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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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6-21 21:06
♡♥♡ 좋은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 / 잠4:5-9
*** 들어가는 말
현대어성경 / “5. 지혜를 얻으려고 애쓰거라.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려고 온 힘을 기울여라. 내가 하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어겨서는 안 된다. 6. 지혜를 버릴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라. 지혜가 너를 감싸 주리라. 여인을 사랑할 때 그 여인에게 빠지듯, 그렇게 지혜를 사랑해 보아라. 사람들이 보석을 소중하게 간직하듯 지혜가 너를 애지중지하리라. 7.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 지혜가 아니냐? 지혜를 얻으려고 애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네가 땀 흘리며 애써 벌어들인 것을 모두 다 팔아 깨달음을 사들여라. 8. 지혜를 매우 소중하게 여겨라. 그러면 지혜도 너를 소중하게 여기리라. 지혜를 고이고이 품속에 간직하여라. 그러면 지혜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9. 지혜는 얼마나 휘황찬란하게 빛나는지! 머리 위에 얹어 놓은 화려한 화관과 같으니라.”
사람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은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귀영화’로 집약되는 것들입니다. 즉 재물, 권력, 명예, 출세 등. 잠시 세상에 머무는 동안 누리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 자는 잠언을 통하여 사람들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본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잠언22:1절에서, “수많은 재산을 긁어모으는 것보다 명예를 얻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고,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고 아껴 주는 것이 은과 금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현대어성경)고 했으며, 잠언23:23절에서는, “진실을 사들여라. 절대로 팔아넘겨서는 안 된다. 지혜, 통찰력, 가르침도 마찬가지이다.”(현대어성경)라고 했습니다.
지혜 자는 한결같이 지혜와 명철과 훈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얻도록 힘쓰고, 고이 간직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영의 생명과 관계되는 것들입니다. 즉 잠시 세상에 머무는 동안만 누리게 되는 것들보다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비유를 많이 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마태복음13:44-46절을 봅시다.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화’와 ‘값진 진주’에 비유하셨습니다. 이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이며,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구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을 찾아야 하며, 그것을 소유하고 지켜야 합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헌 구두 한 켤레와 소 한 마리를 바꾼 일이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러합니다.
어떤 농부가 장날에 황소 한 마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소를 몰고 한가하게 시골길을 가다가 길 가에 버려진 구두 한 짝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거의 새 구두나 다름없는 좋은 구두였습니다. 그런데 아깝게도 한 짝뿐이니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거참! 아까운 구두가 한 짝 뿐이군.”하고는 길 옆 숱 속에다 휙 집어던지고는 다시 길을 갔습니다. 한 5리쯤 갔는데 길 가에 또 구두 한 짝이 있었습니다. 주워보니까 아까 버린 그 구두의 짝이었습니다. 농부는 길 가 소나무에다 소를 매 놓고는 아까 버린 그 구두 짝을 찾으려고 달려갔습니다. 숲 속을 한참 헤매다가 그 구두 한 짝을 찾았습니다. 흐뭇한 기분으로 소를 매어 놓은 곳으로 달려와 보니 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농부는 어떤 좋지 않은 사람이 소를 훔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결국, 헌 구두 한 켤레를 황소와 바꾼 격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이없는 일이 오늘에도 버젓이 보란 듯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내막을 한 번 살펴봅시다.
1. 헛된 꿈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보물선’ 돈스코이 호의 잔해가 발견된 것이 최근 화제가 됐습니다.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함대에 쫓기다 침몰된 러시아의 회계함인 돈스코이 호에 대한 이야기는 100여 년 동안 뭍사람들에게 호기심이었습니다. 보물선에 대한 이야기는 1970년대 이후부터 서해와 남해를 중심으로 일년에 한 두 번꼴로 신문지면을 장식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곤 했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쫓아다니는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물선뿐입니까? 사람들의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꿈을 위하여 수많은 복권들이 나타났습니다. 헛된 꿈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땅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하여 다니다가 어느 밭에 보화가 묻혀있음을 알고는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땅을 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진주 장사가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는 역시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찾아야 할 보배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없어질 보물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육신이 있는 동안에만, 그것도 잠깐의 젊은 시절 동안만 누리게 되는 육신의 쾌락을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우리 육신이 죽으면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매어 일생을 수고하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하지 못하고 곧 없어지게 될 헛된 꿈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엘도라도’라는 도시를 아십니까? ‘엘도라도’라는 팝송제목도 있습니다. 컨츄리 꼬꼬가 우리나라 버전으로 부른 노래도 있습니다. 엘도라도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변에 있다고 상상된 황금의 땅입니다.
어느 젊은 기사가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서 말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가다가 ‘엘도라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엘도라도가 나타나지 않자 또 묻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답은 같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 기사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 늙어서 지쳐 쓰러졌습니다. 그 때, 그의 앞에는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늙은 기사는 그 환상을 향하여 “여보시오.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가 어디에 있소?”라고 소리칩니다. 그때, “엘도라도는 저 달 속에 있으니 계속 더 나아가시오.” 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상의 것은 아무리 가지고 또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16: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보다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지혜를 찾고 얻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너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지혜와 명철을 사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무엇이고 명철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벌어들인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라고 합니까? 잠언9:10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으며, 욥기28:28절에서는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고 따르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지를 지으시고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며,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명철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호세아6:6절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2:4절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지혜로움입니다. 우리의 생활 중에서 어떤 일에서든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곧 그 일의 성공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면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지혜와 명철은 어떻게 얻습니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고보서1: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길은 기도뿐입니다. 기도하는 생활을 통하여 성도들의 걸음을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보장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 들어가는 말
현대어성경 / “5. 지혜를 얻으려고 애쓰거라. 세상의 이치를 깨달으려고 온 힘을 기울여라. 내가 하는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너에게 이르는 말을 어겨서는 안 된다. 6. 지혜를 버릴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라. 지혜가 너를 감싸 주리라. 여인을 사랑할 때 그 여인에게 빠지듯, 그렇게 지혜를 사랑해 보아라. 사람들이 보석을 소중하게 간직하듯 지혜가 너를 애지중지하리라. 7.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귀한 것이 지혜가 아니냐? 지혜를 얻으려고 애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네가 땀 흘리며 애써 벌어들인 것을 모두 다 팔아 깨달음을 사들여라. 8. 지혜를 매우 소중하게 여겨라. 그러면 지혜도 너를 소중하게 여기리라. 지혜를 고이고이 품속에 간직하여라. 그러면 지혜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9. 지혜는 얼마나 휘황찬란하게 빛나는지! 머리 위에 얹어 놓은 화려한 화관과 같으니라.”
사람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똑 같은 것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의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부귀영화’로 집약되는 것들입니다. 즉 재물, 권력, 명예, 출세 등. 잠시 세상에 머무는 동안 누리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서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 자는 잠언을 통하여 사람들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말씀은 본문 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잠언22:1절에서, “수많은 재산을 긁어모으는 것보다 명예를 얻는 것이 훨씬 더 소중하고, 이웃을 따뜻하게 대하고 아껴 주는 것이 은과 금을 얻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현대어성경)고 했으며, 잠언23:23절에서는, “진실을 사들여라. 절대로 팔아넘겨서는 안 된다. 지혜, 통찰력, 가르침도 마찬가지이다.”(현대어성경)라고 했습니다.
지혜 자는 한결같이 지혜와 명철과 훈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얻도록 힘쓰고, 고이 간직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영의 생명과 관계되는 것들입니다. 즉 잠시 세상에 머무는 동안만 누리게 되는 것들보다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을 소중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비유를 많이 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마태복음13:44-46절을 봅시다.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와 “값진 진주를 구하는 장사의 비유”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화’와 ‘값진 진주’에 비유하셨습니다. 이는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이며,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구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을 찾아야 하며, 그것을 소유하고 지켜야 합니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헌 구두 한 켤레와 소 한 마리를 바꾼 일이 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러합니다.
어떤 농부가 장날에 황소 한 마리를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소를 몰고 한가하게 시골길을 가다가 길 가에 버려진 구두 한 짝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거의 새 구두나 다름없는 좋은 구두였습니다. 그런데 아깝게도 한 짝뿐이니 쓸모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거참! 아까운 구두가 한 짝 뿐이군.”하고는 길 옆 숱 속에다 휙 집어던지고는 다시 길을 갔습니다. 한 5리쯤 갔는데 길 가에 또 구두 한 짝이 있었습니다. 주워보니까 아까 버린 그 구두의 짝이었습니다. 농부는 길 가 소나무에다 소를 매 놓고는 아까 버린 그 구두 짝을 찾으려고 달려갔습니다. 숲 속을 한참 헤매다가 그 구두 한 짝을 찾았습니다. 흐뭇한 기분으로 소를 매어 놓은 곳으로 달려와 보니 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농부는 어떤 좋지 않은 사람이 소를 훔치기 위해서 계획적으로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진 것입니다. 결국, 헌 구두 한 켤레를 황소와 바꾼 격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어이없는 일이 오늘에도 버젓이 보란 듯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내막을 한 번 살펴봅시다.
1. 헛된 꿈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울릉도 저동 앞바다에서 ‘보물선’ 돈스코이 호의 잔해가 발견된 것이 최근 화제가 됐습니다. 1905년 러일전쟁 때 일본함대에 쫓기다 침몰된 러시아의 회계함인 돈스코이 호에 대한 이야기는 100여 년 동안 뭍사람들에게 호기심이었습니다. 보물선에 대한 이야기는 1970년대 이후부터 서해와 남해를 중심으로 일년에 한 두 번꼴로 신문지면을 장식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곤 했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쫓아다니는 꿈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물선뿐입니까? 사람들의 일확천금(一攫千金)의 꿈을 위하여 수많은 복권들이 나타났습니다. 헛된 꿈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여주는 단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땅에 묻혀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하여 다니다가 어느 밭에 보화가 묻혀있음을 알고는 전 재산을 팔아서 그 땅을 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진주 장사가 값진 진주를 발견하고는 역시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이 찾아야 할 보배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없어질 보물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육신이 있는 동안에만, 그것도 잠깐의 젊은 시절 동안만 누리게 되는 육신의 쾌락을 쫓아다니는 사람도 있고, 우리 육신이 죽으면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질에 매어 일생을 수고하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영원하지 못하고 곧 없어지게 될 헛된 꿈을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엘도라도’라는 도시를 아십니까? ‘엘도라도’라는 팝송제목도 있습니다. 컨츄리 꼬꼬가 우리나라 버전으로 부른 노래도 있습니다. 엘도라도는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강변에 있다고 상상된 황금의 땅입니다.
어느 젊은 기사가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서 말을 타고 출발했습니다. 가다가 ‘엘도라도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엘도라도가 나타나지 않자 또 묻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답은 같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나타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 기사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 늙어서 지쳐 쓰러졌습니다. 그 때, 그의 앞에는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그 늙은 기사는 그 환상을 향하여 “여보시오.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가 어디에 있소?”라고 소리칩니다. 그때, “엘도라도는 저 달 속에 있으니 계속 더 나아가시오.” 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세상의 것은 아무리 가지고 또 가져도 만족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마태복음16: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보다 중요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2. 우리는 지혜를 찾고 얻어야 합니다.
본문에서는 너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라도 지혜와 명철을 사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무엇이고 명철이 무엇이기에 우리가 벌어들인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그것을 사라고 합니까? 잠언9:10절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으며, 욥기28:28절에서는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고 따르는 것이 지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천지를 지으시고 모든 생명의 주인이시며,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명철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하나님께서는 호세아6:6절에서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전서2:4절에서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지혜로움입니다. 우리의 생활 중에서 어떤 일에서든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한다는 것은 곧 그 일의 성공을 의미합니다. 인생이 성공적인 삶을 살고자 한다면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지혜와 명철은 어떻게 얻습니까?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고보서1:5절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길은 기도뿐입니다. 기도하는 생활을 통하여 성도들의 걸음을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삶을 보장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광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