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받은 사람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951회
작성일
2004-04-17 16:35
♡♥♡ 초대받은 사람들 / 누가복음 14:1-14
*** 들어가는 말
본문을 포함하는 14장 전체에 제목을 붙인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용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일들을 사람들에게 비유들을 통하여 가르치십니다. 본문인 1-14절에는 어떤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은 예수님의 당면하신 현실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16-24절은 “큰 잔치 비유”라고 하는데, 이 비유를 통하여 천국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5-35절에는 ‘쌍둥이 비유’라고 불리는 두 비유를 포함하고 있으며, 초대받은 사람들의 자격과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를 받았다 할지라도 초대받은 사람 전부가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다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받은 사람이 초대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중요한 내용을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생활하는 성도의 삶의 자세가 곧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받은 자로서의 자세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먼저, 전체적인 내용부터 파악해 봅시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음식을 잡수시러 바리새인 중의 한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식사에 초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고창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창 병이란 수종 병이라고도 하는데, 신장이나 간장에 필요 이상의 물이 차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병자는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식사 자리에 초대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변을 둘러보시고는 상황을 다 읽으셨습니다.
그 곳에는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초대한 주인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부류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엿보는 사람들”과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살펴서 약점을 잡기 위해서 이 초대의 자리를 마련한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예수님의 일행으로, 시험 대상자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시험하는 도구로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고창병자가 있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은 병자를 데려다 놓고 예수님을 초대하여 안식일의 율법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험하는 부류들의 생각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거기 둘러서 있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자신들의 생각을 들켜버린 그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고쳐주시고는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희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는데 안식일이라 해서 끌어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식탁이 준비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초대된 사람들이 높은 자리 쪽으로 몰려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초대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파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초대받은 사람들을 보시면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어서, 주님은 초대한 주인을 보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초대할 때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즉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세상의 방식을 따라서 ‘부하고, 권력 있고, 자신에게 덕이 되는 사람을 초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받은 은혜를 되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하려거든 되갚을 것이 없는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하나님만 아시도록 은밀하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초대한 주인인 바리새인의 지도자에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온전한 신앙의 삶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1. 누가 초대받은 사람들입니까?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한 지도자로부터 초대받은 자리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이 초대의 자리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주인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초대에 응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불행한 수종병자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악한 경영에도 불구하고 그것까지도 사용하셔서 긍휼히 여겨야 할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십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면서도 하나님의 초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길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초대한 주인과 초대받은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따라서 초대하기도 하고 초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마음이 전혀 없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초대문화를 바로 고쳐주어야 할 필요성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즉시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의 법칙을 전하셨습니다. 초대받은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본문의 7-14절의 내용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의 법칙을 적용하는 원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6-24절에서는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를 가르치시며, 26-35절까지는 초대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의 자세, 즉 제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초대받고 초대한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받았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 초대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고, 합당한 삶의 자세가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셨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사양하고 거절한 것입니다. 본문 다음에 나오는 17-23절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는 하나님의 초대(복음)가 선민인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전파된 것을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초대를 받았으며, 긍정적으로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시작입니다. 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2.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초대의 자리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22:1-14절에는 예수님께서 ‘혼인잔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중에서 11-14절을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있었다. 그를 보고,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 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요구되는 자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을 통하여 초대받은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세가 무엇입니까? 방금 읽었던 혼인잔치 비유의 표현으로는 “예복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병자를 고쳐주신 일, 초대를 받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 그리고 초대한 사람에게 하신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받은 성도는 세상에 살 때에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복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천국 혼인잔치의 예복에 대하여는 계시록19: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과 성도들과의 혼인잔치의 예복은 ‘옳은 행실’입니다. 즉 성도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에서 성도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십니다. 본문11절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겸손’을 말합니다. ‘겸손한 자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세이며, 많은 약속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겸손이라고 하면 성 프랜시스를 뺄 수가 없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이 환상 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니까 거기에 보좌가 쭉 늘어서 있는데 가장 높은 보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내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보좌는 누구의 것입니까?”
그러자 안내자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성 프랜시스가 앉게 될 의자이니라.”
고 했습니다. 아무리 스승이지만은 너무나 화려하고 높은 보좌를 보니 질투가 났습니다. 그 일이 지난 어느 날, 스승을 만난 제자는 조용한 시간에 스승인 프랜시스에게,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스승은
“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라고 쉽게 대답했습니다. 제자는,
“선생님, 그건 위선입니다. 선생님은 성자입니다. 세상에 강도, 살인, 도적질 등을 일삼는 악한 사람들이 많은데, 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악하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자 프랜시스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건 자네가 나를 몰라서 그래. 나는 참으로 악한 사람이거든. 그러나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어서 그 은혜로 인하여 내가 있는 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셨다면 그분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네.”
제자는 말없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칭찬하셨는데, 프랜시스의 성품을 보면 성자 칭호에 걸맞은 겸손함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겸손은 주님의 성품입니다. 이 겸손에 대하여 잠언18:12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시며, 이사야57:15절에서는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 빌립보서2:3절에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하시며, 베드로전서5:6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누릴 영원한 삶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기쁨의 삶을 진정으로 믿고 소망한다면, 겸손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초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은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에 대하여 오만한 태도와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을 따라 산다면, 결국 예수님을 초대한 거만한 주인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느라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하거나 사양한다면 결국은 버림받는 일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대한 결정은 여러분 자신의 몫입니다. 현명한 선택으로 영원한 기쁨의 삶을 예비하며,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영원한 삶을 소망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생활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본문을 포함하는 14장 전체에 제목을 붙인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받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용은 예수님께서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의 일들을 사람들에게 비유들을 통하여 가르치십니다. 본문인 1-14절에는 어떤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받은 예수님의 당면하신 현실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16-24절은 “큰 잔치 비유”라고 하는데, 이 비유를 통하여 천국잔치에 초대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5-35절에는 ‘쌍둥이 비유’라고 불리는 두 비유를 포함하고 있으며, 초대받은 사람들의 자격과 자세를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어떤 사람이며,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를 받았다 할지라도 초대받은 사람 전부가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에 다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받은 사람이 초대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맞아야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중요한 내용을 바리새인의 집에 초대를 받은 자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생활하는 성도의 삶의 자세가 곧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받은 자로서의 자세가 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먼저, 전체적인 내용부터 파악해 봅시다.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음식을 잡수시러 바리새인 중의 한 지도자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식사에 초대를 받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고창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고창 병이란 수종 병이라고도 하는데, 신장이나 간장에 필요 이상의 물이 차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병자는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인데 식사 자리에 초대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주변을 둘러보시고는 상황을 다 읽으셨습니다.
그 곳에는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초대한 주인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시험하는 부류였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엿보는 사람들”과 “율법사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살펴서 약점을 잡기 위해서 이 초대의 자리를 마련한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예수님의 일행으로, 시험 대상자로 초대받은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부류는 예수님을 시험하는 도구로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그 중에 고창병자가 있습니다. 상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사람들은 병자를 데려다 놓고 예수님을 초대하여 안식일의 율법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험하는 부류들의 생각을 읽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거기 둘러서 있는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 자신들의 생각을 들켜버린 그들은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 병자를 고쳐주시고는 돌려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너희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는데 안식일이라 해서 끌어내지 않을 사람이 있겠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식탁이 준비되어 있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초대된 사람들이 높은 자리 쪽으로 몰려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초대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도 파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초대받은 사람들을 보시면서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혼인잔치에 초대를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고 낮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시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가르쳐 주십니다.
이어서, 주님은 초대한 주인을 보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람들을 초대할 때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즉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세상의 방식을 따라서 ‘부하고, 권력 있고, 자신에게 덕이 되는 사람을 초대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받은 은혜를 되갚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하려거든 되갚을 것이 없는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초대하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구제와 기도와 금식을 하나님만 아시도록 은밀하게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초대한 주인인 바리새인의 지도자에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온전한 신앙의 삶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1. 누가 초대받은 사람들입니까?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한 지도자로부터 초대받은 자리를 소개합니다. 그러나 이 초대의 자리는 불순한 의도가 깔려 있음을 봅니다. 예수님은 주인의 의도가 불순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초대에 응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불행한 수종병자의 문제까지도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는 인간의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악한 경영에도 불구하고 그것까지도 사용하셔서 긍휼히 여겨야 할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십니다. 예수님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면서도 하나님의 초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길을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은 초대한 주인과 초대받은 사람들을 주의 깊게 살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과 계획을 따라서 초대하기도 하고 초대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하나님을 의식하는 마음이 전혀 없음을 보셨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초대문화를 바로 고쳐주어야 할 필요성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즉시 모인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의 법칙을 전하셨습니다. 초대받은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본문의 7-14절의 내용은 사람들의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의 법칙을 적용하는 원리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16-24절에서는 하나님 나라로의 초대를 가르치시며, 26-35절까지는 초대받은 자로서의 합당한 삶의 자세, 즉 제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하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초대받고 초대한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받았음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 초대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고, 합당한 삶의 자세가 있음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하셨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사양하고 거절한 것입니다. 본문 다음에 나오는 17-23절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이는 하나님의 초대(복음)가 선민인 유대인뿐만 아니라, 온 세계에 전파된 것을 말씀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초대를 받았으며, 긍정적으로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시작입니다. 이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2.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를 받은 사람은 초대의 자리에 합당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22:1-14절에는 예수님께서 ‘혼인잔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셨습니다. 그 중에서 11-14절을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갔더니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하나있었다. 그를 보고, ‘예복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 왔소?’ 하고 물었다. 그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이 사람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어 쫓아라.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하고 말하였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뽑히는 사람은 적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요구되는 자세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을 통하여 초대받은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 나라에 초대받은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자세가 무엇입니까? 방금 읽었던 혼인잔치 비유의 표현으로는 “예복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병자를 고쳐주신 일, 초대를 받은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 그리고 초대한 사람에게 하신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야 함’을 가르치십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 초대받은 성도는 세상에 살 때에도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복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천국 혼인잔치의 예복에 대하여는 계시록19: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어봅시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예수님과 성도들과의 혼인잔치의 예복은 ‘옳은 행실’입니다. 즉 성도가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에서 성도가 따라야 할 하나님의 방식이 무엇인지를 가르치십니다. 본문11절입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겸손’을 말합니다. ‘겸손한 자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세이며, 많은 약속들이 주어져 있습니다. 겸손이라고 하면 성 프랜시스를 뺄 수가 없습니다.
성 프랜시스의 제자 중 한 사람이 환상 중에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곳에 가니까 거기에 보좌가 쭉 늘어서 있는데 가장 높은 보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안내자에게 물었습니다.
“이 보좌는 누구의 것입니까?”
그러자 안내자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성 프랜시스가 앉게 될 의자이니라.”
고 했습니다. 아무리 스승이지만은 너무나 화려하고 높은 보좌를 보니 질투가 났습니다. 그 일이 지난 어느 날, 스승을 만난 제자는 조용한 시간에 스승인 프랜시스에게,
“선생님은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스승은
“나?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라고 쉽게 대답했습니다. 제자는,
“선생님, 그건 위선입니다. 선생님은 성자입니다. 세상에 강도, 살인, 도적질 등을 일삼는 악한 사람들이 많은데, 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악하다면 그게 말이 됩니까?”
그러자 프랜시스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건 자네가 나를 몰라서 그래. 나는 참으로 악한 사람이거든. 그러나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있어서 그 은혜로 인하여 내가 있는 거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셨다면 그분들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거라네.”
제자는 말없이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라고 칭찬하셨는데, 프랜시스의 성품을 보면 성자 칭호에 걸맞은 겸손함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겸손은 주님의 성품입니다. 이 겸손에 대하여 잠언18:12절에서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하시며, 이사야57:15절에서는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 말세를 사는 성도들에게 빌립보서2:3절에서는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하시며, 베드로전서5:6절에서는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누릴 영원한 삶의 자리를 스스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영원한 기쁨의 삶을 진정으로 믿고 소망한다면, 겸손과 사랑으로 하나님의 초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것은 ‘주어진 환경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에 대하여 오만한 태도와 자신의 육신적인 생각을 따라 산다면, 결국 예수님을 초대한 거만한 주인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느라 하나님의 초대를 거절하거나 사양한다면 결국은 버림받는 일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의 초대에 대한 결정은 여러분 자신의 몫입니다. 현명한 선택으로 영원한 기쁨의 삶을 예비하며,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도 영원한 삶을 소망하면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생활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