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려면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713회
작성일
2004-01-31 22:14
♡♥♡ 하나님의 능력을 입으려면 / 막9:14-29
*** 들어가는 말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릴 터인데, 여러분의 마음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이 몇 퍼센트 정도 됩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100% 응답되기를 바라시지요? 그리고 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원하시지요? 아마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기도응답이나 능력체험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내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 응답하시고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23절의 말씀처럼, ‘주여, 주여’한다고 다 들어주시는 것도 아니며,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한다.’고 들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나,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이나, 능력을 체험하는 모든 열쇠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6:5절에서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가복음12:40절에서는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 자신의 뜻과 욕망으로 행하는 것들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게 되는 원인들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여러 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수도 있고, 믿음이 없는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수도 있고, 귀신들린 아이 아버지의 입장에서 볼 수도 있고, 믿음에 대하여, 기도에 대하여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두 가지 비결’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어 받는 비결’이며, 다른 하나는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먼저, 전체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아홉 명의 제자들을 산 아래에 남겨두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셨고,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이는 천국의 작은 모형이었습니다. 세 제자들이 어찌나 황홀했던지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혼미한 중에 그곳에 초막 셋을 지어 살았으면 좋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산 위에서는 천국의 모습이 펼쳐지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곤혹스러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무 능력도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무능한 제자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을 내려 오셔서 제자들에게 왔을 때,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귀신들린 아들을 데려 온 사람이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의 병의 심각성을 설명하고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미심쩍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아이 아버지의 믿음 없음을 나무라셨습니다. 그러자 아이 아버지는 즉시 다급하게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장면이 바뀌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집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제자들의 무능력의 원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 우리 세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주님이 이루시는 능력을 체험하지도 못하고, 나 자신이 능력 있는 주님의 일군도 되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넘쳐나는데 성도들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미혹하는 세력과 이단들의 훼방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길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세상을 이겼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비결을 찾아봅시다.
1. 하나님의 능력을 내 생활에서 체험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시고 산에 가신 동안, 산 아래 남아 있던 아홉 제자들은 곤혹스러운 상황을 만났습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데려온 사람이 자신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모여든 사람들과 제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능한 제자들을 보시고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어설픈 요청을 했습니다. 이것은 신뢰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불신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의 무능함으로 인하여 의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불신을 나무라시며,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책망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는 즉시 복종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예수님은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에서 두 종류의 불신을 만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불신과 귀신들린 아이 아버지의 불신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의 고갈로 인한 불신이며, 아이 아버지의 불신은 예수님을 알지 못함으로 인한 불신입니다. 어떻든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내 생활에서 체험하는 비결’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자 다이빙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미국의 ‘로라 윌킨슨’이었습니다. 이 선수는 경기에서 우승한 후 유달리 많이 울었습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울었고, 시상식에서도 울었습니다. 이유는,
올림픽이 시작되기 6개월 전이었습니다. 다이빙 종목의 미국 대표 선수로 뽑히고 나서 연습을 하던 중 오른쪽 다리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그 상태로서는 도저히 올림픽 경기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코치는 올림픽 출전 불가를 선언했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말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승 후보로 꼽히는 중국의 두 선수가 기량이 너무나 뛰어나서 모두가 중국 선수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모두의 이런 예상을 뒤엎고 ‘로라’는 당당히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래서 감격에 겨워서 그렇게 울었던 것입니다. 로라 선수는 우승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올림픽 경기에 참여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주저 않고 싶을 때, 주위에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말릴 때,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성경 말씀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외울 때마다 하나님은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마가복음9:23절인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비결입니다. 이 신뢰는 마음속으로나 입술로 표현하는 신뢰가 아닙니다. 믿는 대로 실천하는 생활로 나타나는 신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환경과 상황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뢰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의심과 염려로 인한 불신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능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아이 아버지는 자신의 불신앙의 죄를 즉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길입니다. 요한일서1:8,9절에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다가오는 염려와 근심으로 인한 불신앙을 주님께 내어놓고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으며,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믿음이 능력을 체험하게 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행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기도하지 않고는 마귀를 쫓아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훼방하며, 유혹하고 미혹케 하며, 세상을 좋아하게 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 모든 일은 마귀의 소행입니다. 이러한 마귀를 제어할 수 있는 길은 ‘기도’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29:12절에서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14:14절에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전에 이미 귀신을 쫓아내 보았던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전도대로 파송하실 때에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마가복음6:12,13절에서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원인을 ‘기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은사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전기를 일으키시는 발전소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는 빛을 발하는 ‘전구’이며, 기도는 전기를 운반하는 ‘전선’이 됩니다. 아무리 멋있고 아름다운 전구를 가졌다 할지라도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이 연결되지 않았다면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와 각양 달란트는 기도의 분량에 따라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또한 여러분의 삶이 마귀를 제어하며, 세상을 이기는 능력의 삶이 되기를 원하시지요? 그렇다면 내게 다가오는 모든 삶의 환경이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내 가정을 통하여, 내가 속한 교회와 네게 주신 직장을 통하여,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과 일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기를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뢰와 기도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이루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길입니다.
이처럼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확신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게 되면 나타나는 징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기쁨’과 ‘감사’입니다. 이것은 환경이 좋아졌다거나 상황이 호전되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눈앞의 환경이나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다할지라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시거든 ‘하나님이 나를 기쁘게 받으시는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이러한 삶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주님께 다가가는 깊은 인내의 훈련을 통해서만 이루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환경과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기도로 교제하는 것을 연습하고 훈련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진실한 마음의 결심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2004년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어 받고, 또한 행하는 놀라운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제가 한 가지 질문을 드릴 터인데, 여러분의 마음으로 대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기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이 몇 퍼센트 정도 됩니까?’
여러분의 기도가 100% 응답되기를 바라시지요? 그리고 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원하시지요? 아마도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기도응답이나 능력체험에 대하여 큰 기대를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내가 원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 응답하시고 능력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23절의 말씀처럼, ‘주여, 주여’한다고 다 들어주시는 것도 아니며,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한다.’고 들어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나,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이나, 능력을 체험하는 모든 열쇠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6:5절에서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마가복음12:40절에서는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 자신의 뜻과 욕망으로 행하는 것들이며,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게 되는 원인들입니다.
본문 말씀에서 우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여러 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수도 있고, 믿음이 없는 제자들의 입장에서 볼 수도 있고, 귀신들린 아이 아버지의 입장에서 볼 수도 있고, 믿음에 대하여, 기도에 대하여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두 가지 비결’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어 받는 비결’이며, 다른 하나는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먼저, 전체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아홉 명의 제자들을 산 아래에 남겨두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셨고,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이는 천국의 작은 모형이었습니다. 세 제자들이 어찌나 황홀했던지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베드로는 그 혼미한 중에 그곳에 초막 셋을 지어 살았으면 좋겠다고 까지 했습니다. 산 위에서는 천국의 모습이 펼쳐지는 동안 산 아래에서는 곤혹스러운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아무 능력도 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무능한 제자들과 논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을 내려 오셔서 제자들에게 왔을 때,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귀신들린 아들을 데려 온 사람이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상황을 물으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의 병의 심각성을 설명하고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미심쩍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고 아이 아버지의 믿음 없음을 나무라셨습니다. 그러자 아이 아버지는 즉시 다급하게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장면이 바뀌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집에 이르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제자들의 무능력의 원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지금 우리 세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주님이 이루시는 능력을 체험하지도 못하고, 나 자신이 능력 있는 주님의 일군도 되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넘쳐나는데 성도들은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의 미혹하는 세력과 이단들의 훼방이 교회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대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길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힘입어 세상을 이겼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비결을 찾아봅시다.
1. 하나님의 능력을 내 생활에서 체험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시고 산에 가신 동안, 산 아래 남아 있던 아홉 제자들은 곤혹스러운 상황을 만났습니다. 귀신들린 아들을 데려온 사람이 자신들에게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모여든 사람들과 제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능한 제자들을 보시고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라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라고 어설픈 요청을 했습니다. 이것은 신뢰하는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불신하는 것도 아닙니다. 제자들의 무능함으로 인하여 의심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불신을 나무라시며,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책망을 들은 아이의 아버지는 즉시 복종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예수님은 아이를 고쳐주셨습니다.
여기에서 두 종류의 불신을 만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불신과 귀신들린 아이 아버지의 불신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의 고갈로 인한 불신이며, 아이 아버지의 불신은 예수님을 알지 못함으로 인한 불신입니다. 어떻든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이유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내 생활에서 체험하는 비결’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여자 다이빙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미국의 ‘로라 윌킨슨’이었습니다. 이 선수는 경기에서 우승한 후 유달리 많이 울었습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도 울었고, 시상식에서도 울었습니다. 이유는,
올림픽이 시작되기 6개월 전이었습니다. 다이빙 종목의 미국 대표 선수로 뽑히고 나서 연습을 하던 중 오른쪽 다리 골절상을 입었습니다. 그 상태로서는 도저히 올림픽 경기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코치는 올림픽 출전 불가를 선언했고,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고 말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승 후보로 꼽히는 중국의 두 선수가 기량이 너무나 뛰어나서 모두가 중국 선수가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모두의 이런 예상을 뒤엎고 ‘로라’는 당당히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래서 감격에 겨워서 그렇게 울었던 것입니다. 로라 선수는 우승 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올림픽에서 우승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올림픽 경기에 참여한다는 것조차 불가능한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주저 않고 싶을 때, 주위에 사람들이 할 수 없다고 말릴 때,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성경 말씀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외울 때마다 하나님은 저에게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 말씀은 바로 마가복음9:23절인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비결입니다. 이 신뢰는 마음속으로나 입술로 표현하는 신뢰가 아닙니다. 믿는 대로 실천하는 생활로 나타나는 신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때때로 환경과 상황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뢰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귀신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의심과 염려로 인한 불신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능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귀신들린 아이 아버지는 자신의 불신앙의 죄를 즉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길입니다. 요한일서1:8,9절에서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다가오는 염려와 근심으로 인한 불신앙을 주님께 내어놓고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으며,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진실한 믿음이 능력을 체험하게 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행할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집에 도착했을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기도하지 않고는 마귀를 쫓아낼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훼방하며, 유혹하고 미혹케 하며, 세상을 좋아하게 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 모든 일은 마귀의 소행입니다. 이러한 마귀를 제어할 수 있는 길은 ‘기도’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29:12절에서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14:14절에서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전에 이미 귀신을 쫓아내 보았던 경험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전도대로 파송하실 때에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던 것입니다. 마가복음6:12,13절에서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원인을 ‘기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과의 계속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은사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전기를 일으키시는 발전소라고 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는 빛을 발하는 ‘전구’이며, 기도는 전기를 운반하는 ‘전선’이 됩니다. 아무리 멋있고 아름다운 전구를 가졌다 할지라도 전기를 공급하는 전선이 연결되지 않았다면 무용지물(無用之物)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와 각양 달란트는 기도의 분량에 따라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또한 여러분의 삶이 마귀를 제어하며, 세상을 이기는 능력의 삶이 되기를 원하시지요? 그렇다면 내게 다가오는 모든 삶의 환경이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쉬지 않고 계속해야 합니다. 나를 통하여, 내 가정을 통하여, 내가 속한 교회와 네게 주신 직장을 통하여,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과 일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기를 구해야 합니다. 이러한 신뢰와 기도는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를 이루게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을 입는 길입니다.
이처럼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음을 확신하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게 되면 나타나는 징조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기쁨’과 ‘감사’입니다. 이것은 환경이 좋아졌다거나 상황이 호전되었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 눈앞의 환경이나 상황이 달라진 것이 없다할지라도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시거든 ‘하나님이 나를 기쁘게 받으시는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가 되면 이루게 됩니다. 이것이 능력입니다.
이러한 삶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주님께 다가가는 깊은 인내의 훈련을 통해서만 이루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환경과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기도로 교제하는 것을 연습하고 훈련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진실한 마음의 결심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실 것입니다. 2004년에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능력을 이루어 받고, 또한 행하는 놀라운 삶을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