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숨겨진 사실들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6,499회 작성일 2004-04-03 22:18
♡♥♡ 숨겨진 사실들 / 누가복음19:38-44

*** 들어가는 말

38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 39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하소서.’ 하거늘 40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하시니라. 41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42 가라사대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43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던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실 때에,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치며 환영했던 바로 그 날입니다. 이 날의 감격만으로 본다면, 사람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한 희망으로 들뜨기에 충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까지 약소민족으로 고통 받아 왔고, 지금도 로마의 폭정으로 자유를 잃은 고난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주독립을 이루게 되었다는 희망으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자를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모든 병을 고치시며, 작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을 먹이시는 능력자가 자신들의 왕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분만 왕이 된다면 로마를 물리치고, 부강한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을 보면, 무엇인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만세’를 외치며 들떠있는 군중들을 뒤로 하고,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는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는 숨기웠도다.”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이는 지금 예수님을 환영하고 있는 이 무리들의 마음의 눈이 가려져서 평화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들을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과 패망을 몰고 올 전쟁이었습니다. 이 일을 아시고 예수님은 우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눈에 숨겨진 사실들은 무엇이겠습니까?

이 일이 오늘 우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셨던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를 보시고 우시지는 않겠습니까?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자신의 삶의 모습을 찬찬히 돌아봅시다.

1. 유대인들의 눈에 숨겨진 사실들은 무엇입니까?

본문42절입니다.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너’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부르시는 호칭입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숨겨진 사실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평화에 관한 일’이며, 다른 하나는 ‘심판에 대한 일’입니다.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사실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1) 숨겨진 평화에 관한 일은 무엇입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거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거절하고 죽였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가 오시는 방법과 하시는 일이 자신들의 소망과 생각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달랐습니까?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육신적인 삶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능력으로 로마를 물리치고 자유 국가를 만들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이 사실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를 통하여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장사된 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실망과 좌절감을 안고 고향인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와 함께 걷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슬픔에 찬 그들에게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우리는 그분이 이스라엘을 이 난국에서 구원하실 분이라고 생각해 왔소.”(눅24:21/현대어성경)라고 대답합니다. 즉 자유 국가와 부강한 나라를 이루는 정치적인 메시아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다른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죽음이 이해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나약한 인간 예수를 거절하고 배척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이미 예고가 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섬기는 일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안락한 삶을 원했던 것입니다. 누가복음13:34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이스라엘을 보시고 탄식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이스라엘은 자신의 욕망에 마음이 가려져서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 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먼저 회복되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육신적인 평안만을 원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도 그러하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우리의 영혼이 회복되는 것이 먼저임을 분명히 가르치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고 주님께 헌신되면, 우리 육신의 삶은 더불어 평안과 강건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숨겨진 심판에 대한 일은 무엇입니까?
본문43-44절입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섬뜩한 참상의 예고는 경고가 아니라 이미 예정된 심판을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견고한 예루살렘 성과 아름다운 성전을 자랑하고만 있었습니다. 속으로는 썩어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외적인 모양만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영이 어두워 가려졌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마가복음13:1-2절(공동번역)입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 나오실 때에 제자 한 사람이 ‘선생님, 저것 보십시오. 저 돌이며 건물이며 얼마나 웅장하고 볼만합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저 웅장한 건물들이 보이겠지만 그러나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제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영이 가려지면 보이는 것은 세상적인 것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본문 바로 뒤를 이어서 세속화된 성전의 내면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영혼이 어두워지면 세상적인 것만 보이게 됩니다. 내면의 세계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의식주 생활이 걱정되고, 자식이 걱정되고, 장래가 염려스럽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하여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 자요.”(막4:19)라고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고린도후서7:10절에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권고 받는 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하셨는데, 현대어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기회를 네가 거절하였기 때문이다.”고 했으며, 공동번역에서는 “하나님께서 구원하러 오신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즉 자신의 생각과 욕망에 빠져서 살다가 구원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이 가려져서 세상을 따라가면 반드시 비참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된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21:34-36절을 봅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영혼이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경고와 선언에도 불구하고 끝내 돌아오지 않다가 예수님의 심판선언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은 주후 70년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유대 전쟁사’를 보면, 예루살렘의 멸망이 얼마나 처절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70년 4월에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온 티투스 장군의 로마 군대에 의해 포위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8월말에 성전이 점령당하고 불태워졌습니다. 로마인들은 주민들을 땅바닥에 눕혀 놓고 아이들을 포함하여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그들은 3개의 망대만을 남겨 놓고는 모두 헐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유대인들을 전원 예루살렘 밖으로 추방했습니다. 예루살렘 밖에서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마사다’ 요새도 73년 4월에 전원이 자살함으로써 정복되었고, 유대는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2. 이 일들이 유대인들에게 숨겨진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이스라엘이 멸망당한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평화에 관한 일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관심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관심은 사람을 만든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관심을 따라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관심이 많으면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불교에 관심이 많으면 불자가 되는 것이며, 책에 관심이 많으면 학자가 되고, 산에 관심이 많으면 등산가가 되고, 옛 것에 관심이 많으면 고고학자가 되고, 남의 재물에 관심이 많으면 도둑도 되고 사기꾼도 되고 살인자도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돈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면 패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관심이 많았습니다. 자신들의 구원을 바라고 구원자를 고대했습니다. 그런데 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거절하고 배척했습니까? 그것은 진정한 평화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라고는 제각기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는 성전을 통하여 이권을 챙기는 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서기관, 율법사들은 더 존경받고 더 높은 자리, 즉 명예에 목숨을 걸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어디에 붙어야 좀더 편하고 이익을 챙길 수 있는지에 모든 관심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모여온 무리들을 향하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라고 하시고는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많이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속셈이 들통 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이용해서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잘못 선택했습니다. 차라리 사업을 하십시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 생각과 욕망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명예와 권력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국회로 가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5-27)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순종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삶보다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도 간에 사랑으로 서로 헌신하고 봉사하고, 세상에 생명의 길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삶은 평화의 길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기쁨이 있고, 넘치는 감사가 있습니다.

교회에 오는 것이 부담스럽고,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이 힘들고, 헌금 드리는 것이 부담스럽습니까? 우리의 주인이신 주님은 우리를 풍성한 삶과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우리가 받아야 할 수모와 멸시와 천대를 당하시고, 생명까지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두고 로마서8:32절에서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만일 이러한 주님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면, 영원한 생명도 하나님의 나라도 가려져서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며, 세상의 염려로 인한 어두움만 가득할 것입니다.

이제,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진정한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바라신다면, 주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고 동참해야 합니다. 우리가 동참해야 할 고난은 나의 모든 관심과 소유를 드려서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이 주님께로 향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정하여 신실하게 따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과 더불어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누리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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