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 장로회
설교모음

회복해야 할 영의 삶2 - 착함

작성자 배의신 댓글 / 조회: 7,392회 작성일 2004-05-29 17:25
♡♥♡ 회복해야 할 영의 삶2 - 착함 / 마5:13-16

*** 들어가는 말

지난 주일에는 우리가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영성 첫 번째로 ‘약함’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영의 삶, 두 번째로 ‘착함’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착함이란, agathosune(ajgaqwsuvnh)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덕행’, ‘선행’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는 조금 다른 단어를 사용했는데 ‘착한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즉 ‘착함’이란 복음의 특징이며, 그리스도인의 생활덕목입니다.

오늘의 교회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풍성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마다 각종 성경공부와 제자훈련, 예배 때마다 증거 되는 말씀, 인터넷이나 기독교 방송에서 넘쳐나는 설교와 간증들, 기독교 서점에서 넘치는 설교집과 테이프 등등. 풍성한 설교, 풍성한 은혜체험을 통하여 성도들은 지식과 감정이 풍부해졌습니다. 그래서 말 잘하고, 비판 잘하고, 계산 빠른 이기주의자들이 되었습니다. 즉 말씀과 믿음과 은혜에 치우쳐서 행동을 등한시하게 되었습니다.

머리 속에서만 맴도는 하나님의 말씀, 가슴 속에서만 꿈틀거리는 신앙은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이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이론적인 신앙은 종이 호랑이이며,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거짓 신앙입니다. 디모데후서에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말세에 나타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열아홉 가지로 설명하면서 마지막에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고 하십니다. 요점은 복음적인 삶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많이 느끼고, 은혜로 충만하다고 해도 생활에 반영되지 않는다면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이처럼 오늘의 성도들이 능력을 잃어가는 증거는 이단들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들끓는 것입니다. 지금 이 나라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는 세력들로 혼잡합니다. 이들은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갑자기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드러내놓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지난 초파일에 사찰들의 화려함을 보셨지요? 대적들은 성도들을 미혹하고 교회를 약화시키기 위하여 총력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치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시키는 듯하며, 최후의 일전을 준비하려는 듯도 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회복해야 할 영적인 삶은 ‘착함’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착한행실로, 미혹하고 대적하는 무리들로 비방거리를 찾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2:12절을 봅시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1. 착함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간단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착한 행실의 근거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14절을 봅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삶 속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 인생을 위하여 용서와 사랑과 희생의 삶을 사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를 통하여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사도행전10:38절입니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친히 먼저 착한 일을 행하심으로서 삶의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제자들에게 ‘착한 행실을 하라.’고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세족식’이라 부르는 사건을 통하여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3:14-15절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이 시대에 회복해야 할 영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전에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당신의 조상들은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이 북미에 왔다가 하나님도 찾았을 뿐만 아니라 금도 찾고 물질의 복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우리 아르헨티나는 우리 조상의 대부분이 돈을 모으기 위하여 금을 찾아 이주해 왔는데, 지금 와서 보니 돈도 모으지 못했고, 하나님도 찾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살지만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찾고 회복해야 할 것은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우리 인류를 위한 선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본문16절의 ‘착한행실’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good work로 번역했습니다. 원어 그대로의 의미는 ‘아름다운 일’, ‘선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생활 속에서 착한 행실을 나타내야 할 근거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셨으며, 동시에 우리에게 명령하신 삶의 덕목입니다.

2. 착함의 모범적인 사례들을 봅시다.

성경에는 착한 행실의 사람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착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소아시아와 유럽지역으로 복음이 전파되는 일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와 많은 사역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말씀 증거로 인하여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일어났던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착한 삶이었습니다. 다비다의 착한 행실을 통하여 욥바에서 복음의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으며, 가이사랴에서는 백부장 고넬료의 선행을 통하여 복음이 전파될 길이 준비되고 있었습니다.(행9:36,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행10: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이처럼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 의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작업이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의 사역자들 역시 착함이 돋보이는 성품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를 설립했으며, 사도 바울을 이끌었던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지만 그 전에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11:24절에서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영적인 아들이며 수제자였던 디모데는 목회자이기 전에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칭찬하면서 ‘디모데만큼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깊이 생각하며 인정과 사랑이 많은 착한 사람이 없다.’고 표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5:9절에서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착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이자 삶이었으며,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삶입니다. 또한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며,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엄청나게 소중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양식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6:10절에서는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말씀하십니다.

3. 지금 우리가 착함을 회복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의 환경을 보십시오. 지금은 신앙을 머릿속에 가둬두거나 말을 앞세우는 이론적인 신앙의 시대가 아닙니다. 지금은 유창한 설교보다, 뜨거운 은혜의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외되고 상처 입은 자를 품을 수 있는 따뜻하고 착하고 사랑으로 행하는 삶입니다. 즉 지금은 예수 닮은 착한 삶을 나타낼 때입니다.
본문13-14절을 읽어봅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어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소금이 되고, 빛이 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부터 이미 소금처럼, 또는 빛처럼 없어서는 안 되는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지금의 세상은 소금인 우리를 필요로 할 만큼 부패되어 있으며, 빛인 우리를 필요할 만큼 어두워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 부패를 방지하며, 맛을 내고, 자신을 태워 빛을 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이 시대에 살게 하셨으며, 지금 이 자리에 보내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라의 꼴을 한탄하며, 사람들의 변질됨을 손가락질 하라고 하신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요나처럼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여, 니느웨로 가기가 싫어서 다시스로 가는 배 밑창에 숨어서 홀로 평안하기를 꾀하라고 하심은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남들이야 어떻게 하든 나와 내 가족만 평안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아닙니다. 387장 찬송처럼, “다른 사람 어찌든 나만은 주님의 용사되리”라는 고백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날 아침, 해변의 작은 마을에는 해변이 온통 불가사리로 가득 덮였습니다. 지난밤에 심한 조류가 불가사리들을 끌어와서는 해변에다 내동댕이치고는 물러갔던 것이었습니다. 해가 떠오르면서 불가사리들은 말라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숫자에 기가 질려서 어느 누구도 불가사리를 살려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해가 떠오르는 아침나절에 어떤 사람이 해변을 거닐다가 한 꼬마가 불가사리를 한 마리씩 주워서 바다로 던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꼬마야, 여기에는 수천 마리도 넘는 불가사라가 있는데 네가 하고 있는 일은 쓸데없는 일 같구나.”
라고 했습니다. 그 소년은 여전히 불가사리를 집어서는 바다로 던지면서
“이 불가사리한테는 쓸데 있는 일이지요.”
라고 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는 매일 수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 하나가 잘하든 잘 못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나 하나가 게으르고 정직하지 못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을 못하시는 것도 아닐 테고, 나 하나 성실하고 열심을 낸다고 뾰족한 수가 생기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소금이라,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환경을 보면서 자포자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사람 한사람이 등불을 밝히면 살만한 세상,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를 지금 이 시대에 이 자리에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착한 행실로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됩니다.

이제 조금 더 시야를 넓히고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 세상을 봅시다. 그리고 주님이 나를 위하여 하신 것처럼 우리도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작은 것부터 하나씩 주님을 따라갑시다. 그리하여 우리의 착하고 아름다운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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