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회복해야 할 영의 삶4 - 신실함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061회 작성일 2004-06-13 10:30
♡♥♡ 회복해야 할 영의 삶4-신실함 / 눅12:41-48

*** 들어가는 말

오늘은 회복해야 할 영의 삶 네 번째로 “신실함”에 대하여 상고하고자 합니다. “신실함”이란, pistos(pistov", faithful, believing)라는 말로서 '믿을 만한', '신뢰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으로서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신실함이 왜 중요하며, 이 시대에 우리가 회복해야 할 영의 삶인지는 주님의 말씀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49:7절입니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너를 보고 열왕이 일어서며 방백들이 경배하리니 이는 너를 택한 바 신실한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신실함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18:8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바로 이 말씀입니다. 끈질긴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시던 예수님께서 믿음을 가지고 인내하며 간구하라고 하시면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도 생활 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믿을만한 사람과 믿지 못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매사에 하는 일이 성실하고 진실하여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무슨 일을 해도 도무지 신뢰감이 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네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안 믿는다.”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이쯤 되면 심각한 수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신실하려면 먼저 사람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래 전에 어느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체육교사가 학생들에게 가을 운동회 준비를 위해 일요일인 내일도 전교생이 등교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월요일이 되었습니다. 운동회 연습 시간에 체육 선생은 어제 결석한 학생들을 조사하여 기합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전교 회장도 그 학생들 틈에 끼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모 교회 장로의 아들로서 고등부 회장이었으며 성실했습니다. 체육 선생은 전교 회장이 결석한 것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전교 회장을 전교생 앞에 불러 세우고 물었습니다.
“어제 왜 결석했나!”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에 결석했습니다.”
“학교가 중요한가? 교회가 중요한가?”
“학교는 학교대로 중요하고, 교회는 교회대로 중요합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둘 다 중요합니다.”
체육 선생은 그 학생을 몹시 때렸습니다. 그 입에서 학교가 더 중요하다는 대답을 듣기 위해서 더 심하게 때렸습니다.
“둘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
“둘 다 선택하겠습니다.”
“아니,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한다면 어느 것을 택하겠느냐?”
“꼭 하나만을 택하라면 교회를 택하겠습니다.”
체육 선생은 다음 일요일에 그 학생을 등교시키기 위하여 체벌과 심한 기합을 주었지만, 그 학생은 주일을 지켰습니다. 전교생들은 숨을 죽여 가면서 체육 선생과 전교 회장의 대립을 지켜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다음날 큰 문제로 비약되었습니다. 교회로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목사는 교장을 찾아가서 엄중히 항의했고, 교육청장에게도 엄중히 항의했습니다. 결국 체육 교사는 다른 학교로 전출되었고 교장이 전교생 앞에서 사과함으로써 사건이 수습되었습니다.

이사야26:3절입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심지”란 ‘마음’을 말합니다. 예레미야39:18절에서는 “내가 단정코 너를 구원할 것인즉 네가 칼에 죽지 아니하고 네 생명이 노략물을 얻음같이 되리니, 이는 네가 나를 신뢰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해야 하며, 하나님을 향하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 이 시대에 신실함을 회복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한다면 ‘믿을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주님께서도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볼 수 있겠느냐?’ 라고 염려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뒷받침이라도 해 주듯이 본문의 비유를 해 주셨습니다. 이 비유의 주제는 “신실함”입니다.

앞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재림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즉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있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12:35)고 하셨습니다. 즉 ‘깨어 있어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있으라.’는 요청입니다. 그 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이 재림의 비유를 누구에게 하시는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대답으로 본문의 비유를 하셨습니다.

주인이 청지기에게 집안의 경영을 맡기고 출타했습니다. 청지기는 그 집의 일군들에게 때를 따라서 양식을 주며 일을 정해 줍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이렇게 성실하게 집안의 일을 경영했습니다. 반면에 불성실한 청지기는 자신은 밤낮 술에 취하여 오락가락하면서도 일군들을 구박하고 혹사시켰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이 돌아왔을 때, 청지기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신실한 정도에 따라서 상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46-48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46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특징은 ‘인본주의’입니다. 사람이 중심이 된 시대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편의성과 즐거움을 위하여 모든 것을 맞추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갈수록 편의성이 돋보이는 교회당 의자와 시설들, 인간의 편의성에 맞춘 예배시간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도 감격도 없는 예배와 모임들 등. 시대감각에 맞추어가는 형식에 비하여 하나님께로 향하는 진실한 삶이 결여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를 두고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3:5절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라고 했으며,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을 부인한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경건의 모양이 있다는 말은 적어도 예수 믿는 모양은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흉내는 내고 있는데 실제적인 능력을 부인합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단어는 ‘능력을 부인 한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부인한다는 말은 ‘부정하다.’, ‘거부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실제의 삶에서 행동화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오늘, 집에 와서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도와 달라.’고 했을 때, ‘예’라고 대답은 하고서 자기 마음대로 놀러 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을 두고 신실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자기 책임을 다 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자신의 약속조차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이며, 환경과 상황에 따라서 마음이 이리저리 변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야고보 선생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상황을 보십시오. 정치부터 시작해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믿을만한 것이 없습니다. 요 며칠 사이에는 음식물 문제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가 술렁거리고 있습니다. 신문마다 ‘이제 무엇을 먹어야 하나?’라며, 믿을 수 없는 세상에 불신만 더하고 있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 나라의 교회가 성도 숫자로 자부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으실만한 생활 속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회복해야 합니까?

신실함이란 말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행동에서 나타납니다. 고린도전서4:19,20절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신의 마음에 따라 정직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마음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니라, 마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된 삶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자신의 손익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47절에서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미국의 유명하고 뛰어난 호텔중 하나인 ‘홀리데이 인’호텔이 있습니다. 이 호텔의 회장이었던 ‘클라이머’는 임기 중에 수백 개의 호텔을 운영하면서 호텔 내에 한번도 카지노를 두지 않았습니다. 단 자신이 회장을 맡기 전에 미미 카지노가 설치된 라스베이거스의 홀리데이 인은 예외였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간부들은 사세확장을 위해 뉴저지주의 호텔에 카지노를 설치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클라이머 회장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중역들은 끊임없이 카지노 설치를 건의했습니다. 클라이머 회장은 이 문제를 놓고 가족들과 상의한 후 회장 직을 포기했습니다. 은퇴 식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제가 운영하는 호텔에 카지노를 두지 않기로 하나님과 약속을 했습니다. 사람들 간의 약속도 중요한데 하나님과의 약속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제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길은 회장 직을 물러나는 것뿐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저는 지금 마음이 무척 평안합니다.”
직원들은 끝까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킨 한 신실한 크리스천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도 박수를 보내시리라 생각합니다.
먼저, 여러분이 하나님과 약속 한 것이 없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신명기23:21절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고 하셨으며, 전도서5:6절에서는 “네 입으로 네 육체를 범죄케 말라. 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으로 네 말소리를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과의 약속은 어떤 형태이든지 취소할 수가 없습니다.

‘서원’이란 ‘나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께 약속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제가 이렇게 저렇게 하겠습니다.”라든가 “이것을 이루어 주시면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드리겠습니다).”라는 약속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은 약속을 먼저 지켜야 합니다. 몇 십 년 전의 약속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이나 사람들이 권면이나, 환경이나 상황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대로 순종하고 실천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환경과 삶을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역사하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즉 내게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본문42,43절에서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신 말씀에서처럼 청지기가 주인이 있든지 없든지 자신의 할 일을 제때에 성실하게 할 때에 주인에게 인정을 받고 복을 받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십시오.

우리나라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읽는 책 중에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의 ‘안식으로의 여행(Sabbatical Journeys)’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헨리 나우웬이 죽기 얼마 전에 썼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날아다니는 루델라스(Flying Roudellas)’라고 불리는 공중 곡예사였던 그분의 몇몇 친구에 관해 썼습니다. 그들은 나우웬에게 공중 곡예에서 ‘나는 사람(the flyer)’과 ‘잡는 사람(the catcher)’은 철저히 그 하는 일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했습니다. 즉 ‘나는 사람’은 철저히 나는 일만 하고, ‘잡는 사람’은 잡는 일만 한다는 것입니다.
공중 곡예를 할 때 ‘나는 사람’은 나는 순간 그네에서 손을 떼고 몸을 공중으로 던집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하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계속 날면서 자기를 잡아줄 ‘잡는 사람’의 강한 손을 기다리는 일입니다. 그 상황을 설명하면서 “날아다니는 루델라스” 멤버 중의 한 사람은 누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은 결코 잡는 사람을 잡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사람의 할 유일한 일은 잡는 사람을 절대적으로 믿고 기다리는 일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잡아주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주님은 즉각 잡아주실 때도 있지만, 오래 기다리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잡아주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시간은 주님께서 무대 뒤에서 일하시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람이 되려면, 나의 생명이시며 능력이신 하나님을 절대 의지해야 합니다. 하박국2:3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여러분, 비록 삶이 힘들어지고, 환경이 어두워진다 할지라도 우리의 힘이시며 능력이시며 보호자가 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다만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도록 성실하게 살아갑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영광의 뜻을 이루게 하실 것이며, 우리의 행위를 따라서 상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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