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라.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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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01-17 13:50
♡♥♡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라 / 히10:32-39
*** 들어가는 말
주님께서는 나무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열매’를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6:44절에서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나무’는 ‘사람’을, ‘열매’는 ‘나타나는 삶’을 말씀합니다. 나무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섭리를 따라서 정직하게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고 삶으로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겨울에도 밭에 거름을 내고, 새로운 흙을 실어 나른다면 그 사람은 좋은 소산물을 기대하는 성실한 농부임에 틀림없습니다. 썰매를 든 사람이 얼어붙은 호숫가에 서서 마냥 주저하고 있다면, 그는 얼음의 상태에 대하여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서커스를 보면 외줄 위에서 긴 막대로 균형을 잡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묘기를 보신 적이 있지요? 어느 모험가가 계곡 사이에 줄을 매고는 외바퀴 수레를 타고 건넜습니다. 그리고는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여러분은 내가 이 수레에 사람을 태우고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예”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 수레에 타실 분 안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에는 행동이 따르며, 삶에서 그 믿음을 나타내게 됩니다. 만일 믿노라고 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면 그는 형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이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좋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불안과 염려로 인하여 머뭇거리다가 주어진 기회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성경의 유명한 인물들을 꼽아보십시오.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엘리야, 룻, 다니엘 등. 구약의 인물들은 모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담대한 믿음과 뜨거운 정열의 소유자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수로보니게 여인, 로마의 백부장, 열 두해를 앓은 혈루병 여인, 소경 바디매오 등은 모두 적극적으로 환경의 장애를 극복하고 주님을 만났고 큰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에도 이러한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29:12-13절에서,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서도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하시며, “뒤로 물러가면 내가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올해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는지 그 길을 찾아봅시다.
1. 내가 가진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35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것에 담대해야 큰 상을 얻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소망’입니다. 34절 후반절에서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영구한 산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환난이나 어려움이나 고통에도 무너지지 않고 굴복하지 않습니다. 아니 무너질 수도 없고, 굴복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잠시 머물 세상의 부귀영화 때문에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포기한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닥친 환난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본문32-34절에서 말씀하는 내용이 바로 그 환난과 핍박을 말합니다. “고난의 큰 싸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예수를 받아 들였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고 되었고, 비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구경거리가 되었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자기 재산까지도 빼앗겼습니다. 이 엄청난 시련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게 했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소망’ 때문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는 너무나도 확실한 소망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모든 염려와 고통을 녹일만한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소망이 있습니까? 혹시 아직도 세상의 것들로 소망을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돈과 명예와 부귀영화는 우리 육신의 삶에 잠시 주어지는 위로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소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세상에서 얻은 재산과 명예와 권력과 부귀영화를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갈 뿐입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모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환경과 가정과 일터와 자녀와 건강과 물질과 모든 여건들이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주신 기회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연연하지 말고 소망을 향하여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은 이겨내고 성취하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만, 또는 마음속에 머물러만 있는 나약한 소망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열매로 나타나게 합시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고통과 염려와 어려움을 소망으로 녹여내며, 기쁨으로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2. 약속을 얻기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본문36절을 봅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내”라 함은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상태에 굳게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무리 견디기 힘든 상황이 압박해 와도 도망가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소망이 확실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분명히 믿는다면 환경이나 위협을 피하거나 숨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인내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약속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에서의 안식,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약속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받을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다리는 일에 너무 지쳐서 포기할까봐 미리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37절에서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즉 ‘조만간 아주 잠시 동안이 지나면, 오시는 이가 이를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지금이 힘겹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소망하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육신의 잠시의 낙을 위하여 포기한다고 해서 당장 육신적으로 팔자가 펴지거나 평안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조급하지 말고, 분을 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조급하고 분을 내는 것은 인내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쉽게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사람,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시편37:7절에서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인내하지 못하여 실패한 많은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인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입니다.
어느 기자가 건강하게 백세의 생일을 맞이한 사람에게 장수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노인은 “나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나는 절대로 과식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자가 “그런데 영감님처럼 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왜 오래 살지 못했습니까?”라고 하자, 노인이 대답하기를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지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인내란 얻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30대 대통령이었던 ‘칼빈 쿨릿지’는 “무엇으로 인내를 대신할 수 있는가? 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도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용기 있는 사람도 실패하는 것을 보는데, 이도 인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서양 속담에서는 “기다리는 것은 곧 믿는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인내의 중요성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을 이룰 때까지 믿음으로 인내합시다.
3.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38-39절을 봅시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했습니다. “뒤로 물러가면”이라는 말은 ‘교만’, ‘고집이 센 자’ 등의 의미입니다. 특히 38절은 하박국2:4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는 말씀을 본문에서는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번역했습니다. 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르게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뒤로 물러가는 것’과 ‘교만’한 것과는 ‘믿음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뒤로 물러가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교만하여 제 고집대로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을 따라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14:23절에서는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하셨습니다.
39절에서는 뒤로 물러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라는 말씀은 ‘멸망 가운데로 뒷걸음치는 자’라는 말입니다. 즉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겁을 내고 움츠리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에 두고도, 두려움과 불신으로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한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환경 때문에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믿은 대로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민수기14:27-30절입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3:13-14절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지나간 일들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잘했던지 잘못했던 지간에 지나간 일들은 잊어버리고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에 ‘엔티담 전투’에서 처음으로 북군이 승리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격려하기 위하여 링컨 대통령이 북군 사령부를 방문했습니다. 이때 승리에 감격한 지휘관이 “각하! 이제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편입니다.”라며 기뻐했습니다. 그 때 링컨 대통령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있는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있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올해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기대하지 마시고,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만 하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나의 소망을 확실하게 붙잡고, 소망을 이룰 때까지 인내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성도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큰 기쁨이 되며,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들어가는 말
주님께서는 나무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열매’를 말씀하셨습니다. 즉 ‘그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6:44절에서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나무’는 ‘사람’을, ‘열매’는 ‘나타나는 삶’을 말씀합니다. 나무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섭리를 따라서 정직하게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게 되고 삶으로 자신의 마음을 나타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겨울에도 밭에 거름을 내고, 새로운 흙을 실어 나른다면 그 사람은 좋은 소산물을 기대하는 성실한 농부임에 틀림없습니다. 썰매를 든 사람이 얼어붙은 호숫가에 서서 마냥 주저하고 있다면, 그는 얼음의 상태에 대하여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서커스를 보면 외줄 위에서 긴 막대로 균형을 잡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묘기를 보신 적이 있지요? 어느 모험가가 계곡 사이에 줄을 매고는 외바퀴 수레를 타고 건넜습니다. 그리고는 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군중들에게
“여러분은 내가 이 수레에 사람을 태우고 건너갈 수 있다고 믿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예”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그가 “이 수레에 타실 분 안 계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진정한 믿음에는 행동이 따르며, 삶에서 그 믿음을 나타내게 됩니다. 만일 믿노라고 하면서도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면 그는 형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적극적이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을 좋아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은 불안과 염려로 인하여 머뭇거리다가 주어진 기회를 놓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성경의 유명한 인물들을 꼽아보십시오.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다윗, 엘리야, 룻, 다니엘 등. 구약의 인물들은 모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담대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담대한 믿음과 뜨거운 정열의 소유자였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수로보니게 여인, 로마의 백부장, 열 두해를 앓은 혈루병 여인, 소경 바디매오 등은 모두 적극적으로 환경의 장애를 극복하고 주님을 만났고 큰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에도 이러한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29:12-13절에서,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이 시간의 본문 말씀에서도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하시며, “뒤로 물러가면 내가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즉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올해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는지 그 길을 찾아봅시다.
1. 내가 가진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35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것에 담대해야 큰 상을 얻게 됩니까? 그것은 바로 ‘소망’입니다. 34절 후반절에서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영구한 산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소망이 있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환난이나 어려움이나 고통에도 무너지지 않고 굴복하지 않습니다. 아니 무너질 수도 없고, 굴복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잠시 머물 세상의 부귀영화 때문에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포기한다는 말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시 기독교인들에게 닥친 환난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본문32-34절에서 말씀하는 내용이 바로 그 환난과 핍박을 말합니다. “고난의 큰 싸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즉 ‘예수를 받아 들였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고 되었고, 비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구경거리가 되었고,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자기 재산까지도 빼앗겼습니다. 이 엄청난 시련을 당하면서도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 고통 속에서도 기뻐하게 했습니까? 그것은 오로지 ‘소망’ 때문입니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바라는 너무나도 확실한 소망 때문입니다. 이 소망은 모든 염려와 고통을 녹일만한 강렬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러한 소망이 있습니까? 혹시 아직도 세상의 것들로 소망을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의 돈과 명예와 부귀영화는 우리 육신의 삶에 잠시 주어지는 위로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원한 소망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세상에서 얻은 재산과 명예와 권력과 부귀영화를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갈 뿐입니다. 세상에서 주어진 모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을 돌아보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에게 주어진 환경과 가정과 일터와 자녀와 건강과 물질과 모든 여건들이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주신 기회임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 연연하지 말고 소망을 향하여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상황은 이겨내고 성취하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입술로만, 또는 마음속에 머물러만 있는 나약한 소망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열매로 나타나게 합시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고통과 염려와 어려움을 소망으로 녹여내며, 기쁨으로 담대하게 나아갑시다.
2. 약속을 얻기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본문36절을 봅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인내”라 함은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상태에 굳게 머물러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아무리 견디기 힘든 상황이 압박해 와도 도망가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을 나타냅니다. 소망이 확실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분명히 믿는다면 환경이나 위협을 피하거나 숨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인내해야 합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받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약속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하나님 나라에서의 안식, 영원한 생명입니다. 이 약속은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을 받을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다리는 일에 너무 지쳐서 포기할까봐 미리 말씀으로 위로하십니다. 37절에서 “잠시 잠간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고 하십니다. 즉 ‘조만간 아주 잠시 동안이 지나면, 오시는 이가 이를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지금이 힘겹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위로하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소망하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는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합니다. 육신의 잠시의 낙을 위하여 포기한다고 해서 당장 육신적으로 팔자가 펴지거나 평안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조급하지 말고, 분을 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조급하고 분을 내는 것은 인내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표현입니다. 쉽게 화를 내고, 소리 지르는 사람,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합니다. 시편37:7절에서는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인내하지 못하여 실패한 많은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인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입니다.
어느 기자가 건강하게 백세의 생일을 맞이한 사람에게 장수의 비결을 물었습니다. 노인은 “나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나는 절대로 과식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오.”라고 대답했습니다. 기자가 “그런데 영감님처럼 한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은 왜 오래 살지 못했습니까?”라고 하자, 노인이 대답하기를 “그 이유는 그 사람들이 그렇게 오래 지속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라고 했습니다. 인내란 얻을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의 30대 대통령이었던 ‘칼빈 쿨릿지’는 “무엇으로 인내를 대신할 수 있는가? 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한다. 그것은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도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때로 용기 있는 사람도 실패하는 것을 보는데, 이도 인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서양 속담에서는 “기다리는 것은 곧 믿는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인내의 중요성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인정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을 이룰 때까지 믿음으로 인내합시다.
3.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38-39절을 봅시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고 했습니다. “뒤로 물러가면”이라는 말은 ‘교만’, ‘고집이 센 자’ 등의 의미입니다. 특히 38절은 하박국2:4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는 말씀을 본문에서는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고 번역했습니다. 같은 단어가 이렇게 다르게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뒤로 물러가는 것’과 ‘교만’한 것과는 ‘믿음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뒤로 물러가고, 믿음이 없기 때문에 교만하여 제 고집대로 하는 것입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믿음을 따라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 행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로마서14:23절에서는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하셨습니다.
39절에서는 뒤로 물러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씀하십니다.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라는 말씀은 ‘멸망 가운데로 뒷걸음치는 자’라는 말입니다. 즉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을 겁을 내고 움츠리는 사람들입니다. 마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앞에 두고도, 두려움과 불신으로 인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한 것과 같습니다. 그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환경 때문에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어가지 못하겠다고 믿은 대로 한 사람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민수기14:27-30절입니다.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함을 받은 자 곧 나를 원망한 자의 전부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3:13-14절에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지나간 일들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잘했던지 잘못했던 지간에 지나간 일들은 잊어버리고 주님 편에 서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에 ‘엔티담 전투’에서 처음으로 북군이 승리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격려하기 위하여 링컨 대통령이 북군 사령부를 방문했습니다. 이때 승리에 감격한 지휘관이 “각하! 이제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편입니다.”라며 기뻐했습니다. 그 때 링컨 대통령은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있는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있기만 하면 반드시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올해는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기대하지 마시고,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기만 하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역사하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나의 소망을 확실하게 붙잡고, 소망을 이룰 때까지 인내하면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담대한 믿음으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성도 여러분과 가정과 교회가 하나님의 큰 기쁨이 되며,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하심으로 이루어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