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통로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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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12-06 22:59
♡♥♡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통로 / 눅1:26-38
*** 들어가는 말
세계사에는 ‘30년 전쟁’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전쟁은 1618년-1648년까지 30년 동안 개신교와 구교인 가톨릭과의 싸움인 ‘종교전쟁’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전쟁은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까지 휩싸이면서 3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치러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 전역에 흑사병이 나돌아 1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전쟁과 흑사병으로 인하여 인구의 2/3가 감소했다고 했습니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가톨릭의 승리였고, 가톨릭 전성시대가 되었습니다. 독일에는 유일하게 남은 개신교이자 루터교회인 ‘프리덴스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를 담임하던 목사님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돌면서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넓은 지역을 종일토록 가톨릭의 핍박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성도들의 가정을 찾아다니며 위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부부는 중병을 앓고 있는 한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보이는 것은 교회와 집이 몽땅 불에 타버린 잿더미였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은 서로 껴안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나의 주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이 분은 ‘벤자민 슈몰크’목사입니다. 훗날 이 기도에 곡을 붙이고 편곡한 찬송이 431장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밤낮으로 쉬지도 못하고 일한 대가가 집과 교회당이 불타고 두 자녀의 죽음이라는 말입니까? 망연자실(茫然自失)할 일이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슈몰크’목사님 부부는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엎드렸고 순종했습니다.
신앙의 길은 이와 같이 사람의 이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대한 겸허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순종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성경 말씀 속에는 이러한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진 믿음의 역사들을 수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본문 말씀도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수태고지(受胎告知)’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즉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예수님을 잉태했음을 알리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하는 마리아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마리아는 34절에서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합니다. 즉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인데 이 일은 불가능합니다.’라는 반론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이 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역시 ‘잉태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이미 6개월이 지났다고 했습니다. 엘리사벳은 세례요한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면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통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통로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첫 번째 통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전령인 ‘가브리엘’ 천사장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마리아에게 소식을 전하러왔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는 통로로 처녀인 마리아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 통로로 선택된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마리아 자신의 선함이나 정결함이나 의로움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에서는 마리아가 선택된 특별한 동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동기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 사함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와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도 은혜로 인함입니다. 에베소서1:7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시며, 에베소서2:8절에서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히브리서4:16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우리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성육신하게 하신 것도 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마리아가 선택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간절히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시편119:58절에서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두 번째 통로는 ‘믿음’입니다.
천사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는 천사가 알려준 말씀을 따라서 친척인 엘리사벳의 집으로 달렸습니다. 본문을 지나서 42-45절은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성령 충만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45절을 봅시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노래에서 마리아를 “믿은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무엇을 믿었습니까? 천사가 처녀인 자신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아기를 잉태할 것이라’고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는 불가능한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믿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일은 믿음을 통로로 하여 이루어집니다. 병 고침을 받은 수많은 이적도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하여서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는 통로도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를 통하여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즉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지금 실제로 소유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두 토막입니다.
첫째는 살 빼기 훈련 반에 들어간 몸이 지나치게 살진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훈련 교사는 훈련생들에게 ‘자신의 앞에 있는 전신 거울에 자신이 원하는 몸의 윤곽을 그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날씬한 몸매를 자신의 키에 맞추어 그렸습니다. 다 그린 후,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의 모습은 거울에 그린 날씬한 몸매를 차고 넘쳤습니다. 그 후, 수 주일 동안 그녀는 운동을 하며 음식을 조절했습니다. 매주 그녀는 거울 앞에 섰고 그때 마다 몸이 줄긴 했지만 그려놓은 몸매에 비해 아직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더 열심히 운동을 하며 엄격하게 음식조절을 했습니다. 결국 어느 날 그녀는 거울에 그린 모습에 꼭 들어맞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화강암 덩어리로 사자의 상을 새긴 조각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조각가에게 “어떻게 그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조각가는 “아주 쉬웠습니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사자처럼 생기지 않은 것은 모조리 쪼아낸 것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까? 여인은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눈에 보이게 그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망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노력했습니다. 훈련교사는 보이지 않는 소망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신뢰심이 깊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조각가도 역시 큰 화강암 덩어리에서 이미 자신이 조각하고자 하는 사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냈던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현재 보이는 상황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이룬 것에 마음을 둡니다. 즉 우리가 가진 소망이 이루어져 있는 상황을 그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소망을 그리시고 적절한 때에 불러내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현실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며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그 그림을 그리시고 불러내시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반면에 엘리사벳의 남편이자 제사장이었던 ‘사가랴’도 역시 마리아보다 6개월 전에 천사장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천사는 ‘사가랴의 아내인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사가랴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라고 불가능을 표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더 이상 아이를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가브리엘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은 사가랴가 그 일이 이룰 때까지 벙어리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을 통로로 하여 이루십니다. 때로는 사가랴처럼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이룰 때가 있지만 역시 고난과 징계가 따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3.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세 번째 통로는 ‘순종’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자신의 상황과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 일을 이룰 것이라고 하면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마리아는 즉시 대답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이는 마리아의 순종의 고백입니다. 정혼한 사람까지 있는 입장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자신이 무척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믿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해도 순종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앞서 세례요한의 부친인 사가랴는 처음 순간에 불신의 마음을 품었지만, 천사의 책망 이후에 그는 순종했습니다. 후에 엘리사벳이 출산했을 때 그의 이름을 천사가 지시한 대로 “요한”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청년 공산당원이 미국 FBI의 조사를 받던 중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IQ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려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배운 것을 실천하려고 배웁니다.”
공산당은 당원들에게 절대적인 복종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서기 563년 스코틀랜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고향인 아일랜드를 떠난 복음주의자였던 ‘콜럼바’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이 어려움에 부닥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타고 온 배를 해변 가의 둑에 묻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세가 순종의 자세입니다. 순종은 생활의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쉬운 길, 형통한 길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엄격한 실행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이것은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순종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15:22절에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3:36절에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거리에는 벌써부터 휘황찬란한 성탄 장식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엄격한 제자의 조건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자는 스승의 길을 순종하여 따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이 성탄을 부끄럽지 않게 기뻐하고 감격할 수 있는 제자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소망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평화의 계절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인 갈릴리 나사렛, 그 중에서도 보잘것없는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며, 모든 상황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통로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상황을 뛰어넘는 믿음의 순종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소망을 이루어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세계사에는 ‘30년 전쟁’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전쟁은 1618년-1648년까지 30년 동안 개신교와 구교인 가톨릭과의 싸움인 ‘종교전쟁’이었습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전쟁은 스웨덴, 덴마크, 프랑스까지 휩싸이면서 3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치러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독일 전역에 흑사병이 나돌아 1천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전쟁과 흑사병으로 인하여 인구의 2/3가 감소했다고 했습니다. 독일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가 거대한 무덤과도 같았습니다.
전쟁의 결과는 가톨릭의 승리였고, 가톨릭 전성시대가 되었습니다. 독일에는 유일하게 남은 개신교이자 루터교회인 ‘프리덴스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 교회를 담임하던 목사님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을 돌면서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넓은 지역을 종일토록 가톨릭의 핍박과 질병으로 고통 받는 성도들의 가정을 찾아다니며 위로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 부부는 중병을 앓고 있는 한 성도의 가정을 심방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 보이는 것은 교회와 집이 몽땅 불에 타버린 잿더미였습니다. 사랑하는 두 아들은 서로 껴안은 채 죽어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아들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나의 주님, 당신의 뜻대로 하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 간 주 인도하시고…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이 분은 ‘벤자민 슈몰크’목사입니다. 훗날 이 기도에 곡을 붙이고 편곡한 찬송이 431장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밤낮으로 쉬지도 못하고 일한 대가가 집과 교회당이 불타고 두 자녀의 죽음이라는 말입니까? 망연자실(茫然自失)할 일이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슈몰크’목사님 부부는 하나님의 뜻에 겸손히 엎드렸고 순종했습니다.
신앙의 길은 이와 같이 사람의 이해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이해를 구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대한 겸허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순종을 통하여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성경 말씀 속에는 이러한 순종을 통하여 이루어진 믿음의 역사들을 수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본문 말씀도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수태고지(受胎告知)’라고 불리는 말씀입니다. 즉 천사가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예수님을 잉태했음을 알리는 소식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접하는 마리아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습니다. 마리아는 34절에서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합니다. 즉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인데 이 일은 불가능합니다.’라는 반론입니다.
그러나 천사는 이 일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역시 ‘잉태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이미 6개월이 지났다고 했습니다. 엘리사벳은 세례요한의 어머니입니다. 그러면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가 어떤 통로를 통하여 이루어지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통로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첫 번째 통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전령인 ‘가브리엘’ 천사장이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마리아에게 소식을 전하러왔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계속하여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하는 통로로 처녀인 마리아를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육신 통로로 선택된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마리아 자신의 선함이나 정결함이나 의로움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에서는 마리아가 선택된 특별한 동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동기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 사함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기도와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것도 은혜로 인함입니다. 에베소서1:7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시며, 에베소서2:8절에서는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히브리서4:16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우리 인생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성육신하게 하신 것도 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마리아가 선택받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간절히 사모하고 구해야 합니다. 시편119:58절에서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이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두 번째 통로는 ‘믿음’입니다.
천사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는 천사가 알려준 말씀을 따라서 친척인 엘리사벳의 집으로 달렸습니다. 본문을 지나서 42-45절은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이 성령 충만하여 부른 노래’입니다. 45절을 봅시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노래에서 마리아를 “믿은 여자”라고 불렀습니다. 무엇을 믿었습니까? 천사가 처녀인 자신에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하여 아기를 잉태할 것이라’고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것입니다. 이는 불가능한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을 믿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일은 믿음을 통로로 하여 이루어집니다. 병 고침을 받은 수많은 이적도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하여서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지는 통로도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를 통하여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즉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지금 실제로 소유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며,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 두 토막입니다.
첫째는 살 빼기 훈련 반에 들어간 몸이 지나치게 살진 여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훈련 교사는 훈련생들에게 ‘자신의 앞에 있는 전신 거울에 자신이 원하는 몸의 윤곽을 그리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날씬한 몸매를 자신의 키에 맞추어 그렸습니다. 다 그린 후, 거울 앞에 섰을 때 자신의 모습은 거울에 그린 날씬한 몸매를 차고 넘쳤습니다. 그 후, 수 주일 동안 그녀는 운동을 하며 음식을 조절했습니다. 매주 그녀는 거울 앞에 섰고 그때 마다 몸이 줄긴 했지만 그려놓은 몸매에 비해 아직 너무 컸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더욱더 열심히 운동을 하며 엄격하게 음식조절을 했습니다. 결국 어느 날 그녀는 거울에 그린 모습에 꼭 들어맞았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화강암 덩어리로 사자의 상을 새긴 조각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조각가에게 “어떻게 그와 같은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조각가는 “아주 쉬웠습니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사자처럼 생기지 않은 것은 모조리 쪼아낸 것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두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셨습니까? 여인은 자신이 소망하는 것을 눈에 보이게 그렸습니다. 그리고는 그 소망이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으로 노력했습니다. 훈련교사는 보이지 않는 소망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한 신뢰심이 깊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조각가도 역시 큰 화강암 덩어리에서 이미 자신이 조각하고자 하는 사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필요 없는 부분을 쪼아냈던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현재 보이는 상황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 일이 이룬 것에 마음을 둡니다. 즉 우리가 가진 소망이 이루어져 있는 상황을 그리는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우리의 소망을 그리시고 적절한 때에 불러내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현실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며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그 그림을 그리시고 불러내시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반면에 엘리사벳의 남편이자 제사장이었던 ‘사가랴’도 역시 마리아보다 6개월 전에 천사장 가브리엘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천사는 ‘사가랴의 아내인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사가랴는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라고 불가능을 표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더 이상 아이를 생산하는 것이 불가능한 나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 가브리엘은 자신의 말을 믿지 않은 사가랴가 그 일이 이룰 때까지 벙어리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을 통로로 하여 이루십니다. 때로는 사가랴처럼 불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이룰 때가 있지만 역시 고난과 징계가 따릅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3.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세 번째 통로는 ‘순종’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의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자신의 상황과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습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능력이 이 일을 이룰 것이라고 하면서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 마리아는 즉시 대답합니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이는 마리아의 순종의 고백입니다. 정혼한 사람까지 있는 입장에서 나온 고백입니다. 자신이 무척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믿음으로 받아들였다고 해도 순종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앞서 세례요한의 부친인 사가랴는 처음 순간에 불신의 마음을 품었지만, 천사의 책망 이후에 그는 순종했습니다. 후에 엘리사벳이 출산했을 때 그의 이름을 천사가 지시한 대로 “요한”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청년 공산당원이 미국 FBI의 조사를 받던 중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IQ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려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배운 것을 실천하려고 배웁니다.”
공산당은 당원들에게 절대적인 복종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서기 563년 스코틀랜드에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고향인 아일랜드를 떠난 복음주의자였던 ‘콜럼바’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역이 어려움에 부닥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타고 온 배를 해변 가의 둑에 묻어버렸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자세가 순종의 자세입니다. 순종은 생활의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려고 쉬운 길, 형통한 길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엄격한 실행 조건을 제시하셨습니다. 이것은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보다 순종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무엘상15:22절에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3:36절에서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거리에는 벌써부터 휘황찬란한 성탄 장식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시하신 엄격한 제자의 조건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제자는 스승의 길을 순종하여 따르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입니까? 이 성탄을 부끄럽지 않게 기뻐하고 감격할 수 있는 제자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지금은 우리의 소망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평화의 계절입니다. 이 놀라운 사건은 이스라엘의 작은 마을인 갈릴리 나사렛, 그 중에서도 보잘것없는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이루어졌습니다. 그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으며, 모든 상황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는 통로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고 상황을 뛰어넘는 믿음의 순종으로 여러분이 원하는 소망을 이루어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