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망하는 나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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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07-29 15:51
♡♥♡ 내가 소망하는 나라 / 요한계시록 21:1-8
*** 들어가는 말
며칠 전에 어떤 분을 만나 이야기 하는 중에 “왜 나라가 이 모양이냐!”라고 탄식하면서, “서민들은 죽도록 일해도 빠듯한데, 정치인들은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는다.”고 분노했습니다. 이것이 육신이 사는 세상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야 이 세상이 자신들의 전부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기를 누리고 호의호식하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낙을 누릴 세상이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겠지요.
1700년대의 유명한 프랑스 작가이자 사상가인 ‘볼테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비극인 ‘오이디푸스’를 쓰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볼테르는 ‘예수회’ 학교를 나왔으면서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인쇄소까지 마련하고 기독교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책을 찍어냈습니다. 그는,
“앞으로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 자들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계몽주의가 판을 칠 때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좋아했고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기고만장한 볼테르는 매일 파리의 큰길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볼테르도 늙고 병들었습니다. 어느 날 회진하러 온 의사를 붙들고 사정을 했습니다.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준다면 내 전 재산을 다 드리겠소.”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흔들면서 “나는 6개월이 아니라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
그리고 볼테르가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던 10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수는 오히려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비방하던 책을 찍던 그의 인쇄소는 성경을 찍어내는 인쇄소가 되었고, 그의 집은 성경을 보관하는 창고가 됐습니다.
이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의 어리석음입니다. 사람들은 볼테르처럼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가 없는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갓 육신의 보잘것없는 생명과 힘을 의지하고서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비방하고 훼방합니다. 그러면서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하여 쌓고, 즐기고, 쾌락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육신의 쾌락은 그 끝이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결별된 영의 죽음이며, 그 영원의 시간을 지옥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8: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은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낙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문의 표현대로 본다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이며, 눈물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일도 없고, 아픈 것도 없는 행복의 나라입니다. 그 곳에 우리 주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영원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 곳이 바로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이며, 우리에게 약속된 나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나라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세상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잊지 않고 지켜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나타내는 신분표시입니다. 이 번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그 일이 그 나라의 국민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외국 근로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으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국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비록 지금은 육신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지만, 진정한 소속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베드로전서2:9절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잊지 않아야 하며, 또한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십시오. “이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 “이 행동이 하나님 나라의 국민 된 사람으로서 행하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부끄럽지 않고 만족한다면 성도의 신분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봅시다.
본문2절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나 깨나 잊지 않아야 할 우리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본문5절을 봅시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가 지금의 세상이 변해서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롭게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지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전혀 새로운 이 나라는 새로운 사람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마태복음9:16-17절을 봅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여기에서 생베조각이나 새 포도주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사상을 의미하며,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부대는 지나간 옛 시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드신 우리의 나라는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새로워져야 합니다. 육신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옛 사고방식과 생활로는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시며, 에베소서4:22-24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고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교수인 ‘제럴드 캘러한’ 교수가 쓴 ‘오딧세이 강’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 그리고 나의 식생활은 마치 심장마비나 대장암은 중년남자의 죽음과 상관이 없다는 듯이 먹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는 변화를 갈망하는 작가의 심경고백입니다. 생활의 변화를 갈망하지만 여전히 옛 습관에 묻혀 살아가는 약한 인생에 대한 탄식입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수많은 사람들이 합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다시 옛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변화란 이렇게 어렵습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 전체를 변혁시키는 것이나 혹은 어떤 습관들을 버리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열면 극적인 변화도 가능합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내가 소망하는 나라를 생각하고, 나 자신의 신분을 생각합시다.
‘부활’이라는 글을 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는 자신이 어떻게 악에서 선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영의 삶에서부터 육신의 삶으로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를 제외하고는 결코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일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되었지만, 그가 그리스도의 진정한 일군이 되기까지는 14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오직 꾸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이 지금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지금 이 땅의 고통 많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 아름답고 신비롭고 행복한 나라를 얻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계시록22:7절을 봅시다. 주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소망하는 나라를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6:27절에서,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애써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송에도 있지요. “세상부귀 안일함과 세상근심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만날까. 세상일에 얽매여서 세상일만 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만날까.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주님께서 보시고 훗날에 나를 보고 무어라 하실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봅시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가 소망하는 이 나라를 위하여 부끄럽지 않는 삶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며칠 전에 어떤 분을 만나 이야기 하는 중에 “왜 나라가 이 모양이냐!”라고 탄식하면서, “서민들은 죽도록 일해도 빠듯한데, 정치인들은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는다.”고 분노했습니다. 이것이 육신이 사는 세상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야 이 세상이 자신들의 전부이기 때문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인기를 누리고 호의호식하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낙을 누릴 세상이 없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겠지요.
1700년대의 유명한 프랑스 작가이자 사상가인 ‘볼테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비극인 ‘오이디푸스’를 쓰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볼테르는 ‘예수회’ 학교를 나왔으면서도 하나님을 부정하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인쇄소까지 마련하고 기독교를 비방하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책을 찍어냈습니다. 그는,
“앞으로 100년만 지나면 하나님을 믿는 따위의 미신 자들은 이 지구상에 한 사람도 없게 될 것이다.”
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계몽주의가 판을 칠 때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설을 좋아했고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기고만장한 볼테르는 매일 파리의 큰길에 서서 하나님을 향해 욕을 퍼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볼테르도 늙고 병들었습니다. 어느 날 회진하러 온 의사를 붙들고 사정을 했습니다. “내 생명을 6개월만 연장시켜 준다면 내 전 재산을 다 드리겠소.” 그러나 의사는 고개를 흔들면서 “나는 6개월이 아니라 6시간도 연장시킬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볼테르는 죽어가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아, 나는 지옥으로 떨어져 가는구나!”
그리고 볼테르가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라고 장담했던 100년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성도의 수는 오히려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비방하던 책을 찍던 그의 인쇄소는 성경을 찍어내는 인쇄소가 되었고, 그의 집은 성경을 보관하는 창고가 됐습니다.
이것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의 어리석음입니다. 사람들은 볼테르처럼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가 없는 영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한갓 육신의 보잘것없는 생명과 힘을 의지하고서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고 비방하고 훼방합니다. 그러면서 흙으로 돌아갈 육신을 위하여 쌓고, 즐기고, 쾌락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육신의 쾌락은 그 끝이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그냥 죽음이 아닙니다. 영원토록 하나님과 결별된 영의 죽음이며, 그 영원의 시간을 지옥의 고통스러운 삶으로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8: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얻은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낙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본문의 표현대로 본다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세계이며, 눈물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일도 없고, 아픈 것도 없는 행복의 나라입니다. 그 곳에 우리 주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영원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 곳이 바로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이며, 우리에게 약속된 나라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나라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이 세상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분을 잊지 않고 지켜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출생신고를 하면 주민등록번호가 부여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나타내는 신분표시입니다. 이 번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항상 이 신분증을 제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는 그 일이 그 나라의 국민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외국 근로자들이 대한민국 국적을 얻으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국민임을 증명하는 신분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비록 지금은 육신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지만, 진정한 소속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베드로전서2:9절에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비록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잊지 않아야 하며, 또한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하십시오. “이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인가?”, “이 행동이 하나님 나라의 국민 된 사람으로서 행하는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부끄럽지 않고 만족한다면 성도의 신분을 지켜가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봅시다.
본문2절입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0절에서도,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여주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자나 깨나 잊지 않아야 할 우리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본문5절을 봅시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소망하는 나라가 지금의 세상이 변해서 새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롭게 창조된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지는 것임을 말씀합니다. 전혀 새로운 이 나라는 새로운 사람을 요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마태복음9:16-17절을 봅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여기에서 생베조각이나 새 포도주는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사상을 의미하며, 낡은 옷이나 낡은 가죽부대는 지나간 옛 시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드신 우리의 나라는 세상적인 사고방식과 생활에는 맞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새로워져야 합니다. 육신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옛 사고방식과 생활로는 하나님 나라의 신분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로마서12:2절에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시며, 에베소서4:22-24절에서는,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고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콜로라도 주립대학의 교수인 ‘제럴드 캘러한’ 교수가 쓴 ‘오딧세이 강’이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는 술을 지나치게 마신다. 그리고 나의 식생활은 마치 심장마비나 대장암은 중년남자의 죽음과 상관이 없다는 듯이 먹는다. 그리고 매일 아침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는 변화를 갈망하는 작가의 심경고백입니다. 생활의 변화를 갈망하지만 여전히 옛 습관에 묻혀 살아가는 약한 인생에 대한 탄식입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수많은 사람들이 합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다시 옛 모습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변화란 이렇게 어렵습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 전체를 변혁시키는 것이나 혹은 어떤 습관들을 버리는 것이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께 열면 극적인 변화도 가능합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내가 소망하는 나라를 생각하고, 나 자신의 신분을 생각합시다.
‘부활’이라는 글을 쓴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는 자신이 어떻게 악에서 선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제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저의 모든 삶이 변화되어, 이전에 제가 바라던 것을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반면에 제가 결코 전에 바라지 않았던 것을 바라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저의 눈에 악으로 보였던 것이 선으로 보였으며, 선으로 보였던 것이 악으로 보였습니다.”
변화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영의 삶에서부터 육신의 삶으로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를 제외하고는 결코 하루아침에 변화되는 일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극적인 회심을 하게 되었지만, 그가 그리스도의 진정한 일군이 되기까지는 14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오직 꾸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이 지금 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지금 이 땅의 고통 많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 아름답고 신비롭고 행복한 나라를 얻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계시록22:7절을 봅시다. 주님께서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내가 소망하는 나라를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6:27절에서,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 애써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려는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복음송에도 있지요. “세상부귀 안일함과 세상근심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만날까. 세상일에 얽매여서 세상일만 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만날까.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주님께서 보시고 훗날에 나를 보고 무어라 하실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봅시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우리가 소망하는 이 나라를 위하여 부끄럽지 않는 삶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