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329회 작성일 2004-01-03 22:19
♡♥♡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 엡 5:15-21

*** 들어가는 말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2004년이라는 새로운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합니다. 주어지는 시간과 기회만큼 또 남기는 장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에게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그 말씀은 누가복음14:26-35절에서 예수님이 제시하신 ‘제자의 조건’입니다. 예수님은 따르는 사람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부모나 처자식이나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를 사랑해야 한다. 아니, 자기 목숨보다도 더 나를 사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나를 따르는 사람도 내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쌍둥이비유’라고 부르는 ‘망대를 세우는 비유’와 ‘싸우러 가는 임금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비유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망대를 세우려는 사람이 망대를 준공하기까지의 비용을 미리 계산한 후에 공사를 시작하지 않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만일 무작정 시작한다면 도중에 경비가 부족하여 공사를 멈추게 되어 비웃음거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또한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군사력을 살피지 않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만일 이기지 못할 것 같으면 싸우기 전에 미리 화친을 청하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이 두 비유가 의미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 먼저 제자로서의 길을 감당할 수 있을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당치 못하고 도중에 하차하려면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옛말에도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2004년을 위하여 오랜 시간을 결심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수도 없고, 나약하게 손만 벌리고 앉아 있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왕후 에스더가 자신의 민족의 위기를 앞에 두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행했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의지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도약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배의 절차와 교회의 조직, 세워야할 일꾼과 모든 행사를 주님의 뜻 안에서 이루게 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해답은 바로 2004년의 표어이자, 이 시간의 말씀 제목인 ‘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즉 우리가 성령 충만하게 되는 것이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오직 하나님의 뜻을 중심으로 모든 힘을 모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대를 이길 수 있고,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길입니다.

1. 성령 충만함이란 무엇을 말합니까?

성령 충만함이란 성령께서 우리 영에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어떤 물질처럼 가득했다가 줄었다가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님의 강력한 지배와 통제를 받는 것이며, 성령님께서 공급하시는 강력한 힘을 덧입는 것입니다. 오해하지 않으셔야 하는 것은 성령님의 내주(內住)하심과 충만함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그 즉시로 성령께서 우리 영에 들어오십니다. 이것이 내주(內住)하심입니다. 성령이 내주하시지만 주권은 여전히 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충만하심은 우리의 삶의 주권을 성령께서 가지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세상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유가 성령께서 내 안에 계시지만 충만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성령 충만을 두 가지로 말씀합니다. 하나는 성령님의 외적인 충만을 말합니다. 이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눈에 보이는 능력이나 은사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나면서 불꽃의 모양이 사람의 머리위에 나타나고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2:4절입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방언이나 담대한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같은 나타나고 느껴지는 역사하심이 성령의 외적인 충만함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적인 충만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도록 성도 안에서 지속적으로 역사하심을 말합니다. 사도행전11:24절에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고 했는데, 이 때 바나바는 성령의 내적인 충만함이었습니다. 성령의 내적인 충만함은 넘치는 기쁨과 평안, 그리고 강한 확신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내가 스스로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충만하시도록 자리를 준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떻게 준비합니까? 술 취하고, 쾌락을 쫓고, 돈을 따라다니는 세상의 일로 방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19-20절의 말씀대로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일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끊이지 않으면서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11: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내 영혼의 자리가 마련되고 사모하면 성령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2. 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문에서도 사도 바울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알 수가 없습니다. 고린도전서2:10절에서는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 했으며, 로마서8:27절에서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14:26절에서 예수님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우리의 약함 때문입니다. 어떤 약함입니까? 의지적인 약함이며, 영적인 약함입니다.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바뀌기도 하고, 굳은 결심도 환경에 따라서 쉽게 흔들립니다. 오죽하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상한 갈대’, ‘꺼져가는 등불’, ‘아침 안개’, ‘지렁이’, ‘진토’라고 하셨습니다. 유행가 가사에는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라고 하더니만,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이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7:24절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연약한 자신을 탄식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8: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서만 하나님 나라의 법을 따를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까지도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할 수조차 없습니다. 성도는 성령 충만함을 받은 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1: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3. 성령 충만함을 받은 후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즉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알고,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의 지혜로움입니다. 그래서 본문15,16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기적을 꿈꾸며 사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날이 늘 불만이었습니다. 해가 뜨고 지고, 어제와 같은 오늘이, 그리고 오늘과 같은 내일이 불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기적을 일으킨다는 도인이 '도중도'라는 섬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청년은 도인을 만나러 가려고 항구로 갔습니다. 때마침 바다에는 폭풍 경보로 인하여 모든 배들이 선창가에 묶여 있었고,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숙소를 찾아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청년도 출항 할 때까지 여관에서 묵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여관에는 이미 여러 손님들로 붐볐고, 노인과 합숙을 해야 했습니다.
“도중도에 사는 김영감이올시다.” / “저는 내륙에 사는 이 총각입니다.”
청년은 여관에 묶여 있는 동안 내내 답답해했습니다. 실컷 낮잠을 자고 깨어보니 계속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노인을 찾아보았습니다. 노인은 개울가에서 속옷과 양말을 빨고 있었습니다.
“날씨도 좋지 않은데 무슨 빨래입니까?” / “빨래는 바람에 더 잘 마르는 법이라오.”
노인은 쉬지 않고 움직였습니다. 다음 날도 다음 날도 계속 파도가 높았습니다. 청년은 안달하다 지쳐서 술집을 찾았습니다. 돌아와 보니 노인은 씨 고구마 동이에 물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건 주인이 할 일 아닙니까?” / “누가 하든 생명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겠오”
몇 일후, 배가 출항하게 되던 날, 노인은 속옷을 갈아입고 양말을 바꿔 신었습니다. 그 며칠 사이에 씨 고구마에서는 새순이 돋았습니다. 그러나 젊은이한테는 여전히 재미없는 하루였습니다. 그는 어제와 다름없이 발에서는 고린내가 났고, 내장 속에서는 술 트림이 올라왔습니다. 여관을 나서면서 노인이 물었습니다.
“젊은이는 왜 도중도에 가려는 거유?” / “도인이 있다고 해서 만나려고 갑니다.” / “허, 그래. 무엇 때문에 도인을 만나려 하누?” / “도인이 날마다 기적을 행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갑니다.”
노인은 선창 쪽으로 발을 옮기면서 젊은이에게 말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기적을 보았다네. 어디서나 지금에 최선을 다하면서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다보면, 그 날이 곧 기적의 새날이오. 그렇게 살지 않으면 늘 새날은 묵은 날이 되는 것이오. 이 번에 나와 함께 보낸 며칠이 당신이 보고자한 그 도력의 전부이니 따로 볼 것이 없소이다. 그만 돌아가시구려.”

청년의 행동이 어리석은 자의 행동이며, 노인의 삶이 지혜로움입니다. 김 영감이라는 노인의 행동이 ‘세월을 아끼는 자세’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시간을 사라.’, ‘기회를 붙잡으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옛말에 ‘쇠는 뜨거울 때 쳐야한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 시장 통에 있는 대장간에 구경 간 적이 많이 있습니다. 대장간에서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가 풀무 불에 쇠를 벌겋게 달구어서는 망치로 두들깁니다. 대장장이가 조금만 딴전을 피우거나 머뭇거리면 쇠는 식어버리고 쇠를 펼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한 손으로는 망치를 들고 벼르고 있고, 다른 한 손은 집게로 단 쇠를 꺼내오기가 무섭게 즉시로 두들깁니다. 그래야 자기가 뜻하는 모양으로 쇠를 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기회를 붙잡는 것입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성령 충만한 성도의 길은 성령께서 인도하십니다. 사무엘상10:6-7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에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이 행할 길을 가르치는 장면입니다.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이 징조가 네게 임하거든 너는 기회를 따라 행하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즉 성령 충만하게 되면 새사람이 될 터이니,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라고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지금이 말할 때인지 침묵할 때인지, 일할 때인지 쉴 때인지, 나아가야 할 때인지 기다려야 할 때인지를 분별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번 2004년에는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이 세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신실하고 능력 있는 가정과 교회를 이룰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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