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이루신 화평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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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02-28 14:40
♡♥♡ 십자가로 이루신 화평 / 엡 2:11-22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은 모든 사람이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하고 소망한다고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 들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삶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27일자 중앙일보에서는 부산 지하철에서 투신자살하는 일이 올해 들어 부쩍 많아져서 전전긍긍한다고 했습니다. 가족들끼리 동반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을 때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뚫고 나갈 수 없는 어떤 벽이 있었기에 저렇게 죽음을 택했을까?’하는 아픔입니다. 이처럼 기대하는 행복은 멀고, 겹겹이 둘러싸이는 담들이 가로막아서 사람들은 불행해 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며, 절망하게 하는 많은 담들이 있습니다. 인종간의 갈등이 담이 되어서, 지금도 세계에서는 종족간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문화의 차이가 장벽이 되기도 하며, 종교의 문제가 높은 벽이 되기도 합니다. 한 가족 안에서도 종교의 차이로 인하여 불행을 겪기도 합니다.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도 담이 되고, 성격 차이도 담이 됩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도 담이 되며, 육체의 욕망도 담이 됩니다.
사람 사이의 담뿐만이 아닙니다. 자연과의 담도 생겨납니다. 사람의 욕심이 자연을 파괴하고 그로 인하여 자연과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났습니다. 관계가 악화되면서 온갖 자연 재난들이 인간 세계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기오염이 심각하여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고, 이로 인하여 빙하가 녹고,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담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말씀에서의 표현대로 사람의 죄악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담을 쌓게 했습니다. 이 담이 가장 심각한 장벽이며, 모든 담의 근본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고통은 결국 사람의 죄악으로 인하여 생겨난 담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악화시켰습니다. 때로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한갓 육체뿐인 동물들 보다 더한 악함과 어리석음을 느끼게 합니다.
코끼리들은 넓은 평원을 지나다가 자기 동족의 주검을 만나면 머물러 선다고 합니다. 동물학자에 따르면 자기 나름대로의 애도를 표한다고 합니다.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들의 세계에도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어서 서열을 지키며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힘을 모은다고 합니다.
가을밤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기러기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기러기가 줄을 지어 날아갑니다. 그들이 ‘브이’자 모양으로 나는 이유는 공기의 저항을 줄여서 힘을 덜 들이고 멀리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앞서가는 기러기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쉽게 지치게 됩니다. 그러면 지친 선두가 뒤로 물러나고 다른 기러기가 선두를 맡습니다. 뿐만 아니라 ‘끼럭 끼럭’서로 소리를 내며 방향을 알려주고 위치를 지키도록 격려한다고 합니다. 때로는 한 마리가 부상을 당하여 더 이상 비행을 할 수 없으면 서머 마리가 낙오자와 함께 머문다고 합니다. 기러기는 동료의 불행을 외면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한갓 동물들도 하나님이 명하신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서로의 관계를 지켜 가는데, 우리 인간들은 갈수록 높은 담을 쌓고 관계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만일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인류는 결국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모든 관계가 원활하고 평화롭습니까? 자신의 속에서, 가족관계에서, 일가친척의 관계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직장이나 일터에서, 물질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혀진 담은 없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안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본문말씀이 이 사실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11-12절에서 우리의 본래의 신분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이었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머물러 있던 옛 삶의 자리는 소망이 없는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이 사실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없는 죄인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는데 옛 것을 잊어버려야지 왜 기억하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본문12절을 봅시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우리의 옛 신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을 쌓고 있었음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이 담을 무너뜨려야 할 필요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이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며, 여전히 소망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힘쓰고 애써 주님을 따라가며, 신앙을 지켜가는 것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 받기 위함입니다. 디모데전서4:10절에서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룰 때까지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로 담을 허시고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많은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로 이루신 화평’입니다. 십자가로 이루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삼으셔서 담을 허시고 화해하게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이것을 쉽게 표현한 것이 본문13-18절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는 사람사이에 막힌 담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담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14-15절을 봅시다. (공동번역)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구별하고 가로막았던 율법이라는 담을 주님의 죽으심으로 허물어버리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으며 지금 우리도 그 복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면 이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소망을 끝까지 붙잡고 성실하고 열심 있게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로마서11:17-18절(공동번역)을 봅시다. “올리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가지 몇 개가 잘리고 그 자리에 야생 올리브나무 가지를 접붙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접붙인 가지들은 올리브나무 원 뿌리에서 양분을 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이 야생 올리브나무 가지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잘려 나간 가지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럴 생각이 날 때에는 여러분이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고 뿌리가 여러분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방인인 우리가 영적인 하나님의 선민으로 접붙임이 되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20-21절에서는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원래 택함 받은 선민도 열매도 없고 믿음도 없어서 꺾여졌다면, 도중에 받아들여진 양자를 버리시는 일은 일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열심 있게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16-18절을 봅시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짐을 뜻합니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원수된 것”이란 무엇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죄를 범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바로 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담(화염검)으로 막으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 인간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담이 쌓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삶의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남자는 죽도록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으며, 여자는 남자를 사모하고 출산의 고통을 통하여 자손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모두 깨어졌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원수된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소멸시키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가 되어 주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사도행전4:12절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길을 여셨습니까? 그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짐승의 피’를 통하여 나아갔습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을 통하여서만 죄를 씻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레위기17: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죄의 삯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짐승의 피를 대신하여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그 순간에, 성전에 있던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막이 찢어져 둘로 나뉘었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휘장은 두께가 2.5Cm나 되는 두꺼운 천으로 되어 있으며, 지성소를 막고 있는 담이었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일년에 한 번 유대력으로 7월 10일 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주시는 공식적인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바로 그 휘장(담)이 예수님의 피에 의하여 거두어진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직접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만인제사장’ 즉 ‘믿는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죽음을 부르는 죄와 허물을 참회하고 씻어내는 일을 하는 특별한 절기가 ‘사순절’(Lent)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으며, 특별한 마음으로 연속기도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룰 때까지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열심을 다하여 주님을 따르도록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3. 이제는 하나님나라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본문19-22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음을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이 땅에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즉 아직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깨어 있어 우리의 길을 성실하게 달려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4:7절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2절에 있는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원어에서의 의미는 ‘이 일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단 한 순간이라도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든지,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식구는 하나님의 간섭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 때에만 화평을 누리는 행복이 보장됩니다. 이방인으로 버려진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식구로 삼아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그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합시다. 이 길이 우리 인생의 모든 막힌 담을 헐며,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호흡을 하는 그 순간까지 주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며 따라서 영광의 나라에 기쁨으로 이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행복은 모든 사람이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대하고 소망한다고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즈음 들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삶을 비관하여 자살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27일자 중앙일보에서는 부산 지하철에서 투신자살하는 일이 올해 들어 부쩍 많아져서 전전긍긍한다고 했습니다. 가족들끼리 동반 자살했다는 기사를 읽을 때면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뚫고 나갈 수 없는 어떤 벽이 있었기에 저렇게 죽음을 택했을까?’하는 아픔입니다. 이처럼 기대하는 행복은 멀고, 겹겹이 둘러싸이는 담들이 가로막아서 사람들은 불행해 하고 고통을 호소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며, 절망하게 하는 많은 담들이 있습니다. 인종간의 갈등이 담이 되어서, 지금도 세계에서는 종족간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문화의 차이가 장벽이 되기도 하며, 종교의 문제가 높은 벽이 되기도 합니다. 한 가족 안에서도 종교의 차이로 인하여 불행을 겪기도 합니다.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도 담이 되고, 성격 차이도 담이 됩니다. 물질에 대한 욕망도 담이 되며, 육체의 욕망도 담이 됩니다.
사람 사이의 담뿐만이 아닙니다. 자연과의 담도 생겨납니다. 사람의 욕심이 자연을 파괴하고 그로 인하여 자연과도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났습니다. 관계가 악화되면서 온갖 자연 재난들이 인간 세계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기오염이 심각하여 지구 온난화가 가속되고, 이로 인하여 빙하가 녹고,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담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있습니다. 이 시간 본문말씀에서의 표현대로 사람의 죄악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담을 쌓게 했습니다. 이 담이 가장 심각한 장벽이며, 모든 담의 근본을 이루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고통은 결국 사람의 죄악으로 인하여 생겨난 담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악화시켰습니다. 때로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한갓 육체뿐인 동물들 보다 더한 악함과 어리석음을 느끼게 합니다.
코끼리들은 넓은 평원을 지나다가 자기 동족의 주검을 만나면 머물러 선다고 합니다. 동물학자에 따르면 자기 나름대로의 애도를 표한다고 합니다.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들의 세계에도 나름대로의 원칙이 있어서 서열을 지키며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힘을 모은다고 합니다.
가을밤 하늘을 가로질러 나는 기러기들을 본 적이 있습니까? 기러기가 줄을 지어 날아갑니다. 그들이 ‘브이’자 모양으로 나는 이유는 공기의 저항을 줄여서 힘을 덜 들이고 멀리 날아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앞서가는 기러기가 힘이 많이 들기 때문에 쉽게 지치게 됩니다. 그러면 지친 선두가 뒤로 물러나고 다른 기러기가 선두를 맡습니다. 뿐만 아니라 ‘끼럭 끼럭’서로 소리를 내며 방향을 알려주고 위치를 지키도록 격려한다고 합니다. 때로는 한 마리가 부상을 당하여 더 이상 비행을 할 수 없으면 서머 마리가 낙오자와 함께 머문다고 합니다. 기러기는 동료의 불행을 외면하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한갓 동물들도 하나님이 명하신 자연의 순리에 따르며 서로의 관계를 지켜 가는데, 우리 인간들은 갈수록 높은 담을 쌓고 관계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만일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인류는 결국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모든 관계가 원활하고 평화롭습니까? 자신의 속에서, 가족관계에서, 일가친척의 관계에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직장이나 일터에서, 물질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혀진 담은 없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상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위하여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안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본문말씀이 이 사실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소망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11-12절에서 우리의 본래의 신분을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방인이었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머물러 있던 옛 삶의 자리는 소망이 없는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이 사실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합니다. 즉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없는 죄인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옛 사람은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는데 옛 것을 잊어버려야지 왜 기억하느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본문12절을 봅시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라고 우리의 옛 신분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을 쌓고 있었음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이 담을 무너뜨려야 할 필요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며, 이 일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음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며, 여전히 소망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힘쓰고 애써 주님을 따라가며, 신앙을 지켜가는 것은 우리가 소망하는 것을 이루어 받기 위함입니다. 디모데전서4:10절에서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을 온전히 이룰 때까지 소망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로 담을 허시고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많은 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로 이루신 화평’입니다. 십자가로 이루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삼으셔서 담을 허시고 화해하게 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이것을 쉽게 표현한 것이 본문13-18절의 내용입니다. 이 내용에는 사람사이에 막힌 담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담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14-15절을 봅시다. (공동번역)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율법 조문과 규정을 모두 폐지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희생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어 평화를 이룩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를 구별하고 가로막았던 율법이라는 담을 주님의 죽으심으로 허물어버리셨음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으며 지금 우리도 그 복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면 이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소망을 끝까지 붙잡고 성실하고 열심 있게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로마서11:17-18절(공동번역)을 봅시다. “올리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가지 몇 개가 잘리고 그 자리에 야생 올리브나무 가지를 접붙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접붙인 가지들은 올리브나무 원 뿌리에서 양분을 받게 됩니다. 말하자면 여러분은 이 야생 올리브나무 가지들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잘려 나간 가지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럴 생각이 날 때에는 여러분이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고 뿌리가 여러분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이는 이방인인 우리가 영적인 하나님의 선민으로 접붙임이 되었음을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20-21절에서는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이는 원래 택함 받은 선민도 열매도 없고 믿음도 없어서 꺾여졌다면, 도중에 받아들여진 양자를 버리시는 일은 일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열심 있게 주님을 따라야 합니다.
16-18절을 봅시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혔던 담이 무너짐을 뜻합니다.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원수된 것”이란 무엇입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고 죄를 범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바로 그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담(화염검)으로 막으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과 인간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담이 쌓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고, 삶의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남자는 죽도록 땀을 흘리고 수고해야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었으며, 여자는 남자를 사모하고 출산의 고통을 통하여 자손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 자연과의 관계가 모두 깨어졌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 “원수된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소멸시키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가 되어 주시는 ‘중보자’이십니다.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화목할 수가 있음을 말씀합니다. 사도행전4:12절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길을 여셨습니까? 그 길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예수님 이전에는 ‘짐승의 피’를 통하여 나아갔습니다. 왜냐하면 ‘피 흘림’을 통하여서만 죄를 씻을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레위기17: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죄의 삯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짐승의 피를 대신하여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에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이 운명하시는 그 순간에, 성전에 있던 성소와 지성소를 가로막고 있던 두꺼운 막이 찢어져 둘로 나뉘었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휘장은 두께가 2.5Cm나 되는 두꺼운 천으로 되어 있으며, 지성소를 막고 있는 담이었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일년에 한 번 유대력으로 7월 10일 속죄일에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주시는 공식적인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바로 그 휘장(담)이 예수님의 피에 의하여 거두어진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람이 직접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만인제사장’ 즉 ‘믿는 모든 사람이 제사장’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일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죽음을 부르는 죄와 허물을 참회하고 씻어내는 일을 하는 특별한 절기가 ‘사순절’(Lent)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으며, 특별한 마음으로 연속기도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룰 때까지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열심을 다하여 주님을 따르도록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3. 이제는 하나님나라의 식구가 되었습니다.
본문19-22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음을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신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이 땅에서 계속적으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즉 아직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구원이 완성될 때까지 깨어 있어 우리의 길을 성실하게 달려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4:7절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22절에 있는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원어에서의 의미는 ‘이 일이 자신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단 한 순간이라도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든지,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때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식구는 하나님의 간섭을 받으며,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 때에만 화평을 누리는 행복이 보장됩니다. 이방인으로 버려진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식구로 삼아주신 은혜를 감사합시다. 그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합시다. 이 길이 우리 인생의 모든 막힌 담을 헐며, 화평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호흡을 하는 그 순간까지 주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며 따라서 영광의 나라에 기쁨으로 이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