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쟁이가 되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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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4-05 20:19
♡♥♡ 예수쟁이가 되라. / 행8:4-21
*** 들어가는 말
3, 40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가 대도시를 제외 하고는 궁색한 모습이 곳곳에 깔려 있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곳이 많지만, 거의 모든 지역에서 5일마다 장이 섰습니다. 5일마다 서는 장터에는 지게나 리어카에 엿판을 실고 다니면서 고물이나 돈을 받고 엿을 파는 엿쟁이도 있고, 고무신이나 남비를 때워주는 땜쟁이, ‘펑’소리에 지나던 사람이 다 놀라고, 아이들은 튀어나온 박상을 주워 먹느라 바글거렸던 박상 쟁이도 있고, 등에 북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발에 끈을 달아 ‘둥둥’거리며 화장품을 팔던 동동 구루무 쟁이 등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장사꾼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천박하게 보이는 장사꾼들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살 것도 팔 것도 없으면서 장날이면 빈 지게라도 지고 장터를 어슬렁거리던 영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저 사람 만나는 재미와 어쩌다가 친구라도 만나면 ‘막걸리라도 한 사발 얻어먹을까’하는 기대가 있었겠지요. 아마 그래서 ‘목적 없이 남을 따라하는 사람’을 두고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련한 옛 추억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지금처럼 휘황찬란하고 바쁘고 어수선한 사회에서도 따지고 보면 모습이나 생활 풍습만 바뀌었지 사람 사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이나 순수함은 옛날보다 지금이 훨씬 덜 할 것입니다.
이처럼 급변하는 세상의 물결을 타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3, 40년 전, 아버님이 목회하시던 그 때의 교회와 성도들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 데, 그 당시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의 열정이 순수하고 뜨거웠습니다. 비록 모두가 가난한 생활을 했지만, 서로 돌아보고 나누는 사랑이 진실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예수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정말 ‘예수쟁이’라고 불릴 만 했습니다.
‘쟁이’라는 말은 ‘사람의 성질이나 독특한 습관, 행동, 모양 등을 나타내는 말에 붙어서 그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코 권장할 만한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떤 일이나 행동에 있어서 근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예수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의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의미로 ‘전문적인 근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즉 ‘예수쟁이’라는 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전문가’라고 풀이하고자 합니다. 바로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런 모습들이 신앙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통하여 나타난 능력의 역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능력을 나타내신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능력을 행한 사람들은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도 있고,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도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거름지고 장에 가는 사람”인 ‘시몬’도 등장합니다. 시몬은 예수님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고 다만 신기한 능력에만 매료되어서 돈으로 그 능력을 사려고 한 사람입니다.
이들이 행한 일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전문가’로서의 ‘예수쟁이’가 되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서려고 합니다.
1. 예수쟁이는 전문적인 지식인이어야 합니다.
본문 속에는 특별한 전도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능력 있는 사도도 아니고, 랍비나 종교 지도자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빌립’이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있는 빌립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하는 일을 전담하도록 안수하여 세운 일곱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빌립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으며, 초대 교회의 목회자인 사도들을 도와서 구제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일곱 집사’라는 직분적인 명칭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하는 일이 구제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영어 성경에서 ‘집사’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서는 편의상 일곱 집사라고 부르겠습니다.
일곱 집사들의 직무는, 말씀이나 기도로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돕는 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직무는 구제하는 일로써 교회의 일반적인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며,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는 등 많은 표적을 보이며 능력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본문7절에서,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주신 능력이었습니다.
마태복음10: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셨고, 7,8절에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으로부터 파송된 칠십 인의 제자들이 전도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누가복음10:17절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신이 나서 보고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신앙의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빌립이 행한 일들은 신앙의 전문가들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표적들이었습니다. 즉 빌립도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이 그 속에 들어 있는 신앙의 전문가였습니다. 빌립 뿐만 아니라, 빌립이 행한 일을 듣고 달려온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은 빌립이 행하지 못했던 성령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역시 사도답게 예수님의 능력이 활동하는 프로였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능력들이 나타났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이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저나 여러분도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어 있는 신앙의 전문가들입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하지 못하여 신앙의 모습이 조금은 어설퍼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능력이 역사하는 통로를 바르고 넓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필요한 때에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전문가들을 보십시오. 의사, 과학자, 농부, 기술자, 예술가 등 할 것 없이 전문가들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속 연습하고 실습하고 또 연습해서 비로소 능숙하고 인정받는 기술들을 펼치는 것입니다. 세상의 육적인 일도 이렇게 연습이 필요한데, 영원한 생명을 걸고 있는 영의 일은 어떠하겠습니까? 디모데전서4:8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약부터 쓸 생각하지 말고 먼저 아이를 안고 손을 얻어 기도하십시오. 인생의 문제가 꼬이면 사람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부터 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처음부터 잘 안 되더라도 계속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을 이길 수 있는 길을 기도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9:29절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한 가지씩, 한 걸음씩 행하다 보면 인생의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4:11-13절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2. 예수쟁이는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을 주시해 봅시다. 이 사람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 이름이 ‘시몬’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오늘 이 시대를 대변하는 듯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직업이 마술사였습니다. 애굽에서 배운 마술로 백성들을 놀라게 해서 낮은 자, 높은 자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을 청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도 ‘큰 자’라고 했으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고, 또 병자가 나음을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시몬은 대단히 놀랐으며 자신도 믿고 세례를 받아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 빌립을 따라다니던 어느 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사람들에게 안수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제안했습니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시몬은 세상적인 목적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영적인 목적의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즉 자신이 안수함으로서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해서 돈을 벌려는 목적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성령 세례의 목적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돈을 들여서라도 신기한 재주를 갖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중세 시대부터 ‘성직매매’를 이 시몬의 이름을 따서 simony 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 이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떼를 지어 따라다녔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6:26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즉, 예수님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세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유익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여지없이 떠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유익을 위한 신앙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유익이 없어지거나 자그마한 고난이나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신앙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아무런 능력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3. 예수쟁이는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전문가는 자신의 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철저한 직업 근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라크 전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전쟁의 모습을 취재하지 않습니까. 만일 목숨을 아낀다면 생생한 전쟁의 소식을 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음으로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역사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 역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음으로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대부분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순교자인 사도 바울은 그의 삶 자체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14:8절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삶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자신을 버림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도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천국의 기자들입니다. 소식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삶을 세상에 보여주는 진정한 신앙의 전문가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를 얻기 위하여 생명까지도 걸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의 전문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3, 40년 전만 해도 한국 사회가 대도시를 제외 하고는 궁색한 모습이 곳곳에 깔려 있었습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곳이 많지만, 거의 모든 지역에서 5일마다 장이 섰습니다. 5일마다 서는 장터에는 지게나 리어카에 엿판을 실고 다니면서 고물이나 돈을 받고 엿을 파는 엿쟁이도 있고, 고무신이나 남비를 때워주는 땜쟁이, ‘펑’소리에 지나던 사람이 다 놀라고, 아이들은 튀어나온 박상을 주워 먹느라 바글거렸던 박상 쟁이도 있고, 등에 북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발에 끈을 달아 ‘둥둥’거리며 화장품을 팔던 동동 구루무 쟁이 등 온갖 잡동사니를 파는 장사꾼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비록 천박하게 보이는 장사꾼들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살 것도 팔 것도 없으면서 장날이면 빈 지게라도 지고 장터를 어슬렁거리던 영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그저 사람 만나는 재미와 어쩌다가 친구라도 만나면 ‘막걸리라도 한 사발 얻어먹을까’하는 기대가 있었겠지요. 아마 그래서 ‘목적 없이 남을 따라하는 사람’을 두고 “거름지고 장에 간다.”는 말을 했을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련한 옛 추억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지금처럼 휘황찬란하고 바쁘고 어수선한 사회에서도 따지고 보면 모습이나 생활 풍습만 바뀌었지 사람 사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이나 순수함은 옛날보다 지금이 훨씬 덜 할 것입니다.
이처럼 급변하는 세상의 물결을 타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3, 40년 전, 아버님이 목회하시던 그 때의 교회와 성도들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 데, 그 당시의 성도들은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의 열정이 순수하고 뜨거웠습니다. 비록 모두가 가난한 생활을 했지만, 서로 돌아보고 나누는 사랑이 진실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예수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정말 ‘예수쟁이’라고 불릴 만 했습니다.
‘쟁이’라는 말은 ‘사람의 성질이나 독특한 습관, 행동, 모양 등을 나타내는 말에 붙어서 그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입니다. 그래서 결코 권장할 만한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떤 일이나 행동에 있어서 근성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합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이 ‘예수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의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좋은 의미로 ‘전문적인 근성’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즉 ‘예수쟁이’라는 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전문가’라고 풀이하고자 합니다. 바로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서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런 모습들이 신앙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을 통하여 나타난 능력의 역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능력을 나타내신 주인은 하나님이시지만, 능력을 행한 사람들은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도 있고,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도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거름지고 장에 가는 사람”인 ‘시몬’도 등장합니다. 시몬은 예수님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고 다만 신기한 능력에만 매료되어서 돈으로 그 능력을 사려고 한 사람입니다.
이들이 행한 일을 보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전문가’로서의 ‘예수쟁이’가 되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서려고 합니다.
1. 예수쟁이는 전문적인 지식인이어야 합니다.
본문 속에는 특별한 전도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능력 있는 사도도 아니고, 랍비나 종교 지도자도 아닙니다. 이 사람은 ‘빌립’이라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에 있는 빌립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구제하는 일을 전담하도록 안수하여 세운 일곱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빌립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으며, 초대 교회의 목회자인 사도들을 도와서 구제하는 일을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일곱 집사’라는 직분적인 명칭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의 하는 일이 구제하는 일이었기 때문에 영어 성경에서 ‘집사’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여기서는 편의상 일곱 집사라고 부르겠습니다.
일곱 집사들의 직무는, 말씀이나 기도로 성도들의 영적인 성장을 돕는 영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직무는 구제하는 일로써 교회의 일반적인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을 증거하며, 귀신을 내어 쫓고, 병을 고치는 등 많은 표적을 보이며 능력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본문7절에서,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주신 능력이었습니다.
마태복음10: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셨고, 7,8절에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으로부터 파송된 칠십 인의 제자들이 전도하고 돌아와서 보고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누가복음10:17절입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신이 나서 보고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신앙의 전문가들이었습니다.
빌립이 행한 일들은 신앙의 전문가들인 예수님의 제자들에게서 나타나는 표적들이었습니다. 즉 빌립도 예수님의 말씀과 능력이 그 속에 들어 있는 신앙의 전문가였습니다. 빌립 뿐만 아니라, 빌립이 행한 일을 듣고 달려온 사도인 베드로와 요한은 빌립이 행하지 못했던 성령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역시 사도답게 예수님의 능력이 활동하는 프로였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능력들이 나타났으면 좋겠지요? 하지만 이들을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저나 여러분도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어 있는 신앙의 전문가들입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말씀에 익숙하지 못하여 신앙의 모습이 조금은 어설퍼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통하여 능력이 역사하는 통로를 바르고 넓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필요한 때에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전문가들을 보십시오. 의사, 과학자, 농부, 기술자, 예술가 등 할 것 없이 전문가들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속 연습하고 실습하고 또 연습해서 비로소 능숙하고 인정받는 기술들을 펼치는 것입니다. 세상의 육적인 일도 이렇게 연습이 필요한데, 영원한 생명을 걸고 있는 영의 일은 어떠하겠습니까? 디모데전서4:8절을 보십시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기도하십시오. 아이가 아프면 병원에 가고 약부터 쓸 생각하지 말고 먼저 아이를 안고 손을 얻어 기도하십시오. 인생의 문제가 꼬이면 사람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부터 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처음부터 잘 안 되더라도 계속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세상을 지배하는 악한 영을 이길 수 있는 길을 기도뿐이라고 하셨습니다. 마가복음9:29절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이렇게 한 가지씩, 한 걸음씩 행하다 보면 인생의 모든 환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4:11-13절입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2. 예수쟁이는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또 다른 한 사람을 주시해 봅시다. 이 사람은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 사고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 이름이 ‘시몬’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오늘 이 시대를 대변하는 듯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직업이 마술사였습니다. 애굽에서 배운 마술로 백성들을 놀라게 해서 낮은 자, 높은 자 할 것 없이 모두 자신을 청종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도 ‘큰 자’라고 했으며,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들었고, 또 병자가 나음을 받고 귀신이 쫓겨나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시몬은 대단히 놀랐으며 자신도 믿고 세례를 받아 빌립을 따라다녔습니다. 빌립을 따라다니던 어느 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에 와서 사람들에게 안수해서 성령을 받게 하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제안했습니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시몬은 세상적인 목적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영적인 목적의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즉 자신이 안수함으로서 사람들이 성령을 받게 해서 돈을 벌려는 목적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성령 세례의 목적 자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만 돈을 들여서라도 신기한 재주를 갖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중세 시대부터 ‘성직매매’를 이 시몬의 이름을 따서 simony 라고 합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 이후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떼를 지어 따라다녔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6:26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즉, 예수님이 메시아이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예수를 따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세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면, 유익이 없다고 판단될 때는 여지없이 떠나게 됩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지금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자신의 유익을 위한 신앙을 목적으로 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래서 유익이 없어지거나 자그마한 고난이나 어려운 환경이 닥치면 신앙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아무런 능력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3. 예수쟁이는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전문가는 자신의 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철저한 직업 근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라크 전에서 종군기자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전쟁의 모습을 취재하지 않습니까. 만일 목숨을 아낀다면 생생한 전쟁의 소식을 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은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음으로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역사에 의하면 사도 ‘베드로’ 역시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죽음으로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대부분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순교자인 사도 바울은 그의 삶 자체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14:8절입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뿐만 아니라 영원한 삶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자신을 버림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도 하나님 나라의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천국의 기자들입니다. 소식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의 삶을 세상에 보여주는 진정한 신앙의 전문가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소유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를 얻기 위하여 생명까지도 걸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의 전문가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