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여유로운 삶의 축복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250회 작성일 2003-08-30 21:10
♡♥♡ 여유로운 삶의 축복 / 막6:30-33

*** 들어가는 말

여러분, 살아가는 일에 많이 바쁘시죠? 요즈음 만나는 사람들마다 거의 대부분이 ‘시간이 너무 잘 간다.’고 말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시간은 같은 시간인데 하루해가 왜 이리도 짧은지. 한 주간도 훌쩍 지나가 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120년을 살았지만 일생을 돌아보면서 “날아가나이다.”라고 세월의 빠름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지고, 무엇이든지 빨리 하려고 서두릅니다. 아이들이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부모도 있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도 빨리 해야 하고, 돈을 모으는 것도 빨리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루 스물네 시간이 부족하듯이 공부하고 일합니다. 특히 우리 민족의 성향이 눈에 띄게 조급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평가하는 말 중에 “빨리 빨리”라는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뿐만 나이라 우리나라 사람을 접했던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라는 말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이런 빠른 템포에 맞추어 주문 즉시 먹을 수 있고, 차를 타고 가면서도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fast food) 사업이 날로 번창합니다. 대형 매장의 식료품 코너에는 수많은 즉석요리 제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빠르고 획일적인 인스턴트식품(instant food) 에 입맛이 길들고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요즈음 도시 교회들에서는 예배시간이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예전처럼 밤을 새우며 철야기도를 하는 모습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봉사도 대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부산의 어느 교회에서는 교회당 확장 공사 후에 대청소와 화단 가꾸기 등을 위하여 성도들의 참여를 당부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일에 낯선 사람들이 더러 있어서 부교역자가 “어떻게 오셨습니까?”라고 물었더니 “○○ 권사님 대신 왔습니다.”라며 하루 품삯을 받고 왔다고 하더랍니다.

너무 바빠서 아니면 땀 흘리는 봉사가 싫어서 다른 사람을 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도 다른 사람을 대신 보낼까요?

저 역시도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부교역자 시절에는 정말 하루 스물네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가정을 위하여 시간을 낸다든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내는데 인색했습니다. 때로는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바쁘게 사는지’를 되묻곤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삶의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사셨던 생애가 많은 일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조급함이 전혀 신앙이나 삶에 덕이 되지 않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잠언29:20절(현대어성경)에서는 “성질이 급하여 생각 없이 말하는 사람을 보았느냐? 그런 사람보다는 차라리 어리석은 이에게 바랄 것이 더 있으리라.”고 했으며, 전도서5:2절(공동번역)에서는 “하나님께 무엇인가 바치겠다고 너무 성급한 생각을 하지 말고 조급하게 입을 열지도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모름지기 말이 적어야 한다.” 고 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3:4절에서는 말세를 사는 사람들의 특징 중에 “앞뒤를 가리지 않는 조급함”을 꼽고 있습니다.

본문을 보시면 식사를 하지 못할 정도로 바쁜 제자들을 위하여 배려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둘씩 짝을 지어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사람들의 생활을 돌아보라고 삶의 현장으로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은 열심히 봉사하고 가르치고 전했습니다. 제자들이 돌아와서 자신들이 했던 일을 주님께 보고했습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 잠간 쉬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먼 길을 달려가야 하는 제자들을 위한 주님의 배려였습니다.

우리의 신앙의 경주는 잠간 달리다가 마는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우리 생애가 끝나는 순간까지 달려야 하는 먼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 순간 살다가 말 것처럼 죽도록 바쁘게 삽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는 40대 50대의 한참 일할 나이에 생을 마치는 사망률이 세계 상위권을 달리고 있습니다. 이는 젊었을 때에 자신을 너무 혹사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비록 이 땅에서 3년의 짧은 공생애를 우리에게 남기셨지만,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위대한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삶에서 여유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삶의 여유란 ‘한가함’이라든지 ‘게으름’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본을 보이신 여유로운 삶의 모습을 살펴봅시다.

먼저, 여유로운 삶은 자신을 돌아보는 삶입니다.

마가복음1:35절입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지셨습니다. 이 시간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시간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계획을 이루시도록 자리를 비워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런 여유가 없습니다. 바쁘게 일어나서 아침밥을 먹을 여유조차 없이 일터로 나가고, 학교로 갑니다. 자신을 돌아보거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눌 시간은 엄두조차 내지를 못합니다. 그러니 하루를 하나님께 부탁할 수도 없겠지요. 당연히 하나님 없이 자신이 모든 것을 하려고 하니 삶이 더욱 바빠지고, 짜증이 나고, 두통이 밀려오고, 일은 꼬이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이 크고 많을수록 더욱 하나님과의 교제를 깊이 하는 여유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도 그러하셨고, 예수님의 이적을 체험하려는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일이 산더미처럼 쌓일 때도 그러하셨습니다. 누가복음5:16절입니다. “예수는 물러 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일이 많고 큰일일수록 더 많은 힘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일이 많습니까? 바쁩니까? 주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더 깊이 더 많이 가지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먹어야 살고, 일이 많고 힘들수록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영(靈)도 하나님과의 더 깊은 교제를 요구합니다. 건강을 돌아보지 않고 일하다가 쓰러지고 나면 어떻게 일합니까? 우리의 영도 하나님 없이 살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집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진다는 것은 영원한 파멸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여유로운 삶입니다.

다음으로, 여유로운 삶은 주변을 돌아보는 삶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일만 해도 힘겨울 만큼 크고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나니 같은 제자들을 어루만지시며 자상하게 배려하셨습니다. 울퉁불퉁한 성격, 조급하고, 배반하고, 자만하고, 인내할 줄 모르는 등 그야말로 제자들은 훈련되지 못한 망아지처럼 천방지축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나무라시기 보다는 한걸음씩 성장하도록 이끄시고 배려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병 고침을 받으려고, 또는 자신들의 욕심을 이루려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군중들을 먹이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서도 베다니의 나사로 남매를 찾는 것을 잊지 않으셨고, 모든 사람들이 미워하고 소외시켰던 뽕나무 위의 삭개오를 만나주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무덤에 안치되자, 3년이나 공들여 가르쳤던 제자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가장 먼저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그곳에는 실망과 좌절감으로 인하여 옛날로 돌아가 버린 베드로와 안드레 등 일곱 제자가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밤새도록 그물질하고 돌아올 제자들을 위하여, 호숫가에서 불을 피우시고 따뜻한 음식까지 준비하시고 기다리셨습니다. 요한복음21:9절에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고 현장을 설명합니다.
주변을 돌아본다는 것은 그저 한가롭게 소일삼아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이웃에 가서 잡담하며 보내는 한가로운 시간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일가친척을 포함하여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 내가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섬기고 봉사하고, 작으나마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잠언21:13절에서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으며, 19: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여유로운 삶이란 자신과 가족들만 볼 줄 아는 근시안이 아니라, 다른 삶에도 관심을 가질 줄 아는 관용과 이해와 섬김의 삶입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좀 더 기반을 잡아놓고 그 때 가서 봅시다.’라고 하기도 하며, ‘지금은 나나 가정도 돌아볼 여유가 없는데…’라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고 하십니다. 우리의 생명은 내가 기반잡고, 성공할 때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지금이 내 생애의 최상의 시간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래서 지금 내게 생명을 주시고, 활동할 수 있게 하시고, 잠잘 집과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이 있음을 만족하고 감사하면서 주변을 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내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최상의 삶으로 가꾸어가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 더 큰 것으로 맡겨주실 것입니다. 누가복음16:12절에서 주님은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라고 하셨고, 마태복음25:21절의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삶에 내리시는 복입니다.

요즈음에는 세계적으로 ‘천천히 살기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슬로우푸드(slow food)점들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의 호응을 얻는다고 합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며칠간의 불볕더위로 만여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독거노인들이라고 합니다.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자랑하는 나라가 세계적으로 망신을 당했습니다. 복지는 잘 되어 있을지 몰라도 이웃에 대한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프랑스는 사회 전반에서 각성운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저와 여러분이 주님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나, 이웃 또는 주변과의 관계에서나 아름답고 여유로운 삶으로 만들어 갑시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기쁨과 영광이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작은 관심과 배려로 인하여 사랑과 행복을 나누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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