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히는 현실 앞에서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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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3-11-23 17:28
♡♥♡ 기가 막히는 현실 앞에서 / 대하20:1-13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의 국내 상황이나 국제적인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연일 자살테러로 인하여 세계정세가 어수선하고, 세계 각국들이 이라크 사태를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자연재난까지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며, 경제도 제2의 IMF라고 아우성이고, 노동계는 시위의 한계를 넘어 전쟁을 하듯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문화도 교육계도 심지어는 마지막 보루인 종교계까지 온통 어수선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병들었습니다.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세계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병들 때마다 사회의 혼란은 극에 달했습니다. 교회가 병이 들어 진리를 외치지 못하고 지켜가지 못하자, 당장 나타나는 것이 이단들의 득세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 모양입니다. 이단들이 신문,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연일 대형집회를 여는가 하면, 당당하게도 신문 전면광고를 냈습니다. ‘안상홍 증인회’는 인터넷을 통하여 자신들의 당당함을 외치고 있습니다. ‘통일교’는 이제 손길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교회는 집안 잔치와 덩치 키우기, 교세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성도들은 육신적인 삶에 묻혀 감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현실입니다. 찬송가 256장의 가사처럼 “믿는 자여 어이할고”라는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시며 이렇게 탄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힘이 없음을 탓하면서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본문 말씀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본문 말씀의 내용과 배경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연대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남 유다의 제4대 왕인 ‘여호사밧’때인 대략 기원전 853년경입니다.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삼국연합군이 남 유다로 침략해 왔습니다. 남 유다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멸망을 눈앞에 둔, 기가 막힌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도 않았으며, 백성을 탄압하거나, 직무를 게을리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의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셨고, 여호사밧을 높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 좋은 여호사밧은 형제의 나라인 북 이스라엘과 화친을 청했습니다. 당시의 북 이스라엘은 7대 왕이자 악한 왕인 ‘아합’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왕후인 ‘이세벨’이 들여온 온갖 우상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우상 투성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악한 왕의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정략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합의 꾐에 빠져 연합하여 아람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죽고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겨우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돌아오는 여호사밧에게 하나님께서 선견자 ‘예후’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하19:2절입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전쟁은 여호사밧의 잘못된 정치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기가 막히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이 기가 막히는 현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미 선견자 예후를 통하여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뿐임을 깨달았습니다. 본문3,4절을 봅시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당면한 현실이 어떠합니까? 본문12절의 기도 내용을 보면 짐작이 갑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남 유다는 삼국이 연합한 대군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고스란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길 뿐이었습니다.
전남 고흥에 있는 고흥교회 조대형 장로의 간증내용 중에 일부분입니다.
조대형 장로는 해군 군의관으로 있다가 예편을 하고, 외과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젊은 의사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술하고 진료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개원한지 3년이 지나 자신이 37세가 된 어느 날, 너무나 피로를 많이 느끼게 되어 자신이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간암이었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젊은 의사는 절망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서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잊고 있던 신앙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방법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겠다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돈만 따르던 내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면 의사로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교회당에 가서 매일 뜨거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몸이 뜨거워지면서 성령의 불을 체험했습니다. 성령의 불이 마치 자신의 몸을 샅샅이 태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암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전남 고흥으로 가서 ‘조 외과의원’을 개업하고 어려운 환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무료로 진료하고, 치료해주어 ‘고흥의 슈바이처’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지금도 위기 때에 도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서원을 성실하게 지키며, 고흥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생명을 건 진실한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만일 세상에 미련을 두고 있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세상적인 방법에도 마음을 두고, 하나님께도 마음을 두는 두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위기 때에, 삶이 힘들고 어려움이 닥칠 때에,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여호사밧 왕은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했습니다.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가까운 성읍에 모여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 성전 뜰에 모인 백성들 앞에서 함께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본문6-12절에 있습니다.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솔로몬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하신 약속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지금 당면한 현실을 아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즉시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인 ‘야하시엘’을 통하여 응답해 주셨습니다. 15절입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하셨고, 17절에서는,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살리는 길, 우리나라가 사는 길, 우리 대복교회가 사는 길, 여러분의 가정과 개인이 사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기도하는 길뿐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선언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체험에서 나오는 힘 있는 간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며 깨어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능력 있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의 국내 상황이나 국제적인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연일 자살테러로 인하여 세계정세가 어수선하고, 세계 각국들이 이라크 사태를 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게다가 자연재난까지 세계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오리무중(五里霧中)이며, 경제도 제2의 IMF라고 아우성이고, 노동계는 시위의 한계를 넘어 전쟁을 하듯 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문화도 교육계도 심지어는 마지막 보루인 종교계까지 온통 어수선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병들었습니다. 깊은 병이 들었습니다. 세계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병들 때마다 사회의 혼란은 극에 달했습니다. 교회가 병이 들어 진리를 외치지 못하고 지켜가지 못하자, 당장 나타나는 것이 이단들의 득세였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그 모양입니다. 이단들이 신문, 인터넷, 방송을 통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구원파’는 연일 대형집회를 여는가 하면, 당당하게도 신문 전면광고를 냈습니다. ‘안상홍 증인회’는 인터넷을 통하여 자신들의 당당함을 외치고 있습니다. ‘통일교’는 이제 손길을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교회는 집안 잔치와 덩치 키우기, 교세 유지하기에 급급하고, 성도들은 육신적인 삶에 묻혀 감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현실입니다. 찬송가 256장의 가사처럼 “믿는 자여 어이할고”라는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주님이 우리를 보시며 이렇게 탄식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힘이 없음을 탓하면서 보고만 있어야 합니까? 본문 말씀이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우리 각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먼저 본문 말씀의 내용과 배경을 살펴봅시다.
본문의 연대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된 후 남 유다의 제4대 왕인 ‘여호사밧’때인 대략 기원전 853년경입니다. 모압과 암몬과 마온, 삼국연합군이 남 유다로 침략해 왔습니다. 남 유다는 그들을 상대할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멸망을 눈앞에 둔, 기가 막힌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왕이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지도 않았으며, 백성을 탄압하거나, 직무를 게을리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의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셨고, 여호사밧을 높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 좋은 여호사밧은 형제의 나라인 북 이스라엘과 화친을 청했습니다. 당시의 북 이스라엘은 7대 왕이자 악한 왕인 ‘아합’이 다스리고 있었으며, 왕후인 ‘이세벨’이 들여온 온갖 우상으로 인하여 온 나라가 우상 투성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악한 왕의 딸을 며느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정략결혼을 시킨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합의 꾐에 빠져 연합하여 아람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죽고 자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겨우 죽음을 모면했습니다. 돌아오는 여호사밧에게 하나님께서 선견자 ‘예후’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하19:2절입니다.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가하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서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전쟁은 여호사밧의 잘못된 정치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기가 막히는 현실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이 기가 막히는 현실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미 선견자 예후를 통하여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뿐임을 깨달았습니다. 본문3,4절을 봅시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여호와께 도우심을 구하려 하여 유다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고 했습니다.
이들이 당면한 현실이 어떠합니까? 본문12절의 기도 내용을 보면 짐작이 갑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남 유다는 삼국이 연합한 대군을 감당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고스란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오로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길 뿐이었습니다.
전남 고흥에 있는 고흥교회 조대형 장로의 간증내용 중에 일부분입니다.
조대형 장로는 해군 군의관으로 있다가 예편을 하고, 외과병원을 개원했습니다. 젊은 의사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술하고 진료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개원한지 3년이 지나 자신이 37세가 된 어느 날, 너무나 피로를 많이 느끼게 되어 자신이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간암이었습니다. 3개월 시한부 인생이 된 것입니다.
젊은 의사는 절망했습니다. 아내와 자녀들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서 죽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잊고 있던 신앙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인간적인 방법을 다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해야겠다며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돈만 따르던 내게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시면 의사로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아침저녁으로 교회당에 가서 매일 뜨거운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 중에 몸이 뜨거워지면서 성령의 불을 체험했습니다. 성령의 불이 마치 자신의 몸을 샅샅이 태우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길로 암은 사라졌습니다. 그는 전남 고흥으로 가서 ‘조 외과의원’을 개업하고 어려운 환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무료로 진료하고, 치료해주어 ‘고흥의 슈바이처’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지금도 위기 때에 도우신 하나님께 자신의 서원을 성실하게 지키며, 고흥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있습니다.
생명을 건 진실한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만일 세상에 미련을 두고 있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세상적인 방법에도 마음을 두고, 하나님께도 마음을 두는 두 마음을 품으면 하나님이 듣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위기 때에, 삶이 힘들고 어려움이 닥칠 때에,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여호사밧 왕은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했습니다.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한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의지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가까운 성읍에 모여서 금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사밧은 예루살렘 성전 뜰에 모인 백성들 앞에서 함께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기도의 내용이 본문6-12절에 있습니다.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솔로몬을 통하여 이스라엘에 하신 약속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행하신 하나님의 역사와 지금 당면한 현실을 아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즉시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인 ‘야하시엘’을 통하여 응답해 주셨습니다. 15절입니다.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하셨고, 17절에서는,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며 놀라지 말고 내일 저희를 마주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살리는 길, 우리나라가 사는 길, 우리 대복교회가 사는 길, 여러분의 가정과 개인이 사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기도하는 길뿐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여호사밧은 백성들에게 선언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체험에서 나오는 힘 있는 간증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며 깨어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능력 있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