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나를 보내셨나이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349회 작성일 2003-04-26 23:16
♡♥♡ 나를 보내셨나이다. / 창세기45:3-8

*** 들어가는 말

한자말에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생이 다하면 기쁨이 온다.’는 의미이지요. 고진감래에는 인내가 들어있습니다. 고난과 고생의 날들을 인내하면 기쁨의 날을 맞이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참 잘 어울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21장에서 종말에 되어질 일들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면서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8:15절에서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인내는 그리스도인이 최후의 승리를 얻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성품입니다. 히브리서10:36절입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이 시간의 본문은 속이 다 시원하게 뚫리는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인내의 결과로 주어진 기쁨의 날의 이야기입니다. 영화로 따지면 좋은 편이 악당들에게 온갖 고통을 당하다가 죽음 직전에 탈출하여 적군을 무찌르는 통쾌한 클라이맥스 부분이 될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받아 17세에 노예 상인에게 팔린 후, 13년 동안 노예와 억울한 죄수의 몸으로 살았습니다. 참으로 어이없고, 분하고 원통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형제들에 의하여 팔렸으니 기가 막힌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아마도 보통 사람 같으면 와신상담(臥薪嘗膽/섶 위에 잠을 자고 쓸개를 핥는다. /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하여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하면서 복수를 다짐할 법도 한 일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삶은 13년을 한결같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노예 생활에서도, 죄수 생활에서도 요셉은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함으로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일에 대하여 성경은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고 증언합니다.

요셉의 성실한 삶에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하게 되고 애굽의 제2인자인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 온지 13년 만에 노예에서 나라의 제 2인자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대국(大國)의 총리대신이 된 요셉 앞에, 21년 전 ‘살려 달라.’고 애걸하던 자신을 매정하게 팔았던 형제들이 나타났습니다.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 후의 행적이 본문말씀입니다.

요셉은 형들 앞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형들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정신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죽었구나.’라고 생각했을 법도 합니다. - 이로부터 17년이 지나서 야곱이 죽은 후에 그 형들이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라고 하면서 형제들이 요셉에게 아버지 야곱의 말을 전하면서 용서를 구했습니다. - 그러한 형들의 마음을 헤아린 요셉은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설명하면서 형들을 안심시켰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라고 지금까지의 일이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임을 고백합니다.

여러분은 요셉의 고백처럼 지금까지의 생애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섭리의 역사였음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무엇을 위하여 이 곳에 있습니까? 중요한 것은 요셉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뜻을 알 수는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역사하심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즉 지금 나의 생애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한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내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하심으로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의미 없이 이루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서3:1절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일이 다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아하, 일이 이렇게 된 것이구나.’라고 의미를 깨달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 할지라도 그 일의 의미나 목적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이 팔리는 것이나, 노예가 된 것이나,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것 등. 어떤 것에서도 애굽의 총리로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자신에게 보이신 꿈을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갔을 뿐입니다. 즉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확실히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그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게 한 것입니다.

‘피난처’라는 책을 지은 네델란드의 부흥사이자 전도자인 코리텐 붐(Corrie ten Boom) 여사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포로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이유는 유대인을 보호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라벤스브룩 수용소의 여자 샤워 실을 감시하는 간수로부터 잔인할 정도로 학대를 받았습니다. 그의 언니는 그 고통을 견디지 못해 감옥에서 죽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자신이 겪은 체험들을 책으로 출판하고, 온 세계에 직접 다니면서 신앙을 간증했습니다. 어느 해, 독일의 ‘뮤니히 교회’에서 ‘원수를 사랑하라.’는 제목으로 간증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 후 강단에서 내려오는 자신을 찾아와 인사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자신을 그토록 잔인하게 학대했던 라벤스브룩 수용소의 간수였습니다.
이 사람이 손을 내밀면서 “오늘 당신의 신앙 간증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라면서 말했습니다. “코리텐 붐 여사. 나는 온 유럽을 다 뒤지며 당신을 찾아왔었습니다. 나는 이제 예수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코리, 나는 얼마나 큰 죄를 당신에게 저질렀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부디 나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용서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여사는 땅을 바라보았습니다. 결코 그 사람을 용서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그가 나에게 악랄하게 대했는데, 그렇게 쉽게 용서해 줄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가 지은 죄의 대가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데 나보고 용서해달라고?’여사는 그를 용서해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죄의 대가를 충분히 받은 다음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용서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자 그 사람은 코리텐 붐의 팔을 잡고 애원했습니다. 머리 속에는 수용소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났습니다. 자신을 향하여 욕설을 퍼부으며 되는대로 발로차고 때리고 쓰러뜨리고 하던 장면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녀의 감정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습니다. ‘아니다. 결코 용서할 수 없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했을지는 몰라도 나는 결코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성인군자는 아니지. 나는 네가 저지른 대가를 치루는 것을 분명하게 이 두 눈으로 보기를 원한다.’고 말입니다.
다시 한번 그 사람은 그녀에게 간청했습니다. “코리. 부디 나를 용서해주시오.”그녀는 그에게 눈길을 줄 수 없어 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러는 순간 갑자기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였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외치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코리텐 붐은 이 장면을 목격하고서 그 사람을 용서해주었다고 합니다.

용서란 이처럼 힘든 것입니다. 21년 만에 요셉 앞에 나타난 형들을 보았을 때, 요셉에게 코리텐 붐 여사와 같은 마음이 전혀 없었겠습니까? 분명히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본문2절에서 형들을 만난 요셉이 자신을 알린 후에 자기감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방성대곡했습니다. 주변에 모두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그런 다음에 두려워하는 형들에게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밝히면서 안심을 시켰습니다. 이는 요셉이 형들을 용서하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후, 17년이 지나서 아버지인 야곱이 죽은 후에 형들이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하면서 아버지의 유언을 들먹이면서 다시 요셉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창세기50:17절에서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다시 형들에게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말하면서 안심을 시킵니다.

여기에서 요셉의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형들이 과거의 일들을 생각나게 할 때마다 눈물을 보인 요셉의 마음은 무엇이겠습니까? 지금까지의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되살아나면서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을 것입니다. 요셉의 눈물은 고난의 아픔들이 형들을 향하는 연민과 용서와 이해로 승화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의 환경을 하나님의 섭리로 승화시켰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겪었던 고난의 삶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가정을 존속하고 유지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해석합니다. 여기에 요셉의 위대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의 삶을 하나님의 섭리의 역사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난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같은 입장에 처한다면 그 고난의 환경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환경과 모든 일에 하나님이 섭리하신다.’는 요셉의 역사관을 가져야 합니다. 즉 요셉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최악의 환경과 상황까지도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역사임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진실하고 열정적인 삶의 모습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섭리하심에는 반드시 결과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앞서 보았던 전도서3:1절에서,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는 결과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사람의 뜻대로 경영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하나님의 목적대로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섭리는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잠언16:9절에서는 “사람이 마음으로 그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셨으며, 시편37:23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16: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결과는 삶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마태복음7:16-18절입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고 하시면서 반드시 결과가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르는 사람에게서는 성령으로 말미암는 선한 열매가 맺게 됩니다. 그 열매를 갈라디아서5:22-23절에서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하셨으며, 에베소서5:9절에서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욕망을 따라가는 사람에게서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 원수를 맺는 것, 분쟁, 시기, 분 냄, 당 짓는 것, 분리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 등.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것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요셉은 13년의 억울하게 당한 그 고난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도 그의 성품은 하나님을 닮아 있었습니다. 그의 생활에서 맺히는 열매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잊지 않았으며,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요셉에게서 맺힌 삶의 열매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삶에 결과를 내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맺은 생애의 열매를 따라서 그 결과를 내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인내와 순종의 결과는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의 성취였습니다. 그 계획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으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단계로 기근과 요셉을 통하여 야곱의 가족 75명을 애굽에 정착시키셨습니다. 이제 400년이라는 세월을 애굽에 머물게 하면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위하여 섭리하시고 역사하십니다. 그 웅장하고 위대한 섭리의 역사 한 가운데 우리 대복교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인내하면서 그 뜻에 즐겁게 순종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큰일들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이사야1:19-20절입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 가운데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셉이 인생의 앞길이 보이지 않는 최악의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성실한 삶을 살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열심 있고 성실하게 나아갑시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면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때까지 담대하게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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