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298회
작성일
2004-03-28 22:00
♡♥♡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 / 요일3:13-24
*** 들어가는 말
요즈음 자연생태계에는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는 동식물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이 주된 원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세상에도 희귀해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입니다. 정말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진실한 사랑의 이야기를 듣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저마다의 사랑을 외치고 있으며, 사람들은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부족한 것이 사랑입니다. 왜 이렇게 사랑이 희귀해 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에 바빠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별로 하는 일 없이 바쁩니다. ‘바빠서’라는 말이 입에 습관처럼 베어 있습니다. 더 큰 진짜 이유는 ‘관심’이겠지요.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대하여 예고하신 말씀은 ‘관심’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24:12절에서 예수님은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또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세상에는 진실하게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너도나도 적당히 법을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적발이 되고 징계를 받게 되면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불법의 성행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관심이 멀어지면서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본다면, 세상이 기독교를 상대로 거세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상에서 ‘안티기독교’사이트들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이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제는 조직화되고, 직접 사회로 나와서 기독교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강 둔치에 반기독교 현수막과 피켓을 설치하고,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사진과 글들(단군상이 파괴된 만큼 십자가를 부숴드릴까요?, 반기독교 선언문, 교회의 분쟁, 비리, 음해성 글 등)을 공원에 전시하여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조차 그리스도인을 보는 시선들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이유와 해결 방법을 이 시간 본문 말씀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의 현실 사회에서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임을 본문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십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세상의 현실을 말씀하며, 이어서 이러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점검하고 능력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세상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본문13-1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이유와 자신의 소속을 가늠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이유는 ‘참된 생명’ 즉 ‘영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소속이 다른 것이 미움을 받는 주된 원인입니다. 요한복음15:18-19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소속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그 방법은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는 것입니다. 14절을 좀 더 쉽게 번역하면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형제 사랑’은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확인해 주는 증거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형제 사랑이 영생을 가진 증거가 되는 이유는 16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유를 간단히 말하면 ‘주님이 먼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며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살펴야 하는 것은 ‘지금 세상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세상은 진실한 사랑이 고갈되었으며, 지금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최권능 목사님처럼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라고만 외쳐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금은 선물을 들고 찾아가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아예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진실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니 관심가질 일도 없습니다. 자기 관심거리 외에는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소속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대하듯이 우리도 그들에 대하여 외면하고 무관심해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된다면 본문에서처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지도 않았겠지요. 초대교회 당시에도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진실한 사랑이 식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7,18절 말씀에서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하십니다. 이 사실은 야고보서에서도 실질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14-17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 하십니다. 문제는 행함이 있는 진실한 사랑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중요한 이유는 말뿐인 기독교인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외치면서도 생활 속에서는 말 한마디도지지 않으려 하며, 희생과 봉사는커녕 사사건건 따지고 작은 손해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생활 모습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큰 섬김과 봉사, 희생만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사소하고 작은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인사하기, 미소 짓기, 좋은 대화 나누기, 칭찬하기, 자리 양보하기 등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한 가족처럼 대하는 사랑입니다.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은 머리 속에 채워진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나타내는 실천적인 사랑입니다. 본문18-19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사랑은 이렇게 나타나는 사랑을 통하여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곧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미국 신시내티의 빈야드 교회(치유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존 윔버’ 계통의 빈야드 교회와는 다름)가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빈야드 교회는 ‘2-20전략(Two twenty strategy)’이라는 전도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종으로 섬기는 전도’를 말하는데, 이 방법을 통하여 급성장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2-20전략이란, 복음 전도를 위해 한 달에 두 시간 이상 지역 사회를 섬기고, 20달러 이상을 사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신시내티의 빈야드 교회는 청소 팀을 만들어 교회 주변 식당의 화장실을 자원해서 청소해주고, 상점에서 물건을 무료로 포장해주며, 무료로 세차를 해주고, 세차 중에 음료수까지 대접했습니다. 더 나아가 공중전화를 걸 동전을 제공하고, 시간초과 주차비를 대신 내주며, 오후에 피곤해 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장미꽃을 준비하여 한 송이씩 선물하는 등. 삶의 현장에 찾아가서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적극적인 봉사 활동을 펼쳤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예상치 않은 대접을 받은 주민들이 당황하며 그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했노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어느 교회에서 왔는지, 또는 교회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자기 교회가 아닌 인근의 작은 교회를 소개해주었다고 합니다.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작더라도 진실한 사랑이며,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지금 세상은 정보의 홍수입니다. 텔레비전, 인터넷, 휴대폰, 일반 전화기, 신문, 잡지 등 온통 자신을 보아달라는 선전과 정보 때문에 몸살이 날 지경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것을 ‘스팸 메일’이라고 부르는데, 사람들마다 스팸 메일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말 잘하는 입술까지 보탠다면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폭발하겠습니까? 당연히 자신들과는 생각이 다르고 소속이 다른 교회 쪽이겠지요. 그러므로 지금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한 사랑을 실천할 때입니다.
현대 사회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현대인의 90%정도가 가벼운 정신병중세를 보이고 있고, 서울대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의 30-40%정도가 성격과 정서장애를 보이고 있으며, 노인 인구의 10%가 치매라고 합니다. 경쟁시대를 살며, 능력과 성공 위주의 사회, 물질만능주의 사회, 쾌락에 물든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지쳐있으며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하고 진실한 사랑입니다.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있는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 교수는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20년간 복역했습니다. 1988년 8월 15일에 특별가석방 되어 그해 이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은 그가 수감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보낸 작은 편지들을 모은 것입니다.
신 교수는 이 책에서 진실한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차가운 빗속을 거닐 때, 남은 우산을 하나 빌려주는 것보다, 그와 함께 그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참다운 사랑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사람을 사랑하심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히브리서4:15절(현대어성경)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가 당하는 이 시련을 몸소 겪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단 한 번도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신 일이 없습니다.” 이 말씀이 ‘동병상련(同病相憐)’ 즉 ‘입장의 동일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우리 인생처럼 육신을 가지셨고, 가난과 삶의 고통과 십자가를 지는 수모와 처절한 아픔과 낮아짐을 친히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연약한 우리 믿음의 식구들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는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실천하는 진실한 사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렇게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혜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마음을 얻게 하시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주님이 그 안에 거하시고, 그가 주님 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혜택은 우리가 주님을 진실하게 섬기고 따를 때에 주어지는 보너스입니다.
이 깊어가는 사순절에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시다. 영원토록 누릴 행복을 위하여 이 세대에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다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로 그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증거를 보여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그 기쁨을 영원토록 누리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요즈음 자연생태계에는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는 동식물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무분별한 개발과 환경오염이 주된 원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세상에도 희귀해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입니다. 정말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진실한 사랑의 이야기를 듣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세상의 종교들은 저마다의 사랑을 외치고 있으며, 사람들은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부족한 것이 사랑입니다. 왜 이렇게 사랑이 희귀해 지고 있는 것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에 바빠서’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별로 하는 일 없이 바쁩니다. ‘바빠서’라는 말이 입에 습관처럼 베어 있습니다. 더 큰 진짜 이유는 ‘관심’이겠지요.
하나님께서 이 세대에 대하여 예고하신 말씀은 ‘관심’의 문제입니다. 마태복음24:12절에서 예수님은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또 세상은 무법천지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따뜻한 사랑을 찾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세상에는 진실하게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너도나도 적당히 법을 어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적발이 되고 징계를 받게 되면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불법의 성행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관심이 멀어지면서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본다면, 세상이 기독교를 상대로 거세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상에서 ‘안티기독교’사이트들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이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제는 조직화되고, 직접 사회로 나와서 기독교를 대적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강 둔치에 반기독교 현수막과 피켓을 설치하고,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을 부각시킨 사진과 글들(단군상이 파괴된 만큼 십자가를 부숴드릴까요?, 반기독교 선언문, 교회의 분쟁, 비리, 음해성 글 등)을 공원에 전시하여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조차 그리스도인을 보는 시선들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이러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이유와 해결 방법을 이 시간 본문 말씀에서 제시하고 있습니다. 즉 ‘오늘의 현실 사회에서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임을 본문 말씀을 통하여 가르치십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고, 사랑이 식어지는 세상의 현실을 말씀하며, 이어서 이러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는 길을 제시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 자신을 새롭게 점검하고 능력을 소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세상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본문13-15절을 함께 읽어봅시다.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이유와 자신의 소속을 가늠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미워하는 이유는 ‘참된 생명’ 즉 ‘영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소속이 다른 것이 미움을 받는 주된 원인입니다. 요한복음15:18-19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진정한 소속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십니다. 그 방법은 형제 사랑을 실천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보는 것입니다. 14절을 좀 더 쉽게 번역하면 ‘우리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형제 사랑’은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확인해 주는 증거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형제 사랑이 영생을 가진 증거가 되는 이유는 16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유를 간단히 말하면 ‘주님이 먼저 나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며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살펴야 하는 것은 ‘지금 세상이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금 세상은 진실한 사랑이 고갈되었으며, 지금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최권능 목사님처럼 ‘예수 천당, 불신지옥’이라고만 외쳐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지만, 지금은 선물을 들고 찾아가도 반가워하지도 않고, 아예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진실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니 관심가질 일도 없습니다. 자기 관심거리 외에는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소속이 되었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대하듯이 우리도 그들에 대하여 외면하고 무관심해도 되겠습니까? 그래도 된다면 본문에서처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지도 않았겠지요. 초대교회 당시에도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세상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서 진실한 사랑이 식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7,18절 말씀에서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하십니다. 이 사실은 야고보서에서도 실질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2:14-17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고 하십니다. 문제는 행함이 있는 진실한 사랑입니다.
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입니까?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대적하는 중요한 이유는 말뿐인 기독교인들에게 실망했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외치면서도 생활 속에서는 말 한마디도지지 않으려 하며, 희생과 봉사는커녕 사사건건 따지고 작은 손해도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생활 모습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큰 섬김과 봉사, 희생만이 아닙니다. 생활 속에서 사소하고 작은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먼저 인사하기, 미소 짓기, 좋은 대화 나누기, 칭찬하기, 자리 양보하기 등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즉 한 가족처럼 대하는 사랑입니다.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하는 신앙은 머리 속에 채워진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나타내는 실천적인 사랑입니다. 본문18-19절에서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향하는 사랑은 이렇게 나타나는 사랑을 통하여 확실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곧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신 말씀대로입니다.
미국 신시내티의 빈야드 교회(치유사역을 중심으로 하는 ‘존 윔버’ 계통의 빈야드 교회와는 다름)가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빈야드 교회는 ‘2-20전략(Two twenty strategy)’이라는 전도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종으로 섬기는 전도’를 말하는데, 이 방법을 통하여 급성장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2-20전략이란, 복음 전도를 위해 한 달에 두 시간 이상 지역 사회를 섬기고, 20달러 이상을 사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신시내티의 빈야드 교회는 청소 팀을 만들어 교회 주변 식당의 화장실을 자원해서 청소해주고, 상점에서 물건을 무료로 포장해주며, 무료로 세차를 해주고, 세차 중에 음료수까지 대접했습니다. 더 나아가 공중전화를 걸 동전을 제공하고, 시간초과 주차비를 대신 내주며, 오후에 피곤해 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장미꽃을 준비하여 한 송이씩 선물하는 등. 삶의 현장에 찾아가서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적극적인 봉사 활동을 펼쳤습니다.
상식을 벗어난 예상치 않은 대접을 받은 주민들이 당황하며 그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단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했노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어느 교회에서 왔는지, 또는 교회를 소개해달라고 하면 자기 교회가 아닌 인근의 작은 교회를 소개해주었다고 합니다.
지금 세상이 필요로 하는 것은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작더라도 진실한 사랑이며, 실천하는 사랑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듯이 지금 세상은 정보의 홍수입니다. 텔레비전, 인터넷, 휴대폰, 일반 전화기, 신문, 잡지 등 온통 자신을 보아달라는 선전과 정보 때문에 몸살이 날 지경입니다. 인터넷에서는 이런 것을 ‘스팸 메일’이라고 부르는데, 사람들마다 스팸 메일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의 말 잘하는 입술까지 보탠다면 사람들이 어느 쪽으로 폭발하겠습니까? 당연히 자신들과는 생각이 다르고 소속이 다른 교회 쪽이겠지요. 그러므로 지금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진실한 사랑을 실천할 때입니다.
현대 사회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현대인의 90%정도가 가벼운 정신병중세를 보이고 있고, 서울대학교에 재학하는 학생의 30-40%정도가 성격과 정서장애를 보이고 있으며, 노인 인구의 10%가 치매라고 합니다. 경쟁시대를 살며, 능력과 성공 위주의 사회, 물질만능주의 사회, 쾌락에 물든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지쳐있으며 몸과 마음이 상처투성이입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하고 진실한 사랑입니다.
성공회대학교 교수로 있는 신영복 교수가 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신 교수는 육군사관학교 경제학과 교관으로 있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20년간 복역했습니다. 1988년 8월 15일에 특별가석방 되어 그해 이 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책은 그가 수감생활을 하면서 가족들에게 보낸 작은 편지들을 모은 것입니다.
신 교수는 이 책에서 진실한 사랑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차가운 빗속을 거닐 때, 남은 우산을 하나 빌려주는 것보다, 그와 함께 그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 참다운 사랑이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합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사람을 사랑하심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히브리서4:15절(현대어성경)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가 당하는 이 시련을 몸소 겪으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단 한 번도 유혹에 빠져 죄를 범하신 일이 없습니다.” 이 말씀이 ‘동병상련(同病相憐)’ 즉 ‘입장의 동일함’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면서 우리 인생처럼 육신을 가지셨고, 가난과 삶의 고통과 십자가를 지는 수모와 처절한 아픔과 낮아짐을 친히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사정을 너무나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연약한 우리 믿음의 식구들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는 세상 사람들을 향하여 실천하는 진실한 사랑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이렇게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많은 혜택이 주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마음을 얻게 하시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주님이 그 안에 거하시고, 그가 주님 안에 거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혜택은 우리가 주님을 진실하게 섬기고 따를 때에 주어지는 보너스입니다.
이 깊어가는 사순절에 나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합시다. 영원토록 누릴 행복을 위하여 이 세대에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다합시다. 그리하여 주님을 대적하는 사람들로 그 입을 열지 못하게 하는 증거를 보여서,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그 기쁨을 영원토록 누리는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