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행복이 가득한 집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5,836회 작성일 2003-05-03 22:13
♡♥♡ 행복이 가득한 집 / 엡5:22-6:9

*** 들어가는 말

오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 가정에 관계된 기념하는 날이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오월 첫 주일인 오늘을 ‘어린이 주일’ 혹은 ‘꽃주일’이라고 하며, 자라는 어린이들을 특별히 생각하는 주일로 지킵니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에 대하여 깊은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린아이도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동일하게 받는 한 인격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어린이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옛날 수도원 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수도원의 원장이 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무식하고 인물도 변변찮은 한 제자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하루는 모든 제자들을 모아놓고 숙제를 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새 한 마리씩 나누어줄텐데, 그 새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죽인 후에 저녁 모임 때에 가지고 오너라.”
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일찌감치 제각기 비밀스러운 곳에서 새를 죽여가지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의 사랑을 받는 제자는 모임 시간에 뒤늦게 들어오면서 새를 살아있는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그를 비웃고 있을 때 그 제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아무리 깊은 산속 험한 곳을 가 보아도 하나님은 그 곳에 나를 살펴보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새를 죽일 수 없었습니다.”

이 무식하고 변변찮은 제자가 가장 정직한 사람이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는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이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온 세계에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시편139:7-12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라고 다윗은 고백합니다. 이러한 사상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확신하는 신앙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편재성’이라고 합니다. 본문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온 세계에 편만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말씀대로 순종할 수도 따를 수도 없습니다.

본문 말씀은 아내들에게, 남편들에게, 자녀들에게, 부모들에게 그리고 종과 상전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명하시는 말씀이 하나님의 뜻임을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는 모든 생활의 모습과 생각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행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가정과 사회가 행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행복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기 위하여 우리 각 사람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모든 인간관계는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부간에 사랑하고 복종해야 할 이유는 주님이 머리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모든 일을 주께 하듯 성실하고 정직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주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모든 인간관계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오늘의 가정과 사회가 예전에 없던 풍요로움을 누리면서도 가정 파탄이 많아지고 불행을 호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개인주의와 욕망 때문입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겠노라.”고 서약하던 결혼 서약도, 자신의 생각과 욕망을 먼저 충족하고자 하기 때문에 얼마가지 못하여 파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신의 소유인 것처럼 생각하여, 자신의 생각과 욕심대로 아이를 만들려고 하니까 아이가 어긋나게 됩니다. 부모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요구를 합니다. 마치 어미 게가 자신도 옆으로 걸으면서 아이 게에게 옆으로 걷는다고 나무라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는 부모를 거울삼아 자라게 됩니다. 결국 부모의 욕심으로 자란 아이는 자신도 자신의 욕심을 먼저 앞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자식들이 부모를 무시하고 버리게 되는 것도 자신의 생활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까?

직장은 또 어떻습니까?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노사분규가 일어납니다. 이는 사용자 측은 사용자대로의 욕심을 챙기려 하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대로 더 많은 보수와 편안함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직장 생활이 불안전하고 평화롭지 못하면 가정은 더 큰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처럼 모든 관계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할 때 기차가 레일을 탈선하는 것처럼 사고가 발생하게 됩니다. 모든 관계에서 하나님이 주권자이시며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것은 안전하고 평안한 행복을 누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공부, 공부, 하는 부모들에게 항변하는 아이들의 유행어가 있었지요. 가정의 행복도 많은 재물이나 사람의 욕망이나 안락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잠언17:1절에서,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으며, 잠언15:16-17절(현대어성경)에서는 “가진 것 많지 않아 비록 가난하여도 여호와 모시고 살아가는 나날은, 가진 것 많아 걱정거리 많은 부자들보다도 행복한 나날이라. 값싼 채소만 먹고 살면서도 서로 우애 있게 아껴 주며 사는 것이, 값비싼 갈비짝 뜯으면서도 서로 못미더워 증오하는 것보다 행복하다.”고 했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모든 관계에서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할 때 가득하게 됩니다.

2. 각 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본문의 구조는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 등. 둘씩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먼저 따르는 위치에 있는 자가 해야 할 일을 가르치고, 다음으로 인도하는 위치에 있는 자가 해야 할 일을 가르칩니다. 즉 각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책임을 다 해야 행복이 보장됨을 말씀합니다.

먼저, 따르는 자들은 아내들과 자녀들과 종들(노동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따르는 자로서의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종들은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해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생활을 주관하는 영적인 주체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따르는 자들은 따르는 자로서 자신의 모든 직임을 주님께 하듯이 성실하게 행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인도자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인도자들은 남편들과 부모들과 상전들(사용자들)입니다. 이들에게는 인도자로서의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남편들은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주심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특히 부부는 한 몸임을 말씀하시면서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편들을 위하여 긴 설명을 곁들인 것은 당시의 남편들의 주장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즉 자신의 욕망으로 자녀를 양육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상전들은 일군들에게 주께 하듯 성실하고 정직하게 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종들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상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역시 여기서도 생활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인도자라고 군주적인 군림의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되며, 따르는 자라고 비굴한 굴복의 자세를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주된 핵심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각 사람에게 맡기신 삶의 자리가 다르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따른 역할 분담입니다. 그러므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서 권리 주장을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7:3절에서는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고 하셨습니다.

3.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앞서 잠간 언급했지만, 행복은 성적 순서를 따라 주어지는 것도 아니요, 재물이 많은 순서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이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지금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파랑새’ 이야기에서처럼 사람들은 행복의 파랑새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지만 그 어디에서도 파랑새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파랑새는 바로 가까이 자신의 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행복지수를 나타내는 나라가 어디이겠습니까?
가장 거대한 제국인 미국? 아니면 개인 평균소득이 가장 높고 복지제도가 좋은 덴마크? 독일? 프랑스? 신사의 나라 영국? 모두 아닙니다. 우리나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는 얼마 전에 ‘2003년 한국사회 국민의식과 가치관에 관한 조사연구’를 발표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기 삶의 행복지수를 66.5점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외적으로는 가난하고 여건이 좋지 않은 ‘방글라데시’입니다. 방글라데시는 국토의 넓이로는 남한의 약 1.5배가량 되지만, 인구가 1억 4천여 만 명으로 세계9위이며, 인구밀도로는 세계1위입니다. 전통적인 불교국가입니다. 불교국가가 행복지수로는 세계 1위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이로 보아 환경이 행복을 주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은 무슨 일이 일어나느냐 하는 것보다 사람이 그것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환경을 바꾸고, 직장을 바꾸고, 사람을 바꾼다고 해서 행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하려면 자신의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맞출 때에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산상수훈 첫머리에서 여덟 가지의 행복의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 안에 참된 행복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본문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삶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행복합니까? 여러분의 가정은 충분히 행복합니까?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실천합시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자녀로서, 부모로서, 직장인으로서, 사용자로서,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분명히 행복이 가득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발걸음이 이끌리는 기쁨과 행복과 사랑이 가득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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