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458회 작성일 2003-05-10 21:57
♡♥♡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 / 갈라디아서5:13-18

*** 들어가는 말

‘자폐증’이라는 병을 아시지요? 자폐증은 소아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정서적 발달장애’입니다. 자기만의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안주하려는 정신적 증상입니다. 이들은 꿈과 현실을 거꾸로 생각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꿈을 현실로 생각하며, 현실을 꿈으로 생각하여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합니다. 이들은 사람을 기피하며, 자신이 아는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행동적인 특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노인들에게 나타나는 현대적인 질병 중에는 ‘자학증’이 있습니다. 의술의 발달로 노년층의 인구가 많아지면서 노년기에 나타나는 심리적 적응형태 중의 하나에 ‘자학증’이 있습니다. 노년이 되면서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지위의 상실감에서 오는 심리적인 현상입니다. 이들은 스스로를 학대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까지 고통스러운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현실 도피증’이 나타납니다. 만년 아이로만 지내려고 하는 ‘피터 팬 증후군’처럼, 힘에 버거운 현실을 자기만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술, 마약, 육체적인 쾌락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폐증, 자학증, 현실 도피증 등. 이들 모두는 자신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들입니다. 즉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정체성이 없는 이들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기 보다는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이 만든 세계로 스스로 고립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대인의 정신적 증상들은 ‘사랑결핍증’입니다.

사랑에는 세 가지의 방향이 있습니다. 첫째는 받는 사랑이며, 두 번째는 자기사랑이며, 세 번째는 주는 사랑입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먼저 된 사랑은 ‘받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받지 못했거나, 사랑을 받을 줄 모는 사람은 그 다음의 사랑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사랑할 줄 압니다. 사랑을 받았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면 다른 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을 받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존재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다른 존재를 향하여 사랑을 부어내지 않으면 그 사랑은 병들게 됩니다.

요한일서3:16절과 4:19절에서 이 사실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합니다. 먼저 3:16절입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하셨으며, 4:19절에서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봅시다.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원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원칙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과 ‘사랑’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이는 연관 정도가 아니라, 사랑이 없으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이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의 사랑 중에서 두 번째인 ‘자기 사랑’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먼저 ‘자기 사랑’을 중심으로 하는 이유부터 봅시다.
저나 여러분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최고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만일 그 사랑을 거부했다면 이 자리에 있지도 않겠지요. 그 사실을 본문13절에서는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다.”고 표현합니다.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으로의 부르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받는 사랑’에 대하여는 더 이상 논할 일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역시 본문13절의 말씀대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종노릇 한다.”는 것은 ‘주는 사랑’이지요. 그런데 여기에 “오직”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즉 ‘받은 사랑’은 자기를 위한 소모가 아니라, ‘남을 향하여 쏟아내는 것’이며, 하나님께 인정받는 유일한 출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해하기 쉬운 함정부터 제거합시다.

본문13절에서 말씀하는 “육체의 기회를 삼는 것”을 표현한 ‘자기 소모적 사랑’입니다. ‘자기 소모적 사랑’이란, 자신만을 위한, 자기 쾌락적 사랑을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즉 재능, 건강, 물질, 자녀 등의 은혜를 자기만족을 위하여 소모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이해하기 쉬운 말이 있습니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는 말을 아시지요? 정신분석학에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기애(自己愛)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했습니다.
나르키소스는 보이오티아의 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인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나르키소스는 무척이나 아름다운 용모를 가졌는데, 이 아름다운에 반하여 숱한 처녀들과 님프들이 구애하였지만 그는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숲과 샘의 님프인 ‘에코’도 그를 사랑하였는데, 여신 중 최고의 신인 ‘헤라’로부터, ‘귀로 들은 마지막 음절만 되풀이하고 말은 할 수 없는’ 형벌을 받아 마음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에코는 나르키소스로부터 무시당하자 실의에 잠겨 여위어 가다가 형체는 사라지고 메아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에코는 복수의 여신인 네메시스에게 ‘나르키소스도 똑같은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빌자 이를 들어 주었습니다.
헬리콘 산에서 사냥을 하던 나르키소스는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샘만 들여다보다가 결국 샘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가 죽은 자리에는 시신 대신 한 송이 꽃이 피어났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나르키소스(수선화)라고 불렀습니다.

이 이야기를 인용해서 정신분석학에서는 지나치게 자기를 위하는 자기중심주의를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잘못된 자기 사랑입니다. 본문에서 말씀하는 대로 ‘자기 소모적인 사랑’입니다. 남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기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오늘에는 교회에도 이런 사상이 들어와서 자기만족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14절을 봅시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이웃 사랑”은 ‘주는 사랑’입니다. 그런데 주는 사랑의 근본은 “네 몸같이”입니다. 즉 “네 몸같이 사랑”이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자기 사랑일까요?

그러면 주님이 말씀하시는 자기 사랑을 정의해 봅시다.

자기 사랑은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꼭 철학자의 질문 같지만, 어렵게 말하면 ‘자기 정체성’입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본문말씀대로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나를 위하여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물고 계시며, 성령께서 머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의 자기 사랑은 하나님이 계시는 처소로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하며, 자신의 몸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자기 사랑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니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며, 자신의 소모적인 사랑인 육신의 욕심을 따라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14절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내가 내 몸조차 사랑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내 영혼의 소중함을 모르면서 어떻게 다른 사람의 영혼을 소중히 여기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겠습니까? 이런 사실은 세상의 심리학자들도 증언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없이는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실제적으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외모, 지식, 학력, 혈연, 능력, 재물, 신앙 등. 자신에 관계된 모든 것을 꾸미거나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오늘의 사람들이 예전보다 좋은 환경에 살면서도 정신적인 질병에 많이 시달리는 이유는 ‘자존심’ 때문입니다. 남보다 못 사는 것을 견디지 못하며, 내 자식이 다른 아이들보다 못한 것을 견디지 못합니다. 남보다 교양도 더 있어야 하고, 더 잘 살아야 하고, 더 좋은 옷을 입어야 하고, 자식들이 더 잘 되어야 하고, 남이 없는 것을 가져야 하고, 없으면 있는 척이라도 하고 빚을 얻어서라고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자존심’과 ‘욕망’ 때문에 스스로 괴로움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냉수 마시고도 이빨을 쑤신다.’고 하며,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아무 쓸모없는 ‘자존심’과 ‘세상 욕망’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야 합니다.

신앙의 면에서도 자신을 인정해야 합니다. 신앙의 면에서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은 신앙이 좋고, 거룩하고, 의인인 척하려니까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약함과 죄의 성향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11:30절에서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과 ‘죄책감’과는 다른 것입니다. 죄책감은 자신의 죄를 느끼고 자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내가 죄인인 채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되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죄책감으로 인하여 목메어 자살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배반한 죄를 인정하고 회개했습니다. 이들의 결과는 정 반대 방향임을 우리가 압니다.

신앙의 면에서 자신을 인정하는 두 번째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즉 나는 죄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롭게 여김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영원한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자신을 미워하고, 육체를 함부로 다루며, 더럽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늘 우울한 얼굴, 짜증스러운 말투, 걱정과 염려로 찌들은 모습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자신에게 주어진 그 영광된 나라를 하루에 한 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즐겁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을 인정하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소중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웃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웃 사랑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대하면 됩니다. 우리가 신약의 황금률이라고 부르는 마태복음7:12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이웃을 대하고, 이웃에게 인정을 받고 싶으면 먼저 인정하고, 내가 용서 받고 싶으면 먼저 용서하고, 도움을 받고 싶으면 먼저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제 결론을 내립시다.

저나 여러분은 분명히 하나님 앞에서 보잘것없고, 약하고, 죄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위하여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기쁨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실을 보증하시려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우리 육체 속에 성령께서 계시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나를 나 자신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남도 나를 사랑하고 나도 남을 사랑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우리 이런 사랑을 마음껏 펼쳐봅시다.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듯이 우리에게 주신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는 아름다운 생을 남길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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