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보답할까요?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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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7-13 21:11
♡♥♡ 무엇으로 보답할까요? / 살전5:16-18
*** 들어가는 말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맥추감사주일의 유래는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유대인들이 430년간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끝내고, 모세의 인도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했습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합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입성했습니다. 떠돌이 유목민이었던 유대인들이 땅을 차지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정착민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집도 생겼고 땅도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이스라엘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절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때에 생명을 구원받은 유월절(무교절)과 일 년의 농사 중 가장 먼저 거둔 곡식을 하나님께 바치는 맥추절(칠칠절, 오순절), 일 년의 마지막 농산물을 거두어 들여 수장한 후에 지키는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이 그것입니다. 출애굽기23:14-17절입니다.
현대어성경 /“너희는 해마다 세 차례 내 앞에서 명절을 지켜라.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는 무교절을 지켜라. 내가 너희에게 이미 명령한대로 아빕월 가운데 지정한 시기에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어야 한다. 그 달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온 까닭이다. 너희가 내 앞에 나아올 때에는 누구든지 빈손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너희가 밭에 씨 뿌리고 애써 가꾸어 농사지은 것 가운데에서 첫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맥추절을 지켜라. 또한 너희가 한 해 동안 애써 농사지은 것을 연말에 거두어들이는 추수절을 지켜라. 이렇게 남자들은 한해에 세 차례씩 주님이신 여호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 해 첫 농사를 지어 소산물을 거두고 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며, 일주일 동안 감사의 축제를 열고 온 백성이 기뻐했습니다. 이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농산물에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 살아갈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풍족한 양식을 이웃과 나누면서 하나님을 기뻐했습니다.
이 절기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유목민인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세상에서 영의 생명도 없이 방황하며 떠돌아다니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향하여 목적도 없이 방황하던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출애굽할 때에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었던 ‘초태생의 죽음’으로부터 구원한 것은 유월절 양의 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죽음의 천사가 유대인들이 머물고 있는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유월절 양의 피를 보면 뛰어 넘어 지나갔습니다. 이 유월절 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속죄의 피가 우리 영에 가득 채워졌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면하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한 약속의 땅인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가 약속의 나라에 이르지 못한 나그네이지만, 이 땅에서 작은 천국을 이루고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이 큰 감사의 절기에, 하나님께서 나와 가정과 직장과 사업에 복을 내리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첫 말씀이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기뻐하라.’고 한다고 해서 기뻐집니까? 세상에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합니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셨으며, 영원한 영광과 기쁨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설령 이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다고 해도 항상 한 순간도 빠짐없이 기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항상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즉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게 주어지는 일상의 일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믿고 기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들 둘을 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우산장수이고, 작은 아들은 짚신장수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두 아들의 장사 때문에 매일 매일을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개어 햇볕이 쬐는 날이면 수산장수 큰 아들의 장사가 안 될 것을 걱정해야 했고, 그러다가 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짚신장수 작은 아들의 장사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해가 떠도 걱정, 날이 흐려도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웃 마을에도 아들 둘을 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소금장수이고, 작은 아들은 장화장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날이 좋으면 소금장수인 큰 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이라서 기뻐했고, 비 오는 날이면 장화장수인 작은 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이어서 기뻐했습니다. 그러니 해가 나도 좋고, 비가 와도 좋아했습니다.
이는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차이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어떤 것이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똑 같은 일을 두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걱정할 수도 있으며, 기뻐하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의 영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피할 피난처이시며, 모든 일에 능력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일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염려가 생기고 어려움으로 눈물이 흐를 때면, 손을 내밀고 계시는 주님을 잡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불빛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면 앞길이 환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불빛을 등지고 나아가면 항상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가 앞을 막게 됩니다. 즉 성도는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면 앞길이 환하게 밝아 실족할 염려가 없습니다. 반면에 주님을 등지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면 염려와 두려움과 고통의 그림자가 길을 막아 실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초막절 마지막 날인 성일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외치셨습니다. 요한복음7:37-38절입니다. 현대어성경/ “축제의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는 군중들에게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나올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뻐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풍성한 생명과 삶에 대한 약속입니다.
2. 하나님과의 교제를 쉬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두 번째 말씀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것, 찬양하는 것, 예배하는 것 등.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이끌어 가는 길이며, 하나님과 내가 쌍방 통행하는 길입니다. 기도는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무엘상12:23절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기도를 만능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결코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기도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능력의 주님과 연결되는 통로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지하에 흐르고 있는 광천수가 좋다고 해서, 땅 속에 파이프를 묻고 집으로 배관을 연결하면 광천수가 나옵니까? 좋은 재료의 파이프를 사용해서 싱크대로, 세면실로, 욕조로, 세탁기로 통하는 배관을 완벽하게 했다고 해서 광천수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땅을 뚫고 광천수가 흐르는 지하수에 파이프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광천수가 콸콸 쏟아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무조건 기도만 많이 한다고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수의 원천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기도가 만능열쇠가 아니라, 예수님이 만능열쇠입니다. 기도는 능력이신 주님과 연결되게 하는 줄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능력이시며 생명수이신 예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자동차의 연료통과 엔진 사이에 연료를 흐르게 하는 호스가 연결되어 있어야 계속 엔진이 가동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주님과의 끊어지지 않는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3. 모든 일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세 번째 말씀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범사(凡事)’란 말 그대로 ‘모든 일’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걱정되는 일이나, 성공에도, 실패에도, 좌절할 때까지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감사란, 되어진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을 믿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가 ‘좋아 하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라고 잘 못 생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멀어서 시내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와야 하는 곳에 사는 성도가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금요 철야기도 때에도 그 기도 제목을 두고 합심기도까지 했습니다. 몇 주 후에 그 가정은 승용차를 샀다고 자랑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승용차를 산 첫 주일에 교회를 오지 않았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심방을 갔더니만, 그들이 하는 말이, ‘승용차를 사고 보니 너무 좋아서 시운전 삼아 나들이를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그 가정은 한 번 두 번 예배를 빠지더니, 결국 발길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아니라, 승용차가 생겨서 좋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17장에 열 문둥병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문둥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제사장에게 보이러 가던 도중에 깨끗하게 나음 받은 것을 확인한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감사드렸습니다.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그리고는 감사드리기 위하여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영의 구원을 선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감사는 마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시편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그 사랑을 나누지 않으시렵니까? 사랑은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나누고, 베풀고, 받으면서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주 만나고, 자주 대화하고, 표현해야 깊어집니다. 잠언27:5절에서 “마음속으로 제아무리 아껴 준다 해도 드러내 놓고 꾸짖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내 마음속, 생각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은혜에 대한 보답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제 말씀대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기도의 교제를 쉬지 않으며, 모든 일에 마음과 생활로 감사하는 진실한 보답의 삶으로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맥추감사주일의 유래는 구약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유대인들이 430년간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끝내고, 모세의 인도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했습니다.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합니다. 그 때부터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이루게 됩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입성했습니다. 떠돌이 유목민이었던 유대인들이 땅을 차지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정착민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집도 생겼고 땅도 생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으로 이스라엘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절기를 말씀하셨습니다. 출애굽 때에 생명을 구원받은 유월절(무교절)과 일 년의 농사 중 가장 먼저 거둔 곡식을 하나님께 바치는 맥추절(칠칠절, 오순절), 일 년의 마지막 농산물을 거두어 들여 수장한 후에 지키는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이 그것입니다. 출애굽기23:14-17절입니다.
현대어성경 /“너희는 해마다 세 차례 내 앞에서 명절을 지켜라.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는 무교절을 지켜라. 내가 너희에게 이미 명령한대로 아빕월 가운데 지정한 시기에 이레 동안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을 먹어야 한다. 그 달에 너희가 애굽에서 나온 까닭이다. 너희가 내 앞에 나아올 때에는 누구든지 빈손으로 나타나서는 안 된다. 너희가 밭에 씨 뿌리고 애써 가꾸어 농사지은 것 가운데에서 첫 열매를 거두어들이는 맥추절을 지켜라. 또한 너희가 한 해 동안 애써 농사지은 것을 연말에 거두어들이는 추수절을 지켜라. 이렇게 남자들은 한해에 세 차례씩 주님이신 여호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 해 첫 농사를 지어 소산물을 거두고 그 첫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며, 일주일 동안 감사의 축제를 열고 온 백성이 기뻐했습니다. 이 절기가 맥추절입니다. 농산물에 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앞으로 살아갈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풍족한 양식을 이웃과 나누면서 하나님을 기뻐했습니다.
이 절기가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유목민인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세상에서 영의 생명도 없이 방황하며 떠돌아다니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향하여 목적도 없이 방황하던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출애굽할 때에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이었던 ‘초태생의 죽음’으로부터 구원한 것은 유월절 양의 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죽음의 천사가 유대인들이 머물고 있는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유월절 양의 피를 보면 뛰어 넘어 지나갔습니다. 이 유월절 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음으로 인하여 예수님의 속죄의 피가 우리 영에 가득 채워졌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면하고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한 약속의 땅인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나아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우리가 약속의 나라에 이르지 못한 나그네이지만, 이 땅에서 작은 천국을 이루고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우리에게 천국의 소망을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이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이 큰 감사의 절기에, 하나님께서 나와 가정과 직장과 사업에 복을 내리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을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첫 말씀이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기뻐하라.’고 한다고 해서 기뻐집니까? 세상에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합니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셨으며, 영원한 영광과 기쁨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확실히 믿는다면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설령 이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다고 해도 항상 한 순간도 빠짐없이 기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항상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섭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즉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들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게 주어지는 일상의 일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믿고 기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아들 둘을 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우산장수이고, 작은 아들은 짚신장수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두 아들의 장사 때문에 매일 매일을 근심과 걱정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날이 개어 햇볕이 쬐는 날이면 수산장수 큰 아들의 장사가 안 될 것을 걱정해야 했고, 그러다가 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짚신장수 작은 아들의 장사를 걱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해가 떠도 걱정, 날이 흐려도 걱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웃 마을에도 아들 둘을 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소금장수이고, 작은 아들은 장화장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날이 좋으면 소금장수인 큰 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이라서 기뻐했고, 비 오는 날이면 장화장수인 작은 아들의 장사가 잘 될 것이어서 기뻐했습니다. 그러니 해가 나도 좋고, 비가 와도 좋아했습니다.
이는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차이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어떤 것이 들어있느냐에 따라서 똑 같은 일을 두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걱정할 수도 있으며, 기뻐하고 감사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사람의 영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십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며,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피할 피난처이시며, 모든 일에 능력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든 일에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 염려가 생기고 어려움으로 눈물이 흐를 때면, 손을 내밀고 계시는 주님을 잡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불빛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면 앞길이 환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불빛을 등지고 나아가면 항상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가 앞을 막게 됩니다. 즉 성도는 빛이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주님을 향하여 나아가면 앞길이 환하게 밝아 실족할 염려가 없습니다. 반면에 주님을 등지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면 염려와 두려움과 고통의 그림자가 길을 막아 실족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초막절 마지막 날인 성일에 모여든 사람들에게 외치셨습니다. 요한복음7:37-38절입니다. 현대어성경/ “축제의 절정을 이루는 마지막 날에 예수께서는 군중들에게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른 사람은 다 내게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의 말씀대로 그 속에서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나올 것이다.”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함께 하시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생명수가 강같이 흘러나온다고 하셨습니다. 즉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뻐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풍성한 생명과 삶에 대한 약속입니다.
2. 하나님과의 교제를 쉬지 않는 것입니다.
본문 두 번째 말씀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것, 찬양하는 것, 예배하는 것 등. 그러나 이 모든 것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이끌어 가는 길이며, 하나님과 내가 쌍방 통행하는 길입니다. 기도는 많이 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무엘상12:23절에서,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기도를 만능열쇠라고 생각합니다. 기도는 결코 만능열쇠가 아닙니다. 기도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능력의 주님과 연결되는 통로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지하에 흐르고 있는 광천수가 좋다고 해서, 땅 속에 파이프를 묻고 집으로 배관을 연결하면 광천수가 나옵니까? 좋은 재료의 파이프를 사용해서 싱크대로, 세면실로, 욕조로, 세탁기로 통하는 배관을 완벽하게 했다고 해서 광천수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땅을 뚫고 광천수가 흐르는 지하수에 파이프를 연결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광천수가 콸콸 쏟아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무조건 기도만 많이 한다고 만사형통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수의 원천은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기도가 만능열쇠가 아니라, 예수님이 만능열쇠입니다. 기도는 능력이신 주님과 연결되게 하는 줄입니다.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능력이시며 생명수이신 예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지 않기 위함입니다. 자동차의 연료통과 엔진 사이에 연료를 흐르게 하는 호스가 연결되어 있어야 계속 엔진이 가동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주님과의 끊어지지 않는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며,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3. 모든 일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세 번째 말씀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범사(凡事)’란 말 그대로 ‘모든 일’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말합니다. 슬픈 일이나, 괴로운 일이나, 걱정되는 일이나, 성공에도, 실패에도, 좌절할 때까지도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감사란, 되어진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을 믿고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가 ‘좋아 하는 것’을 ‘감사하는 것’이라고 잘 못 생각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교회가 멀어서 시내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와야 하는 곳에 사는 성도가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금요 철야기도 때에도 그 기도 제목을 두고 합심기도까지 했습니다. 몇 주 후에 그 가정은 승용차를 샀다고 자랑하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승용차를 산 첫 주일에 교회를 오지 않았습니다. 주일이 지나고 심방을 갔더니만, 그들이 하는 말이, ‘승용차를 사고 보니 너무 좋아서 시운전 삼아 나들이를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그 가정은 한 번 두 번 예배를 빠지더니, 결국 발길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이 가정은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아니라, 승용차가 생겨서 좋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감사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누가복음17장에 열 문둥병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문둥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제사장에게 보이러 가던 도중에 깨끗하게 나음 받은 것을 확인한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꿇어 엎드려 감사드렸습니다. 주님은 물으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그리고는 감사드리기 위하여 돌아온 사마리아 사람에게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영의 구원을 선언하셨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감사는 마음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래서 시편50:23절에서 “감사로 제사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무엇으로 보답하겠습니까? 본문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그 사랑을 나누지 않으시렵니까? 사랑은 처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나누고, 베풀고, 받으면서 배워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자주 만나고, 자주 대화하고, 표현해야 깊어집니다. 잠언27:5절에서 “마음속으로 제아무리 아껴 준다 해도 드러내 놓고 꾸짖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내 마음속, 생각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은혜에 대한 보답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제 말씀대로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항상 기뻐하고, 기도의 교제를 쉬지 않으며, 모든 일에 마음과 생활로 감사하는 진실한 보답의 삶으로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