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의 문이신 예수님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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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5-17 21:45
♡♥♡ 우리의 삶의 문이신 예수님 / 요한복음10:7-12
*** 들어가는 말
요즈음 인터넷을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 중에 ‘운세코너’가 있습니다. 속된 말로 점을 보는 것입니다. 대형 포탈사이트마다 운세코너를 만들어 놓고 사주팔자, 토정비결, 관상, 궁합 등 신통력이 있는 선생이 평생 운을 가르쳐 주고, 족집게처럼 맞춘다고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일반 철학관이나 무당의 집과는 달리 아무도 모르게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도 상당히 많이 접속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세상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운수나 요행에 자기의 삶을 맡기고 살아갑니다. 무엇인가 잘 되면 운이 좋았다고 하고, 잘못되면 점을 치거나 굿을 합니다. 집을 지으면서도, 자동차를 사고서도, 무슨 행사를 하면서도 잘 되게 해달라고 돼지머리 놓고 빌고 절하며 고사를 지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운수나 요행에 맡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애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운수나 요행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확실한 길이 있으며, 가장 능력 있고 안전한 인도자가 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이 이 길과 인도자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7절에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고, 11절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선언하시는 분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숱하게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앞날을 알고 싶어서 헛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욥기4:19절에서는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인생”이라고 했으며, 이사야5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하루살이 같이 죽을 인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허망한 인생이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길을 찾고 가장 능력 있고 안전한 인도자를 의지해야 합니다.
1. 주님은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요한복음14: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선언에서처럼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 이르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좀 다르게 표현되었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양의 문”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목축업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가축은 양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비가 전혀 오지 않는 기간이 1년 중 몇 달간 계속 됩니다. 이 때는 풀이 귀해서 목자들은 양들을 몰고 멀리 나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임시 우리를 만들어서 양들을 집어넣었는데, 이 우리는 그 곳에 온 다른 목자들도 함께 사용하는 공동 우리였습니다. 목자들은 문지기 한 명을 고용하여 밤새도록 우리를 지키도록 했는데, 바로 이 때에 강도나 맹수들에게 양을 빼앗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목자들에게는 튼튼한 우리가 필요했습니다. 거기다가 튼튼한 문이 달려 있으면 더욱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양들이 들어가 있는 우리에는 문이 하나 달려 있습니다. 양도 그 문으로 들어가고, 목자도 그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를 드나듭니다. 밤이면 목자는 그 양 우리의 문에 자리를 깔고 눕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바로 이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성도가 예수님을 통해서만 들어가고 나올 수 있으며, 안전하게 보호받고 필요한 것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9절에서 예수님이라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문을 들어가면서, 나오면서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꼴이 무엇입니까? 꼴은 목자가 양들에게 제공하는 먹이입니다. 즉 성도가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고 나오면서 필요를 제공받게 됩니다. 이는 영적인 문제와 먹고 사는 육신적 문제들의 모든 열쇠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제공받을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사주팔자를 보고, 관상을 보고, 궁합을 맞추고, 운세를 본다고 해서 형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 밖에서 맴돌면 아무 것도 보장되거나 주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5:7절에서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 안에 살며 내 말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거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도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될 때, 안전과 형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 주님은 가장 안전한 인도자이십니다.
본문11,12절에서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앞서 이스라엘의 목자들의 이야기를 했었는데, 밤에 양 우리를 지키도록 고용된 문지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지키는 양이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각한 위험이 닥치면 도망해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목자들은 자신이 직접 양 우리의 문 바로 안에 누워서 밤새도록 양을 지킨다고 합니다.
주님은 바로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양이 주님 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들도 자기 주인의 채취를 알고 음성을 알아듣는 것입니다. 실제로 양은 자기 주인을 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붙여준 이름을 안다고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끌어 가고자 해도 결코 따르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주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른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순종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따르지 않는 것은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의지하고 따르면,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생명까지 주셨는데, 주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인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USA Today 라는 잡지에 오늘날 사람들의 잠자는 시간은 약 20년 전에 비해서 굉장히 짧아졌으며,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20년 전의 사람들은 어떤 말을 들으면 “그게 정말입니까?”라고 물었는데, 현대인들은 “그게 내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오직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금은 시간이 얼마나 잘 가는지요. 하루가 지나는 것이나 일주일이 지나는 것이 너무나 빠릅니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도 빨리 지나가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에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마태복음6:32절에서 주님은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환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합시다. 가장 확실한 길이시며, 가장 능력 있고 안전한 인도자이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늘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즈음 인터넷을 타고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것 중에 ‘운세코너’가 있습니다. 속된 말로 점을 보는 것입니다. 대형 포탈사이트마다 운세코너를 만들어 놓고 사주팔자, 토정비결, 관상, 궁합 등 신통력이 있는 선생이 평생 운을 가르쳐 주고, 족집게처럼 맞춘다고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일반 철학관이나 무당의 집과는 달리 아무도 모르게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도 상당히 많이 접속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세상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운수나 요행에 자기의 삶을 맡기고 살아갑니다. 무엇인가 잘 되면 운이 좋았다고 하고, 잘못되면 점을 치거나 굿을 합니다. 집을 지으면서도, 자동차를 사고서도, 무슨 행사를 하면서도 잘 되게 해달라고 돼지머리 놓고 빌고 절하며 고사를 지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운수나 요행에 맡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길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애의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운수나 요행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확실한 길이 있으며, 가장 능력 있고 안전한 인도자가 있습니다. 이 시간의 본문 말씀이 이 길과 인도자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본문7절에서는 “나는 양의 문이라.”고 하셨고, 11절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선언하시는 분은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숱하게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염려하고 두려워하며 앞날을 알고 싶어서 헛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욥기4:19절에서는 “흙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인생”이라고 했으며, 이사야5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하루살이 같이 죽을 인생’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처럼 허망한 인생이기 때문에 가장 확실한 길을 찾고 가장 능력 있고 안전한 인도자를 의지해야 합니다.
1. 주님은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요한복음14:6절에서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 선언에서처럼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 이르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좀 다르게 표현되었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양의 문”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목축업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기르는 가축은 양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이면 누구나 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비가 전혀 오지 않는 기간이 1년 중 몇 달간 계속 됩니다. 이 때는 풀이 귀해서 목자들은 양들을 몰고 멀리 나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임시 우리를 만들어서 양들을 집어넣었는데, 이 우리는 그 곳에 온 다른 목자들도 함께 사용하는 공동 우리였습니다. 목자들은 문지기 한 명을 고용하여 밤새도록 우리를 지키도록 했는데, 바로 이 때에 강도나 맹수들에게 양을 빼앗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목자들에게는 튼튼한 우리가 필요했습니다. 거기다가 튼튼한 문이 달려 있으면 더욱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양들이 들어가 있는 우리에는 문이 하나 달려 있습니다. 양도 그 문으로 들어가고, 목자도 그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를 드나듭니다. 밤이면 목자는 그 양 우리의 문에 자리를 깔고 눕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바로 이 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성도가 예수님을 통해서만 들어가고 나올 수 있으며, 안전하게 보호받고 필요한 것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9절에서 예수님이라는 문을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문을 들어가면서, 나오면서 꼴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꼴이 무엇입니까? 꼴은 목자가 양들에게 제공하는 먹이입니다. 즉 성도가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고 나오면서 필요를 제공받게 됩니다. 이는 영적인 문제와 먹고 사는 육신적 문제들의 모든 열쇠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제공받을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사주팔자를 보고, 관상을 보고, 궁합을 맞추고, 운세를 본다고 해서 형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리 밖에서 맴돌면 아무 것도 보장되거나 주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15:7절에서 “그러나 만일 너희가 내 안에 살며 내 말을 자발적으로 따르게 되거든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도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될 때, 안전과 형통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확실한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2. 주님은 가장 안전한 인도자이십니다.
본문11,12절에서 주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앞서 이스라엘의 목자들의 이야기를 했었는데, 밤에 양 우리를 지키도록 고용된 문지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지키는 양이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심각한 위험이 닥치면 도망해 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목자들은 자신이 직접 양 우리의 문 바로 안에 누워서 밤새도록 양을 지킨다고 합니다.
주님은 바로 이 이야기를 하시면서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양이 주님 자신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들도 자기 주인의 채취를 알고 음성을 알아듣는 것입니다. 실제로 양은 자기 주인을 알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붙여준 이름을 안다고 합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끌어 가고자 해도 결코 따르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가 주님을 진정으로 믿고 따른다면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순종하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따르지 않는 것은 주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의지하고 따르면, 주님은 우리를 주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생명까지 주셨는데, 주님의 나라에 이르도록 인도하지 않으시겠습니까?
USA Today 라는 잡지에 오늘날 사람들의 잠자는 시간은 약 20년 전에 비해서 굉장히 짧아졌으며, 앞으로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갈 것이라는 뜻입니다.
20년 전의 사람들은 어떤 말을 들으면 “그게 정말입니까?”라고 물었는데, 현대인들은 “그게 내게 무슨 이득이 있습니까?”라고 묻는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오직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금은 시간이 얼마나 잘 가는지요. 하루가 지나는 것이나 일주일이 지나는 것이 너무나 빠릅니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도 빨리 지나가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무엇이 진짜 중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에는 우리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주님은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마태복음6:32절에서 주님은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환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합시다. 가장 확실한 길이시며, 가장 능력 있고 안전한 인도자이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늘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