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남아 있는 기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896회 작성일 2003-05-17 21:43
♡♥♡ 남아 있는 기회 / 로마서11:13-21

*** 들어가는 말

여러분에게 지금부터 24시간의 생명이 남아있다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아마도 갑자기 수많은 일들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할지, 무엇을 꼭 해야 할지를 망설이게 되겠지요. 그런데 이런 가정(假定)은 언젠가는 실제의 순간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순간을 모르고 살아갈 뿐입니다.

지난 대구 지하철 참사 때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으셨지요? 어느 여학생은 자신의 친한 친구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는데, “내가 이제 죽는가 봐, 나를 위해 기도해줘”라는 친구의 마지막 음성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만약, 단 몇 분 후의 일만 알았어도 그 지하철에 남아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단 몇 초 후의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의 기회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시편90:11,12절에서, “그 누가 주님의 노여움 그 무서움을 알며, 그 누가 주님의 분노 그 두려움을 알까요. 인생살이가 얼마나 짧은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슬기롭게 살아가게 하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

부흥사인 ‘R. A. 토리’ 목사가 영국의 ‘브라이톤’에서 전도 집회를 했을 때의 일화입니다. 집회를 돕던 한 성도가 저녁 집회 전에 저녁 식사를 위하여 가까운 식당으로 갔습니다. 자신의 식사를 위하여 메뉴를 주문받고 음식을 날라주는 웨이터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그런데 곧 “나 같은 게 뭘…” 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의식이 되고 부끄러운 마음도 들어서 생각을 떨쳐버리고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다시 “그래도 한마디 전도를 해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식당 앞에서 서성거리며 웨이터가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 웨이터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참이나 지나서 식당 주인이 나와서 “혹시 누구를 기다립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성도는 ‘조금 전 자신의 식사를 도와준 웨이터를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웨이터는 조금 전에 이층에서 자살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와 같습니다. 자신의 생명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의 생명에 대해서도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 성도가 웨이터의 생명의 시간이 불과 몇 분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처럼 망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면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미루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내일도 있는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자신의 일들을 게을리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우리의 무지함으로 인한 태평스러움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말씀의 배경과 전체적인 의미를 살펴봅시다.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이방 도시인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가 자신들의 신앙적인 현실을 올바로 알기를 원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교회는 사도들로부터 직접 체계적인 신앙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로마 교회에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기본적인 구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민족과 이방 민족인 자신들과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런 교리적인 가르침 때문에 로마서는 어려운 표현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가르침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감람나무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이 비유에는 ‘참 감람나무’와 ‘돌 감람나무’가 등장합니다. ‘참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민족’이며, ‘돌 감람나무’는 이방 민족인 ‘로마교회’이자 오늘의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민인 ‘참 감람나무 가지’중의 일부가 열매를 제대로 맺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를 잘라버리고, 대신 돌 감람나무의 가지를 잘라서 참 감람나무 줄기에 접붙였습니다.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이 된 돌 감람나무의 가지는 이제는 더 이상 돌 감람나무가 아니었습니다. 참 감람나무의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진액을 받기 때문에 접붙임이 된 순간부터 참 감람나무가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돌 감람나무 가지가 좋다거나 훌륭한 열매를 맺었기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사랑이며 은혜였습니다. 그러면 접붙임이 된 가지는 이제부터 참 감람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접붙임이 된 가지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높아진 위치를 자랑하며, 교만하게 행하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될 우려가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만약에 접붙임이 된 가지가 자신의 위치를 잊어버리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가차 없이 잘려질 것임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 가지도 열매가 없음으로 아끼지 않고 잘라내셨는데, 접붙임이 된 가지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의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 중요한 진리를 몇 가지로 생각해 봅시다.

1. 우리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로마교회가 그러했듯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민족’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민족에게 있어서 우리는 이방인입니다. 즉 우리는 ‘돌 감람나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민족이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거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참 감람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진액을 거절하고 말라버린 것입니다. 요한복음15장을 봅시다. 1,2절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아버지께서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모두 잘라 내시고 열매 맺는 가지는 손질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라고 하십니다. 유대민족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었지만,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음으로서 스스로 말라버렸습니다. 이어지는 4절에서,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게 하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말라버린 가지는 당연히 열매를 맺을 수 없었습니다. 열매가 없는 마른 가지는 잘려졌고, 그 자리에 이방인이 접붙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이방민족에게로 향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행운아들이며,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원래는 아무 쓸모없는 돌 감람나무였는데, 유대민족의 불신앙으로 인하여 참 감람나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양자가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로마서8:15절에서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큰 행복을 얻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에베소서2:8절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조차도 여러분의 자발적인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늘 감사해야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 단단히 붙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당 아래 밭에는 지금도 돌감나무 한 그루가 남아 있지만, 몇 년 전에는 몇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 중의 어린 돌감나무 세 그루의 가지를 잘라서 단감나무를 접붙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접붙이는 기술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제대로 접붙이기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말라버렸고 전부 뿌리 채 뽑아서 버렸습니다.

이렇게 버리게 된 이유는 접붙인 가지가 줄기에 제대로 붙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접붙인 가지가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본 줄기에 단단히 붙어야 합니다. 그래야 줄기의 진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줄기의 진액을 받지 못하면 서서히 말라 죽게 됩니다.

본문21절에서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버림받아 다시 옛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원 줄기인 예수 그리스도께 단단히 붙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단단히 붙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요즈음은 의술이 발달해서 사람의 몸의 일부가 병들어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 떼어내고 건강한 조직을 이식합니다. 장기뿐만 아니라, 피부, 뼈 등 거의 모든 인체 조직을 이식합니다. 그런데 인체 조직을 이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식한 조직이 이식된 몸에 적응을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이식한 조직이 본체에 적응하지 못하면 썩게 되고 다시 도려내야 합니다.

지금 어느 목사님이 뼈가 썩어가는 병에 걸려서 얼마 전에 썩은 뼈를 잘라내고 건강한 뼈를 이식하고 붙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식한지 3개월이 지나도록 이식한 뼈가 본 뼈에 붙지 못하면 썩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다시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다고 저절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비결을 적어놓은 성경말씀을 매일매일 읽어야 하고, 예수님과 교제하는 기도를 쉬지 않아야 하며, 말씀을 실천하도록 힘쓰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자라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이 쉽습니까? 결코 쉽지 않습니다. TV를 볼 시간은 있고, 쇼핑하고 외식하고, 야외로 산보 가기는 쉬워도, 기도하고, 성경 읽고, 전도하고, 봉사할 시간을 내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한 시간을 낸다는 것이 어렵습니다. 우리 자신은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기대하는 마음은 큽니다. 이것이 바로 접 붙지 못하고 썩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 단단히 붙기를 힘써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왜 참 감람나무에 돌 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였겠습니까? 참 어리석은 질문이지요? 접붙임의 이유는 좋은 열매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만약 열매가 없으면 당장에 잘라버립니다. 본 가지도 아니고 좋은 열매를 기대하고 접붙인 가지가 열매가 없으면 더 말할 것도 없이 잘라버립니다.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하는 열매는 어떤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이 맺어야 하는 열매는 근본적으로는 영적인 것이지만, 실제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생활 속에서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먼저는 생각이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모든 행동은 자신의 생각으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생활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그 열매를 보아 그 나무를 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7:16-19절입니다.

“열매를 보고 나무를 분간하듯이 그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을 분간할 수 있을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찌 포도를 따먹을 수 있겠느냐? 엉겅퀴에서 어찌 무화과를 따먹을 수 있겠느냐? 이와 같이 과실나무의 좋고 나쁨은 그 열매를 가지고 구별한다. 좋은 나무에 나쁜 열매가 맺힐 수 없고 나쁜 나무에 좋은 열매가 맺힐 수 없다. 먹지 못하는 열매를 맺는 나무는 찍혀서 불에 던져지고 만다.”

탱자나무가 자신은 감귤나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감귤나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을이 되어 맺히는 열매가 감귤이어야 감귤나무이지요. 열매가 탱자이면 그 나무는 탱자나무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생각은 비판하는 말보다 사랑의 말, 이해의 말입니다. 올바른 비판은 대안을 제시하고 자신이 먼저 실천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대안이 없는 비판은 피차에 서로 망하는 지름길입니다. 갈라디아서5:15절에서,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닮은 생각은 강요보다는 앞서 본을 보이며, 사랑을 전제한 행동입니다. 제자들의 숫한 실수와 배반에도 책망보다는 바른 길을 가르치시며 묵묵히 본을 보이신 예수님의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는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기 때문이며, 남아 있는 기회가 얼마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한다면 앞서가시는 주님을 따라갑시다. 우리는 접붙임을 받은 사람들이므로 주님께 단단히 붙어 열매를 맺어야 함을 잊지 않으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아름다운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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