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하나님이 붙여주신 이름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223회 작성일 2003-12-13 11:17
♡♥♡ 하나님이 붙여주신 이름 / 요한복음1:35-42

*** 들어가는 말

세상 만물은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다못해 바람에도 이름이 있으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이름을 붙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은 이름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애굽의 종살이하는 유대인들에게 보내실 때에 모세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출3:13)라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I am who I am/ 나는 곧 나다)”라고 하시면서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혹은 ‘여호와’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기념 칭호입니다. 호세아12:5절에서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라고 했습니다. 이름이 없는 이유는 ‘하나님은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으시고 스스로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름은 무엇엔가 소속되어 있음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어느 가문의 자손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하나님께서 붙여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붙여주신 이름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본문에서도 예수님에 대한 별칭과 함께 베드로에게 붙여주신 이름이 나옵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붙여주신 별칭과 이름이 의미하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본문의 전체 배경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말씀은 세례요한과 예수님과의 만남 중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세례를 받으시기 위하여 요한에게로 오셨습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보고는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세상적인 친분 때문에 아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주님을 고백한 것입니다. 33-34절을 봅시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다음 날, 요한이 자기 제자 둘과 함께 있을 때에 예수님의 다니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제자들에게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이 기거하시는 거처를 보여 달라고 했으며, 거처를 확인하고는 ‘메시아’로 확신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 둘 중에 하나는 ‘안드레’였습니다. 안드레는 먼저 형인 ‘시몬’에게로 갔습니다. 그에게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하면서 함께 예수님께로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이 오는 것을 보시고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붙여주신 두 이름을 보게 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별칭으로 붙여주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며, 다른 하나는 안드레의 형인 시몬에게 붙여주신 “게바”라는 별명입니다. 이러한 이름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겠습니까? 왜 이런 별칭을 붙여주셨습니까?

1. 하나님은 인생 역사의 지휘자이심을 나타냅니다.

요한복음 1장에는 19절부터 시작되는 이야기가 29절에서 “이튿날”, 35절에서 “또 이튿날”, 43절에서 “이튿날”라는 말로 문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는 기록된 말씀이 연속적으로 일어났음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연속적인 사건임을 나타내야만 했겠습니까? 게다가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불렀으며, 주님은 처음 대하시는 시몬에게 “장차 게바라고 부르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사건을 연속으로 재구성해 봅시다.

세례요한은 광야로 모여온 사람들에게 ‘자신은 예수님을 위하여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위대한 일을 이루실 예수님을 위하여 길을 준비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요한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다음 날, 사도 요한과 안드레, 시몬을 제자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세례 받으신지 사흘째 되던 날, 빌립과 나다나엘(바돌로메)을 부르셨으며,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 처음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일련의 일들은 어느 한 지역에서 일어난 일상적인 생활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하여 연출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는 요한복음의 기록자인 사도 요한이 의도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은 연대순으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사건을 선별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의도적인 기록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한 마디로, 인생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 말기의 40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고,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년 만에 세례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세례요한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때가 되어”예수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공식적인 메시아로서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역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제자들을 부르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뜻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갈라디아서4:4절에서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에 있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려고 행하시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미 없이 행하시는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인생에게 목적을 주셨음을 나타냅니다.

세계적인 대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뜰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에서도 작품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성당의 뒤뜰에 버려져 있는 돌덩이를 보았습니다. 한동안 그 돌덩이를 보던 미켈란젤로는 갑자기 “데이빗이 나온다.”라고 소리쳤습니다.
미켈란젤로는 버려진 쓸모없는 바윗돌을 본 것이 아니라, 장인의 손에 의하여 다듬어진 위대한 조각품을 본 것입니다. 그는 그 돌로 ‘다윗 상’을 조각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눈을 여셔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시몬을 통하여 하실 일을 이름에다 담아서 표현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하여 이루실 목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이름 속에는 무슨 뜻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메시아”, “이스라엘을 구원할 자”, “유대인의 왕” 등 많이 있지만,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별명을 들어도 감이 쉽게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즉각적인 의미로 전달됩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속죄제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살이하는 유대인들을 해방시키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시려고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열 가지의 재앙으로 애굽인들을 치실 때에 마지막 열 번째의 재앙이 모든 처음 난 생명이 죽는 ‘초태생의 죽음’이었습니다. 이 때에 유대인들의 가정에는 이 재앙을 면케 하시려고 하나님의 사자인 죽음의 천사가 알 수 있는 표시를 하게 했습니다. 유대인의 가정에서는 식구의 수에 따라 적당한 크기의 어린양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피는 집 대문의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구워서 먹도록 지시하셨습니다. 죽음의 천사가 대문의 설주와 인방에 있는 피를 보면, 그 집에 재앙을 내리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이것이 ‘유월절(逾越節)’이며, 이 때의 양이 ‘유월절 어린양’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7월 15일 대 속죄일이면 온 백성의 죄를 씻기 위하여 두 마리의 양이 희생을 당합니다. 대제사장은 양의 머리에 손을 얹고 백성들의 죄를 고합니다. 사람들의 죄를 양에게 전가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한 마리는 죽여서 속죄 제물로 드리고, 한 마리는 산 채로 광야로 보내집니다. 사람들의 죄를 지고 죽음으로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바로 세례요한이 표현한 대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즉 예수님은 우리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드레의 형인 시몬에게 “게바”라고 불렀습니다. ‘게바’는 당시의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아람어’식 이름이며, 헬라어로 번역하면 ‘베드로’가 됩니다. 주님이 지어주신 별명인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장차 게바라 부르리라.”고 하셨습니다.

훗날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주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불으셨습니다. 제자들은 제각기 들은 대로, 어떤 사람은 ‘세례요한’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도 하더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도 베드로는 반석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주님이 잡히시던 날 세 번씩이나 주님을 저주하며 모른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죽으신 후에는 실망과 좌절에 빠져서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베드로는 변했으며, 성령 충만한 후에는 순교하기까지 초대교회를 이끌었던 믿음의 반석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성도’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름에 걸맞은 목적까지 가지고 계십니다. 베드로전서2:9절을 봅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붙여주신 별명이며, 목적입니다. 물론 각 개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도 있습니다.

여러분을 오늘이 있기까지 살게 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한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베드로처럼 쓰러지고 넘어지며 우여곡절을 많이 겪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계획하신 뜻을 이루십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이 어려운 일을 해야하나!’, ‘왜 내가 이 곳에서, 이 환경에서, 일해야 하나!’라고 생각되십니까? 참새 한 마리, 들풀 하나에도 목적을 두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우리를 위한 목적이 없겠습니까? 우리는 그 주님을 믿고 순종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제 대강절 3주차입니다. 주님의 오심을 생각하면서, 나의 인생을 지휘하시는 하나님, 내 인생의 목적을 주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합시다. 내게 특별한 이름을 주신 목적을 생각합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이 자리에 있어야 하며, 내 삶의 자리를 허락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순종하고, 생의 보람을 누리며, 삶의 좋은 열매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복된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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