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해야 할 영의 삶9 - 하나 됨
작성자 배의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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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4-07-18 22:53
♡♥♡ 회복해야 할 영의 삶9 - 하나 됨
*** 들어가는 말
‘회복해야 할 영의 삶’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상고한지 아홉 번째가 됩니다. 여러분의 기억력이 얼마나 되는지 볼까요? 지난 주일까지 말씀을 전한 여덟 가지 주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가 ‘약함’이었으며, 착함, 돌아봄, 신실함, 온전함, 감사함, 자원함, 지난 주일에 ‘기뻐함’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상고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주제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야 할 영성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어지는 오늘과 다음 시간의 마지막으로 상고하고자 하는 두 주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소망하신 강력한 요청이며 명령입니다. 이는 기독교가 오늘까지 이르게 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영의 삶 아홉 번째는 ‘하나 됨’입니다.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남여가 하나를 이루어 부부가 되는 것도 어려운데, 많은 사람이 하나를 이루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요구되는 것도 많습니다. 제각기 개성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는 희생하고 양보하고 수용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갈라서기는 쉽지만 합하는 것은 쉽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하나 됨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 됨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와 하나를 이루는 길과 방법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가 청혼하기 위하여 여인의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세요?” 집안에서 여인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는 “나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았고,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없었습니다.
남자는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왜 그랬을까?!’ 며칠을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남자는 해답을 찾았습니다. 남자는 다시 여인의 집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역시 “누구세요?”라고 사랑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입니다.” 그러자 비로소 문이 열렸습니다.
이 이야기의 요지는 ‘내가 곧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통하여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하나 됨’을 가르치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영적인 결혼’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는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19:7-9절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두 가지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2:12-13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2:18절에서는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가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본문21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 됨이란, 성도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를 이루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어떤 의미에서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의문스럽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하나를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앞서 잠깐 보았던 것처럼, 성도를 향하신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이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쪽의 11절을 봅시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성부 하나님을 향하신 성자 하나님의 간곡한 기도입니다. 또한 에베소서4:3절에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간곡하게 기도하시며, 힘써서 하나를 이루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이미 한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의도적으로 하나가 되도록 마음을 합하고 뜻을 모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와 한 지체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를 이루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몇 가지 살펴봅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을 사람들이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21절에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전하는 일은 곧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교회가 하나가 될 때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3: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멸망당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받게 하려고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또한 히브리서2:14-15절에서는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처럼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육신의 삶에 매여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이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소식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마태복음9:12-13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소식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죄인들이며, 영과 육신이 병든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시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본문23절입니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까? 혹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에 무관심한 것은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따지기도 했습니다. 말라기1:2절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하는도다. ...”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알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 감격했었지요? 하나님께 헌신하겠노라고 다짐도 하고 결심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고 잊혀져서 혹시 지금은 사랑도 감격도 없이 습관적인 신앙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때에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26절입니다.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길이며 받아 누리는 길입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15:5절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9-11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지체들이 하나가 되고 주님과 하나를 이루어야 과실을 많이 맺는 풍성한 삶을 누리며, 신앙의 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를 이루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한 지체가 됩니다. 그리고 죄를 회개 하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2:12-13절을 봅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마음이 하나를 이루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음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일과 하나 되는 일에 관심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가르치면서 하나 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1-3절을 봅시다. (공동번역)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목적에 합당 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힘쓰게 되면 하나를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4:4-6절을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되었으며, 한 성령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뜻을 모으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를 이루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다 들었습니다. 이제 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실천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자신 안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를 이루게 합시다. 그리고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교회가 하나가 되고, 나아가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를 이루도록 힘씁시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하나를 이룰 때에 세상 사람들이 보아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 들어가는 말
‘회복해야 할 영의 삶’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상고한지 아홉 번째가 됩니다. 여러분의 기억력이 얼마나 되는지 볼까요? 지난 주일까지 말씀을 전한 여덟 가지 주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첫째가 ‘약함’이었으며, 착함, 돌아봄, 신실함, 온전함, 감사함, 자원함, 지난 주일에 ‘기뻐함’이라는 주제로 말씀을 상고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주제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루어야 할 영성입니다. 그 중에서도 이어지는 오늘과 다음 시간의 마지막으로 상고하고자 하는 두 주제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소망하신 강력한 요청이며 명령입니다. 이는 기독교가 오늘까지 이르게 한 원동력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중요한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영의 삶 아홉 번째는 ‘하나 됨’입니다.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두 남여가 하나를 이루어 부부가 되는 것도 어려운데, 많은 사람이 하나를 이루는 것은 어렵기도 하지만 요구되는 것도 많습니다. 제각기 개성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는 희생하고 양보하고 수용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갈라서기는 쉽지만 합하는 것은 쉽지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가 하나 됨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하나 됨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와 하나를 이루는 길과 방법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하나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유대인들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가 청혼하기 위하여 여인의 집으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누구세요?” 집안에서 여인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는 “나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문은 열리지 않았고, 더 이상 아무런 소리도 없었습니다.
남자는 여러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데 왜 그랬을까?!’ 며칠을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남자는 해답을 찾았습니다. 남자는 다시 여인의 집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역시 “누구세요?”라고 사랑하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입니다.” 그러자 비로소 문이 열렸습니다.
이 이야기의 요지는 ‘내가 곧 당신’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통하여 결혼의 전제조건으로 ‘하나 됨’을 가르치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신앙도 ‘영적인 결혼’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는 신부’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19:7-9절입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하나 됨’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는 것’은 두 가지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2:12-13절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에베소서2:18절에서는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하셨습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된 성도가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본문21절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 됨이란, 성도가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를 이루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를 이루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은 어떤 의미에서는 어리석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의문스럽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보다 확실하게 하기 위하여 그 이유를 살펴봅시다. 하나를 이루어야 하는 이유는 앞서 잠깐 보았던 것처럼, 성도를 향하신 예수님의 간절한 소망이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앞쪽의 11절을 봅시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성부 하나님을 향하신 성자 하나님의 간곡한 기도입니다. 또한 에베소서4:3절에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간곡하게 기도하시며, 힘써서 하나를 이루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에 이미 한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의도적으로 하나가 되도록 마음을 합하고 뜻을 모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리스도와 한 지체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를 이루어야 할 또 다른 이유를 몇 가지 살펴봅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을 사람들이 믿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21절에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을 전하는 일은 곧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 사명은 교회가 하나가 될 때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3:16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멸망당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 곧 구원을 받게 하려고 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또한 히브리서2:14-15절에서는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처럼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은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육신의 삶에 매여 노예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유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이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소식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깨끗하고 의로운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마태복음9:12-13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이 소식을 들어야 할 사람들은 죄인들이며, 영과 육신이 병든 사람들입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사랑하시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본문23절입니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여러분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신다고 생각합니까? 혹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에 무관심한 것은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따지기도 했습니다. 말라기1:2절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하는도다. ...”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알게 되었을 때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그 사랑에 감격했었지요? 하나님께 헌신하겠노라고 다짐도 하고 결심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지고 잊혀져서 혹시 지금은 사랑도 감격도 없이 습관적인 신앙에 빠져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될 때에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주십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26절입니다. 공동번역으로 읽겠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게 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길이며 받아 누리는 길입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참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15:5절에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9-11절에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지체들이 하나가 되고 주님과 하나를 이루어야 과실을 많이 맺는 풍성한 삶을 누리며, 신앙의 참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3.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앞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를 이루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한 지체가 됩니다. 그리고 죄를 회개 하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2:12-13절을 봅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면 마음이 하나를 이루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음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을 아는 일과 하나 되는 일에 관심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가르치면서 하나 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4:1-3절을 봅시다. (공동번역)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내가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불러 주셨으니 그 불러 주신 목적에 합당 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여 사랑으로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우리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자신의 욕심과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힘쓰게 되면 하나를 이룰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게 될 것입니다.
에베소서4:4-6절을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하십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지체가 되었으며, 한 성령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으며, 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면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뜻을 모으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 이제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를 이루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하나를 이룰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를 다 들었습니다. 이제 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실천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자신 안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를 이루게 합시다. 그리고 가정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교회가 하나가 되고, 나아가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를 이루도록 힘씁시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하나를 이룰 때에 세상 사람들이 보아도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