다. 진리 안에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대로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바로 진리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집짓는 비유’를 통하여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이며,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은 옥토에 뿌린 씨앗과 같아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가이오는 형제와 나그네에게 진실하게 대하고, 교회 앞에서 사랑을 보이고,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는 주변 사람들이 가이오의 이러한 삶을 증거했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지 않습니다. 복음성가에도 있지요. “눈으로 사랑을 그리지 말아요. 입술로 사랑을 말하지 말아요. 영원한 사랑을 바라는 사람은 사랑의 진리를 알지요. 참사랑은 가난함도 부요함도 없어요. 괴로움도 즐거움도 주와 함께 나눠요. 나의 가장 귀한 것 그것을 주는 거예요.”
진실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이처럼 성실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기쁨과 본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삶이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며 실천하고 순종하는 생활이 행복을 이루는 두 번째 길입니다.
3. 진리를 위해 함께 수고하는 것이 복입니다.
본문8절 하반절에서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자가 되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진리를 혼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 누리도록 나타내고 증거 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을 위하여 여행하는 나그네들을 합당하게 영접하거나 전송함으로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합당한 전송이란, 그들의 여행에 필요한 물자와 여비를 보충해주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7절에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면서 아무것도 받지 않는다고 한 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에 있어서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며, 미 자립 교회를 돕거나, 복음 증거를 목적으로 하는 구제와 선교의 모든 일들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진리를 위하여 함께 땀 흘리고 수고하는 결과가 된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진리가 진리 되게 하는 것은, 그 진리를 소유하고, 그 진리 안에서 살아야 하고, 그 진리를 위하여 함께 땀 흘리는 수고가 동반될 때 가능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의 길은, 진리를 소유하고, 진리 안에서 살며, 진리를 위하여 함께 수고하는 영적인 충만함에 있습니다. 이 영적 충만함은 성도의 모든 일에 역사하여 범사가 형통하고, 육신의 강건함을 불러오게 됩니다. 우리 모두 당장에는 표시도 나지 않고 손해 보는 것 같겠지만, 가장 확실한 생명과 행복이 보장된 진리 안에서, 진리를 위하여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