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의 좋은 터를 위하여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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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01-24 17:50
♡♥♡ 장래의 좋은 터를 위하여 / 딤전 6:17-19
*** 들어가는 말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일가친척들을 만나고, 많은 덕담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수고하고 애쓰는 일들, 수많은 만남들, 배우고 훈련하는 것, 가정을 이루고 가꾸어가는 일 등. 이런 일들을 통하여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동물적인 본능으로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함인가요? 아니면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별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다 더 나은 장래의 삶을 보장 받기 위하여’노력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면서 현재를 살 것입니다. 특히 ‘종교생활’을 하는 것은 ‘장래의 좋은 터’를 위한 투자에 속한 것입니다. 사람은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수록 장래에 대한 기대가 크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소망을 자녀를 통하여 이루려고 하는 것도 그와 같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좋은 터’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에 와서도 ‘풍수지리’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좌청룡 우백호’에 ‘배산임수(背山臨水)’ 등. 죽은 사람의 묏자리까지도 ‘명당’을 찾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장래를 보장받기 위한 노력들입니다. 이러한 것들로 ‘장래의 좋은 터’를 준비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육신적인 삶은 물론이거니와 영적인 삶의 장래를 위하여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영적인 삶에 있어서 장래의 좋은 터를 보장 받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 생각해야 할 내용이 19절에서 말씀하는 ‘이것’이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지시하는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말게 하라.’, ‘두게 하라.’, ‘되게 하라.’ 이 세 가지입니다. 이 말씀을 잘 깨달아서 2004년의 삶이 장래의 좋은 터를 위한 훌륭한 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장래의 좋은 터를 보장 받는 첫 번째 길은 부정적인 명령어인 ‘말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17절 전반절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시오. 교만해지지 말며 믿을 수 없는 부귀에 희망을 두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권면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교만하지 말고 부귀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두 세상적인 재물을 의지함으로써 나타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장차 소멸되어 없어질 물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라 본질인 흙으로 돌아가 소멸될 것입니다. 이 세상도 우리의 육신도 모두 제한적인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물질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는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며, 세상의 재물이 많음으로 인하여 교만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에 영원한 것을 사모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8: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됩니다.
몇 해 전에 거부이면서도 생전에 단 한 푼의 적선을 해본 일이 없는 아랍의 억만장자가 유서를 남겼습니다. 유서를 담은 봉투에는,
“내가 죽으면 묘를 쓰지 말고 알몸으로 넓은 사막에 묻고 밖으로 두 손 내 보이도록 하라. 이 유서는 장례식 날 무덤 앞에서 뜯어보라.”
고 적혀있었습니다. 이 기이한 소문은 삽시간에 전 아랍에 퍼졌습니다. 장례식 현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왔습니다. 그 인색하고 돈 많은 부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흥미롭게 주시하면서 그 유서의 내용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유가족 대표가 유서를 뜯어서 읽었습니다.
“사람은 본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영원한 내 것은 없다. 나는 이 많은 재산을 모으기까지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단 한 푼의 돈을 가지고 갈 수가 없구나. 남으로부터 얻어진 것은 그들에게 되돌아가야 한다. 내 전 재산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내 가족이라도 놀고먹을 수는 없다. 한 푼도 남기지 말고 나누어 주되 내가 죽은 날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시행하라.”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가져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잘 분별하여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성경 전체를 다 뒤져보아도 ‘돈이 생명을 준다.’든지, ‘재물을 많이 얻기 위하여 애쓰라.’든지, ‘물질에 관심을 두라.’고 한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며, ‘재물을 얻을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13:5절에서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재물관입니다.
여러분이 물질을 얻고 싶으면 먼저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지금 주신 환경을 만족하게 여기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4:3절을 통하여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명기8:18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전도서2:26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애굽 사람들의 보물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도록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셨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을 통하여 모든 바사국민들에게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고 공포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재물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장래의 좋은 터를 보장 받는 두 번째 길은 긍정적인 명령어인 ‘두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17절 후반절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특징입니다. 그것은 ‘후하게 주신다.’는 것과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육신의 물질적인 것이나 영적인 신령한 것이나 모두 풍성하여 넘치도록 하십니다. 말라기3:10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6:38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10:10절에서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시며, 빌립보서4:19절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십니다.
물질이 풍성하지만 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앞에서 보았던 잠언2:26절의 말씀에서처럼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 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애써서 물질을 모아 쌓지만 누리지 못한다면 정말 헛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누리게 하십니다. 헤롯 왕이나, 빌라도 총독이나,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이나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 등. 이들은 부귀영화를 지키려고 살인과 권모술수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의 제자들도, 바울과 그 전도자들도, 핍박과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평안을 누리며, 기쁨을 누렸습니다. 몇 말씀들을 봅시다.
전도서6:2절에서는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고 모든 것을 후하게 받았지만 누리지 못하는 불행을 말씀했습니다. 전도서5:19절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6:2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고, 요한복음16:33절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왜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하는지를 아셨습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에게는 풍성하여 넘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화려하고 풍성하고 즐겁게 보이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쫓아다니지 말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셔서 후하게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3. 선한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장래의 좋은 터를 보장 받는 세 번째 길은 긍정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명령어인 ‘되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18절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는 비슷한 내용들을 계속 열거함으로서 대단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생활의 원리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의 모두에서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많이 당부하시고, 명령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사야1:17절에서는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고 하셨고, 잠언19: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한편으로 잠언21:13절에서는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1:27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시면서 하신 일이 섬김과 봉사를 통한 선한 사업이었습니다.
인터넷 에 올라온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아래층 202호 경석이, 경철이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합니다. 그래서 두 형제는 부모님이 늦게 돌아오는 날은 쫄쫄 굶다가 뒤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을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바로 위층 302호의 요셉이 엄마는 교회에 다녀오다가, 계단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초등학교 2학년 경석이와 네 살배기 경철이를 보았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은행에 다니다가 퇴직한 요셉이 엄마는 똑 같았던 옛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곤 마음이 아팠습니다. 며칠 후 요셉이 아빠는 다음과 같은 아내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 매일 경석이와 경철이를 애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돌보고 저녁을 먹이려고 해요.”
“그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남의 아이를 둘씩이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요셉이 아빠는 아내가 더욱 예뻐 보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요셉이 엄마를 한 번 뒤돌아봅니다. 요셉이 엄마는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경철이를 등에 업고 슈퍼에 가는 모습은 더욱 예뻐 보입니다.
여러분은 혹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만 매어 있지는 않습니까? 혹 선한 일을 하고 싶고, 돕고도 싶지만 생활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예로부터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습니다. 즉 부자라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아는 것입니다. 어려운 세월을 지내 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행하는 선한 일에는 상급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역대하15:7절에서는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고 하셨고, 본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2004년에는 후하게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면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선한 일에 힘씁시다. 비록 지금의 우리는 작은 마을에서, 작은 교회에서, 그리 넉넉한 생활을 하지는 못하지만, 장래의 좋은 터를 예비하는 진실한 삶을 이루어갑시다.
*** 들어가는 말
지난 한 주간 잘 지내셨습니까? 일가친척들을 만나고, 많은 덕담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람은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수고하고 애쓰는 일들, 수많은 만남들, 배우고 훈련하는 것, 가정을 이루고 가꾸어가는 일 등. 이런 일들을 통하여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동물적인 본능으로 종족을 번식시키기 위함인가요? 아니면 남들이 다 그렇게 사니까 별 생각 없이 살아가는 것일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다 더 나은 장래의 삶을 보장 받기 위하여’노력하고, 인내하고, 절제하면서 현재를 살 것입니다. 특히 ‘종교생활’을 하는 것은 ‘장래의 좋은 터’를 위한 투자에 속한 것입니다. 사람은 현재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수록 장래에 대한 기대가 크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소망을 자녀를 통하여 이루려고 하는 것도 그와 같은 원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좋은 터’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오늘에 와서도 ‘풍수지리’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좌청룡 우백호’에 ‘배산임수(背山臨水)’ 등. 죽은 사람의 묏자리까지도 ‘명당’을 찾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장래를 보장받기 위한 노력들입니다. 이러한 것들로 ‘장래의 좋은 터’를 준비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육신적인 삶은 물론이거니와 영적인 삶의 장래를 위하여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본문의 말씀이 영적인 삶에 있어서 장래의 좋은 터를 보장 받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9절에서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에 생각해야 할 내용이 19절에서 말씀하는 ‘이것’이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지시하는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말게 하라.’, ‘두게 하라.’, ‘되게 하라.’ 이 세 가지입니다. 이 말씀을 잘 깨달아서 2004년의 삶이 장래의 좋은 터를 위한 훌륭한 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
장래의 좋은 터를 보장 받는 첫 번째 길은 부정적인 명령어인 ‘말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17절 전반절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 세상에서 부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시오. 교만해지지 말며 믿을 수 없는 부귀에 희망을 두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이는 권면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교만하지 말고 부귀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는 모두 세상적인 재물을 의지함으로써 나타나는 삶의 모습입니다.
세상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장차 소멸되어 없어질 물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육신 또한 영원한 것이 아니라 본질인 흙으로 돌아가 소멸될 것입니다. 이 세상도 우리의 육신도 모두 제한적인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물질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체는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며, 세상의 재물이 많음으로 인하여 교만하여 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기 때문에 영원한 것을 사모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8:12-13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십니다. 이는 세상의 재물을 의지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됩니다.
몇 해 전에 거부이면서도 생전에 단 한 푼의 적선을 해본 일이 없는 아랍의 억만장자가 유서를 남겼습니다. 유서를 담은 봉투에는,
“내가 죽으면 묘를 쓰지 말고 알몸으로 넓은 사막에 묻고 밖으로 두 손 내 보이도록 하라. 이 유서는 장례식 날 무덤 앞에서 뜯어보라.”
고 적혀있었습니다. 이 기이한 소문은 삽시간에 전 아랍에 퍼졌습니다. 장례식 현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왔습니다. 그 인색하고 돈 많은 부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흥미롭게 주시하면서 그 유서의 내용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유가족 대표가 유서를 뜯어서 읽었습니다.
“사람은 본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영원한 내 것은 없다. 나는 이 많은 재산을 모으기까지 온갖 고생을 다 했지만 단 한 푼의 돈을 가지고 갈 수가 없구나. 남으로부터 얻어진 것은 그들에게 되돌아가야 한다. 내 전 재산을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내 가족이라도 놀고먹을 수는 없다. 한 푼도 남기지 말고 나누어 주되 내가 죽은 날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시행하라.”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가져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잘 분별하여 실행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성경 전체를 다 뒤져보아도 ‘돈이 생명을 준다.’든지, ‘재물을 많이 얻기 위하여 애쓰라.’든지, ‘물질에 관심을 두라.’고 한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것’이며, ‘재물을 얻을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히브리서13:5절에서는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재물관입니다.
여러분이 물질을 얻고 싶으면 먼저 자신의 사사로운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지금 주신 환경을 만족하게 여기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4:3절을 통하여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명기8:18절에서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세상의 모든 물질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 전무후무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전도서2:26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로 애굽에서 나올 때에 애굽 사람들의 보물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주도록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셨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레스 왕을 통하여 모든 바사국민들에게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고 공포하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재물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장래의 좋은 터를 보장 받는 두 번째 길은 긍정적인 명령어인 ‘두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17절 후반절입니다.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의 특징입니다. 그것은 ‘후하게 주신다.’는 것과 ‘누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육신의 물질적인 것이나 영적인 신령한 것이나 모두 풍성하여 넘치도록 하십니다. 말라기3:10절에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으며, 누가복음6:38절에서는 예수님께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10:10절에서는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시며, 빌립보서4:19절에서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하십니다.
물질이 풍성하지만 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앞에서 보았던 잠언2:26절의 말씀에서처럼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신다.” 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애써서 물질을 모아 쌓지만 누리지 못한다면 정말 헛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는 물질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누리게 하십니다. 헤롯 왕이나, 빌라도 총독이나, 예수님 당시의 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이나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 등. 이들은 부귀영화를 지키려고 살인과 권모술수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의 제자들도, 바울과 그 전도자들도, 핍박과 가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오히려 평안을 누리며, 기쁨을 누렸습니다. 몇 말씀들을 봅시다.
전도서6:2절에서는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고 모든 것을 후하게 받았지만 누리지 못하는 불행을 말씀했습니다. 전도서5:19절에서는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6:2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로 오늘날과 같이 생활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고, 요한복음16:33절에서는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왜 소망을 하나님께 두어야 하는지를 아셨습니까? 하나님께 소망을 둔 사람에게는 풍성하여 넘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막의 신기루처럼 화려하고 풍성하고 즐겁게 보이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쫓아다니지 말고, 모든 것의 주인이 되셔서 후하게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3. 선한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장래의 좋은 터를 보장 받는 세 번째 길은 긍정적이면서도 적극적인 명령어인 ‘되게 하라.’는 내용입니다. 18절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는 비슷한 내용들을 계속 열거함으로서 대단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생활의 원리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 성경의 모두에서 이 내용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많이 당부하시고, 명령하시는 말씀입니다.
이사야1:17절에서는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고 하셨고, 잠언19:17절에서는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한편으로 잠언21:13절에서는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야고보서1:27절에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시면서 하신 일이 섬김과 봉사를 통한 선한 사업이었습니다.
인터넷 에 올라온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아래층 202호 경석이, 경철이네 부모님은 맞벌이를 합니다. 그래서 두 형제는 부모님이 늦게 돌아오는 날은 쫄쫄 굶다가 뒤늦은 저녁을 허겁지겁 먹을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바로 위층 302호의 요셉이 엄마는 교회에 다녀오다가, 계단에서 부모님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초등학교 2학년 경석이와 네 살배기 경철이를 보았습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은행에 다니다가 퇴직한 요셉이 엄마는 똑 같았던 옛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곤 마음이 아팠습니다. 며칠 후 요셉이 아빠는 다음과 같은 아내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앞으로 매일 경석이와 경철이를 애들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돌보고 저녁을 먹이려고 해요.”
“그게 보통 일이 아닐 텐데…! 남의 아이를 둘씩이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요셉이 아빠는 아내가 더욱 예뻐 보였습니다. 동네 사람들도 요셉이 엄마를 한 번 뒤돌아봅니다. 요셉이 엄마는 참 아름답습니다. 오늘도 경철이를 등에 업고 슈퍼에 가는 모습은 더욱 예뻐 보입니다.
여러분은 혹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에게만 매어 있지는 않습니까? 혹 선한 일을 하고 싶고, 돕고도 싶지만 생활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예로부터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했습니다. 즉 부자라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의 사정을 아는 것입니다. 어려운 세월을 지내 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행하는 선한 일에는 상급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역대하15:7절에서는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니라.”고 하셨고, 본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2004년에는 후하게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소망하면서,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선한 일에 힘씁시다. 비록 지금의 우리는 작은 마을에서, 작은 교회에서, 그리 넉넉한 생활을 하지는 못하지만, 장래의 좋은 터를 예비하는 진실한 삶을 이루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