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네가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429회 작성일 2004-03-06 18:48
♡♥♡ 네가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 롬 10:9-13

*** 들어가는 말

우리 옛말에 “천 냥 빚도 말로 갚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는 뛰어난 처세술에 대한 표현입니다. ‘말’에 대하여는 성경에서도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3:6절에서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극단적인 표현까지 사용하면서 말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그런가하면 잠언25:11절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고 말의 효용성에 대하여 칭찬을 아끼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친구를 만날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난 남편이 없이는 살아도 아이들 없이는 못살아!”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하나님께서는 구 부인의 남편을 데려가셨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사고를 당하여 죽었던 것입니다. 남편을 잃고 난 후에 그 부인이 친구에게 말하기를,
“너는 남편이 없어도 못살고, 아이들이 없어도 못산다고 말해!”라고 충고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말’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 이로 인하여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오히려 위기에 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18:20-21절에서는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하여 배가 부르게 되나니, 곧 그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하여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말의 사용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나 동일하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는 말에 대하여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의에 이르는 길과 구원을 얻는 길’에 대한 것입니다. 본문에서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사람의 말과 표현에 대한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우리 마음과 말의 표현으로 시인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받아들이시는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지금까지 자신의 언어생활과 마음경영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합당한 방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고백이 있는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우상을 숭배하는 모든 종교와 다른 것은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일방적이고 막연한 숭배입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사야44:15절에서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 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우상 숭배는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따라서 스스로의 만족만을 구하는 혼자만의 독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스스로를 위안하는 독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본문11-12절(현대어성경)을 봅시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는 일이 없다고 이르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다를 게 없습니다. 그들은 모두 같은 주님을 모시고, 주께서는 당신께 구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풍성한 복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인간의 구함과 하나님의 응답’ 이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가장 절정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만남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인격적으로 경배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경배하는 자들에게 말씀으로 또는 영혼에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찬양과 기도를 통한 고백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 선포가 있고, 감사의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요소가 ‘고백’입니다.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 자신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범죄한 죄인임을 시인하며, 하나님께서 구원자가 되심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선언하시고 자녀로 인정하시고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사람의 인격적인 관계의 시작이며 기독교 신앙의 근본입니다. 본문9-10절이 이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좀 더 깊이 살펴보고자 하는 내용이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에서도 중요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네가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는 선언입니다.

1) 시인하는 것과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시던 때에 유대에서 가장 유행했던 말이 있었다면 무엇이었겠습니까? 추측하건데, ‘네 믿음대로 되라.’는 말이나,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라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말들이었을 테니까요. 예수님이 병을 고치실 때에 사용하셨고, 사도들도 사용했습니다. 사도행전19장에 보면, 예수님 시대보다 좀 더 지난 시대였지만, 마술사들까지도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사도행전19:13-14절에서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네 믿음대로 되라.’는 말이나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는 말이나 공통점은 ‘시인한다.’는 것입니다. ‘네 믿음대로 되라.’는 말은 믿는 그 사람의 예수님을 시인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는 말은 말하는 자가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 때마다 넣는 특별한 순서가 있습니다.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입니다. 이는 둘 다 시인과 고백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나의 신앙이 어떠함을 내 입으로 고백하며 시인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근본 되는 말씀이 본문9-10절입니다.

이 말씀에서 ‘입으로 시인하는 것’과 ‘마음으로 믿는 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각자의 입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즉 자기고백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을 말씀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어떠하며, 왜 이 둘을 다 필요로 합니까?

간단하게 말하면 온전한 신앙을 위하여 필요하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은 ‘의에 이른다.’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나의 죄를 씻어주시기 위한 대속의 죽음임을 믿고, 예수님의 부활이 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한 보장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마음의 고백입니다. 이 믿음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시는 ‘의롭게 여겨주심’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은 ‘구원에 이른다.’고 했는데, 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나타냅니다. 즉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말로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입술과 행동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입술과 행동의 고백은 확신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때로는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보다 입술로 고백하는 것이 더 힘들 때가 있습니다. 네로를 비롯한 로마의 열 황제 치하에서의 초대교회는 입술의 고백이 곧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의 통치를 받던 시절이나 공산치하에서는 입술의 고백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부인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믿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에 숨겨진 믿음으로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 믿음이 사람들 앞에서 말로나 행동으로나 당당하게 고백될 때에 온전한 믿음으로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전하게 될 때에 비로소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2) 시인하는 것과 생활과 관계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말을 할 때마다 그 말을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는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출애굽 후에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캄캄한 어두움 속에서, 번쩍거리는 불과 구름 가운데서, 큰 음성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광경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모세에게 ‘앞으로는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에게 다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5:28-29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너희가 내게 말할 때에 너희의 말하는 소리를 들으신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네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말이 다 옳도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나의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민수기12:1-2절에서는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민수기14:27-28절에서는 하나님을 불신하며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 말씀들이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우리가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말하고 대화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들으신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모세의 형과 누이가 모세를 비방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 세 사람을 성막 앞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비방한 아론과 미리암에게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이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겠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라고 책망하시고는 떠나셨습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미리암이 문둥병이 발병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활 속에서 말하고 대화하는 모든 것을 들으시고, 그 입술이 시인한 대로 결과를 내게 하십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12:36-37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왜 이렇게 말이 중요합니까? 이는 입술의 시인은 마음의 결정판이기 때문입니다. 즉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입술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울수록 감사하는 말을 많이 하시고, 기도와 간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시인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 된 인생임을 시인하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시인하고 하나님을 시인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처럼, 마음의 고백과 입술의 시인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육신적인 생활에서도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멘’으로 화답하시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입술로 표현하시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도 표현하십시오. 그래서 잠언27:5절에서 “면책은 숨은 사랑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의 고백과 시인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모든 생활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하심을 믿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모든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을 시인하는 삶이 되셔서 구원과 삶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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