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회복해야 할 영의 삶6-감사함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8,009회 작성일 2004-06-26 16:25
♡♥♡ 회복해야 할 영의 삶6-감사함 / 골3:15-17

*** 들어가는 말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영의 삶 여섯 번째는 ‘감사함’입니다. 사실 ‘감사’는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신앙의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감사’의 중요성에 대하여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마침 다음 주일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키게 되는데, 이 시간 회복해야 할 영성으로서 깊이 생각해 봅시다.

‘감사’라는 말은 본문에서 각 절마다 한 번씩 등장합니다. 그런데 각 절에서 사용하는 단어의 형태가 조금씩 다릅니다. 15절에서는 eucharistos를 사용했고, 영어 성경에서는 ‘grateful’이라고 번역했으며, ‘매우 은혜를 입음’, ‘감사하는’이라는 의미입니다. 16절에서는 charis를 사용했고, 영어성경에서는 ‘grace’또는 ‘loveliness’라고 번역했으며, ‘호의’, ‘은혜’, ‘선물’이라는 의미입니다. 17절에서는 15절에서와 같지만 형만 다른 eucharisteo를 사용했고, 영어성경에서는 ‘to give thanks’라고 번역했으며, ‘감사하다.’, ‘은혜를 말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왜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했느냐 하면, ‘감사’라는 말과 ‘은혜’라는 말이 같은 단어를 사용하거나 혹 사촌 격이 되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감사한다.’는 것은 ‘받은 은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며, ‘감사하는 자’는 곧 ‘은혜를 받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즉 은혜를 받아야만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하는 사람은 은혜를 받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임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윌리엄은 행복을 찾는 비결을 묻는 사람에게,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데 있다.”고 했으며, 성 어거스틴은 “감사의 분량이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의 척도”라고 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의 앞서 간 신앙의 선조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감사’입니다. 감사의 반대편에 있는 원망과 불평은 이스라엘백성의 광야 생활을 통하여 너무나 선명하게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감사하며 삽니까? 행복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한다면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회복하는 길을 찾아봅시다.

1. 감사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정 형편이 상당히 어려운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순종적이고 온순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앙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하여 마음이 많이 상해있었습니다. 사귀는 여자 친구의 가족들로부터 ‘가정환경이 좋지 않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혼 승낙을 얻지 못했습니다. 홀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못했으며, 형의 사업이 어려웠고, 신앙심도 거의 없었습니다. 무엇 하나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괴로워하는 그에게 “그래도, 건강이 있고, 얼마든지 기회가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그는 “감사할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항의하듯이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불행함을 하나하나 나열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이유를 따지지 말고 내게 생명을 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이 사귀던 아가씨와 결혼도 했고, 지금은 그도 어엿한 목사가 되었습니다. 가정환경도 많이 좋아졌고, 어머니랑 형도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감사할 조건을 따질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의 조건으로 따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의 확증을 위하여 굳이 따져본다면 중요한 몇 가지만 살펴봅시다.

첫째는 창조주이시며 주권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환경과 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이 땅에서 하나님의 허락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즉 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죄로 인하여 영원한 죽음의 자리에 처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살려주시고,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본문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한 몸으로 불러주셨으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권자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8절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으며, 시편50:23절에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외에 우리가 감사의 조건으로 내거는 모든 것은 부수적인 것일 뿐입니다. 많은 교회들에서 모순적인 신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면서도 헌금 봉투에는 구체적인 감사의 제목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물론 ‘모든 일에 감사하는 중에 특별히 감사한 일을 기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봉투를 만든 의도나 성도들의 생각도 실제로 그러하겠습니까? 우리는 나를 구원하시고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주님이시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경외이며 순종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2.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우리 옛 말에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친절과 은혜를 쉽게 잊습니다. 반대로 상처받은 일이나 손해를 당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쉽게 잊지를 못합니다. 내가 손해 본 것에 대하여는 따지고 끝까지 보상 받으려 하면서도, 받은 은혜에 보답하는 일은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사건이라고 합니다. 바다처럼 큰 호수인 미시건 호에서 여객선이 뒤집힌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 마침 그 배에는 젊은 수영 선수 한 사람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구조하여 23명이나 구출했습니다. 그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 청년의 행동은 신문지상에 토픽으로 등장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칭찬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어느 날, 토레이 신부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부흥회를 인도하는 중에 바로 그 이야기를 예화로 들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신부를 찾아왔습니다. 노인은 바로 그 때의 그 청년이 바로 자신이라고 했습니다. 신부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그때의 일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그 23명 가운데 내게 찾아와 고맙다고 말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기억납니다.”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3:1절 이하를 보면 말세 때에 사람들의 심리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배반하며,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 종말의 때의 특징은 철저한 개인주의입니다. 도무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고 돈을 사랑하고 감사하지 아니하는 것이 말세의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1:21절에서도 타락한 인생의 특징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이러한 세대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첫째는 평안을 이루어야 합니다. 본문15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감사는 삶에서 표현되어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5:18-19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의 팔복 일곱 번째는 ‘화평을 이루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서로 돌아보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본문16절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하십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함께 서로 사랑의 교제를 이루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이는 것이 감사의 표현입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서로 사랑하고 교제하는 모습을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또한 사도행전11:26절에서는 안디옥 교회가 피차 교제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제자로서의 삶을 살 때에 처음으로 불신자들로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를 들었습니다.

세 번째는 모든 일을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본문17절입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받아 주님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내 자신의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나의 생명도 삶도 건강도 물질도 시간도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2:20절에서 고백한 것처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해야 하며, 로마서14:8절 말씀처럼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즉 나를 주님이 사용하시고자 한다면 내 모든 것과 생명까지도 내놓아야 합니다.

일본의 유명한 다마끼 부인은 평생을 나환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나환자들을 돌보며 요양원을 세우고, 고름 나는 환자들을 치료하다가 자기도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가 나환자가 되어 눈썹이 다 빠지고 속눈썹까지 빠지고 나서 이렇게 썼습니다.
“이제 육의 눈이 가려지고 영의 눈이 열려 감사합니다. 눈썹이 빠지면서 눈썹의 고마움을 알았습니다. 먼지가 자꾸 눈에 들어가서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병을 주어 여러 가지 감사하는 마음을 알게 하셨으니,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여러분, 속눈썹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베푸신 건강과 평안한 삶을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연히 누리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감사를 잊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을 회복합시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평안히 눕고 일어남을 감사합시다. 때로 다가오는 고통의 일들이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더 나은 은혜를 위한 섭리임을 믿고 감사합시다.

1620년 12월26일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출발한 1백46명의 청교도들이 117일간의 항해 끝에 미국 플리머스해변에 도착 했습니다. 청교도들은 가장 먼저 교회를 짓고, 다음으로 학교를 지었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첫해 농사를 지어 가을 추수 때에 자신들을 위협하며 괴롭히는 인디언들을 초청하여 감사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첫 추수감사절이었으며, 이것이 지금의 미국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남미는 북미보다 좋은 자연환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가 세계 최강이 되는 동안 남미는 지금도 여전히 질병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그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북미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개척한 ‘감사의 땅’이다. 그러나 남미는 일확천금을 노린 사람들이 개척한 ‘탐욕의 땅’이다. 북미와 남미가 현격한 생활수준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하는 가정은 행복을 누릴 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익만 추구하는 이기적인 가정의 후손들은 평생 탐욕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끌어 모으고 움켜쥐어도 결코 모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5:18절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하셨으며, 시편118:1절에서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선포합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일에 섭리하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복을 받는 통로입니다.

시편50: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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