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환경을 뒤집는 믿음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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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9-20 18:09
♡♥♡ 삶의 환경을 뒤집는 믿음 / 막 5:25-34
*** 들어가는 말
“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다.” 혈루병 여인의 고백인 이 말씀은 지금 전하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즉 사람의 행동과 생활 속의 모든 일들은 그 사람의 마음의 계획에 따라 움직여지고 나타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활로 나타나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생활로 나타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께 대한 긍정적이고 확신 하는 마음입니다.
신앙이 좋다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아가씨가 분명히 노처녀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가씨는 입버릇처럼 “내 신랑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실 것이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래, 네 신랑감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두고 보자.”고 하며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해 후에 이 아가씨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바로 하늘에서 떨어진 청년이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가씨의 집은 군부대가 있는 마을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공수 부대원들이 낙하 훈련을 하던 중 바람 때문에 한 병사가 아가씨의 집 마당으로 떨어졌습니다. 아가씨의 응급 치료를 받은 병사는 부대로 귀환했습니다. 그 병사 역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는데, 그가 제대한 후에 아가씨를 찾아왔고 결혼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 이야기는 자신의 믿음대로 이루어 받은 여 성도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11:23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이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적 이야기의 주인공인 여인은 혈루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혈루병’은 만성적인 자궁 출혈을 일컫는 부인병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12년 동안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병을 고쳐보려고 의원들을 수 없이 찾아다녔으며, 그로 인하여 재산도 다 탕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여인에게 남은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병이 문둥병처럼 율법에서 부정한 질병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혈루병은 레위기15:2-15, 25-31절에서 말씀하는 ‘유출병’에 속하는 질병입니다. 2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몸에 유출병(流出病)이 있으면 그 유출병을 인하여 부정한 자라.”고 하셨으며, 13-15절(한글 킹제임스)에서 “유출병이 있는 자가 자기 유출병이 깨끗해지면, 자기의 깨끗함을 위하여 칠 일을 헤아려서 자기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자기 몸을 씻을 것이니 그리하면 깨끗하게 되리라. 여덟째 날에 그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회중의 성막 문, 주 앞에 가서 그것들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들을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한 마리는 번제물로 바칠 것이며, 제사장은 그 사람의 유출병을 위하여 주 앞에서 속죄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정한 질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하기 때문에 성전에 갈 수도 없으며, 예배에 참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사람이 만진 모든 것이 다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이 여인은 사회에서 격리되었으며, 신앙적으로도 죄인으로 인정되어 버림을 받았습니다. 병이 낫기 전에는 결코 사회로 복귀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성전에 갈 수도 없습니다. 여인 앞에는 오직 절망뿐이었습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마음의 병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의 절망은 더욱 심각합니다. 신앙인에게서의 절망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죄까지 더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꼭 같은 일은 아닐지라도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하여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여 ‘될 대로 되라.’고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박사학위까지 가진, 한때 잘 나가던 사람이 지금은 노숙자가 되어 서울 역 지하도에서 망가진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금도 생활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면 이러한 절망적인 환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없겠습니까? 그 해답은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혈루병 여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뒤집었으며, 고통을 즐거움으로 뒤집었으며, 버림 받음에서 관심으로 뒤집었으며, 죄인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뒤집었습니다. 어떻게 한 순간에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까? 나의 삶의 환경을 뒤집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절망 속에 있던 혈루병 여인에게 한 가닥 희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 소문은 예수님께서 온갖 질병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까지도 살리신다는 그런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붙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마침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여인은 망설임 없이 예수님께로 다가갑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의 영과 육신의 삶을 지키려면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단순히 주일에 예배 참석하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러하다면 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가복음10:24-2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는 재물이 많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나 시간이나 재능이나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께 대하여는 인색하면서도, 자신이나 가정을 위하여 투자하는 사람들이 부자입니다.
우리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45:12절에서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고 하시며, 예레미야33:2절에서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45:11절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더 머뭇거리지 말고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고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2.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28절을 봅시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다.” 는 말입니다. 이 고백에는 흔들림이 없는 확신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옛 가요 중에 아주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부르는 주제가가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이정표 없는 거리”라는 노래인데, ‘이정표 없는 거리 헤매 도는 삼거리길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세 갈래길 삼거리에 비가 내린다. 바로가면 경상도길 돌아가면 전라도길 이정표 없는 거리 저리가면 충청도길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이런 노랫말입니다.
우왕좌왕 하며 흔들리는 세상 사람들의 삶을 그린 노랫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싫어하시는 모습입니다. 성도의 삶이 이러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열왕기상18:21절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했으며, 요한계시록3:15-16절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에게 응답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1:6-8절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께로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구하는 것을 주님이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심을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적절하게 이루실 것입니다.
3. 환경에 매이지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혈루병 여인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와서 가만히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왜 이렇게 은밀하게 했겠습니까? 말씀대로 “내가 옷에만 손을 대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겠습니까? 물론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은밀하게 행동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앞에서 본 대로 혈루병은 율법에서 부정한 병으로 낙인찍은 죄에 속한 것입니다. 이 병에 걸려서 부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즉 혈루병 여인의 환경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예수님께 당당하게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사람들로부터 돌에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환경적으로는 이런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혈루병 여인은 환경에 매어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기회를 생각하면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여인에게는 다음 기회를 기다릴 만큼 여유로운 마음이 없었습니다. 다급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도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아직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수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미적거리지 마십시오. ‘좀 더 즐기고…, 형편이 나아지면…, 가정의 기반을 잡아놓고…, 자식을 키워 놓고…’라고 주님께 헌신하는 것을 미루지 마십시오. 기회는 나를 위하여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옛말에도 “기회는 뒷머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즉 지나가버리면 잡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사야55:6절에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셨으며, 예레미야33:3절에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7:7절에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공통점은 부르짖고,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도전하여 차지하는 자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영적이고 육신적인 모든 환경이 하나님께 합당하다면 지금 그대로 있어도 좋겠지요. 그러나 바뀌고 변화해야 한다면 이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상의 기회는 지금임을 잊지 맙시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주님을 붙잡고, 흔들림이 없는 믿음으로 결단하고 도전하여 환경을 이겨나갑시다. 그리하여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주님의 기쁨이 되며, 영과 육신의 모든 삶에서 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다.” 혈루병 여인의 고백인 이 말씀은 지금 전하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입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세상만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말합니다. 즉 사람의 행동과 생활 속의 모든 일들은 그 사람의 마음의 계획에 따라 움직여지고 나타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생활로 나타나며,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생활로 나타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께 대한 긍정적이고 확신 하는 마음입니다.
신앙이 좋다고 교회에서 칭찬을 받는 아름다운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아가씨가 분명히 노처녀로 살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가씨는 입버릇처럼 “내 신랑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실 것이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래, 네 신랑감이 하늘에서 떨어지나 두고 보자.”고 하며 비웃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몇 해 후에 이 아가씨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신랑은 바로 하늘에서 떨어진 청년이었습니다.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아가씨의 집은 군부대가 있는 마을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 공수 부대원들이 낙하 훈련을 하던 중 바람 때문에 한 병사가 아가씨의 집 마당으로 떨어졌습니다. 아가씨의 응급 치료를 받은 병사는 부대로 귀환했습니다. 그 병사 역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는데, 그가 제대한 후에 아가씨를 찾아왔고 결혼까지 하게 된 것입니다.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 이야기는 자신의 믿음대로 이루어 받은 여 성도의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11:23절에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본문에서도 이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먼저, 본문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본문에 등장하는 이적 이야기의 주인공인 여인은 혈루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혈루병’은 만성적인 자궁 출혈을 일컫는 부인병입니다. 그런데 여인은 12년 동안 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여인은 병을 고쳐보려고 의원들을 수 없이 찾아다녔으며, 그로 인하여 재산도 다 탕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여인에게 남은 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 병이 문둥병처럼 율법에서 부정한 질병으로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혈루병은 레위기15:2-15, 25-31절에서 말씀하는 ‘유출병’에 속하는 질병입니다. 2절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누구든지 몸에 유출병(流出病)이 있으면 그 유출병을 인하여 부정한 자라.”고 하셨으며, 13-15절(한글 킹제임스)에서 “유출병이 있는 자가 자기 유출병이 깨끗해지면, 자기의 깨끗함을 위하여 칠 일을 헤아려서 자기 옷을 빨고 흐르는 물에 자기 몸을 씻을 것이니 그리하면 깨끗하게 되리라. 여덟째 날에 그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가지고 회중의 성막 문, 주 앞에 가서 그것들을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들을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한 마리는 번제물로 바칠 것이며, 제사장은 그 사람의 유출병을 위하여 주 앞에서 속죄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부정한 질병에 걸린 사람은 부정하기 때문에 성전에 갈 수도 없으며, 예배에 참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부정한 사람이 만진 모든 것이 다 부정하게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활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이 여인은 사회에서 격리되었으며, 신앙적으로도 죄인으로 인정되어 버림을 받았습니다. 병이 낫기 전에는 결코 사회로 복귀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성전에 갈 수도 없습니다. 여인 앞에는 오직 절망뿐이었습니다.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마음의 병입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의 절망은 더욱 심각합니다. 신앙인에게서의 절망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의 죄까지 더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꼭 같은 일은 아닐지라도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하여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여 ‘될 대로 되라.’고 삶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박사학위까지 가진, 한때 잘 나가던 사람이 지금은 노숙자가 되어 서울 역 지하도에서 망가진 인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금도 생활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면 이러한 절망적인 환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은 없겠습니까? 그 해답은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혈루병 여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뒤집었으며, 고통을 즐거움으로 뒤집었으며, 버림 받음에서 관심으로 뒤집었으며, 죄인의 자리에서 구원의 자리로 뒤집었습니다. 어떻게 한 순간에 그렇게 될 수 있었습니까? 나의 삶의 환경을 뒤집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절망 속에 있던 혈루병 여인에게 한 가닥 희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아마도 그 소문은 예수님께서 온갖 질병을 고쳐주시고, 죽은 자까지도 살리신다는 그런 이야기일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붙잡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마침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여인은 망설임 없이 예수님께로 다가갑니다. 어쩌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르는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의 영과 육신의 삶을 지키려면 예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단순히 주일에 예배 참석하는 것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러하다면 이런 말씀도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가복음10:24-2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자는 재물이 많은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나 시간이나 재능이나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께 대하여는 인색하면서도, 자신이나 가정을 위하여 투자하는 사람들이 부자입니다.
우리의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이사야45:12절에서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고 하시며, 예레미야33:2절에서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45:11절에서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붙잡으십시오. 더 머뭇거리지 말고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환경을 고치시고 다스리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2.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28절을 봅시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다.” 는 말입니다. 이 고백에는 흔들림이 없는 확신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옛 가요 중에 아주 우유부단한 사람들이 부르는 주제가가 있습니다.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이정표 없는 거리”라는 노래인데, ‘이정표 없는 거리 헤매 도는 삼거리길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차라리 돌아갈까 세 갈래길 삼거리에 비가 내린다. 바로가면 경상도길 돌아가면 전라도길 이정표 없는 거리 저리가면 충청도길 와도 그만 가도 그만…’이런 노랫말입니다.
우왕좌왕 하며 흔들리는 세상 사람들의 삶을 그린 노랫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싫어하시는 모습입니다. 성도의 삶이 이러하면 정말 큰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우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열왕기상18:21절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고 했으며, 요한계시록3:15-16절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에게 응답을 기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1:6-8절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께로 확실하게 마음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구하는 것을 주님이 반드시 들으시고 응답하심을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적절하게 이루실 것입니다.
3. 환경에 매이지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혈루병 여인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와서 가만히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왜 이렇게 은밀하게 했겠습니까? 말씀대로 “내가 옷에만 손을 대어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겠습니까? 물론 확신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은밀하게 행동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앞에서 본 대로 혈루병은 율법에서 부정한 병으로 낙인찍은 죄에 속한 것입니다. 이 병에 걸려서 부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즉 혈루병 여인의 환경은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예수님께 당당하게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잘못하면 사람들로부터 돌에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환경적으로는 이런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혈루병 여인은 환경에 매어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다음 기회를 생각하면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여인에게는 다음 기회를 기다릴 만큼 여유로운 마음이 없었습니다. 다급했던 것입니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여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도전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아직 많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직도 수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미적거리지 마십시오. ‘좀 더 즐기고…, 형편이 나아지면…, 가정의 기반을 잡아놓고…, 자식을 키워 놓고…’라고 주님께 헌신하는 것을 미루지 마십시오. 기회는 나를 위하여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옛말에도 “기회는 뒷머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즉 지나가버리면 잡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사야55:6절에서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고 하셨으며, 예레미야33:3절에서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7:7절에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공통점은 부르짖고,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도전하여 차지하는 자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영적이고 육신적인 모든 환경이 하나님께 합당하다면 지금 그대로 있어도 좋겠지요. 그러나 바뀌고 변화해야 한다면 이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최상의 기회는 지금임을 잊지 맙시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주님을 붙잡고, 흔들림이 없는 믿음으로 결단하고 도전하여 환경을 이겨나갑시다. 그리하여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주님의 기쁨이 되며, 영과 육신의 모든 삶에서 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