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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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5-03 22:14
♡♥♡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 / 눅22:7-13
*** 들어가는 말
옛날에 “나는 10년 흉년이 들어도 걱정이 없다.”고 장담하면서 웃으며 사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고을 원님이 그를 불러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십년 흉년이 들더라도 첫해 흉년에 굶어 죽으면 그만이지요.”
라고 했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야기이지만, 농부의 말 속에는 자포자기가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살겠다는 지혜가 들어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지나간 어제의 실수를 두고두고 생각하며 염려하기도 하며, 생명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두고 염려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12장에서 삶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많은 인생들에게 거듭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강조하십니다. 누가복음12:25,26절입니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라고 하셨으며, 베드로전서5:7절에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셨고, 빌립보서4:6절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염려를 해결하는 방법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본문에서 실제적인 일을 통하여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시기 위하여 준비하시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집을 떠나왔기 때문에 명절을 지낼 집도, 유월절 양으로 잡을 짐승도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제자들은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오는데 아무 것도 없는 자신들이 염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어디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상하고도 상세하게 지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는 상황과 할 말까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누워서 떡먹기”처럼 쉬운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사람들은 이 쉬운 일을 하지 못합니다. 너무 쉬워서 그런지, 오히려 이처럼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어 놓고 끙끙거리며 염려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경우를 봅시다. 사울이 왕이 된지 이 년째 되던 해에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엄청난 군사력을 이끌고 ‘믹마스’로 와서 진을 치고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숨거나 도망쳤습니다.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군사를 모아 ‘길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자신이 길갈에 도착할 때까지 칠일을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야 전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말 그대로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였습니다. 블레셋은 날마다 고함을 치며 싸움을 걸어왔으며, 이스라엘 군사들은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겨우 사무엘 선지자가 말한 칠일을 기다린 후, 급기야 자신이 번제를 집전해버렸습니다. 이 일은 왕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번제가 끝나자마자 사무엘 선지자가 도착했으며, 사무엘은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했느냐?’라고 왕을 추궁했습니다. 사울은 부득불 자신이 번제를 집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상황을 핑계로 삼아 변명했습니다. 사무엘은 이 일로 인하여 사울 왕 가문의 통치가 길지 않을 것임을 경고했습니다.
사울 왕에게 어려운 일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선지자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사울 왕에게 보내셔서 ‘아말렉에게 속한 것은 남여노소, 짐승과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사울의 군대는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의 왕인 ‘아각’을 죽이지 않았고, 좋은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전리품으로 남겼습니다. 사무엘상15:9절입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일도 역시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전쟁이었으므로 패할 걱정은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만이 관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인간의 욕심이 앞서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이 어려웠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환경이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원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모든 길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사람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한다면 전쟁에 패하거나 버림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순종하면 되는 것을, 사울 왕은 환경을 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따랐습니다.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은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만세전에 택하여 주시고”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택함 받고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창조적인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추진해서 많은 일을 해야 합니까? 멋진 교회당도 짓고, 많은 사업을 해서 구제도 하고, 봉사해야 합니까? 물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많은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7:21절(현대어성경)에서는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10:41-42절(현대어성경)에서는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 너는 여러 가지 일에 너무 얽매여 걱정하고 있구나. 참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그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고 싶지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말씀에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전했으며, 준비된 큰 다락방에서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 여기에 돈이 들지도 않았고, 어려운 고난이 따랐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모든 길이 순탄하고 평화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위하여 예비 된 길이 죽음일 수도 있으며,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길까지도 기쁨으로 갈 수 있도록 마음까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가복음13:11절에서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앞날을 생각할 때에 두렵거나 염려가 됩니까? 그 때마다 이 말씀을 생각하시고 주님께 아뢰며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의 길을 예비하고 계시며, 그 길을 넉넉히 가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다만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합시다. 주님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마음에 생각나게 하시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일을 하도록 여건을 조성하십니다. 그 때에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거부하거나 어렵게 만들지만 않으면 됩니다. 요셉처럼 그 길이 도저히 내 생각에 맞지 않더라도 성실하게 순종합시다. 그러면 주님의 때에 안전하게 목적지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
*** 들어가는 말
옛날에 “나는 10년 흉년이 들어도 걱정이 없다.”고 장담하면서 웃으며 사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고을 원님이 그를 불러서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십년 흉년이 들더라도 첫해 흉년에 굶어 죽으면 그만이지요.”
라고 했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이야기이지만, 농부의 말 속에는 자포자기가 아니라, 하루를 하루답게 살겠다는 지혜가 들어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염려 속에서 살아갑니다. 지나간 어제의 실수를 두고두고 생각하며 염려하기도 하며, 생명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두고 염려합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12장에서 삶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많은 인생들에게 거듭 “두려워하지 말라.”, “염려하지 말라.”고 강조하십니다. 누가복음12:25,26절입니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라고 하셨으며, 베드로전서5:7절에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셨고, 빌립보서4:6절에서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염려를 해결하는 방법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본문에서 실제적인 일을 통하여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십니다.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의 마지막 유월절을 지내시기 위하여 준비하시는 과정을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미 집을 떠나왔기 때문에 명절을 지낼 집도, 유월절 양으로 잡을 짐승도 없었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제자들은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오는데 아무 것도 없는 자신들이 염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어디서 준비하면 되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상하고도 상세하게 지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는 상황과 할 말까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누워서 떡먹기”처럼 쉬운 것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사람들은 이 쉬운 일을 하지 못합니다. 너무 쉬워서 그런지, 오히려 이처럼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어 놓고 끙끙거리며 염려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의 경우를 봅시다. 사울이 왕이 된지 이 년째 되던 해에 블레셋과의 전쟁이 있었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엄청난 군사력을 이끌고 ‘믹마스’로 와서 진을 치고 싸움을 걸어왔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숨거나 도망쳤습니다. 사울은 온 이스라엘에서 군사를 모아 ‘길갈’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자신이 길갈에 도착할 때까지 칠일을 기다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야 전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말 그대로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였습니다. 블레셋은 날마다 고함을 치며 싸움을 걸어왔으며, 이스라엘 군사들은 하나 둘씩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겨우 사무엘 선지자가 말한 칠일을 기다린 후, 급기야 자신이 번제를 집전해버렸습니다. 이 일은 왕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번제가 끝나자마자 사무엘 선지자가 도착했으며, 사무엘은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했느냐?’라고 왕을 추궁했습니다. 사울은 부득불 자신이 번제를 집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상황을 핑계로 삼아 변명했습니다. 사무엘은 이 일로 인하여 사울 왕 가문의 통치가 길지 않을 것임을 경고했습니다.
사울 왕에게 어려운 일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선지자를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사울 왕에게 보내셔서 ‘아말렉에게 속한 것은 남여노소, 짐승과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사울의 군대는 아말렉과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말렉의 왕인 ‘아각’을 죽이지 않았고, 좋은 짐승들을 죽이지 않고 전리품으로 남겼습니다. 사무엘상15:9절입니다.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은 진멸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일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 일도 역시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전쟁이었으므로 패할 걱정은 없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만이 관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시 인간의 욕심이 앞서서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사울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이 어려웠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환경이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까? 원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의 모든 길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우신 사람이었으므로 하나님의 뜻에만 순종한다면 전쟁에 패하거나 버림받을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순종하면 되는 것을, 사울 왕은 환경을 보면서 자신의 욕망을 따랐습니다.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이미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시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의 계획은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만세전에 택하여 주시고”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택함 받고 부르심을 받은 우리는 창조적인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추진해서 많은 일을 해야 합니까? 멋진 교회당도 짓고, 많은 사업을 해서 구제도 하고, 봉사해야 합니까? 물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많은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가 고통스러울 정도로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7:21절(현대어성경)에서는 “종교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 해서 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10:41-42절(현대어성경)에서는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 너는 여러 가지 일에 너무 얽매여 걱정하고 있구나. 참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그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고 싶지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의 말씀에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전했으며, 준비된 큰 다락방에서 유월절을 준비했습니다. 여기에 돈이 들지도 않았고, 어려운 고난이 따랐던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시는 모든 길이 순탄하고 평화로운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위하여 예비 된 길이 죽음일 수도 있으며, 고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길까지도 기쁨으로 갈 수 있도록 마음까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가복음13:11절에서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앞날을 생각할 때에 두렵거나 염려가 됩니까? 그 때마다 이 말씀을 생각하시고 주님께 아뢰며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미 우리의 길을 예비하고 계시며, 그 길을 넉넉히 가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다만 주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합시다. 주님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마음에 생각나게 하시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일을 하도록 여건을 조성하십니다. 그 때에 자신의 생각을 앞세워 거부하거나 어렵게 만들지만 않으면 됩니다. 요셉처럼 그 길이 도저히 내 생각에 맞지 않더라도 성실하게 순종합시다. 그러면 주님의 때에 안전하게 목적지에 이르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