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할 수 있나이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019회 작성일 2003-02-08 14:43
♡♥♡ 할 수 있나이다. / 막10:35-45

***들어가는 말

여러분에게는 욕망이 없습니까? 물질적인 것이든지, 정신적인 것이든지, 어떤 형태로든 욕심이나 욕망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적인 욕망을 가지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아무런 욕심도 욕망도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고통이나 괴로움은 바로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나는 그 과정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승리의 삶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늙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감옥을 전전하면서 늙었고, 가족이나 친척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죄수는 감옥의 작은 창으로 날아온 참새 한 마리와 사귀게 됩니다.
그는 마른 빵 조각을 떼어두었다가 참새에게 나누어주곤 했습니다. 참새도 늙은 죄수와 친하게 되자 창문을 열면 감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참새는 늙은 죄수가 손바닥으로 내미는 빵 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늙은 죄수에게는 칠십 평생에 처음으로 생기 찬 나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행복이 그렇듯이 그에게도 행복한 날들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늙은 죄수가 바다 깊숙한 섬으로 이감되게 된 것입니다. 며칠을 두고 생각한 노인은 결국 참새를 데려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작업하러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나무개비와 철사부스러기를 주워 와서 자그마한 조롱을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이감되는 날이 되어서 배를 타려는 노인은 허술한 조롱을 가슴에 품고 참새를 소중히 보호했습니다. 그러나 우악스러운 죄수들이 밀고 당기는 혼잡 속에서 노인의 허술한 조롱은 부서져버렸습니다. 놀란 참새가 푸르르 날아올랐지만 이내 수면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그것은 참새가 달아날까봐 노인이 참새의 꼬리를 잘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아! 저 참새를 건져줘요!” 늙은 죄수가 부르짖었지만 우렁차게 울리는 뱃고동 소리에 묻혀버리고, 죄수를 실은 배는 미끄러지듯 항구를 빠져나갔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로티’가 쓴 ‘늙은 죄수의 사랑’이란 작품입니다.

늙은 죄수에게 있어서 참새는 아름다운 새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소유하려고 했을 때, 결국 그 사랑은 사라져버렸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와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의 세상은 사랑의 대상이며, 생명을 전해야 할 대상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잠시 지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소유하거나 마음을 둘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7:31절에서,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2:15-17절을 읽어봅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러나 문제는 사람의 육신적인 소유욕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며, 복음의 대상으로서 세상을 보아야 하며, 세상의 물질보다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육신은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욕망이 앞서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조차 세상적인 ‘성공’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부를 쌓거나, 권력을 잡거나, 많은 학식으로 명예를 얻거나, 자녀들의 출세 등등. 모두 육신적인 것들을 ‘성공’의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성공에 대한 개념은 다분히 주관적이기 때문에 각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과연 그리스도인에게도 ‘성공적인 삶’이 있는 것일까?

1. 그리스도인들에게 버려야 할 성공집착증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과 열 두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세 사람에 속하는 제자들입니다. 즉 본문은 믿는 사람들, 특히 제자로 불릴 정도로 신앙심 깊은 성도들이 대상이 되어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신앙심이 깊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서 조차 나타날 수 있는 큰 유혹거리임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따르던 열 두 제자들에게도 ‘성공적인 삶’은 구미가 당기는 차원을 넘어서, ‘차지해야겠다.’는 욕망으로 발전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틈만 나면,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신경전을 벌이곤 했습니다. 그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왕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그날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실 시간이 임박함에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도중에서 제자들끼리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원인은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은밀한 부탁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본문37절입니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 이 일을 마태복음에서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까지 동원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권력을 잡고 싶었으면 그랬겠습니까? 아마도 이들은 이런 이야기를 할 기회를 보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 순간에 다른 제자들이 발칵 들고일어났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애착이 아니라 분명히 ‘성공 집착증’입니다. 주님께서 대속적인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셨지만,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야고보와 요한은 “할 수 있나이다.”라고 강변했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실 잔인 ‘대속적인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에 몸이 달아오른 제자들에게는 그것이 어떤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성공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형태는 다를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다 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성직자인 목회자들의 세계에서도 ‘성공적 목회’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습니다. 목회에서 어떤 것을 성공이라고 하겠습니까? 굳이 표현한다면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하게 순종하는 것이 성공적인 목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완전하게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성공을 말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7:10절을 보면 성공에 대한 주님의 생각을 명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이것이 주님이 보시는 그리스도인의 성공적인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성공적인 삶에 대하여 관심이 많이 있지요? 우리 아이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출세하기를 바라지 않습니까. 예전에 부교역자 시절의 어느 교회에서는 장로님의 아들이 고3이 되니까, 교회에서 공포하기를 ‘고3은 주일에도 장년부 낮 예배만 참석하고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학생부 모임이 토요일 저녁 7시, 예배가 주일 오후 2시에 엄연히 있음에도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님도 대학입시에는 떠신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농담까지도 생겼습니다. 이런 정도의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성공집착증은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2. 그리스도인들에게 얻어야 할 승리의 삶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할 수 있나이다.”라고 강경하게 나오자 굳이 따지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공적인 삶을 가르치십니다. 이제 표현을 바꾸겠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성공적인 삶’이 아니라, ‘승리의 삶’입니다. 성도가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의 삶으로서, 영의 삶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말합니다. 요한일서5:4-5절입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제자들이 세상적인 성공에 마음을 두자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승리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43,44절에서 ‘자기 겸손’과 ‘자기 희생’을 말씀하십니다. 즉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수고로 남을 섬기고 봉사하는 그 사람이 결국 승리하는 사람임을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그리고 45절에서 예수님 당신 자신의 삶이 그러함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를 결심합시다.
결심할 것은 “할 수 있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오로지 권력을 잡고 싶다는 욕망에 가려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그 내용도 알지 못하면서 “할 수 있나이다.”라고 장담하면서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확신하는 일을 고백합시다. 우리가 해야 할 고백은 이러합니다.
‘나를 위하여 앞장 서 가시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나에게 주어진 제자의 길을 끝까지 달려서 승리하겠습니다.’ / 짧게 표현하면, ‘믿음과 순종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면 되겠지요.

군대에서 잘 사용하는 표현이 ‘잘 할 수 있습니까?’라는 것입니다. 졸병들이 어떤 일을 잘 하지 못했을 때에나, 처음 그 일을 시킬 때에 고참병들이 정신교육을 시키는 것입니다. ‘잘 할 수 있습니까?’, ‘예, 잘 할 수 있습니다.’, ‘믿어도 좋습니까?’, ‘예, 믿어도 좋습니다.’ 그러다가 잘 못하면 혼이 빠지도록 기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승리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고 ‘어떻게 이기지!’라는 강박증을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승리는 우리에게 이미 예약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5: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따라가면 됩니다. 그 일이 작든지, 크든지, 많은 것이든지, 적은 것이든지, 오로지 성실하고 열심 있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더 디마스’ 장로는 미국의 기독실업인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경영과 재력면에서 성공한 대표적 인물입니다. 그는 신앙에 있어서도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간증 가운데서 세상적인 성공의 비결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 자녀가 성공하고 형통하기를 원하시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원칙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주님으로 하여금 사업주가 되게 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생활 철학을 여섯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ꊉ주일을 철저히 성수 하라. ꊊ하루의 첫 시간은 기도로 주님께 바쳐라. ꊋ십일조를 드려라. ꊌ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돈을 주님을 위해 쓰라. ꊍ예수님이 가정의 주인이 되시게 하라. ꊎ사업의 모든 문제와 필요를 주님이 해결하시도록 하라.

우리가 주님의 마음에 들면 세상의 ‘로또 대박’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무한한 능력을 썩혀둔 채로 별 볼일 없는 세상을 기웃거리지 맙시다. 이제 우리도 “할 수 있나이다.”라고 결심하고 달려봅시다. 우리의 결심이 확실하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결심을 받으시고 확실한 승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승리할 수 있습니까?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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